'잔인하게 아름다웠던 그 시절, 1979년'
잔인하게 아름다웠던 그 시절
1979년 4월, 그해 봄은 어느 해보다 따듯했다. 조금만 더 지나면 세상이 바뀌고 만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해 봄도 여전히 하늘은 시리도록 푸르렀다. 봄이 되면 한강변에는 벚꽃들이 가득 피어났다. 연분홍 벚꽃들이 눈송이처럼 바람에 날릴 즈음엔 다시 축구공 만한 투박한 연녹색 호박 이파리들 사이로 봉긋하게 열매가 생긴다. 그게 호박으로 자란다. 나중에 좀 더 시간이 지난 뒤 동네 할머니들은 그런 호박과 이파리를 따다가 남편 점심상 반찬거리로 내기도 했다. 아직 십 대 초반의 나이 어린 K에게는 겨우내 얼었던 한강변 모래사장으로 다시 나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친구도 별로 없던 터라, 한강변 모래사장이 유일한 놀이터요 친구였다. 사실 한강변 모래사장에 나가면 놀 것들이 천지에 널려 있었다. 다리 밑으로 자동차 한 대쯤은 너끈히 내려갈 수 있는 경사진 도로를 따라 몇 미터 걸어가면 희고 긴 모래사장이 좌우로 펼쳐졌다. 그곳에 서면 한강 중간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중지도라는 작은 섬이 한눈에 들어왔다. 검은 들깨처럼 촘촘히 박혀 있는 듯 화강암 덩어리들은 자로 잰 것처럼 일렬로 차곡차곡 쌓아 올려졌다. 누가 저 섬을 만들었는지 아무도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중지도는 한강의 가운데 놓인 인공섬이었고 북한강에서부터 거침없이 흘러내려온 한강물은 바로 이 중지도에서 부딪쳐 반으로 쪼개졌다. 하나는 왼쪽으로 하나는 오른쪽으로,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는 북쪽으로 다른 하나는 남쪽으로.
재밌게도 중지도 주변에서는 마치 선박이 물살을 가르며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듯 파도가 친다. 철썩거리며 퍼져나가는 물결은 여울을 만나 급류를 일으키는 곳도 있었다. 작년 가을에도 이 한강 중지도 여울 속으로 투신자살을 시도했던 한 여인이 있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건만 그녀의 시신조차 아직 찾지 못했다. 동네 사람들은 몸이 불어 강물 깊이 가라앉아 바다까지 흘러갔을 거라 수군거렸다.
물가에 서면 마치 강물이 내 머리 위로 넘실거리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는데, 아마도 그건 중지도에서 갈라져 나온 물살과 여울이 만든 회오리 모양의 급류 때문에 일어난 착시일 수 있다. 강물이란 게 생긴 모양이 가운데가 볼록 튀어나올 수 없는 것인데, 그 시절에는 어디서 바라봐도 강물은 늘 머리 위 눈썹 정도쯤의 위치에서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K는 그래서 다른 아이들처럼 강물 속으로 쉽게 뛰어들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대신 강 상류에서 흘러내려온 잡동사니들이 모래사장 곳곳에 박혀 있는 걸 주워서 놀잇감으로 대신했다. 썩은 나뭇가지들이며 짐승의 가죽들도 가끔 흘러내려왔다. 정확히 말하면 가죽이 아니라 껍질만 남은 동물의 사체였다. 살점이 다 뜯긴 텅 빈 내장 한가운데 부챗살처럼 가늘고 긴 갈비뼈들이 앙상하게 드러난 토끼도 있었다.
모래사장에서 강물 한가운데에 시선을 맞추고 잘 노려 보면 물 위로 뻐끔뻐금 물방울이 올라오는 곳들 있다. 그 밑으로 짙은 황금빛 비늘을 흔들거리며 잉어들이 노닐었다. 먹물에 녹색 수채화 그림물감을 뒤섞어놓은 정도로 강물 색깔은 짙고 거무튀튀하였다. 지금 생각해 봐도 왜 그때 한강물이 검은색이었는지는 이유를 알 길이 없다. 강 상류에 그렇게 많은 공장이 있던 시절도 아니었다. 아무튼 황금빛 비늘을 찰랑이는 잉어들은 검은 먹물 사이로 유독 눈에 잘 띄었다.
분명한 건 그 짙은 검푸른 강물 위에서 아주 가끔이지만 자라들이 헤엄을 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가끔은 그중에서 헤엄 못 치는 녀석 몇몇이 모래사장 위로 기어올라온 적도 있었다. 중지도에서부터 노량진 나루터까지 기어 온 탓일까. 강가에 다다르면 자라들은 힘에 부쳐 헤엄을 친다기보다는 흐르는 물살에 몸을 맡기고 엎어져 있다고 봐야 한다. 두꺼운 등껍질을 짊어지고 제대로 된 물갈퀴도 없이 힘겹게 물살을 가르고 나가려는 녀석들을 굳이 바짓가랑이 적셔가면서 잡아 올리던 아이들도 있었다. 어쩌면 아이들이 내버려두었으면 큰 바다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아이들 손에 붙잡힌 자라들은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아이들은 주변에서 잉어를 잡으려고 판을 벌려놓고 있던 낚시꾼들에게 오백 원짜리 종이돈 한 장을 받고 자라를 넘겼다. 지폐 한가운데 그려진 이순신 장군 영정과 바다를 호령하던 거북선이 그려진 종이돈이었다. 낚시꾼 손에 넘겨지면서도 자라는 등껍질 속으로 머리를 처박는 일 따위는 없었다. 자존심 강한 녀석들이었다.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손가락이라도 물어뜯을 기세였다. 어쩌면 그것이 그가 이생에서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저항의 몸부림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구겨진 오백 원짜리 지폐를 자랑삼아 친구들에게 보여주던 아이는 K보다는 머리 하나는 더 컸다. 종이돈에 새겨진 거북선과 머리를 꼿꼿이 쳐들고 버티던 자라의 모습은 닮은 듯 달랐다. 아무튼 그렇게 굳이 친구가 없어도 하루 반나절 정도는 충분히 혼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 들어올 수 있는 곳이 바로 한강 모래사장이었다.
그렇게 정들었던 한강을 떠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날, K는 아쉬움이 한둘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한강변 모래사장에 나가서 물장난을 치며 놀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자라 구경을 못하는 것도 아쉬움 중 하나였다. 지금까지 부모님을 따라 이사를 몇 번 다닌 적이 있었다. 그래도 한강을 벗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강을 중심으로 한 번은 북쪽에서 살다가 남쪽으로 내려온 것이 고작이었다. 지도를 펴놓고 자를 대고 선을 그어봐도 1킬로미터도 되지 않은 짧은 거리였다. 거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느 쪽으로나 강을 끼고 살았다는 것이다. 강물이 오른쪽으로 흘러가는 걸 볼 때도 있었고, 반대로 왼쪽으로 흘러가는 걸 볼 때도 있었다. 그저 그것이 차이라면 차이였다. 그 당시 K의 삶에서 하루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강물이었다. 이른 아침 강물 위로 떠오르는 푸른빛 감도는 태양을 바라보며 하루가 시작됐고, 황금빛으로 강물을 물들이며 노을과 함께 물속으로 잠겨가는 석양을 보며 하루가 끝났다. 온통 삶을 지배하던 강물을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을 거라는 말이 그래서 그렇게 서운하고 슬프게만 들렸다.
K가 트럭 한가득 실린 이삿짐들 사이로 웅크리고 앉아서 한강변을 떠날 때는 계절이 벌써 선선한 가을로 접어들던 때였다.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를 하던 곳에는 예전에 장승이 서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장승에서 이름을 따서 장승배기라고 지었다고 한다. 마을 지켜주는 신성한 물건, 천하대장군이라 한자로 적혀 있던 흉측한 표정을 K가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아버지를 따라서 시골 고향 마을에서 봤던 장승을 생생히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때도 장승은 남자와 여자로 두 개가 세워져 있었다. 그나마 지하여장군이라 이름이 적혀 있던 여자 장승은 험상궂게 생긴 남자 장승에 비하면 애교스러울 정도로 귀여웠다. 그런 기억 덕분에 K에게는 장승이 세워져 있던 마을로 이사를 온다는 게 그리 낯설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물론 K가 이사를 오던 시절, 장승은 없어진 지 오래전이다.
사람들 말에 의하면, 장승이 서 있던 자리에는 새로 버스 정거장이 하나 생긴다고 했다. 국회의원에 당선된 기념인지 아니면 국회의원이 되려고 나서는 자인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동네 유지 하나가 마을버스 노선 하나를 끌고 왔다. 장승배기에서 고개를 너머 약수봉까지 2킬로미터를 걸어가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든 버스 노선이었다. 모양은 시내를 달리는 버스와 똑같이 생겼지만, 그 버스는 오직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만 다녔다.
버스가 개통하던 날, 새로 생긴 버스 정류장에는 시멘트를 거푸집에 넣고 말려서 만든 콘크리트 덩어리 하나가 놓였다. 시멘트가 다 굳기 전에 가운데 큼지막한 철봉을 박아서 둥그렇게 표지판을 하나도 만들었다. 흰색 바탕에 파란색으로 테두리를 칠하고 한가운데에는 빨색 페인트로 '25-3'이란 숫자까지 적어놓았다. 25-3번 버스의 종점이라는 표식이었다. 그 버스는 매일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 장승이 서 있던 마을 입구에서 약수봉이 바라보이는 동네 야산 중턱까지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 25-3번 버스가 공짜 버스였다는 사실이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게냐마는, 그래도 장승배기 약수터를 오가며 매일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었다. 당연히 25-3번 버스 노선을 마을에 끌고 들어온 그자는 이듬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가 당선되었다는 사실을 마을 사람들은 25-3번 버스 정류장 앞에 길게 걸어놓은 플래카드를 보고서야 알았다. 어쨌거나 그때부터 공짜로 얻어 타는 버스는 아니라면서 어깨 펴고 버스에 올라가던 사람들도 있었다. 어차피 세상은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 아니겠는가. K는 그렇게 세상의 이치를 배워나갔다.
그 25-3번 마을버스는 제법 많은 승객들이 이용했는데, 그중에서 제일 예쁘게 생긴 여자 아이가 하나 있었다. K보다 대여섯 살 위였던 그 소녀를 만나는 일이 K에게는 가장 기쁜 일이었다. K에게는 그 여고생을 좋아할 만한 이유들이 백 가지도 넘쳤다. 얼굴은 희고, 다리는 길면서도 가늘고, 왁스로 광을 낸 검은 구두, 두 발을 감싼 흰색의 목양말, 어린 시절 그렇게 이유 없이 좋아하게 되는 사람이 누구에게나 있다. K에게는 25-3번 버스 정류장의 그 소녀가 바로 비너스의 여신이었다. 하지만 백 가지 넘는 이유들 중에서도 가장 K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어깨너머로 줄을 내고 늘 갖고 다니던 바이올린 케이스였다. 그 시절에는 감히 누구도 쉽게 만져볼 수도 없는 바이올린을 그녀는 매일 갖고 있었다. 어떨 때는 양손에 살포시 들고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을 본 적도 있었다. 어떨 때는 여자들이 어깨에 두르고 다니는 빽처럼 길게 끈을 내서 메고 있던 적도 있었다. 걸어갈 때도 그녀의 흰 목양말을 신은 검은 구두와 검은색 바이올린 케이스는 시계추처럼 정확히 같은 속도로 앞뒤로 엇갈려 스쳤다. 그런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경쾌한 행진곡이라도 귓전에 울려 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떨 때는 그 소녀를 만나기 위해서 25-3번 버스를 계속 타고 다닌 적도 있었다. 어차피 공짜 버스라 누가 뭐라 하는 사람도 없었다. 맨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다가 사람들이 내릴 때쯤이면 머리를 의자 밑으로 숙이면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어차피 그런 모습을 운전사에게 들킨다고 해서 욕먹을 짓도 아니었다. 그저 할 일 없는 동네 아이들이 공짜 버스 안에서 장난치는구나, 하는 정도로 생각하는 게 고작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K가 그녀 이름을 한 번도 제대로 불러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기억을 못 하는 것인지, 아니면 알았는데도 불구하고 까먹은 것인지, 희미하게나마 기억하는 것은 예쁜 얼굴만큼이나 예쁜 이름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도대체 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것인지. K는 그것이 궁금하고 미칠 것처럼 답답한 일이었다.
어느 장대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날, 그날도 K는 우산을 들고 25-3번 버스 종점에 서성거렸다. 혹시라도 그녀를 볼지 모른다는 기대, 멀리서라도 그녀의 뒷모습이라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K에게는 은근한 기쁨이었다. 그녀를 생각하면 왜 가슴이 뛰고 답답해지는지 그때는 잘 몰랐다. 그래서였을까? 멀리서 그녀의 뒷모습을 훔쳐보는 게 나쁜 짓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K에게는 선과 악이 그렇게 동시에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나쁘면서도 기쁘고, 하지 말아야 할 것 같지만 그래서 더 쾌감이 느껴지는 어떤 은밀함. 세상의 비밀을 나 혼자 간직하고 있을 것 같은 신비감 같은 게 느껴졌다. 그건 장마가 개인 새벽 밤하늘에 촘촘히 박혀 있던 은하수를 바라볼 때와 비숫한 감정이었다. 숫자를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이 온 밤하늘을 수놓았던 반짝이던 별빛들 사이로 긴 꼬리를 이으며 별똥별이 사라지는 순간 느껴졌던 우주적인 전율 같은 거였다.
그날 K는 그녀가 빳빳하게 다린 하얀색 교복에 검정 치마를 입고 수줍은 듯이 미소 지으며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왔다. 버스 정류장에 늘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데 그날 옆에는 우산을 받쳐주던 건장한 남학생의 모습까지 K의 시선에 겹쳤다. 딱 부러진 어깨 하며 힘 깨나 좀 쓰는 녀석이라는 게 K의 그 남학생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둘은 우산을 받쳐 들고 K가 서 있는 앞을 스쳐 지났다. 두 사람이 한 우산 아래 거의 동시에 자신 앞을 스쳐지날 때, 소녀에게서는 비에 젖은 풀잎들의 향기가 풍겨왔다.
멀리서 사라지는 우산 속의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던 K는 갑자기 결심이라도 한 듯 우산대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둘의 뒷모습이 골목으로 사라지기 직전에 마치 탐정이라도 된 것처럼 뒤를 밟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는 아마 누구도 이유를 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냥 그렇게 가슴이 말을 걸어왔고, K는 그 가슴의 말에 따라 발걸음을 옮겼을 뿐이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느냐고 물어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
골목길에서 먼저 사라진 두 사람을 따라잡기 위해 K는 달리기 시작했다. 달릴수록 터질 것 같은 가슴 한 곳이 뻥하고 뚫리는 기분도 들었다.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그녀의 뒷모습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학생이 받쳐 들고 가던 우산 아래 조용히 걸어가던 소녀의 뒷모습은 아마도 K의 일생에 커다란 교훈을 남겼을지 모른다. 세상에 넘보지 말아야 산이 있다. 산 중턱에서라도 그걸 깨달은 해가 지기 전에 하산하는 것이 살아남은 길이다. 뭐 대충 이런 감정들이었다.
비가 오는 날은 일찍 저녁이 찾아온다. 그날도 그랬다. 저녁 6시도 안 된 시간인데 벌써부터 하늘이 어둑어둑했다. 게다가 빗줄기는 왜 그렇게 처량하게 주룩주룩 퍼붓고 있는지. K는 10미터 사이를 두고 우산 속 두 남녀의 뒤를 밟고 있었다. 갑자기 남자가 걸음을 멈추고 우산 안에 있는 소녀에게 뭐라고 말을 건네는 모습이 보였다. 입술 모양만 움직이는 걸로는 도무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방법도 없지만, K는 그것이 남자가 보내는 사랑의 연서일 거라 확신했다. 그런데 소녀는 남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산 밖으로 뛰쳐나왔다. 빗줄기가 그녀의 흰 교복 위로 누런 살색 자욱들을 구석구석 남겨놓을 때까지 그녀는 마냥 정신없이 뛰어갔다. K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남학생에 향하던 질투의 시선도 그녀가 있기에 그나마 존재의 의미가 있었던 것. 더 이상 K에게 남학생의 존재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K는 우산을 접고 빗속을 향해 뛰었다. 소녀가 달려가던 그 길을 향해 곧바로 직진이었다. 우산을 들고 묵묵히 서 있던 남학생의 옆을 스칠 때는 그에게서 생선 비린내가 풍겼다. 이유는 모르지만...
소녀는 골목길을 돌고 돌아 다시 큰 길가 이면도로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빗줄기에 몸이 젖을 대로 젖은 그녀의 모습은 K에겐 아름다움과 처절함의 모습을 동시에 느끼기에 충분했다. 소녀의 얼굴엔 빗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젖어 있었다. 그리고 어느 가게 문을 열고 뛰어들어갔다. 쇼윈도 너머로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누군지 모르지만 나이 든 여성이 그녀를 안아주었다. 소녀는 그 여성 품에 안겨 있는 동안에도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소녀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갈 때는 미처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가게 간판과 건물이 조금씩 K의 시선에 들어왔다. 강남극장, 정금당, 그의 시선에 들어오는 글씨는 두 가지였다. 어떤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는지, 정금당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정금당 글씨 밑으로 목을 길게 빼고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있는 거북이 모양 같은 그림이 그려진 간판이 눈에 들어온 것은 사실이었다. 금박을 입힌 거북이는 목을 빼고 어디론가 유유히 헤엄쳐가고 있는 듯한 모양이었다.
K의 머릿속에선 거북이보다 한강변에서 오백 원짜리 종이돈과 즉석에서 교환이 이뤄졌던 자라들이 떠올랐다. 짓궂은 아이들만 아니었어도 어쩌면 바다까지 헤엄쳐 나갈 수 있었을 바로 그 자라였다. K는 거북이라기보다는 자라라고 생각을 바꿨다. 누가 저 모양새만 보고 정확히 자라인지 거북인지를 맞출 수 있겠는가. 정금당 간판, 그리고 금빛을 두른 자라 한 마리. 쇼윈도 너머로는 이제 울음을 그친 소녀가 타올로 머리를 말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낚시꾼들의 과도에도 목이 금세 날아갈 작고 연약해 보이는 자라 목이었지만, 녀석들은 머리를 곧추세우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뻗었던 기억. K의 머릿속에는 그 순간 강남극장도 정금당도, 소녀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직 자존심을 잃어버리지 않으려 끈적거리는 속살을 내밀고 머리를 하늘 위로 뻗으려 했던 자라의 목덜미만이 떠올랐다.
K가 소녀에 관한 기억을 잃어버린 것도 그때쯤이었다. 알고 있던 것들이 한순간에 뒤죽박죽 되어버렸다. 어쩌면 그 순간 K는 곧바로 소년에서 어른이 된 것은 아니었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K의 기억도 여러 번 바뀌었다. 어떨 땐 그가 소녀를 좋아한 것이 아니라, 소녀가 그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착각이 든 적도 있었다. 그럴 땐 '미친 소리' 하면서 땅바닥에 몇 번 침을 뱉기도 했다. 그런데 이해할 수도 없는 신기한 일은 소녀가 강남극장 정금당 둘째 딸이라는 사실은 시간이 지나도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어디서 들었던 것일까, 아니면 첫째 딸이라도 본 적이 있었던 것일까. 그건 세상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지은이: 김덕영
작가는 서촌 통의동에 있는 작업실 겸 까페, 와인 바(김PD의 통의동 스토리)에서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하면서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작은 음악회와 강연회,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인문학 아카데미까지 일상의 작고 소소한 행복을 찾으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