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지금 생각해 보면 잔인하게 아름다웠던 1980년대 추억들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동거를 한다'
가끔은 시대를 잘못 타고 난 탓에 엄청나게 힘들게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본다. 인생이란 시간축에서 중심이 조금만 뒤로 이동해도 참 괜찮았을 그런 사람들이다. 산술적으로 열 명이 있다면 그중 예닐곱 정도만 '아니다'라고 답을 해도 생활 방식은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하물며 관습적이고 윤리적인 기준들로 들어가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내 기억 속에는 그런 일들 중에 '동거(同居)'가 있다.
말 그대로 남녀가 한 집에서 같이 사는 걸 말한다. 지금에야 관대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지만, 내가 대학을 다녔던 198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동거는 금기시됐다. 오늘은 동거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만 뒤쪽으로 이동했어도 참 괜찮게 살았을 한 친구 이야기다. 편의상 그를 이제부터 Lj라고 부르겠다.
내 오랜 친구 Lj는 아쉽게도 벌써 이십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갓 서른을 넘긴 새파랗게 젊은 친구 하나를 저 세상에 먼저 보낸다는 것은 참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그것도 머나먼 타국 땅에서 불의의 사고로 인해 삶을 마감했다니, 나로서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직도 캐나다의 어느 땅에서 아이들 키우며 오손도손 잘 살고 있을 것 같은 착각도 든다. 무슨 일이든 그렇지 않은가, 죽음이라는 존재는 눈앞에서 뭐 하나라도 직접 봐야 그 슬픔이 현실이 되는 것이니 말이다. 나의 경우 Lj의 죽음도 그랬다.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아주 어릴 적 코흘리개 친구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처음에 실감도 나지 않고 막막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나의 경우엔 멀리 타국에 있어서 장례조차 참석할 수 없었다. 여전히 죽음에 대해 신비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이유도 Lj 같은 어린 시절 친구의 때 이른 죽음 때문인 것 같다. 그것도 두 명씩이나. 그러니 나는 참 친구 복은 별로 없는 편인 것 같다.
아무튼 인생이란 게 늘 그렇게 허무하고 아주 작은 우연 하나 때문에 운명이 어긋나기도 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해 준 친구가 바로 Lj였다. 그는 대학교 때 여자 친구와 동거를 시작했다. 지금이라면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인데, 80년대 후반에는 '뭐! 그런 놈이 다 있어!'하고 난리가 날 일이었다. 특히 여자 쪽의 원성이 높았다. 아마도 그건 여성의 순결을 강조하던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 곱게 키운 딸을 가로채서 한 방에서 기숙을 한다는 사실은 부모들 눈높이에서는 경천동지 할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거에 대한 개념, 그 관습의 시간축이 조금만 뒤로 이동했다면 내 친구 Lj의 삶은 분명 바뀌었을 것이다. 그의 때 이른 죽음도 없지 않았을까 싶다.
Lj에게는 대학교 때 만난 여자 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것도 주먹다짐을 해가면서 다른 남자로부터 투쟁으로 쟁취한 사랑이었다. 무모하다면 좀 무모하고 로맨틱하다면 좀 달달할 수 있는 그런 스토리는 분명했다. 요즘에야 어느 남자가 여자 하나를 놓고 남자 대 남자로 주먹대결로 판가름을 하겠는가. 하지만 Lj가 사랑을 시작하던 그 시절엔 그것도 일종의 관습이었다. 가끔은 그런 야생의 날 것 같은 일들을 직접 목격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던 시대였다. 아득히 기억에서 사라져 가는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어쨌든 그만큼 내 친구 Lj에게 그녀와의 만남은 우리가 생각하는 상상 이상으로 소중했던 것 같다.
그런데 하나의 수학 공식처럼 모든 사랑 이야기에는 달콤한 순간이 지나고 쓰디쓴 고통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Lj에게도 그런 시간이 찾아왔다. 여자 집안에서 Lj를 탐탁지 않게 여긴 것이다.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강한 집안에서는 딸 하나 키우는 것이 모두 집안의 원대한 프로젝트였다. 좋은 가문과 혼사를 이루냐 이룰 수 없느냐에 따라 부모의 능력이 평가되던 시절이었다. 애초부터 판,검사나 의사 정도는 되어야 사윗감으로 받아들일 작정을 했던 여자 쪽에서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Lj가 만족스러울 리 없었다. 결국 대학 4년 Lj는 여자 집안의 극심한 반대로 인해서 여자 친구와의 관계를 정리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은근히 결혼까지 생각했던 Lj와 그의 걸프랜드 입장에서는 쉽게 마음을 정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몇 달 동안 부모 몰래 만남을 이어가던 두 사람은 급기야 작은 옥탑방 하나를 얻어서 동거를 시작한다. 형제는 물론이고 친구에게조차 비밀로 부친 은밀한 동거였다.
나중에 Lj한테서 들은 이야기지만, 그래도 그 시간이 두 사람에게는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고 한다. 원래 하지 말라는 건 기어코 하게 되고, 먹지 말라는 음식을 몰래 먹는 것보다 더 맛있는 것도 없다. 춥고 배고픈 하루하루였지만 그래도 서로 부둥켜안고 사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산다는 건 늘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법이다. 몇 달 만에 돈 떨어지고 당장 먹고 살 돈이 부족한 형편이 된다. 결국 Lj는 공사장 인부로 일당을 벌면서 생활비를 조달하기 시작했다. 여자 친구 역시 수업이 없는 시간이면 까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작은 돈이라도 모았다.
그러던 어느 날 Lj의 아버지가 사실을 알게 됐다. 여자 쪽에서 남자 집에 달려가서 한바탕 소란을 피운 것이다. Lj의 부친은 처음 며칠은 전화로 차근차근 동거의 부당성(?)에 관해서 설득을 했다. 물론 씨가 먹힐 얘기들은 아니었다. 건성건성 아버지 말에 대충 '알았다'라고 대답만 하면서 Lj는 시간을 보냈다. 적어도 집에 들어오라는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은 Lj에서는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여자에 대한 일종의 배신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도 참 이해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였다. 아니 잠깐 같이 동거 좀 했다고 마치 중고물품처럼 여자를 생각하는 것이니 말이다. 요즘 여자들이면 입에 거품을 물면서 '죽을래'라고 인상 정도는 찌푸릴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그때의 관습은 그것이 매너였다. 적어도 동거를 했던 여자는 자신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그런 마초적 발상이 남자답고 멋진 삶의 자세였다. 아무튼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지녔던 그의 아버지 입장에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어느 날 Lj의 아버지로부터 전화를 받은 시점도 아마 대략 그쯤이었을 것이다. 나를 비롯해서 몇몇 친구들이 Lj부친 앞에 불려 갔다. 단호하게 방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아 계시던 Lj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는 그날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할 말도 없으셨을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그런 식으로 살게 내버려둔다는 게 그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잠시 후 단호하면서도 짧은 그의 목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당장 그 녀석을 잡아와라!"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래도 가재는 게 편인데, 어떻게 친구를 배신하고 Lj의 아버지 명령을 따를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결국 Lj에게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너희가 잡아오지 않으면 경찰에 가출 신고를 하겠다'는 그 부친의 단호함 때문이었다. '경찰도 안 되면, 군대라도 부르겠다!', 정말 그에게는 1개 소대 정도는 동원할 수 있는 탄탄한 군대 인맥도 갖고 있었다.
그쯤 되면 결국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Lj 부친의 뜻을 굽힐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는 사실이다. 동거란 집안 망신시키는 일이었고, 어떤 경우에도 혼전에 남녀가 같이 먹고 자는 생활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동거란 어른들의 눈에는 거의 불륜과 동의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Lj의 동거는 여자 쪽에선 반강제적 납치로 변해가고 있었다. 물론 말은 안 되는 일이다. 둘이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무슨 납치.
문제는 법과 제도를 수호하는 사람들의 시선이라고 Lj 부친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칫 동거가 납치가 되고, 납치범에서 패륜아로 몰리는 상황이라도 된다면 내 친구의 앞날에 적지 않은 타격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제도와 관습에 무릎을 꿇는 쪽을 택했다. 잘났다고 버티기에는 사실 싸울 힘도 없었다. 당시엔 부모가 강제로 자기 자식을 군대에 입영시키는 게 가능한 시절이었다. 분노한 Lj 부친이 마지막까지 만지작거린 카드도 바로 그 강제 입대였다.
'내 친구 Lj의 집은 어디인가?'
우선 집부터 알아내는 게 급선무였다. 우리는 Lj에게 전화를 해서 '친구들 얼굴 한 번 보자'는 말로 속여서 Lj를 불러냈다. 그리고 그날 그와 함께 그가 살고 있던 약수동 언덕배기 옥탑방에 가서 소주잔을 기울였다. 같이 살고 있던 Lj 여자 친구에게는 참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지만, 오늘 Lj는 저희가 보쌈이라도 해서 데리고 가야 합니다.' 물론 그런 말을 그의 걸프랜드에게 한 적은 없다.
갑작스럽게 꾸린 살림이었지만 그래도 Lj의 동거는 그럴듯했다. 부모 용돈 받으며 살아갈 나이에 이렇게 근사한 집을 꾸미고 '여보, 당신, 달링'처럼 살고 있다는 게 납치를 모의한 친구들 눈에는 판타지처럼 보였다. 그래도 남의 눈을 피하면서 부부도 아닌 새파랗게 젊은것들이 부부 흉내를 내면서 살아야 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때는 그랬다. 남녀가 동거를 한다면 뒤에서 수군거리고, 동네 골목길을 지날 때면 왠지 머리 뒤통수가 근질근질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술을 잔뜩 마시고 취기가 오른 Lj를 방 안에 눕힌다고 하면서 두 명의 친구들이 팔짱을 꼈다. 멀리 선 짙푸른 한강 물 위로 뜬 달빛이 옥수동 옥탑방 옥상 마당까지 노란 빛깔로 시멘트 바닥을 물들이고 있었다. 언덕에서 불어왔는지, 아니면 강바람이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시원한 한 여름밤의 쾌적한 공기가 구름처럼 몸을 휘감고 지나갔다. 아마 그의 걸프랜드는 방에서 이부자리라도 펴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명령받은 그대로, 미리 구상한 작전 그대로 Lj 납치조 우리 셋은 그렇게 그날 조용히 Lj를 데리고 그 옥탑방을 빠져나왔다.
(다음 회 계속)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대표)
* 올 겨울 다큐멘터리 한 편을 찍기 위해서
현재 기금을 모으고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협조를 부탁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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