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사람이 동거를 한다, 그 뒷이야기

(단편소설) 지금 생각해 보면 잔인하게 아름다웠던 1980년대 추억들

by 김덕영

(지난 이야기)


Lj에게는 대학교 때 만난 여자 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것도 주먹다짐을 해가면서 다른 남자로부터 투쟁으로 쟁취한 쉽지 않은 사랑이었다. 하지만 여자 쪽 집안에서 태클이 들어왔다. 적어도 판,검사나 의사 정도는 되어야 사윗감으로 적당하다고 믿었던 여자 쪽에서는 평범한 Lj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몇 달 동안 부모 몰래 만남을 이어가던 두 사람은 급기야 반대를 무릅쓰고 작은 옥탑방 하나를 얻어서 동거를 시작한다. 동거란 집안 망신시키는 일이었고, 어떤 경우에도 혼전에 남녀가 같이 먹고 자는 생활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그 시대의 동거란 어른들의 눈에는 거의 불륜과 동의어였다. 급기야 Lj를 잡아오라는 불호령이 떨어지는데...


'그래요. 평범한 것이 죄입니다.'


술에 취한 Lj의 팔에 양쪽에서 한 명씩 거들었다. 처음부터 미리 체격 조건과 힘을 고려해서 팀을 짰다. 친구들 중에서 몸집이 제일 좋은 녀석 두 명을 세워놓고 예행연습까지 했다. 말로는 해결이 잘 안 될 때를 대비한 것이었다. 힘이 좋은 친구 둘이서 양쪽 겨드랑이 팔을 끼고 무조건 완력으로라도 데리고 나온다. 그리고 혹시라도 반항을 한다면 밧줄로 올가미를 해서 묶어서라도 데려 온다. 그것이 우리의 계획이었다. 물론 그럴 경우 모양새는 좀 이상해졌을 것이다. 가끔 신문에서 보던 학생 운동 수배자들을 연행하는 장면과 비슷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날 Lj는 저항하지 않았다. 술에 진짜 취한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취한 척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저 모든 걸 포기한 순한 양처럼 Lj는 순순히 연행되었다. 그가 살고 있던 옥탑방에서 버스 정류장까지는 한 십 분 정도 골목길을 걸어내려와야 했다. 지금에야 그런 골목길 하나 찾아보기 쉽지 않지만, 예전 달동네 길들은 경사가 무척이나 가파랐다. 좁고 구불구불하고 바닥은 시멘트로 얼기설기 마감질을 했는데, 시멘트가 마르기 전에 막대기로 쭉쭉을 선을 그어서 홈을 낸 자국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일종의 미끄럼 방지용이었다고나 할까. 올라갈 때는 신발에 힘을 주고, 내려올 때는 속도를 줄여주는 브레이크 장치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런 동네에서 방세는 기울기와 거리에 따라 결정되었다. 디자인이나 편의시설 같은 건 방세를 결정하는데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언덕을 올라가야 하는 골목길 기울기가 모든 걸 결정했다.


도시가스 같은 건 생각도 못할 시절이라서 대부분의 집에선 연탄을 땠다. 그래서 달동네 골목길에는 늘 타고 남은 연탄재가 집집마다 놓여 있었다. 겨울에 눈 오고 미끄러운 날에는 그 연탄재 역시 훌륭한 제동장치가 되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몇 년이 지나자 심야전기라고 해서 값이 일반 전기의 반값밖에 안 되는 저렴한 서민용 전기가 공급됐다. 그런 값싼 전기가 어떻게 아랫동네 집들을 빼놓고 달동네까지 오는지, 그걸 쓸 수 있는 기준은 뭔지 아는 건 없다. 다만 그런 값싼 심야전기 덕분에 겨울 한철에도 방바닥을 따끈따끈하게 데워졌다. 샤워실도 제대로 없는 단칸방이었지만, 그래도 눈 오고 바람 부는 추운 겨울날 심야전기로 팔팔 끓인 물로 목욕도 할 수 있었다. 김장 담글 때나 쓰는 붉은 벽돌색 대야에 물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목욕물을 가득 채우고 안에 들어가면 목욕탕에 들어온 기분도 들었다. 가끔은 그렇게 대야에 머리를 대고 누워 창문 밖으로 내리는 하얀 눈을 감상하는 것도 그 시대의 낭만이라면 낭만일 것이다.


그날 친구 셋이서 술에 취한 Lj를 데리고 옥탑방이 있던 골목길에서 버스 정거장까지 내려오는 길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처음에는 고분고분하던 Lj가 버스 정류장에 가까워 올수록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 간다 가! 그지 같은 세상아! 그래 안녕이다! 집에 간다고! 에라이!'


거의 동시에 Lj가 발로 찬 애꿎은 연탄재들 때문에 뿌연 연기가 골목길에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데굴데굴 굴러가는 연탄재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벽 쪽으로 달싹 붙였다. Lj의 몸은 점점 물에 젖은 솜이불 덩어리처럼 무거워졌다. 어쨌든 사랑하는 사람, 그것도 그 시대가 용납할 수 없는 동거를 함께 시작했던 여자를 옥탑방에 덜렁 혼자 놓아두고 온다는 게 마음 편할 순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있었겠는가? 그도 다른 선택은 없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군대라도 불러서 모조리 잡아들이겠다는 Lj 아버지의 불호령을 아들인 그가 끝까지 거역할 수는 없는 노릇. 심한 경우 자식의 징집영장을 신청해서 군대에 보내는 일도 드물지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다. Lj 역시 끝까지 가볼 생각도 했을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Lj와 그의 여자 친구의 두 달 가량의 동거는 그렇게 종지부를 찍었다. 야속한 세월은 또 그렇게 흘러갔다. 그해 겨울 Lj는 군대를 갔다. 그리고 그와 함께 동거를 했던 걸프랜드는 어느 강남의 유명 성형외과 아들과 선을 봤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듬해 거의 반강제적으로 그 성형외과 의사 아들과 결혼을 했다고 한다. Lj는 그녀의 결혼 소식을 전방 부대 GP에서 들었다고 한다. 잔인하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참 아름답기만 했던 그들의 1989년은 그렇게 저물어갔다.


그리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듣도 보지도 못했던 음악이 TV와 음반 시장을 장악하면서 1990년대는 시작된다. 시행착오도 많았고 무엇이든 일단 맨땅에 헤딩하듯 도전하면서 지냈던 시절이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Lj는 자동차 보험회사에 취직을 했다. 서로 먹고 살길을 찾는 시절이라서 얼굴 보기도 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봐도 이상할 정도로 기억나는 것들이 별로 없는 1990년대였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는 이제 한 삼 년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Lj에게 더 이상의 여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랑을 믿지 않는 남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친구들은 그런 Lj를 보고 파탄 난 동거 때문이라고 수군거렸다. 물론 Lj는 그런 수군거림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뭐, 어찌 보면 사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젊은 날 딱 한 번 찾아올 수 있는 불 같이 뜨거운 사랑의 열병 같은 것일 수도 있고. 그걸 놓쳐버린 것이니 그에겐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일이었을 게다. 문제는 Lj에게 그 상실의 아픔이 꽤 오래 지속됐다는 점이다.


결국 Lj는 집을 나오는 것으로 1990년대를 시작했다. 군대에서 제대하자마자 집에는 들르지도 않았다. 푼푼이 모은 돈으로 방을 하나 얻었다. 남들은 제대하고 집에서 빈둥거리며 뭘 하면 살아갈까를 고민할 나이에 그는 독하게 옥탑방으로 기어들어갔다. 일종의 반항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시대의 관습에 그 나름대로 저항하는 방식이었다. 놀랍게도 집에선 누구 하나 반대를 하지 않았다. 가부장적이고 근엄하기만 했던 Lj의 부친까지도 이번엔 친구들을 소집해서 체포조를 짜라는 식의 말을 꺼내지 않았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적어도 이젠 혼자서 살아간다는 것이 집에서 밥이나 축내면서 사는 것보다는 더 근사한 생활의 방식이었다. 그것이 시대의 관습이고 제도였다. 집을 나온다는 것 자체가 왠지 모르게 쿨해 보이는 그런 시절이었다. Lj는 그렇게 자신이 허락받지 못했던 1980년대의 동거에 분풀이를 시작했다.


한갓 젊은 날의 치기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루지 못한 사랑, 용기가 없어서 혼자 보낸 사람에 대한 미련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걸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볼 수 있게 Lj는 예전에 연탄재를 발로 차며 마지막 온몸으로 반항했던 옥수동 옥탑방 근처에 방을 하나 얻었다. 창문을 열면 옛날의 옥탑방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일부러 집을 구했다.


그가 살아 있을 적 나는 딱 한 번 그를 만나러 다시 그의 옥탑방에 간 적이 있었다. 길은 같았지만 집들은 어느 것 하나 같은 게 없었다. 무엇보다 다세대 주택들로 줄줄이 이어진 동네에서 이제는 연탄재를 발로 찰 수 있는 그런 좁다란 골목길 같은 곳은 없었다. 그런 곳에 숨어서 동거를 시작한다면 아마 찾아내기도 더 어려웠을 것이다. 도심 속에 밀림이 있다면 아마도 그런 곳이 아닐까. 울창한 숲이나 턱까지 차오르는 늪 같은 것은 없었지만 분명 몸을 숨기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그러고 보니 그를 찾으러 옥탑방 골목길을 헤맬 때 문득 월남전 영화 '지옥의 묵시록'이 떠올랐던 기억이 난다. 그때 왜 그 영화가 떠올랐는지는 이유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날 Lj는 더러운 세상을 피해 자기만의 낙원을 찾아 도심의 밀림으로 기어들어간 마론 브란도의 커츠 대령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를 찾아내기 위해 밀림을 헤치고 들어가야 하는 마틴 쉰, 윌라드 대위였다.


"잘 지냈냐?"


제대를 하면 남자는 누구나 몸이 딴딴해진다. Lj 역시 그랬다. 몸이 변하면 마음도 변하는 것인지, 그날 내가 만났던 Lj는 예전의 평범하기만 했던 그가 아니었다.


"나야 뭐..."

"근데 집에는 안 갈 거야?"


집 얘기가 나오자 Lj는 어금니를 살짝 깨물었다. 할 말도 많고 하고 싶지 않은 말도 많았던 모양이다. 잠시 동안 그렇게 우리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너 그거 알아?"

"뭘?"

"걔가 이혼을 했대......"

"누구? 예전 그 여자?"


그녀가 이혼을 했다는 소식을 알고 있는 것으로 봐서 Lj는 어떤 형태로든 그녀와 관계를 주고받고 있었던 것 같다. 세월이 참 많이 흘러 이제는 잊을 때도 됐을 텐데... 여전히 그에게는 시간이 멈춰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그냥 같이 살 걸 그랬어."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 이젠 잊을 때도 됐잖아."

"그러게 머릿속으로는 잊어버린다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잘 안 돼......"


사람 사는 게 다 그렇고 그런가 보다. 허락되지 않은 사랑, 시대에 맞지 않은 동거, 반강제적인 결혼, 역시 반강제적인 입대를 동시에 경험했던 두 청춘 남녀가 여전히 자신들의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시대의 강물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걸 옳다 그르다로 판가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이젠 하기 싫은 걸 억지로라도 해야 하는 그런 시대로부터는 분명 벗어나 있는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한 번 조각 난 도자기를 다시 붙이기는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Lj에게 동거는 분명한 반항이었고 분풀이었다. 그는 그 집에서 닥치는 대로 여자들을 불러들였다. 자신의 무능함, 아니 평범함 때문에 사랑을 이루지 못한 남자가 세상을 향해 퍼붓는 저주였다. 혹은 오기였다. 그리고 Lj에게 마지막 행운이 찾아왔다. 우연히 캐나다 교포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가 어떻게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었는지 나로선 알 길이 없다. 평범한 자동차 보험회사 세일즈 맨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한 그에겐 그것이 분명 행운이었다.


어느 날 Lj가 불쑥 전화를 했다. 계절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때였다. Lj가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자고 했다. 그날 우리는 광화문 사거리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누가 틀어놓았는지 '광화문 연가'가 길거리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어둠이 깔린 세종문화회관 건물 뒤편 공원 벤치에 앉아 Lj와 이야기를 나눴다.


"나 캐나다 간다."

"그래? 아주 가는 거야?"

"어. 같이 가재."

"누가? 지금 같이 사는 여자?"

"어......."

"잘 됐네."

"그런가....... 난 잘 모르겠어."

"요즘 같은 세상에 캐나다에서 사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그래. 가서 한 번 멋지게 살아볼게."


그것이 그날 Lj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리고 2000년을 몇 달 앞둔 어느 날 그는 세상을 떠난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Lj가 술에 취해 누군가와 싸움이 벌어졌고, 그 와중에 병에 머리를 맞아서 절명했다고 한다. 세상에 대한 그의 원망 때문인지, 아니면 잊지 못한 여자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 좋아했던 술 때문인지 정확히 이유를 알 수는 없다.


옆에 있으면 한 번 물어라도 보련만......

세월은 또 그렇게 흘러갔다. 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세상 곳곳을 여행했다. 몇 년 전 멕시코에 취재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직항 편이 없어서 멕시코시티에서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하는 비행편을 이용했다. 늘 그렇지만 며칠 동안 취재에 몰두하다 보면 비행기에 탑승해서는 곧장 잠이 든다. 그러다 거의 도착할 때쯤 해서 눈을 뜨곤 했다. 그날도 샌프란시스코에서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잠결에 선명하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통은 별로 신경 쓰지 않던 기장의 기내 멘트였다.


‘지금 우리 항공기는 밴쿠버 상공을 날고 있습니다......'


감고 있던 눈을 떠서 창밖을 내다봤다. 저 멀리서 하얗게 눈이 덮여 있는 록키 산맥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록키 산맥 자락 어딘가에 있을 Lj의 무덤이 손에 잡힐 듯 눈에 들어왔다. 나의 경우 가끔은 살면서 참 희한한 우연을 경험할 때가 있다. 그날도 그랬다. 북극을 넘어 대권 항로로 날아가기 위해 내가 탄 비행기는 밴쿠버의 눈 덮인 산맥들 사이를 날고 있었던 것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내 친구 Lj의 집, 일터, 그리고 저 멀리 어딘가 있을 그의 무덤까지 마치 익숙한 풍경처럼 모든 게 한눈에 들어왔다.


솔직히 그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가 진짜 사랑했는지, 아니면 진짜 오기였는지 그것도 알 길은 없다. 다만 분명한 것 하나는 그날 기장이 오른쪽 창문 너머로 밴쿠버와 로키 산맥을 말하는 순간, 나는 눈 덮인 록키 마운틴 자락 어느 곳에선가 묻혀 있을 그를 위해 잠깐 눈을 감았다는 사실뿐이다. 평소에 잘 해보지 않았던 아주 잠시 동안의 짧은 기도였다.


‘잘 있었냐......?'

‘한 번 가야 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이렇게 보는구나.'


그렇게 나는 그를 위해 기도 같은 명상을 했다. 그것이 우리 서로를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눈을 떴을 땐 항공기 꼬리 너머로 하얗게 눈이 쌓인 로키 산맥의 끝자락이 보였다. 그 끝자락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저 멀리 어딘가 그의 무덤이 있을 것이고, 어쩌면 그가 이루지 못한 사랑도 있지 않을까. 세상에 없는 친구와의 작별치고는 좀 어색하고 너무 덤덤한 인사였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렇게 인사를 나눴다. 어느새 항공기는 기수를 북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잘 있어라. 나중에 또 올게......'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대표)



* 올 겨울 북한의 전쟁고아들에 관한 다큐멘터리 한 편을 찍기 위해서 현재 기금을 모으고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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