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의 새로운 자극이 되고 있는 '낭독극'을 주목하며...
'낭독극' <내가 그리로 갈게>를 꿈꾸며...
이번 주 토요일 '김PD의 통의동 스토리'에서 진행될 '낭송의 밤' 행사 준비를 위해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낭독극'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미국의 브로드웨이는 물론이고 일본 연극계에서도 '낭독극'은 이제 하나의 명확한 장르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크게 성공한 작품은 없지만,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관객 몰이에 성공하고 있는 '낭독극'들이 하나둘 늘고 있는 상황인 것이죠.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인데요. 3,4년 전부터 연극 무대의 화려한 의상과 조명 대신에 평범한 일상복을 입고 보면대 위에 대본을 올려놓고 단지 언어만으로 감정과 스토리를 전달하는 '낭독극'이 심심치 않게 상연되고 있습니다. 관객들 입장에서는 기존의 연극과는 완전히 다른 재미와 감동을 전달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낭독극'을 반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낭독극'은 영어로는 'stage reading'이라고 해서, 원래는 연극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전에 제작 발표회 장에서 배우들이 대본만으로 연기를 하는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종의 맛보기 연극이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보통 4,5분 정도 분량으로 진행되는 대본 리딩은 앞으로 공연될 연극의 내용을 미리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효과도 있고, 실질적으로 제작발표회를 통해서 제작비를 마련해야 하는 제작자들 입장에서는 효과적인 홍보수단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최근에 '낭독극'이라는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연극 무대에 올려지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책을 소리 내어 읽는 '낭독'의 가치에 대해서 사람들이 주목하게 되었다는 측면입니다. 소리 내지 않고 읽는 묵독과 달리 낭독은 읽고 듣는 것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까지도 그대로 전달받는 종합적이고 복합적인 행위입니다.
소리 내지 않고 책을 읽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형태의 자극들이 두뇌 안에서 이뤄진다는 것이죠. 당연히 묵독보다 훨씬 기억도 오래가고 사고력도 발전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옛날 서당에서 사서삼경을 소리 내어 읽도록 가르친 조상들의 지혜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낭독'의 발견 덕분에 대중들 사이에서 낭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낭독극'이 발전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연극계의 불황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연극이나 영화 시장은 리스크가 큰 비즈니스 세계입니다. 많은 자본이 투입되고서도 관객 동원에 실패하는 작품들이 한둘이 아닌 상황인 것입니다. DVD나 VOD 서비스를 통해 2차, 3차 콘텐츠 공급이 가능한 영화와 달리 연극은 무대에서 라이브로 모든 게 결판이 난다는 점에서 더 위험 요소가 큰 사업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연극계의 불황과 제작자들의 리스크 관리라는 요구가 하나로 모아지면서 보다 간소하면서도 임팩트 있는 무대를 만들겠다는 일종의 실험정신이 낭독극 제작에 눈을 돌리게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뭐가 됐든 몇 년 후에는 미국이나 일본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낭독극'은 하나의 독특한 연극 장르로 자리를 잡을 것이고, 또 성공한 '낭독극'들도 많이 등장하리란 전망이 우세합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대사를 제외한 모든 연극적인 요소를 배제한 낭독극 자체가 실험적이고 매력적이라고 보는 사람도 늘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들이 많은 세상에서 조용히 '듣기'에 주목할 수 있다는 점, 어설픈 무대 장치나 무대 세팅에 시선을 뺏겨서 극의 흐름과 스토리, 배우들의 감정에 몰입되지 못하는 한계를 '낭독극'이 뛰어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에는 디지털과 속도, 현란한 이미지들에 식상한 대중들이 고요한 공간 속에서 울려 퍼지는 '인간'의 원초적인 목소리에 더 깊은 감정이입을 하기 시작했다는 징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것은 CD의 깨끗하기만 한 음색보다 LP의 낡고 오래되었지만 자연적인 음색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현상과도 유사한 점이 많은 것이죠. 일조의 '아날로그의 반격'이라고나 할까요.
몇 년 전부터 소설 <내가 그리로 갈게>를 연극 무대에 올리려는 계획을 갖고 있던 저에게는 '낭독극'은 하나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이미 소설을 연극 대본으로 각색하는 시나리오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잘 하면 올 겨울쯤에는 <내가 그리로 갈게>라는 제목으로 '낭독극' 한 편을 서촌에 있는 우리 공간(김PD의 통의동 스토리)에서 상연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아무튼 재밌는 세상입니다. 세상살이가 팍팍해져가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늘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로 난관을 극복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사는 게 기쁨이고 행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런 믿음을 갖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려고 합니다.
'김.통.스'가 기획하고 제작해서 '김.통.스' 공간에서 상연하게 될 낭독극 <내가 그리로 갈게>! 제작에 참여하고 싶으신 분은 언제나 저희에게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뭔가 엔돌핀이 팍팍 도는 아주 재밌는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글: 김덕영 (작가, 다큐멘터리 PD)
작가는 서촌 통의동에 있는 작업실 겸 까페, 출판사이면서 와인 바이기도 한 '김PD의 통의동 스토리'에서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하면서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작은 음악회와 강연회,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인문학 아카데미까지 일상의 작고 소소한 행복을 찾으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