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젊은 손님의 '7전8기' 방문기

까페 에세이 (10)

by 김덕영

어느 젊은 손님의 '7전8기' 방문기

지난 토요일, 그날은
강연 준비 때문에 가게에
일찍 나갔습니다.
한 12시쯤 되었을까요?

한 쌍의 커플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가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테이블도 제대로 닦지 못한
어수선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대뜸 남자분이 이렇게 인사를
하더군요.

"반갑습니다!"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바닥에 있던 빈 병을 집어서
밖으로 내놓으면서
정신없이 테이블 정리를 하고 있던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이 참 이상하게만
들렸습니다.

보통은 누구나 처음 가게
들어올 때면 '안녕하세요?'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3년 6개월 이상
이곳에서 영업을 하면서 많은
손님들을 받아 봤지만,
'반갑습니다'라고 힘차게 소리를
내면서 들어온 분은 처음이었습니다.

게다가 두 분은 메뉴판을
보더니 감바스와 토마토 펜네를
주문했습니다.

가게 안이 정리도 안 됐는데
게다가 음식까지...?
역시 이상한 주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뭐 어쩌겠나요.
가게 안이 청소가 안 됐다고
손님을 내쫓을 수는 없는 법.
좀 정리가 안 된 지저분한 분위기
속에서 서둘러 음식 준비를 했습니다.

다행히 두 분은 저희가 제공한
음식들을 맛있게 드셨습니다.
입가심으로 맥주 한 병을 마시겠다고
하시길래 잔 두 개를 정성껏 서빙했습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칠 즈음이었습니다.
갑자기 남자분이 좀 전의 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 여기 여섯 번만에 들어왔어요!"

오 마이 갓! '여섯 번?!'
아니 이게 무슨 소린가요?

"네?! 여섯 번만에 오셨다니요?"

"아니다. 일곱 번인가....?"

가끔은 영업을 하면서
황당할 때가 있다.
그런데 이번엔 좀 정도가
심했다.
'일곱 번만에 가게 안에
들어온 손님'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질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김PD: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죠?"
남자: "그러게요."

김PD: "그럼 언제부터 오셨다는 거죠?"
남자: "정확한 건 기억 안 나고요.
아무튼 그 정도 됐어요."

김PD: "아니, 뭐 하시는 분이신데
그렇게 일곱 번씩이나?"
남자: "그러게요? 제가 생각해도 좀..."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를 재구성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처음에 여기 앞을 지나가는데
너무 분위기가 좋아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속으로 '여기 다시 와야지'하고
그냥 그날은 갔어요. 그리고 며칠 후에
다시 가게 왔는데 문이 닫혀 있는 거예요.
'어. 이상하다. 오늘은 영업을 안 하는
날인가 보다', 하고 그렇게 그날도 갔어요.
그렇게 또 서너 번을 왔어요.
올 때마다 가게 문이 잠겨져 있었죠.
그런데 어떨 때는 창문에 커튼이 올라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속으로 또 그랬죠.
'아. 여기 영업을 하기는 하는구나.
근데 나는 왜 여길 못 들어가고 있지?'
그렇게 해서 서촌에 올 때마다
이 골목으로 들어왔어요.
사실 오늘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가보자고 다짐한 날이기도 해요."


P9152886.JPG '7전8기', 여덟 번만에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 바로 그 손님

아! 이 정도 되면 정말로
의지의 한국인이 아닐 수 없다.
우연히 지나다 본 가게가
마음에 들어서 그곳을 들어가겠다고
일곱 번 문을 두드린 남자!
그리고 그렇게 '7전8기'에
성공한 남자다.

이 정도 되면 정말 표창장이라도
하나 드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이곳에 무엇이 있길래
이 청년은 계속 가게 문을 두드렸던
것일까.

그리고 그제야 그가 가게 안으로
들어오면서 아주 큰 소리로
'반갑습니다!'라고 외쳤던 이유 역시
이해가 갔다.

그 손님 입장에서는 얼마나
반갑고 기뻤겠는가!
일곱 번의 고배를 마시고
가게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던
남자. 그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은 마치 머릿속에서
오페라 '아이다'의 개선 행진곡이라도
울려 퍼졌으리라...

그러니 가게 안이 지저분하고
정리가 안 되었어도 그 정도는
별 신경도 안 갔으리라...

'아! 칠전팔기 손님,
포기할 줄 모르는 의지의 한국인.
아마 이런 정신으로 세상을
산다면 겁날 거 하나 없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토요일 오후, 저는 새로운
또 한 명의 잊지 못할 손님을
만났습니다.

가게를 떠나기 직전
그가 불쑥 한마디 물었습니다.

"저. 뭐 하나 여쭤봐도 돼요?"
"그럼요. 뭐든지요."

"여기서 책도 쓰고
출판도 하신다고 들었어요.
49금 소설도 있다고 들었고요.
그런 거 왜 하시는 거예요?"

아. 그제야 그 청년이
그렇게 가게를 계속해서 찾아왔던
이유가 이해가 갔습니다.
그의 눈에는 제가 이곳에서
글을 쓰고 책을 찍어낸다는 게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나는 정성껏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그의 질문에 대답을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역시도 책을 좋아하고
그래서 나중에 책도 한 권 쓰고 싶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토요일 강연 준비로 마음은
좀 바빴지만, 난 그와 나눈 대화가
즐거웠습니다. 아니, 한 편으로는
참 고맙고 행복했습니다.

글쎄. 그 느낌이라는 건 뭐랄까...

서촌 골목길 까페를 연 지
3년 하고 반이 지났습니다.
요즘 들어 부쩍 어떤 목적을 갖고
우리 가게를 찾는 젊은 청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블로그나 페이스북을 통해 우연히
가게 안에서 서빙도 하면서
글을 쓰는 작가가 있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었나 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미래에 대한 걱정,
미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난 그들이 느끼는 미래의 시간들에
대한 걱정이 마음으로 느껴집니다.
나 역시도 다가올 미래가 두렵고
힘들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들이 먼 곳에서라도
찾아오는 이유는 바로 그것입니다.
자신보다 앞서서 뭔가를 하고 있는
사람을 통해서 어떤 지혜와 용기를
얻기 위함.

그렇게 그들은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서촌의 골목길을 돌고 돌아
'김PD'를 찾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반갑습니다.
어쩌면 이런 질문을 받기 위해서
나는 상업적 논리와는 전혀 무관한
방식으로 인적도 드문 서촌의
골목길 안쪽에 우리의 공간을
만든 것이 아니었을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어제부터 계속해서 그 낡고 진부한
질문이 머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어쩌면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어쩌면 그런 사람을 만나
삶의 기쁨과 희망을 얻는 것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요.

그것이 바로
인정받는다는 즐거움을
깨닫게 해 준 그 7전8기
손님에게 감사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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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전8기 젊은 손님!
부디 그런 포기하지
않는 정신으로 열심히 세상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위해선
누구나 열 번 스무 번도
문을 두드릴 수 있다,
그 평범한 진리를 당신 때문에
다시 확인했네요.
감사합니다.'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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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촌의 작은 골목길 까페, '김PD의 통의동 스토리'에서 조금은 독특한 방식으로 사람들과 만나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7전8기까지는 아니라도 같이 도전하고 싶으신 분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김PD 책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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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골목길 까페, 그 3년의 기록, <나에겐 통의동 스토리가 있다>,
인생에서 성공이란 때론 좀 늦게 찾아올 수도 있다,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49금 장편소설 <내가 그리로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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