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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Dec 01. 2017

산토리니 북스토어의 추억

시낭송부터 재즈 콘서트까지 '아틀란티스' 서점에선 일상이 즐겁다

'김덕영의 인문학 여행' (77) 


고대 그리스의 돌덩이들을 탐험하기 위해서 30일 동안 터키와 그리스를 동시에 여행한 적이 있었다. 에게 해 한가운데 자리 잡은 산토리니(Santorini)는 이오 해변의 작열하는 석양과 절벽처럼 가파른 언덕 위에 알록달록 지어진 예쁜 집들로 유명한 곳이다. 수만 년 전 화산이 폭발해서 만들어진 칼데라 화산 분지로 만들어진 산토리니는 그리스 본토로부터는 약 200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크기는 약 90평방 킬로미터, 인구 1만 5천 명의 작은 섬이다. 


워낙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관광지다 보니 고대의 돌덩이들을 탐험하려는 목적으로 여행을 시작한 나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인 목적지는 아니었다. 그런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산토리니 동쪽에 위치한 기원전 9세기에 세워진 고대 도시 '티라'였다. 


해발 400미터밖에 되지 않는 작은 산이지만 이 산을 오르기란 여간 쉽지 않다. 7,80도 가파른 경사가 끝까지 이어진다. 자동차의 경우에는 지그재그로 산을 올라야 할 정도다. 문제는 그늘이다. 화산이 분출하면서 만들어진 지형 탓에 흙이 거의 없다. 당연히 나무도 없다. 나무가 없으니 그늘도 없다. 당연히 산을 오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고역이다. 메사보우노라 이름 붙여진 이 돌산 하나를 한 시간 동안 헉헉 거리며 올랐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 산에 오를라 치면, 말 그대로 화끈 달아오른 프라이팬 위를 걷는 기분이 든다. 그래도 꼭대기 위에 올라 3천 년이나 지난 고대 그리스의 유적지를 내 손으로 직접 만져본다는 짜릿한 쾌감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 


화산 섬 산토리니 동쪽에 자리잡은 메사보우노산은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돌섬이다. 산 정상에는 기원전 7세기에 세워진 고대 유적지 '티라'가 있다. 
고대 유적지 '티라'로 오르는 길
기원전 7세기에 세워진 고대 유적지 '타라' 
고대 유적지 '티라'의 아고라 
사자와 독수리를 형상화한 돌조각


그런데 이런 고대 유적지에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대부분 이오 마을에서 석양을 보거나 시내의 까페에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관광과 여행이란 목적지 하나에도 큰 차이를 나타내는 법. 어쨌거나 돌덩이만 찾아다니던 그때 하루 종일 돌무더니만 돌아다닌 탓에 마음이 돌덩이처럼 무거워졌다. 바로 그런 순간이면 여행에서는 언제나 천사가 짠 하고 나타난다. 그때는 사람이 아니라 서점이었다. 바로 오늘 소개할 산토리니 섬의 아주 근사한 서점, '아틀란티스(Atlantis)'다. 


신화나 전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산토리니 섬 밑에 '아틀란티스'가 있다고 믿는다. 한순간에 바닷속에 잠긴 신비의 도시 아틀란티스. 이 전설이 처음 언급된 것은 놀랍게도 플라톤의 <크리아티스>라는 저작이다. 플라톤이 언급했기 때문에 전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역사처럼 전승되어 왔던 이야기다. 학자들 가운데는 이 아틀란티스가 산토리니 앞바다에 잠겨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산토리니를 지도 위에서 보면 이런 신비감이 현실이 된다. 화산의 분출로 묘하게도 섬의 중간이 텅 비어 있는 구조다. 손바닥을 오므린 모양새로 자리 잡은 산토리니 섬들 안쪽에 깊은 바다에 어쩌면 아틀란티스가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튼 그런 신비의 제국 아틀란티스를 꿈꾸며 산토리니 섬 한가운데 서점을 차린 젊은이들이 있었다. 


산토리니 아틀란티스 서점 지붕 위에 올라가면 이런 근사한 전망대가 나온다


산토리니에 여행을 왔던 영국 청년 둘은 섬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정착을 결심한다. 그런데 남의 나라에서 먹고살려면 뭐든 해야지 않았을까? 책과 여행을 좋아했던 청년들은 여행객들이 남겨놓고 간 책들을 중심으로 책방을 하나 만든다. 일종의 읽던 책을 기증받아서 만든 서점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이 서점이 몇 년 전 '세계에서 가장 멋진 서점 10등' 안에 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서점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인데도 불구하고 아틀란티스 서점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서점을 후원하는 든든한 후원자들 때문이다. 여행을 왔다가 산토리니가 좋아서 머물렀던 사람들은 아틀란티스에서 자원봉사자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기증한 책들이 산더미처럼 서점 안에 쌓이기 시작했다. 서점 천장을 보면 둥그런 나선형의 띠가 보인다. 지금까지 아틀란티스를 후원하거나 자원봉사자로 일을 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둥그렇게 적어놓은 것이다. 



멋지지 않은가! 역시 책의 선진국답다. 책으로 사람이 연결되고, 사람은 책을 위해 자신의 인생의 한 조각을 기꺼이 할애할 줄 아는 문화. 나는 산토리니의 이오 해변에서 보았던 작열하는 석양의 몇십 배는 더 뜨거운 열정을 그 서점에서 보았다. 


그런 아틀란티스 서점이 몇 년 전부터 서점에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이다.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모임에서부터 작가들을 초대해서 사인회도 연다고 한다. 클래식부터 재즈까지 공연도 다양하다. 일종의 복합창조문화공간을 꿈꾸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은 반가웠다. 최근 들어 공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까페에서 공연은 물론이고 전시까지 문화와 예술을 넘나드는 행위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문화란 알록달록할수록 좋다. 문화의 색채가 단조로운 건 곧 삶이 단조로와지는 것을 의미한다. 삶이 단조로워질수록 사람들의 모습도 재미가 없다. 재밌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사회도 밝고 건강해진다. 결국 문화가 그 첫출발이다. 물론 인문학적인 베이스로 따지자면 철학이 먼저다. 모든 것은 생각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아틀란티스의 변신이 나는 무척이나 반갑다. 그러면서도 역시....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서점 운영의 어려움을 그런 방식으로 메우는 것은 아닐까. 책이 사라지는 시대, 그건 도시나 섬이나 마찬가지일 테니 말이다. 



서촌의 골목길 까페, '김PD의 통의동 스토리'도 어쩌면 이들과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음악이 흐르고 진한 모카 커피의 향이 코끝을 간지러이 스친다. 중정의 밤하늘 아래에선 달과 구름이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린다. 심지어 중정 마당에서 한옥 기와지붕을 보면 처마 사이로 '복(福)'가 보인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두 개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쌍복(雙福)'이라며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모임을 갖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 공간에서 중요한 계약을 성사시켰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진짜 복(福)자가 두 개라서 그런지 모른다. 


물론 웃자고 한 소리다. 아틀란티스 북스토어에 가면 사람의 향기가 책의 향기와 얼마나 잘 어우어질 수 있는지 잘 느낄 수 있다. 그런 면으로 보자면 서촌의 골목길 까페 '김PD의 통의동 스토리'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곳에서 낭독극이라는 연극 한 편이 무대에 올려진다는 소식은 그래서 전혀 놀랍지 않다. 다만 정겹고 반가울 뿐이다. 화이팅! '김.통.스' (김PD의 통의동 스토리를 줄임말)


글: 김덕영 


김덕영의 책들, 그리고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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