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페 에세이' (15)
'까페 에세이' (15)
'싱글 몰트 위스키의 원조는
스코틀랜드가 아니라 아일랜드다'
보통 위스키 하면 스카치 위스키를
떠올린다. 하지만 위스키의 원조는
스코틀랜드가 아니라 아일랜드다.
좋은 물, 보리, 아일랜드의 독특한
지형에서 생성된 피트(이탄), 이 세 가지가
결합되어 개성있는 위스키의 풍미를
만들어낸다. 아일랜드는 위스키 제조에
필수적인 3가지 요소를 골고루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위스키는 언제 아일랜드에서
어떻게 스코틀랜드로 넘어간 것일까?
대략 15세기 경부터 아일랜드에서
스코틀랜드로 위스키 제조 기술이
이전되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예전에 인기를 끌던
블랜딩 위스키에서 싱글 몰트 위스키로
사람들의 취향이 바뀌면서
스코틀랜드 싱글 몰트 위스키의
가장 많은 부분을 생산하고 있는
아일라(Islay) 섬이 각광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아일라 섬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에 있는 섬이다.
이 섬에서 세계 싱글 몰트 위스키를
주도하고 있는 질좋은 위스키들이
생산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위스키의 성지'라
불렀던 아일라 섬.
그는 실제로 자신의 여행 경험을
'위스키 성지여행'이란 책으로
엮어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싱글 몰트 위스키들
가운데 '아드벡(Ardbeg)을 추천하고 싶다.
맛과 향이 너무나 독특하고 개성이 있어서
처음 맛을 본 사람들에게는 호불호가 엇갈린다.
바다냄새 같기도 하고
건초더미에서 나는 냄새, 혹은
거친 흙냄새가 섞인 듯한,
독특한 향이 압권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배탈 났을 때
먹는 '정로환'을 마시는 것 같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독특한 위스키는 정말
처음 경험해본다.
모든 게 바로 피트(이탄) 때문이다.
이탄은 퇴적작용으로 생긴 갯벌의
석탄을 말한다. 아일랜드 인들은
부삽을 들고 갯벌에 나가 이탄을 퍼서
땔감으로 썼다. 마치 숲에 들어가
나무를 해서 땔감을 구하듯이 말이다.
스코틀랜드 아일라 섬은 이런 이탄이
풍부하다. 이런 이탄으로 보리를
볶을 때 사용하면서 독특한 향이
배이는 것이다.
이 위스키 아주 개성있고 독특한데..
현존하는 위스키 중 가장 컬트적이고
마시기 힘든 위스키로 평가받는다.
아드벡의 개성 덕분에
위스키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위스키의 최종 종착지'라고까지
불리울 정도로 독특하고 강렬한
위스키다.
나도 몇 번 마셔 봤지만,
항상 처음 입안에 넣으면
온 입안이 정로환 냄새로 가득 넘친다.
앞서 말한 대로
이탄 속에 들어있는 요오드가
강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드벡은 소화불량 같은
위장장애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아무튼 이런 강한 개성이
영국의 문화를 떠받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최근 스코틀랜드 분리 움직임이
심심치 않게 외신을 타고 들려온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ABE’란 단어를
종종 사용하는데, 이것은 잉글랜드에 대한
반감의 표현이다.
“잉글랜드만 아니면 뭐든 좋다
(Anything But England)”
2014년에도 분리 독립에 관한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당시 독립 반대가 55%를 차지하면서
스코틀랜드 독립 움직임은 사그라드는
듯했다.
그런데 영국의 블렉시트(EU 탈퇴)를
계기로 다시 스코틀랜드의 분리 독립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미 여론 조사에서는 독립 찬성 쪽이
50퍼센트를 넘겼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는 상태다.
스코틀랜드 앞 바다에 있는 북해 유전의
발견으로 경제적인 요구도 더해졌다.
영국은 이런 스코틀랜드의 분리 독립
움직임에 초긴장 상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스코틀랜드의 독립은
영연방의 해체로 가는 첫 관문이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분리 독립이
현실화되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피해가 예상된다.
여기에 스카치 위스키도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영국이 수출하고 있는 스카치 위스키는
약 8조원 규모.
영국의 철강, 선박, 조선을 다 합친 것보다
많은 액수의 수익을 스카치 위스키가
벌어들이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책 '위스키
성지 순례'에서 아일라 섬과 위스키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내게 있어서 싱글 몰트의 맛은
풍경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바다에서 부는 거센 바람이
파릇파릇한 풀섶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한 언덕을 뛰어오른다.
난로에는 이탄이 부드러운
오렌지 빛깔을 내며 타고 있다.
알록달록 산뜻한 빛깔을
띤 지붕마다 흰 갈매기가 한 마리씩
내려앉아 있다. 그러한 풍경과
결부되면서, 술은 내 안에서 본연의 향을
생생하게 되찾아간다."
문학과 여행의 대가다운 묘사다.
나도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아일라 섬에서
조용한 집 한 채 빌려서 석양 노을에
물드는 겨울 하늘 아래, 패치카에
이탄을 잔뜩 넣고 아드벡 같은
싱글 몰트 위스키 한 잔을 홀짝거리며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읽는 정경을 떠올려 본다.
문득 옛날 일 하나가 떠오른다.
김PD의 통의동 스토리에
글렌피딕의 위스키 마스터
한 분이 찾아오신 적이 있었던 것이다.
여든이 다 된 노장, 주름진 손마디에는
그가 늘 최고의 싱글 몰트를 만들려고
노력했던 흔적들이 느껴졌다.
가끔은 이런 명장들과 만날 수 있는
행운을 얻는 것도 골목길 까페의
즐거움 중 하나가 아닐까...
글: 김덕영 (작가, 다큐멘터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