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페 에세이' (14)
'까페 에세이' (14)
'아이리쉬 펍 컬쳐 (Irish Pub Culture)'
까페의 진수가 프랑스라면
펍의 본고장은 역시 아일랜드다.
오랜 영국의 지배와 종속 속에서
아이리쉬의 저항 정신은 오늘날
문학 속에서 독특한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아이리쉬 문학의 산실로 사람들은
펍을 든다. 하루 고된 일과를 마치고
누구나 남녀노소 노인과 어린아이까지
모두 모여 스트레스를 풀고 내일을
준비하는 곳.
사실 영국을 펍의 나라라고 하지만
잉글랜드가 중심이 되는 오늘날의 영국보다는
아이리쉬가 훨씬 펍의 진골인 것 같다.
무엇보다 아이리쉬 펍의 전통은
개방성이다. 18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아이들까지 공장에서
일해야 했던 영국에서는 아이들도
엄연한 노동자였다. 돈을 버니 당연히
돈을 쓰는 것도 그들의 자유가 아니었을까.
오늘날에는 제한된 곳이 많지만
그래서 아이리쉬 펍을 비롯해서
영국 쪽 펍은 예전엔 아이들이 노는
곳이자 학교였다.
오늘처럼 인터넷이나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펍은 곧 커뮤니케이션의
발원지였다. 한마디로 네트워킹이 이뤄지는
곳이란 뜻이다.
여러 마을 곳곳에서 오는 장사꾼들이나
여행객들이 펍에 들려 각자 자신들이 보고
느낀 세상 곳곳의 정보를 이야기했다.
공간 여행뿐만 아니었다.
노인들은 자신들의 살아온 인생 무용담을
펼쳐놓았다.
자연스럽게 정보와 지식이 펍을 통해
청년과 아이들에게 흘러들어갔다.
남성의 가치가 무너지는 여러 가지 원인
중에서 '교육'을 지목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일하고 시간을
보내는 비율이 현저하게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버지와 할아버지로부터 직접
뭔가를 배울 수 없는 오늘날의 아이들이
정체성의 혼란과 자신감 부족, 나약함 등을
표출하고 있다.
펍은 남자의 품격을 지키고
매너 있는 남자를 양성하는 교육장이었다.
아일랜드 사람들에게서는 용도가
매우 다양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단지 펍에서 술에 취하고
수다를 떠는 공간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기타나 바이올린 같은 자기가 연주할 수
있는 악기를 들고 와서 작은 콘서트를
열었다.
마을과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소신 있는 정치 발언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모든 게 펍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익명성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오늘날의 방종과 무책임, 무매너와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문화가 발전했다.
이런 토양 속에서 문학이 꽃을 피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아이리쉬 펍은 영국 전체로 확산되었고
펍은 곧 영국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가만히 보면 '김PD의 통의동 스토리'도
그런 역할을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공연을 하고 낭송을 하고 자유로운 토론과
정보가 공유되는 현장.
그런 곳에서 문화가 꽃을 피우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우리는 와인만을 파는 곳이 아니라
그렇게 문화를 나누며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자 했다.
시간을 되돌아 보면 가장 뿌듯한 일 중
하나가 분명하다.
글: 김덕영 (작가, 다큐멘터리 PD)
저는 서촌의 작은 골목길 까페, '김PD의 통의동 스토리'에서 조금은 독특한 방식으로 사람들과 만나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같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으신 분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김덕영의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