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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Nov 13. 2017

모든 '시간'은 언젠가 추억이 된다

까페 에세이 (13)

'모든 시간은 언젠가 추억이 된다'

까페 에세이 (13)


서촌의 작은 골목길 까페에서 지난 일주일 동안

대학생들의 작은 전시회 하나가 진행되고 있었다.

어제는 그 전시회의 마지막 날.

모두 18명의 젊은 대학생들이 바라보았던 2017년

대한민국의 모습이 '조각모음'이라는 주제로

사진에 담겨졌다. 동국대학교 사진 동아리

'동그라미'의 정기 사진전.


지난 일주일 동안 그들과 낯선 동거를 했다.

덕분에 한적한 골목길에 젊은 이십대들의

발걸음이 잦아졌다. 전시가 벌어진 공간이 학교가

위치한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그들도

우리 공간을 찾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매일매일 언제나 가게 안은

젊은 대학생들로 붐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시간을 따로 정해서 전시회에 상주할 인원을

정했던 것이다.

18명의 대학생들은 어떤 시선으로 '오늘'을

바라보고 있을까?


처음부터 나의 호기심은 그곳에 맞춰져 있었다.

청년실업이다 취업난이다 요즘 젊은 이십대들

마음을 속상하게 만드는 일이 어디 한둘인가?

그 어떤 세대보다 힘겨운 청춘의 시대를 보내고

있는 그들의 눈에 비친 우리의 현실을 가까이서

구경할 수 있다는 것도 어찌 보면 큰 특권(?)일 수

있겠다 싶었다.


뜻밖에도 작품은 진지하면서도 순수했다.

정치적인 구호나 리얼리즘 계열의

현실 고발보다는 차분하게 자신들의 일상을

되돌아보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인상이 들었다.


같이 사진전을 준비하며 출사 여행을 떠났던

기억, 어린 동생에게 다 표현하지 못했던

언니의 사랑, 무덤덤하게 자식의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고 있던 아버지, 그런 조금은 단조롭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자신들의 이야기가

사진 속에 담겼다.


어쩌면 시간이란 이렇게 사진 속에 들어와

언젠가 추억이 되어가는 것이겠지.

서촌의 작은 골목길 안쪽에 위치한

우리 공간에서 벌어진 이 소박하지만 진지했던

젊은이들의 전시회도 또 언젠가는 추억이 되겠지...


일주일 동안 매일 밤 중정 마당에 전시된

18점의 작품을 그렇게 바라보며 하루를 정리했다.

어제는 그 마지막 시간이었다.

전시회를 마감하면서 그들은 처음 왔을 때처럼

조용히 바람처럼 사라졌다.


처음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원래 걸려 있던

사진 액자들도 본래 위치에 그대로 자리를 잡았다.

자신들의 작품을 위해 각도가 돌려져 있던

조명들도 다시 원래 방향으로 돌려졌다.

그들은 처음 왔을 때처럼 그렇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조용히 우리 공간의 떠났다.


어쩌면 그렇게 특별한 흔적을 남기지 않고

떠날 수 있을까?

늘 그랬지만 과거의 전시회는 늘 끝이

좋지 못했다.

주인의 허락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벽에

못을 박고 흰 벽면에는 액자를 매달기 위해

붙였던 테이프 자국들로 페인트가 떨어져

나간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그런 전시회에 비하면 이들의 전시회는

정말 전시회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완벽한 뒷마무리다.


이미 알만한 사람은 알고 있겠지만,

우리 공간 갤러리는 신인작가들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예전 신인 화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디지털 미술관'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인터뷰를 하면서 마지막으로

신인작가들에게 혹시 바라는 것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거의 열에 아홉은

전시 공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대답을 했다.


사회에 첫출발을 하는 신인작가들에게

기존의 전시 공간 문턱은 생각보다 높다.

비싼 공간 이용료부터 전시 작품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비용까지 합치면 수천 만원이

훌쩍 넘는다.

문제는 그런 무명의 신인작가들이 아무리

열심히 전시회를 해도 팔리는 작품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당연히 신인작가들의 전시회는 작가로서

사회에 값비싼 대가를 치르며 진입해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가 되어가고 있다.


작은 마당이 있는 까페를 선택한 것은

그렇게 신인작가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기억 때문이었다.

그곳을 잘 활용하면 신인작가들이

조금은 수월하게 자신들의 첫 전시회를

열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그렇게 여섯 번의 전시회를 열었다.

나중에 들은 소식이지만 몇몇은 우리 공간에서

열린 전시회가 밑거름이 되어 더 큰 유명

전시공간으로 자리를 옮겨서 작품을 전시하는

행운을 얻은 작가들도 여럿 있었다.

물론 나에게는 가장 보람 있는 일이기도 했다.


전시회 일주일 동안 짧지만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캐나다에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가 이민까지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학생도 있었다.

워낙 붙임성도 좋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이다 보니 낯선 이국 땅에서도 금세 적응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동국대라서 그런지 이번 전시회에는 스님도

한 분 계셨다. 겉으로 봐서는 갓 출가한

젊은 스님처럼 보였다.

나중에 스님의 어머니가 전시회에 오신

다음에야 그 젊은 스님이 출가를 한 지

15년이 된 베테랑(?) 스님이란 사실도 알았다.

여섯 살 어린 아들을 절에 두고 와야 했던 어머니는

15년이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옛날 이야기를 떠올릴 때면 눈시울을 붉혔다.


"우리 스님하고 1년에 한 번이나 볼까요...?"


이제는 자식 이름 한 번 제대로 마음대로

불러볼 수 없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는 모처럼 만난 아들을 위해서

이것저것 먹으라 졸라대셨다.

그런 어머니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들은 며칠 동안 늘 마셨던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으로도 충분하다 이야기하신다.

그런 두 사람을 옆에서 물끄러미 지켜봤다.

산다는 게 참...

그래도 살아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 일인지 나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가방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아들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셀카로 찍는 모습이 조금은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들의 순간은 그렇게 또 과거로 남겨졌다.

모든 '시간'이 아름다운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우리는 시간이 선물한 추억을 하나하나

그렇게 밟아가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기도 하고...

문득 그 순간 김광석이 떠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의 죽음은 물론이고 그의 딸의 죽음을

둘러싼 온갖 의혹과 추문들 속에서

과연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난 누구의 편을 들고 싶지 않다.

내가 잘 모르는 것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은 것들은 언제부턴가

판단 중지를 하기로 결심했다.

다만 그래도 아쉬운 건 있다.

어쩌면 지난 몇 주 동안 벌어졌던

김광석을 둘러싼  온갖 의혹과 추문들의

최대 피해자는 김광석 그와,

그의 노래가 아닐까 싶다.


노래방에서 부르곤 하던 그의 노래들,

'서른 즈음에', '나의 노래'...

우리는 과연 추억이 담긴 그의 노래들을

예전 그대로 부를 수 있을까?


아무튼 그건 각자의 몫이고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겠지...

나는 다시 서촌의 작은 골목길로

돌아오면 되는 것이고...


전시회를 마무리하며 그들이

종종걸음으로 서촌을 떠나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18개의 시선이 담긴 사진 액자를

두 팔로 가슴에 한아름 안고 가는

그들의 모습이 나에겐 그렇게 또 하나의

한 장의 사진이 되었고 추억이 되었다.


즐거웠던 기억도, 아픈 기억도,

숨이 막힐 것 같은 고통스러운 순간도

모두 모두 시간 속에선 추억이 된다.

그것이 추억의 힘이다.

시간은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것일지라도

지나면서 추억을 남긴다.

그것이 추억이 아름다운 이유고

소중히 간직되어야 할 까닭이 아닐까...


글: 김덕영 (작가, 다큐멘터리 PD)


저는 서촌의 작은 골목길 까페, '김PD의 통의동 스토리'에서 조금은 독특한 방식으로 사람들과 만나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같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으신 분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김덕영의 책들

서촌 골목길 까페, 그 3년의 기록, <나에겐 통의동 스토리가 있다>,
인생에서 성공이란 때론 좀 늦게 찾아올 수도 있다,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49금 장편소설 <내가 그리로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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