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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Oct 18. 2017

태국 잡지사에서 취재를 왔다

‘까페 에세이’ (12)

"싸와디카!"

낯선 태국말이 들려왔다.
낭독극 대본 쓰느라 그녀가
가게 안에 들어온 것도 몰랐다.

"태국 잡지사에서 나왔습니다."

'태국? 타이랜드?’

일본이나 중국 미디어에서
취재를 나온 적은 있었지만
태국은 생소하다.
아무래도 좀 멀기도 하고
문화권이 일본이나 중국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나라다.

그러니 태국 잡지사 기자라며
자신을 소개하는 이 여성의 출현이
낯설고 뜻밖일 수밖에...

"사실 이곳을 알고서 일부러
찾아온 건 아닙니다.
본사에서 출장비 두둑히 받아서
고급 호텔에 묵고 있지만 마땅히
취재처를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죠."

그녀에게는 '김PD의 통의동 스토리'가
뜻밖의 운명적(?) 만남이라 했다.

태국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는 파트리시아


"큰 길을 걷다가 작은 골목길 안쪽에
자전거가 보였어요. 그 자전거 위에서
불빛이 반짝거리더군요.
그래서 뭔가 하고 들어왔어요.


이런 외진 곳에 이런 멋진 까페가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태국 기자는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대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뷰티풀'을 연발한다.
그녀의 모습을 뒤에서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나도 취재 본능이
일어났다.


'도대체 누구길래...?'

"그런데 여기 테이블 위에 있는
책들은 뭡니까?"
"아. 그거요. 제가 쓴 책들입니다."

큰 눈동자가 왕방울 만하게 커졌다.

"본인이 직접 쓰셨다구요?! 정말요?!
이렇게 많이요?!"

(사실 지금까지 8권의 작품을 썼으니 뭐

적은 숫자는 아니다.)


놀람은 계속 이어졌다.
다큐멘터리 PD를 하다 서촌 통의동
골목길에 공연과 전시를 겸하는
까페, 와인바를 오픈한 이유를
설명하자 아예 취재 노트를 꺼내들었다.

"태국은 물론이고 세상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지만, 이런 공간은 본 적이 없어요."

하긴 그럴 것이다.
재즈에서부터 클래식 기타, 플라멩코,
일본 훌라 댄서를 비롯해서 호주에서
온 왕년의 로큰롤 가수에 이르기까지
별별 공연을 다했다.

그뿐인가 전시는 어떻고...


갤러리도 있다며
중정 마당으로 향하는 문을 열자
차가운 가을 밤 공기가 밀려든다.
기자는 마당으로 나와 밤 하늘을
보며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른다.

"오마이갓! 인크레더블!
여기선 하늘도 볼 수 있네요.
와우! 당신 가게 정말 멋지네요."

가끔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가게 안에 들어오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언론사에 종사하는 기자가 이렇게 놀라는
경우는 처음이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

"사실 본사에서 서울 취재를
요청 받았는데 맛있는 레스토랑이나
세련된 옷가게 같은 곳은 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런 곳을 취재하는
기자는 많잖아요. 그래서 뭔가
나만의 기사를 쓰려고 했는데
여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제가 이곳을 발견한 거예요."

아무렴 그러면 그렇지.
태국 기자에게는 강남이나 가로수길,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비는 삼청동은
그저 그런 평범한 장소였다.
뭔가 서울 사람들만이 즐기는
그런 작고 은밀한 곳을 취재하고 싶었다.

하지만 처음 서울을 찾는 태국 사람
입장에서 그런 특별한 장소를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
그러다 우리 공간을 우연히 발견했단다.

"정말 운명적인 이끌림 같은 거였어요.
여긴 저에게 보물창고 같은 곳으로 기억이
될 것 같아요."

가게와 사람을 이렇게 따듯한 시선으로
취재한 사람은 처음이다.
30분 가량 그녀에게 인터뷰를 당했다.
맨날 인터뷰를 하던 입장에서 가끔 이렇게
정반대 입장이 된다는 게 생소하면서도
재밌다.

무엇보다 취재의 본질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녀가 원하는 말 한두 마디가
술술 나왔다.

"예전에 프랑스 남자가 가게 안에
들어와서 그러더군요.

‘쎄라 꼼마 메종!’”


태국 여기자가 머리를 흔들며 묻는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여기 마치 우리 집 같아!’라는 뜻이었죠.”

예상 적중이다.
만면에 희색을 띄면서 노트에
볼펜을 꾹꾹 눌러가며 기사를 적는다.

"태국 잡지에 다음 달 원고로
쓸 거예요. 잡지 나오면 보내드릴게요."

개인적으로 동남아시아에
요즘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경제난에 허덕이는 우리에게는
어쩌면 희망봉이 될 수 있는 곳들이다.
태국은 물론 그 중심이다.

태국의 잡지에 나올 김.통.스에
관한 기사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그녀는 왔을 때처럼 돌아갈 때도
함박 웃음을 지으며 가게 문을 나섰다.

"싸와디카!"

불교 나라답게 두 손을 합장하며 인사를 건넨다.
나도 그녀를 따라서 덩달아 두 손을 모아 잘가라
인사를 건넸다.

"싸와디카!"

아! 아니다.
싸와디캅이 맞는 거겠지.
여자는 싸와디카,
남자는 싸와디캅...
오랜만에 두 손 모아
태국말로 인사를 했다.
세상은 넓고 할일을 많다고 했는데
김.통.스에선 세상이 훨씬 넓게만 보인다.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




김PD의 통의동 스토리는

경복궁 영추문이 내려다 보이는

서촌 골목길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

누구든지 새론운 꿈과 삶의 특별한 재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싶은 분은 한 번

방문해보시기 바란다.

아주 색다른 일상의 작고 소소한

재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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