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또 '시작'하는가?

풍경이 있는 낭독극 <내가 그리로 갈게>를 연출하며...

by 김덕영

공감과 공유의 프로젝트 '시작' (1)


나는 '시작'을 사랑한다.
그것도 매우 사랑한다.
돌이켜 보면 내 인생은 온통
새로운 '시작'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래서 또 '시작' 한다.

풍경이 있는 낭독극 '내가 그리로 갈게' 제작이 현재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두 번에 걸친 오디션을 통해서 14명의 배우를 선발했다. 한두 명을 제외하면 모두가 아마추어들이다. 나이들도 적지 않다. 눈앞에 예순을 앞둔 사람도 있다. 대부분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연극을 한 편 만들고 있다. 그것도 '낭독극'이라는 조금은 낯설면서도 독특한 장르의 연극이다. 물론 그 '시작'은 내가 하자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또 뭘 ‘시작’하냐"고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


낭독극 배우 공개 오디션 당시, 모두 2차에 걸쳐서 배우 오디션이 진행되었다.


지난 12월 3일에는 14명의 배우들이 처음 한 자리에 모이는 상견례 시간도 있었다. 한 마디씩 일어나서 이번 공연에 임하는 소감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평생 집안 살림,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며 살았던 한 여성 분(편의상 P)이 일어나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낭독극 오디션을 보러 간다고 하니까?
친구들이 그러더라고요.
'니가?!'
그런데 나중에 오디션 통과해서
배우로 선발되었다고 하니까,
친구들이 또 그러더라고요.
'니가 할 수 있으면, 나도 하겠다'...
처음 해보는 거라서 떨리고 어려움도
많겠지만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나는 그날 P의 그 한마디가 계속 맴돌았다. 누군가에겐 소중한 존재였던 P였을 것이다. 평생 가족과 일터, 자식들을 위해 인생을 살아왔을 사람이었다.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을까? 어쩌면 P는 자기 자신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며, 어쩌면 이 거대한 우주의 중심과도 같은 존재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은 아닐까? 누구나 인생을 논한다. 누구나 삶을 사랑하려 애쓴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단 한 번뿐인 인생이니 말이다.


하지만 정작 얼마나 소중하게 내 삶을 간직하고 있는지, 그래서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나를 위해 얼마나 시간을 내서 삶을 가꾸고 투자하는지... 그날 P의 그 한마디가 나를 사로잡았던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P와 같은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그런 P의 열정이 발산될 수 있는 곳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될까? 그리고 도대체 보통 사람이었던 그 P를 아주 각별한 사람처럼 만들어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P와 그녀의 친구 사이에 차이를 가져왔던 것일까?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그것이 오늘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언컨대 P의 삶은 그녀의 친구들과 다른 궤적을 그리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시작'의 의미다.


서촌, 통의동, 인적도 드문 골목길에서 4년 동안 '통의동 스토리'라는 공간을 운영했던 이유도 어쩌면 P의 등장과 무관한 일은 아니다. P와 같은 사람들이 즐겁게 열정을 발산하는 공간, 나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었고, 또 지키고 싶었다. 4년이라니... 시간도 참 빠르지...

'어디까지 관객의 상상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까?
진정한 판타지란 결국 마녀와 기사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안에 꿈틀거리는 살아있는 판타지를 만드는 일이 아닐까?'


낭독극에서는 무대장치나 배우들의 액션도 없는 말 그대로 '낭독'만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누군가는 낭독극을 '연극과 문학'의 만남이라 정의했다. 나는 거기에 '그림'을 포함시키려고 한다. 뭐, 예술에 고정된 형식이란 없는 것일 테니까... 재밌는 낭독극, 관객이 오랜만에 무한대의 상상력을 느낄 수 있는 구성, 눈을 감고 자기 자신의 내면을 끄집어낼 수 있는 연극, 그런 작품을 만드는 게 내 목표다. 그래서 공연이 끝나면 관객들이 자신의 기억을 통해 작품을 재해석해내었으면 좋겠다. 결국 마지막 상상력과 판타지의 공간을 관객의 몫으로 남겨놓고 싶다. 아니 그들이 스스로 상상하는 그 마지막 이야기야말로 가장 강력한 판타지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사랑에 빠지는 자, 누군가를 저주하는 자, 아니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상의 공간에서 우리는 눈을 감고 판타지를 경험한다. 눈을 떴어도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대표적인 경우일 것이다. 누군가를 간절히 사랑하는 사람은 일상의 모든 것이 사랑하는 사람과 연결된다. 길을 걸으면서도, 음악을 들으면서도, 심지어 잠을 자면서도 그 사람을 생각한다. 나는 사랑도 결국 판타지에서 시작한다고 믿는다. 강력한 판타지의 구성요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랑에 중독된다. 남의 중독 현상을 확인하기 위해서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는 것은 아닐까. 아무튼. 나도 그렇게 만들고 싶다. 자신을 상상할 수 있고, 자신의 사랑, 삶을 송두리째 판타지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싶다.


'시각적인 정보로 넘쳐나는 이 시대,
한 번쯤 눈을 감고 자신의 내면과 만나볼 생각은 없으신지...?'


볼거리가 넘쳐나는 시대다. 현란한 네온사인과 거대한 스크린에서 쏟아내는 온갖 시각적 정보들이 삶을 휘감고 있다. 어딜 가도 스마트폰을 통해 TV의 방송시간을 자기만의 맞춤형 시간대로 재구성할 수 있는 편리한 삶이다. 그런데 그렇게 넘쳐나는 시각적 정보들 속에서 우리는 과연 우리가 옳다는 것을 어떻게 확증하면서 살고 있는 것일까? 질문의 형태는 다르지만 3천 년 전부터 해왔던 우리 자신에 대한 근본적 질문 중 하나다. 소크라테스는 그래서 자신이 소 등짝에 붙어서 침을 쏘는 '등에'가 되고 싶다고까지 말을 했다. 자기를 어떻게 보증할 것인가의 문제는 철학의 주제다. 수천 년이나 이어져 온 근본으로 회귀다.


만약 당신이 지금의 볼거리들에 식상해 있다면, 우리의 낭독극 '내가 그리로 갈게'를 권하고 싶다. 애초부터 이 한 편의 작품은 바로 당신의 고민을 충족하기 위해서 기획되었다. 그런 고민들과 만나 더 큰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이었다. 우리의 낭독극은 현재 진행형이다. 끊임없이 개조될 수밖에 없고 더욱 풍부한 고민들과 만날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내가 이 한 편의 작품을 만들려는 두 번째 이유가 아닐까?


때론 눈을 감고 석양에 앞에 서자.

눈이 부신 사람은 등을 돌려도 좋다.

아침의 햇살이 청색의 차가운 뜨거움이라면

석양은 말 그대로 온통 붉은 장밋빛 정열이다.

그것이 때론 눈을 감고

지는 해 앞에 서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석양의 열기를 받아

눈을 감은 당신의 얼굴이 온통 붉게 물들 때까지

고개를 돌린 당신의 등짝이 뜨거워질 때까지...

- 낭독극 '내가 그리로 갈게'를 제작하는 두 번째 이유를 생각하다가


아! 그리고 열정 있는 우리 낭독극 배우분들에게 다시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나에게 그들 모두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P들이다.

낭독극 <내가 그리로 갈게> 공연 실황 (2018.1.20)
시각장애인을 위한 공연으로도 추진되고 있는 낭독극 '내가 그리로 갈게'

낭독극 제작에 도움을 주실 분들은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대학로, 신촌 일대 공연장에서 연극으로 공연하는 프로젝트 역시 현재 가동 중에 있습니다. 4월 중에는 낭독극 공연 실황에 비디오를 입혀서 새롭게 '영상극'이란 장르를 만들 계획이빈다. 개인적으로 이 프로젝트의 종착점은 '영화'입니다. 후원이나 광고, 직접 몸으로 자원봉사해주실 분도 모집합니다. 이 작품이 더욱 발전하는데 도움주실 분들은 연락주세요.

연락처: docustory@gmail.com / 070-8987-0408


글: 김덕영 (작가, 다큐멘터리 PD, 낭독극 연출가)




낭독극 연출을 맡고 있는 김덕영은 서촌의 작은 골목길 까페, '김PD의 통의동 스토리'에서 조금은 독특한 방식으로 사람들과 만나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같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으신 분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김덕영의 책들
서촌 골목길 까페, 그 3년의 기록, <나에겐 통의동 스토리가 있다>,
인생에서 성공이란 때론 좀 늦게 찾아올 수도 있다,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49금 장편소설 <내가 그리로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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