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비평

너무 유명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던 처칠의 인생

<윈스턴 처칠의 뜨거운 승리> 리뷰

by 김덕영

'김덕영의 숨은 명작 찾기' (2)


폴 존슨, <윈스턴 처칠의 뜨거운 승리>


어렸을 적 내 취미 중의 하나는 위인전 읽기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동화책이나 만화 책보다 위인전이 백 배는 더 재밌었다. 무엇보다 사람의 일생을 단 몇 시간 혹은 며칠 만에 압축해서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위인전들 중에 음악가 베토벤 전기는 아주 똑똑하게 기억이 나는데, 책을 서점에서 사 갖고 오자마자 그날 하루 종일 밤새도록 읽었던 기억이 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데 감동 때문인지 숨이 차올랐다. 마치 2,3킬로미터를 전속력으로 질주한 것처럼 숨이 찼다. 나는 아직도 그날 밤 신선한 공기를 마시러 마당으로 나와 밤하늘을 보면서 설렌 가슴을 진정시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위인전은 그렇게 나를 무한한 상상의 세계 속으로 몰고 갔다. 돌이켜 보면 내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그나마 정상적인 궤도로 이끌어 준 것은 그런 위인들의 전기가 아니었나 싶다. 덕분에 탈선할 유혹과 기회도 많았던 질풍노도 같았던 그 시기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역시 사람의 이야기보다 사람을 강렬하게 사로잡는 것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렇게 밤을 새워 가면서 위인전을 읽는 일은 점점 사라졌다. 사람 너머에 있는 세상의 이치를 알고 싶었던 것일까? 사람에 대한 이야기 대신 이론과 이념이 시선 속으로 들어왔다. 아는 것은 더 많아진 것 같은데 여전히 마음은 공허하다. 지식이 늘어난다고 해서 삶이 곧바로 풍요로워지는 것도 아니다. 지식과 행복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데도 참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런데 정말 아주 오랜만에 설레는 감정으로 위인전 하나를 읽었다. 바로 폴 존슨의 <윈스턴 처칠의 뜨거운 승리>란 책이었다.


'사실 워낙 유명한 인물이다 보니 누구나 처칠을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처칠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다. 당연히 처칠에 대한 제대로 된 책도 없다. 그동안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다시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준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느끼게 되는 것들이 여러 가지 있었는데,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새로운 이해였다. 1939년에서 1940년까지 영국 정치계에서 버려졌던 처칠의 화려한 복귀는 본문에서 드라마틱하게 서술되고 있다. 특히 1940년 덩케르크에서 영국 30만 명을 구출하는 작전 같은 경우엔 모든 반대, 즉 히틀러와의 협상만이 영국 젊은이들을 살릴 수 있다는 나약한 정치인과 언론인들을 무력화시킨 처칠의 고독한 승리였다. 책을 읽는 내내 숱한 반대와 냉혹한 비판적 시선들을 물리치고 끝까지 '파이팅'을 외쳤던 처칠의 모습이 눈앞에서 보이는 듯했다.


책 속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이 처한 상황들이 세밀하게 묘사되면서 역사적인 이해를 돕고 있다. 특히 '영국 전투'(Battle of Britain)와 같은 스토리는 잘 모르고 있던 부분이기도 했다. 보통은 '영국 본토 항공전'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독일 공군의 런던 공습에 맞서 끝까지 결전했던 영국인들의 저항을 상징한다.


역사가들은 만약 '영국 전투'에서의 승리가 없었더라면, 독일군은 영국 해안 도시들로 침입해 들어왔을 것이며 그것은 전쟁의 양상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만큼 영국으로서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덩케르크에 고립된 영국 지상군 30만 명의 병력까지 괴멸한다면,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자는 아마 나치가 차지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영국 전투'에서 영국인들이 보여준 단호함과 결단력은 처칠을 빼놓고는 거론조차 할 수 없는 것이란 점이다. 그들은 처칠을 중심으로 뭉쳤고, 숱한 공습을 이겨내고 곧이어 '독일 전투'로 앙갚음을 했다. 처칠의 주도와 계획 아래 독일 주요 도시들에 영국 공군 전력을 총출동시켜 공습을 감행한 작전이었다. 일종의 런던 공습에 대한 보복이었던 셈이다. 독일 공습의 결과, 함부르크의 경우에는 도시 전체가 초토화되었는데, 이것은 전쟁에 필요한 군수 물자의 생산과 공급에 엄청난 차질이 발생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당시 유럽 본토로 물밀듯이 진격하고 있던 독일군 입장에서는 작전 수행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독일 공군의 공습으로 시작된 '영국 전투' (Battle of Britain)


독일군의 공습은 런던을 파괴했다. 특히 야간 공습은 영국인들에게 엄청난 공포와 두려움을 안겨줬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영국을 뭉치게 만들었던 힘의 근원이다. 그 중심에 처칠이 있었다. 2차 대전이 시작되면서 발휘되는 처칠의 리더십 장악 과정은 책의 백미다. 그는 독일과 총과 대포로만 싸운 게 아니라 연설과 글로 싸웠다. BBC를 통해 밤 9시를 알리는 시보와 함께 방송되던 처칠의 연설은 실의에 빠진 영국인들에게 희망이 되었고 용기를 주었다. '영국 전투'를 이겨낸 뒤에 처칠이 했다는 그 유명한 연설은 이런 맥락에서 읽혀야 그 의미가 돋보인다.


'우리는 약해지거나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바다와 대양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감과 힘을 길러 하늘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영국을 지켜낼 것입니다.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비행장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들판과 거리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언덕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BBC 라디오를 통해 영국은 물론이고 유럽 전역에 방송되었던 처칠의 연설


작가는 결국 '처칠이 영국을 구했다'고 결론짓는다. 그리고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면 그 주장에 그 어떤 반기를 들기 어렵다. 묘하게도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어지러운 현실 세계가 투영된다. 그래서 가슴 절절히 읽히는지도 모르겠다. 위기의 순간, 공동체가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지 그 단서를 제공한다. 이런 장면들은 영화 <다키스트 아워>에서 이미 여러 번 확인된 바 있다. 사실 책을 발견하게 된 계기도 바로 그 영화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 연합군의 승리고 끝난 뒤, 처칠은 선거에서 패배했다. 정치에서 물러나 이후부터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일에 몰두했다고 한다. 문학가이자 화가로서의 처칠의 풍모는 정말 완전 새롭다. 심지어 벽돌을 쌓으면서 집도 직접 지으려고 했다. 1953년 <2차 세계대전>이란 작품으로 노벨 문학상까지 거머쥐었다. 그의 문학적인 업적은 거저 얻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43종, 72권의 책을 출간했으며, 신문과 잡지를 통해 1천여 개의 글을 기고했다. 노벨 문학상을 탄 <2차 세계대전>의 경우 모두 200만 단어를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하루에 약 2천 자 정도의 글을 꾸준히 습작했다. 한마디로 노력의 결과였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과정을 그가 즐겼다는 점에 있다.


지금 나는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 2>를 쓰고 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포기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처칠의 전기는 그런 나에게 아주 큰 힘이 되는 책이었다. 위기가 영웅을 만들어 낸다고 했는데 그 말이 사실임을 다시 입증한다. 절체절명의 시기, 2차 세계대전 속에서 영국은 처칠 같은 인물을 배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승리했다. 그저 그 사실이 부럽기만 하다.

"처칠은 영국을 구했는가? 물론 답은 '그렇다'이다. 처칠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영국 국민 중 절대다수가 그렇게 느꼈으며, 이후에 사실과 자료들로 확인되었다... 처칠의 리더십과 용기, 결단력, 독창성, 능력, 크고 전염성이 강한 자신감이 해낸 것이다." (본문 중에서)


글: 김덕영



서촌의 작은 골목길 까페, '김PD의 통의동 스토리'에서 조금은 독특한 방식으로 사람들과 만나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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