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 행복, 그리고 개인
익히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스토아 철학을 뜻하는 '스토아(stoa)'란 고대 그리스 시대 일렬로 길게 늘어선 줄기둥이 있는 공간을 뜻한다. 좀 거칠게 표현하자면 '줄기둥 공간 학파'가 된다. 하고 많은 철학의 유파들이 있지만, 이렇게 특정한 사물을 지칭하는 단어에서 철학의 유파 이름이 탄생한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 학파의 창시자 이름을 따서 짓거나, '마르크시즘', '프로이디안(Freudian)'처럼, 철학적 이론에서 핵심적인 개념을 따와서, '현상학', '해석학', '비판철학', '자연철학'처럼 짓기도 한다. 그런 이름들과 비교한다면 '스토아' 철학이라는 말은 낯설다. 게다가 줄기둥이 있는 공간이라니!
고대 그리스 건축양식 중에서 건물의 기둥이 일렬로 쭉 늘어선 것을 '스토아'라 불렀다. 한쪽으로는 야외로 탁 트인 공간이 있고 다른 쪽은 벽면으로 막혀 있다. 공간적인 의미로 따지면 외부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내부도 아니다. 내부도 아니고 외부도 아닌 공간, 바로 그곳에서 기원전 수세기 전부터 사물에서 사람으로, 사람에서 다시 '개인'으로 논리적 성찰이 이뤄졌다. '스토아' 학파는 공간적으로 내부도 아니고 외부도 아닌 공간에서 자신들의 진리를 탐구했다.
기원전 3세기경 키프로스 키티온이란 곳에서 출발한 무역선 하나가 그리스 아테네 앞바다에서 좌초한다. 배에 타고 있던 선원들 중에는 22살의 제논(Zeno)이라 불렸던 젊은이가 있었다. 무역상의 아들로 태어나 자신도 상인이 되어 한창 돈을 벌던 혈기왕성한 때였다. 그런 젊은이에게 바다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사건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일종의 죽음 직전까지 갔던 사람으로서의 성찰이라고나 할까.
아테네는 당시만 해도 세계의 중심이었다. 화려했고 지식으로 넘쳤다. 제논은 그곳에서 우연히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다. 그리고 상인에서 철학으로 개종한다. 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 삶의 목적, 진정한 삶의 행복 등을 논리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강연하기 시작했다. 그가 주로 강연을 했던 장소가 바로 '스토아'였던 것이다.
그가 건물 안쪽, 안락하고 여유로운 실내 강연장이 아니라 스토아에서 강연을 했다는 사실로 봤을 때 당시로서는 일종의 '길거리 철학자'였다고 추측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런 자유로운 영혼들의 강연이 곳곳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소크라테스의 강연 역시 시장이나 광장 등에서 이뤄졌지 오늘처럼 근사한 강연장에서 진행된 적은 없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학교(school)'라는 단어는 '스콜레(schole)'에서 유래했다. '스콜레'는 그리스어로 '여유'를 뜻한다. 달리 표현하면 '여유 있는 자들의 배움터'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런 학교에 남자아이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 여유 있는 남자아이들의 배움터가 곧 스쿨, 학교가 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광장과 스토아를 중심으로 강연을 펼쳤던 당시 소크라테스나 제논 같은 인물들은 반기득권적이고 그래서 탈권위적인 인물들이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젊은이들을 현혹시킨다는 죄명으로 독배를 마신 것도 그런 이유였다.
제논 역시 평범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렇게 스토아에서 사람들에게 절제와 행복의 의미를 가르쳤다. 그것이 이어져 '스토아 학파'가 된 것이다. 애초에 평범한 이들의 철학이었던 스토아 철학이 후기에 이르러서는 왕과 귀족의 철학이 되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아이러니하다.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는 로마의 16대 황제로 뭐 하나 아쉬울 것 없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생 말년에 이를수록 철학자가 되었다. 세네카는 영국에 막대한 자금을 빌려줄 정도로 돈 많은 귀족이었다. 로마의 폭군 네로의 스승이었다. 그런 세네카였지만 말년에 가서는 인생무상을 깨닫고 스토아 철학의 핵심에 귀의했다. 바로 절제, 행복, 그리고 개인이었다.
'왜 스토아 철학이 좋은 것일까?'
행복의 반대말이 불행인 것처럼 역설적이게도 스토아 철학자들의 출발점은 비극이었고 불행한 사건들이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것은 전쟁터에서의 패배의 교훈이었다. 유럽 대륙 곳곳을 물밀듯이 진군하던 로마 제국의 군사들에게 가장 난적은 골칫덩이 같은 게르만족과의 전투였다. 오죽 답답했으면 황제가 몸소 전장에 나갔겠는가. 그것도 아프리카에서 공수한 굶주린 사자들을 대동하고서. 하지만 사자까지 동반한 게르만족과의 전투에서 로마의 대군은 참패했다. 사자를 숲 속에 풀어 게르만족을 도륙시킬 것이라 여겼던 황제 눈앞에서 거꾸로 사자들의 울부짖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사자를 처음 보았던 게르만족에게 사자는 동물의 왕, 바로 그 사자가 아니었다. 낯설고 희한하게 생긴 동물을 본 게르만족 장군 하나가 일어나서 외쳤다. "겁먹지 말라! 저것은 로마의 개일뿐이다!"
아우렐리우스는 전투의 쓰라린 패배를 인정하면서 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렸고 생각하기 나름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그것이 그 한 사람에게는 전투보다 값진 승리였다. '철인 황제'로 불려질 정도로 스토아 철학에 심취했던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이라는 책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불행한 인간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으려 했던 세네카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로마의 폭군 네로 황제를 직접 가르쳤던 스승이었고, 훗날 네로의 폭정을 막으려 반란 음모까지 꾸몄던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음모가 발각나 결국 네로로부터 '자결 명령'을 받았다. 그런데 노쇠한 탓에 정맥을 칼로 그었지만 피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첫 번째 자결에 실패한다. 두 번째는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독배처럼 독약을 마시고 죽음을 택하려 했다. 하지만 그 역시 효과가 없었다. 결국 끓는 물이 가득 담긴 증기탕 속에 들어가 서서히 질식해서 죽는 방법을 선택했다고 한다.
어쩌면 철학사 속에서 가장 비참하고 불행했던 철학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세네카, 생전에 지진을 여러 번 경험해야 했고, 6년 동안 결핵을 앓았으며, 8년 동안 정치적 이유로 유배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런 비극의 주인공이 행복을 이야기하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스토아 철학을 읽는 재미가 아닐까.
세네카는 네로의 자살 명령 앞에서 슬퍼하는 동료들 앞에서 '그대들의 철학은 어디로 갔는가'라고 소리 칠 정도로 기개가 대단했다. 그리고 당당히 죽음을 택했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반복해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그런 인물 앞에서는 왠지 숭고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들수록 스토아 철학에 시선이 간다. 글쎄... 분석하고 비판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나의 이성의 눈은 비판과 분석, 종합이라는 세 가지 축을 따라 늘 움직인다. 하지만 거기에 한 가지가 더해지고 있다. 바로 관용과 절제의 미덕이다. 정말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드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 삶이 그만큼 팍팍해졌다는 증거일까? 둘 다 될 수 있고 둘 다 아닐 수도 있다. 아니 세 번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스토아'가 출발했던 지점, 바로 그 '나'로 돌아가야 한다는 열망을 부인하긴 어려울 것 같다. 나는 진정한 나를 찾고 있다. 나로 돌아가려고 애타게 '나'를 부르짖는다. 그 소리를 듣고도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나'의 무거운 발덩이!
어쨌든 시간이 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어려울수록 '스토아'가 좋다. 세네카는 말했다. '어떤 시간도 우리에게 닫혀 있지 않으며, 모든 시간은 우리에게 열려 있습니다. 과거를 망각하고 현재를 돌보지 않으며 미래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삶은 더없이 짧고 근심으로 가득합니다. 이들은 인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자신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서도 내내 분주했음을 가련하게도 뒤늦게 깨닫습니다."
2008년 <해리 포터>의 작가 조엔 롤링은 하버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명예로운 축사를 할 기회를 얻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연설을 시작했다.
"먼저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Harvard는 저에게 특별한 영예를 주었을 뿐 아니라, 졸업식 연설을 한다는 생각에 견뎌야 했던 몇 주간의 걱정과 메스꺼움 덕분에 제 몸무게 또한 줄었습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지요. 이제 제가 할 일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저 붉은 깃발을 곁눈질로 쳐다보면서 세상에서 제일 큰 그리핀도르(Gryffindor) 동창회에 와 있다고 나 자신을 확신시키는 일입니다...."
그녀의 축사는 부모의 만류,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소설가의 길을 걸었던 자신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녀의 이야기는 졸업장과 함께 주어질 성공에 대한 열망에 불타고 있는 하버드 졸업생들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던졌다. 그것은 바로 실패의 이야기였다. 그것도 실패가 주는 이점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자신의 인생 실패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까? 그녀 말대로 '실패는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해주기 때문이다'. 실패를 딛고 성공으로 나아가는 것이, 성공에서 성공으로 도약하는 것보다 더 멋지고 훌륭한 일임을 그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사소하고 무수히 많은 실패를 딛고 인간은 성장한다. 그래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이든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에게는 실패를 통해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해내는 분석과 종합의 능력이 있다. 때문에 성공의 공식은 바뀌어야 한다. 능력이 성공의 척도가 아니라, 실패만이 성공을 보증한다.
조엔 롤링은 가난하고 비참했던 시절의 실패를 통해 자신을 되찾아가는 과정으로 연설을 마무리한다. '(여러분) 내일, 오늘 제가 한 말을 한마디도 기억 못 할지라도 이 말만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고대의 지혜를 찾아, 입신양명의 사다리에서 내려와 고전학의 복도를 달릴 때 만났던 또 다른 로마인의 말입니다..."
"인생은 짧은 이야기와 같다. 중요한 것은 그 길이가 아니라, 가치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세네카의 말이었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을 겪은 사람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로 그 스토아적 가치를 조엔 롤링은 세상을 향해 새롭게 출발하는 하버드 졸업생들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선물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녀도 '스토아'가 좋았던 것이 아닐까.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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