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를 닮은 아빠, 아름다운 아르헨티나 가족과의 만남

by 김덕영

얼마 전 함께 저녁을 보냈던
아르헨티나 가족이 있었다.
메시를 닮았던 아빠.
스마트한 두 딸,
이탈리안 혈통의 아름다운 부인까지...

행복해 보이는 가족,
부러울 것 없어 보였던 아빠,
메시의 아르헨티나가 월드컵 16강에서
고배를 마신 것보다 더 아쉬운 사연이
하나 있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고국,
아르헨티나.
누군가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마세요'라고 노래했던가?

그 노래가 계속 귓전을 맴돈다.


.......


스페인어가 가게 안에 들려왔다.
처음엔 그저 서촌에 놀러온
외국인 관광객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한국에 산 지
4년이 된 아르헨티나 분들이었다.

"월드컵! 고우! 고우! 알젠티나!"

서먹한 아이스 브레이킹을 위해선
역시 요즘 핫한 축구 얘기가 최고다.
다행히 아르헨티나는 16강에 진출한 상태다.

"엊그제 한국 경기 너무 멋졌어요!
세상에 독일을 이기다니!"

괜히 어깨가 쓰윽 올라갔다.
내가 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도 말이다.
축구가 세계 언어라는 게 실감이 간다.

식사를 하러 서촌에 왔다가
우연히 골목길에서 우리 가게를 발견했단다.
묘하면서 안락한 분위기가 느껴져서
들어왔단다.

"배고픈데 뭘 먹을까요?"

알고 보니 일가족이었다.
딸을 둘씩이나 둔 행복한 아르헨티나 남자.
감바스 알 하이요에 알리요 올리오,
토마토 팬네, 그리고 해물크림 떡볶이까지
하나씩 주문을 했다.

그렇게 그들과 이야기가 시작됐다.
외국계 은행에서 근무해서
전 세계를 여행하듯 살았다고 한다.
영국에서 시작해서 뉴욕을 거쳐서,
한국에 왔고, 얼마 후면 다시
영국으로 돌아간다.

4년 동안 살았던 한국,
외국에서 느꼈던 자신들의 조국,
아르헨티나.

자연스럽게 아르헨티나에 관한 이야기로
화제가 옮겨갔다.
사실 요즘 아르헨티가 경제가 안 좋다.

100년 전, 그러니까 20세기 초만 해도
아르헨티나는 세계인들에게 '약속의 땅'이었다.
가난한 삶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
누구나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기대,
국토는 넓고 자원은 풍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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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40년 동안 미국보다 높은 경제 성장율을
기록했다. 믿기지 않는 얘기지만,
독일이나 미국보다도 GDP가 높았던 적도 있었다.

'비옥한 농지와 따듯한 날씨,
새로운 민주주의, 교육 받은 시민들,
그리고 탱고는 아르헨티나의 자랑이었습니다.
이민자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들었습니다
100년이 지난 현재 리오넬 메시와 같이
아르헨티나를 사랑할 이유들이 여전히 있지만
아르헨티나의 명성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칠레나 우루과이와 같이 아르헨티나가
한 때는 자신들보다 못 산다고 여겼던 나라들이
오늘날에는 더 잘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한 나라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을
전체주의나 극단주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경험은 약한 제도나
무능력한 정치인, 혹은 소수의 자원에 의존하는
경제만으로도 한 나라가 지속해서
추락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2014년 2월 27일, Economist)


도대체 아르헨티나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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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페론의
'Don' cry for me Argentina' 정도밖에
몰랐던 아르헨티나에 관한 관심이
오늘 가게를 찾아온 아르헨티나 가족들
덕분에 조금 더 높아졌다.

"표만 얻으면 다 된다고
믿는 무능한 정치인들이 문제입니다.
나라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어요.
일종의 포퓰리즘이죠.
그것이 아르헨티나를 망쳤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렇게 잘 나가던 아르헨티나의 몰락은
단지 남의 나라 일로만 여길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친구들이
너네 가족들 언제 고국에 돌아올거야,라고
묻습니다. 그럼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no thank you!'라고요.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돌아갈 생각은 안 들 것 같습니다."

대화를 마치며 딸 둘 둔 행복한
아빠가 슬픈 표정으로 이야기를 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이 건강하고
똑똑하게 어디든 잘 적응하고 있단다.
큰 딸은 이번에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
대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단다.

우리는 그렇게 작별을 고했다.
손님으로 와서 가끔은 이렇게
친구처럼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다음 달에 출국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알았다고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든다.
악수를 하기 위해 손을 내미는
그의 손을 잡았다.
손아귀에서 딸 둘 가진 아빠라고는
느낄 수 없는 억센 힘이 느껴졌다.

어쩌면 어려움에 처한 자신의 고국
아르헨티나를 떠나 영원히 떠돌이처럼
세상을 살아야 하는 딸 둘 가진 아빠의
단호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손을 흔들어 그들 모두에게
'잘 가라' 작별 인사를 했다.
그들은 처음 왔던 대로
그렇게 어둠이 깔린 통의동
작은 골목길 속으로 사라졌다.

언제 다시 그들을 만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아마 평생 다시 만나지 못할 확률이
높겠지...
그렇지만 기억은 그리 쉽게 지워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언젠가 남미 아르헨티나의 하늘 위,
혹은 스코틀랜드의 푸른 초원 속에서
그들의 얼굴이 떠오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잘가요! 딸 둘 가진 행복한 아빠!
가족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이상하게 이 가족들은
언젠가 다시 스치듯 한 번 더
만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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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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