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문화를 대하는 조금은 여유롭고 창조적인 자세를 위하여
올 초부터 국내 지상파 방송에서 골목길 상권을 살리자는 취지로 시작된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다. 유명 쉐프를 전면에 내세워 식당 주인과 맛의 대결도 펼친다. 목표는 오직 하나다. 골목길 식당을 살리자는 것이다. 맛 대결의 승부 여부와는 상관없이 많은 손님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컨설팅까지 이뤄진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등장하는 것만 봐도 최근 골목길 상권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일단 유동인구가 많은 역세권 같은 지역에 비해서는 임대료가 훨씬 저렴하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지도 한 장 들고 꼭꼭 숨겨진 가게를 찾아가는 재미도 있다. 낯선 골목길에서 우연히 발견하는 주인장의 범상치 않은 맛과 요리를 감상하는 것도 골목길 식당, 골목길 가게의 색다른 맛이다. 장사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남이 하지 않는 방식으로 도전적으로 가게를 운영해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웬만한 인기 있는 상권에서는 비싼 임대료와 시설비 투자 등으로 사실 아무나 진입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게다가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도 본전을 뽑지 못하는 가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골목길 상권의 활성화가 대안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골목길 문화를 대하는 조금은 여유롭고 창조적인 자세만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작은 골목길 가게들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본다. 사실 돌이켜 보면 어느 곳이나 상권의 발달이란 결국엔 작은 가게들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3,40년 동안 서울에서 소위 뜨는 상권의 역사를 살펴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삼청동길에서부터 시작해서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 신사동 가로수길, 이태원 경리단길로 이어지는 흐름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는 반복되는 발전과 쇠퇴의 패턴이 존재하고 있다. 삼청동의 경우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개성 있는 작은 까페와 작은 음식점들의 천국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이런 작은 가게들은 골목길에 위치해 있었다.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구불구불한 골목길들을 돌아서 작은 가게를 찾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일종의 자신만의 아지트를 발견하는 재미라고나 할까. 예쁘게 포장된 간판,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진열된 실내 인테리어, 거기에다 인심 좋은 주인과 만나 기분 좋게 수다라도 떨고 나오면 쌓였던 스트레스도 풀리고 왠지 모르게 삶의 활력도 얻게 된다.
그렇게 손님들이 찍은 사진 몇 장이 블로그에 올라가고 그 블로그를 보고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작은 가게와 스토리에서 시작된 골목길 상권이 점점 범위를 넓혀가면서 큰길까지 확장된다. 이제 거리에도 사람들이 북적인다. 가게들도 늘어나기 시작한다. 전문 투자가나 좀 더 큰 사이즈로 가게를 운영해 보고 싶은 욕심을 내는 큰손들이 등장하는 시기가 찾아온다. 적어도 이런 시점까지는 상권은 활기를 띤다. 그리고 동시에 서서히 임대료가 상승하기 시작한다. 작은 가게의 주인들에게는 가게 운영에서 임대료 상승보다 더 부담이 되는 것도 없다.
결국 가게 주인은 고민 끝에 인근의 저렴한 골목길을 찾아서 이사를 한다. 지역적으로는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곳으로 옮기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의 단골들을 놓치지 않고 계속 이어갈 수 있다. 점점 범위가 커지면서 골목길이 지역 상권의 실핏줄이 되고 작은 가게들은 그 실핏줄 사이를 흐르는 혈액이 된다. 그 정도 시점이 되면 큰 거리에서는 점점 빌딩들이 늘어난다. 드디어 프랜차이즈 상점들도 속속 입점하기 시작한다. 상권이 정점을 찍는 순간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때부터 서서히 상권은 쇠퇴하기 시작한다.
임대료 부담을 피해서 작은 골목길로 들어갔던 가게들에 손님의 발길이 끊기기 시작한다. 편리한 접근성과 부담 없는 가격으로 무장한 프랜차이즈 상점들에게 손님들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결국 수익성이 한계에 다다른 작고 개성 있는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한다. 작은 가게들의 폐업과 함께 이야기와 낭만, 문화를 찾아오던 손님들도 발길이 끊긴다. 결국엔 활기를 띠던 상권도 쇠퇴한다.
작고 개성 있는 가게들의 문화와 이야기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단지 먹고 마실 것을 찾아 가게를 찾지 않는다. 남들이 하지 않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레시피를 만들고, 간판 하나에도 개성이 묻어나는 가게들, 그런 가게들을 찾는 재미가 있다. 그런 가게들만이 주는 문화의 향수가 있다. 생산과 소비, 수요와 공급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상권을 발달시킨다. 그 출발점이 바로 골목길이다. 작은 골목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뉴욕의 소호나 런던의 해크니, 도쿄의 번화한 도시들을 봐도 중요한 것은 실핏줄처럼 돌고 있는 골목길 상점들이다. 작고 개성 있는 작은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에는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 있다. 쇼윈도에 문화가 있고 숨겨진 이야기들을 발견하는 기쁨이 있다. 상권이 발달해도 더 큰 도로, 더 높은 빌딩을 짓지 않으려는 자발적인 저항감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것이 결국엔 상권의 쇠퇴를 가져오는 결과임을 그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가게들과의 공존을 통한 적절한 균형만이 도시의 발전을 담보한다는 사실을 이미 오래전부터 깨달았기 때문이다.
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소비자들 역시 작은 골목길의 가게들을 찾는 수고로움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오래된 가게에서만 느낄 수 있는 편안하고 안락한 느낌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가게 한쪽 테이블 어딘가에 스며 있는 추억과 낭만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어쩌면 그런 추억이 남아 있는 공간을 마음속에 갖고 있다는 것도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작은 골목길에는 뜻밖의 만남이 숨겨 있다. 조금만 더 편리함과 익숙함을 포기할 수 있다면, 골목길 낯선 공간, 작은 가게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통해서 일상을 벗어나는 재미와 흥분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