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봉골레 링귀니 파스타'와 함께 시작합니다
'까페 에세이' (18)
봉골레 링귀니에 필수적인
신선한 바지락을 사러 서촌, 통인 시장까지
갔다 왔습니다.
오며 가며 날씨도 좋고
통인 시장에는 사람도 많고...
그런데 바지락을 파는 생선 가게엔
주인이 없더군요.
아침 눈 뜨자마자 먹고 싶었던
봉골레 링귀니.
바지락조개 몇 알 때문에
해 먹고 싶었던 파스타를 못 먹는다니까
괜스레 우울해졌습니다.
그렇게 생선 가게 앞에서 몇 분을
서성였습니다.
세상은 마음먹기 달린 법,
보고 싶은 대로 보인다고
작고 하얀 초인종 버튼이 하나 보였습니다.
모양도 예스러운 것이
어릴 적 집에 달려 있던 현관문
초인종 버튼과 색깔이나 생김새가
비슷한 것이 여건 반갑지 않더군요.
마치 옛날 우리 집 초인종 만난 기분으로
또 몇 분을 기다렸습니다.
주인은 올 생각은 안 하고
다리는 아프고.
한참을 기다리다 그냥 갈 수 없어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초등학교 1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뛰어나왔습니다.
오늘 보니 생선 가게 안에
큼직한 집이 한 채 있더군요.
싱크대도 새 것, 주방과 거실,
침실까지 딸린 완벽한 집의 모양새였습니다.
웬만한 오피스텔 뺨치는 인테리어에다
고급스러운 조명까지.
서촌, 통인 시장 생선 가게
안쪽엔 집이 한 채 있구나.
생각보다 공간이 꽤 크구나...
아무튼 잠깐 동안 바지락 사러 온 걸
까먹었을 정도였습니다.
남자아이는 시선의 절반은 생선 가게로
나머지 절반은 방 안쪽에 있는 텔레비전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뭔가 재밌는 TV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는 듯했습니다.
"저기 있잖아. 바지락좀 사고 싶은데..."
힘겹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아니 어떻게든 바지락 한 봉지는
사가지고 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할머니 교회 가셨어요."
"언제 오시는데?"
"1시에 오신다고 했어요."
시계를 보니 12시. 여기서 한 시간을
기다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시 올 수도
없는 일이고... 어쩐다...
생선 가게 탁자에 작은 노트가
하나 보였습니다.
'가지미 0000원
갈치 000000원
오징어 0000원
... 바.지.락. 1근에 4,000원'
오! 탱쓰갓!
노트에 적혀 있는 바지락 가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볼펜을 꾹꾹 눌러서 쓴
주인 할머니의 필체.
적어 놓은 이유가 설마 초등학교
1학년짜리 아이한테 생선을 팔라고
한 것은 아닐 테지만, 어쨌든 가격을
알았으니 이제 꼬마 주인과 흥정만
남은 셈.
"꼬마야! 여기 보니까, 바지락이
1근에 4천 원이라고 적혀 있거든.
아저씨가 바지락 1근 저울에 달아서
4천 원 놓고 갈게. 그럼 되겠지?"
꼬마 주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나도 더 이상 물러 설 수는 없는 일.
부탁 반, 강요 반으로 바지락 한 봉지
사기로 결정했습니다.
꼬마 주인도 어쩔 수 없었는지
결국은 포기를 합니다.
사실은 빨리 협상을 마무리 짓고
TV에서 나오는 만화 영화를
보러 가야 했으니까요.
"그럼 그렇게 하세요."
결국 주인 없는 생산 가게에서
나는 바지락 한 봉지를 봉투에 담았습니다.
물론 꼬마 주인의 감시(?) 아래서.
"1근에 4,000원이라고 했지?
꼬마야 저울 잘 봐.
1근이 600그램이니까..."
그렇게 바지락을 저울에 달았습니다.
600그램의 바지락을 달고
1만 원짜리 한 장 놓고
6천 원을 거슬러 받았습니다.
아니 내 손으로 그냥 잘 챙겼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네요.
"자. 아저씨가 여기 돈 놓고 갈게.
그럼 수고하고..."
그렇게 한 봉지의 바지락을 들고
다시 '통의동 스토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아주 맛있게 오늘의 요리,
봉골레 링귀니를 먹었습니다.
바지락 국물이 잘 배어 나온
감칠맛 나는 봉골레 링귀니였습니다.
'아. 행복이란 게 뭐 별 거 아니지..
이렇게 맛있는 봉골레를 직접 만들어
먹는 재미와 기쁨이란...'
그런데 다 먹고 나서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었습니다.
'바지락 한 근은 몇 그람이지?'
'소고기는 한 근에 6백 그램이지만,
바지락은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습니다.
이럴 수가...
바지락은 한 근이 400그램이었습니다.
이를 어쩌나요?
400그램을 재야 했는데, 600그램을
담았으니 말입니다.
꼬마 주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괜히 죄지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가서 자초지종 설명하고
바지락 값 더 얹어주고 와야겠습니다.
아무튼 봉골레 링귀니 하나 때문에
오늘은 또 그렇게 해프닝 하나가 생겼네요.
여러분도 오늘 하루 맛있는 요리 하나
만들어서 드세요.
행복과 재밌는 일상은 보약보다
나은 것일 테니까요.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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