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서촌 북스토어 와인 까페는 내 작업실이다
'까페 에세이' (17)
'경복궁 서촌 북스토어 와인 까페는 나의 작업실이다'
다큐멘터리 PD로 20년을 살았다. 이젠 작가의 길을 걸어가려고 하지만 참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만 쉽지만은 않다. 늘 고되고 힘들고 그래서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유혹도 든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결과로 이어지는 포기의 유혹. 그걸 견디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계속 가는 것 자체가 어쩌면 나에겐 의미 있는 순간들이지 않을까. 적어도 계속 가고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난 아침의 경복궁을 사랑한다. 서촌에 터를 잡고 작은 까페를 하나 운영한 지도 벌써 5년째. 요즘에는 저녁이 다 되어서야 가게 문을 열지만, 처음 오픈했을 때는 아침 9시 반에 가게 문을 열었다. 회사 출근하던 버릇이 남아서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이른 아침 궁 주변을 거닐며 가게로 걸어가는 순간은 늘 신선하다. 가지런히 늘어선 경복궁 담장의 벽돌 모양들에 시선을 집중하면 마음까지 차분해진다. 무엇이든 반복적인 패턴은 곧 선(禪)의 세계로 이끄는 것 같다. 때로는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경복궁의 담장을 거닐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경복궁 담장길을 꼽을 것이다. 특히 광화문에서 시작해서 담장을 따라서 청와대로 이어지는 서쪽 길.
생김새는 동쪽이나 서쪽이나 똑같지만, 이상하게 나는 동쪽보다는 서쪽 길이 좋다. 동쪽 길은 고관대작들이 노니는 삼청동이나 관광객으로 붐비는 북촌으로 이어져서 왠지 불편하다. 어깨가 움츠러들고 자꾸 타인의 시선도 의식하게 된다. 게다가 내 눈에는 좀 인공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반지르하고 윤기 나지만 일부러 꿰맞춘듯한 느낌이 어색하다.
그것에 비하면 서쪽 담장으로 이어지는 길은 내츄럴하다. 투박하고 제멋대로다. 하지만 그래서 더 편안하다. 서쪽 방향으로 이어진 담장을 계속 걸어가면 영추문이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길의 끝이다. 그다음부터는 청와대의 기운이 뻗쳐서 별로다. 검문소도 있고 무엇보다 사람도 가게도 없다. 당연히 삭막할 수밖에. 영추문에서 길을 건너면 그 앞에 있는 동네가 바로 서촌, 통의동이다. 바로 우리 가게가 있는 곳이다.
그것은 경복궁역에서 나와 볼 수 있는 먹거리로 왁자지껄한 서촌과는 완전히 다른 서촌이다. 고즈넉한 한옥들에는 저녁 때 모락모락 굴뚝에서 연기도 피어오른다. 밥 짓는 연기,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구름이 지나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한 동네다. 인적도 드문 통의동의 좁은 골목길을 구불구불 헤쳐서 가면 어디선가 작은 까페를 만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길은 어쨌든 계속 이어져 있고 막히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게 인적도 드문 골목길 안쪽에서 둥지를 틀고 5년을 버텼다. 목적이 있는 삶이었기에 가능했다. 글을 쓰고 사람들과 문화와 예술을 나누는 일상의 작고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공간. 그 공간을 통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나는 그곳에서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서점처럼 책을 판다. 샹송과 재즈가 흐르는 북스토어 와인 까페다. 하루하루가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쨌든 그 가게를 통해서 내 인생의 어느 한순간들이 차곡차곡 기록되고 있다는 것.
그곳에서 낮에는 커피를 내리고 밤에는 와인을 서빙하면서 틈틈이 글을 썼다. 책을 읽고, 책을 통해 낯선 곳으로 여행을 한다. 잔뜩 쌓인 싱크대의 접시들을 닦으면서 설거지의 도(道)를 느낀다. 진짜 반복적인 패턴의 행복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고 뭔가를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가끔은 일부터 설거지를 하러 주방에 들어가는 이유도 그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일화를 봐도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는 샤워를 할 때마다 종종 불만 섞인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아! 왜 나는 맨날 샤워를 할 때마다 좋은 아이디어가 튀어나오는 걸까!", 참 복에 겨운 속리다. 어쨌든 일상의 반복적인 행위와 패턴이 집중력을 높여주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래서 행복과 행운을 찾으려 한다면 바로 그 일상의 작은 순간들로 시선을 돌려야 하는 것일 테고......
나는 늘 그 인적도 드문 서촌의 통의동 골목길에서 글을 쓸 수 있는 기회와 용기를 주신 많은 손님들, 독자 분들께 감사한다. 어제도 사실 멀리 태안에서 한 분이 오셨다. 내 책을 무려 두 권이 읽어주신 독자 분이었다.
"저기요. 그릴 치킨 샐러드가 메뉴에 없네요?"
사실 그 말에 좀 놀랐고 당황했다. 아주 오래된 메뉴였기 때문이다.
"그릴 치킨 샐러드요?! 아니 그걸 어떻게 아시죠?"
"책에서 봤어요."
'그릴 치킨 샐러드'는 우리 기게 초창기 메뉴였다. 말 그대로 닭 안심 살을 먹기 좋을 정도로 썰어서 바질과 올리브잎, 몇몇 시즈닝과 이탈리안 드레싱을 섞어서 만든 양념통에 하루 정도 숙성시킨 다음, 그릴에 구워서 제공했던 메뉴였다. 풍성한 양상추를 밑에 깔고 위에는 아몬드와 호두 같은 견과류와 건포도를 뿌려서 보기도 좋고 먹기에도 좋았던 '그릴 치킨 샐러드'. 그런데 그게 언제 적 메뉴였던가! 그거 뺀지도 한참이 지났다. 어제 손님이 불쑥 그걸 찾은 것이다. 그러니 내 입장에서는 조금은 놀랍기도 하고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죄송한데요. 그릴 치킨 샐러드는 빼뉴에서 뺐어요. 찾으시는 분들이 별로 없고, 손이 많이 가서요."
솔직히 고백하면 '찾으시는 분이 별로 없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그냥 둘러댈 말이 없어서 불쑥 튀어나온 말이다. 가격 대비 가성비 좋은 메뉴인데 손님들이 안 찾을 리가 없다. 다만 그걸 만들려면 무척 손이 많이 간다는 게 문제였다.
일단 냉동된 닭고기를 해동시켜야 하고, 흐르는 물에 양상추를 깨끗이 씻어야 하고, 그걸 또 잘게 썰어야 하고, 그릴에 구워야 하고, 너무 구우면 양념 때문에 까맣게 타버리니까 딴 데 한눈팔 수도 없고, 그걸 커다란 접시에 올리고 견과류와 크랜베리를 뿌리고 마지막엔 이탈리안 드레승을 한두 번 꾹꾹 눌러서 짜 넣고 빨간 토마토 조각과 모짜렐라 치즈들을 올려서 마무리를 했다. 그러니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모른다. 그거 하나 만들려면 가끔은 진이 다 빠진다. 그런데 맛은 일품이었다. 양상추가 풍성하게 깔린 그릴 치킨 샐러드를 들고 손님들 앞에 가면 '와!'하고 탄성을 지르던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쩌면 그 작은 요리 하나에도 개업을 하고 처음 손님을 맞이할 던 때의 주인들의 순수함이 묻어 있는 건 아닐까. 장사가 힘들고 돈도 안 되는 일이라고 투정을 하지만, 그래도 나에겐 이렇게 작은 메뉴 하나를 놓고서도 낯선 손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즐겁다. 하지만 더 기쁜 건 '그릴 치킨 샐러드' 하나를 통해 손님이 아니라 독자를 만나는 순간이다.
사실 그 손님은 <하루키에겐 피터캣, 나에겐 통의동 스토리가 있다>라는 내 책을 보고 '그릴 치킨 샐러드'를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을 읽기 몇 년 전에는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를 읽었다고 한다. 그러니 무려 두 권의 책을 읽어준 소중한 독자다. 내 입장에서는 고맙고 마음이 뿌듯해지는 순간일 수밖에.
간혹 '하루키는 뭐고, 피터캣은 또 뭐냐'고 묻는다. 아주 우연이지만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전업작가로 데뷔하기 전까지 도쿄의 어느 골목길에서 '피터캣'이라는 재즈바를 7년 동안이나 운영했다고 한다. 제목에 하루키와 피터캣을 넣은 것은 그처럼 나도 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 5년이 지났다. 하루키까지는 앞으로 2년이다. 정말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그렇게 할 수 있을까?'이다. 오늘은 하루키와 피터캣을 위해 건배!
글: 김덕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