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다큐멘터리 조각모음
'까페 에세이' (1)
가끔은 손님으로 들어와 친구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무슨 이유에선가 괜히 말이 통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 그런 곳이 까페다. 공간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되는 곳이다.
사람이 오고 가고, 어쩔 수 없이 흔적과 향기를 남긴다. 마음에 드는 향수처럼 감미로운 향기도 있고, 또 때로는 더러운 악취도 풍겨 올 수 있다. 사람이 남기고 간 흔적도 마찬가지다. 한 번은 가게 문을 닫으려고 정리를 하고 있는데, 손님이 들어왔다. 가게 밖에 놓은 중고책 몇 권을 사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서둘러서 다시 가판대에 덮고 있었던 비닐을 치우고 손님을 위해 책들을 펼쳤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날 그녀는 사고 싶은 책이 없었던 것 같다.
잠시 후 가게 문을 살짝 열더니 머리를 내밀고는 '죄송합니다'라고 한 마디 건네고 사라졌다. 물론 그가 무엇을 살지, 혹은 아무것도 사지 않을지는 전적으로 그의 자유다. 당연히 아무 생각 없이 하던 일을 마치고 가게 밖에 놓여 있던 중고책 가판대로 향했다. 그랬더니 이게 웬걸... 그녀가 오기 전에 내가 정리한 그대로 다시 비닐이 덮여 있었다. 늦은 밤 골목길 어디론가 총총걸음으로 사라졌을 그녀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것이 그녀에게는 아주 작은 행동이었겠지만, 나에겐 마치 부드러운 담요 하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어주는 느낌이었다. 타인을 위한 배려와 친절은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의 흔적을 남긴다. 세상에 오직 인간만이 아름다운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거야!,라고 소리치듯 메아리가 되어 마음속을 울린다.
그렇게 작은 골목길 까페 안에는 작고 소소한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그런 일상의 다정함이 좋아서 선택한 길이니 어쩌면 절반은 이미 성공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 이야기들을 글로 기록하는 것도 보람된 것이 아닐까, 나는 오래전부터 그런 생각을 품었다.
누구나 입에 넣으려는 것은 순수하고 좋은 것들이겠지만, 그것이 입 밖으로 나오는 것들은 아무래도 들어갈 때만 못하다. 할 수만 있다면 좋은 것을 입에 넣고, 흔적도 좋게 남기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언제나 내가 지나온 흔적들을 되돌아보는 게 또 중요할 테지만...
아무튼 까페라는 공간에서 그렇게 사람의 흔적들을 본다. 그들이 남겨놓고 간 흔적들을 통해 그 사람을 상상하기도 한다. 그렇게 사람의 향기를 맡는다. 그 향기 속에 취해서 아름다운 상상을 하는 꿈을 오래 꾸고 싶다.
까페는 세상의 희로애락이 담긴 작은 영화이다. 매일매일 주인공이 바뀌고 스토리도 달라지는 내 삶의 작은 영화관...
내가 세상을 향해 발길을 옮겼던 게 다큐멘터리 PD로서의 삶이었다면, 지금은 세상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 대신 내가 만든 작은 이 세상 속을 찾아오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천생이 세상에 대한 호기심 가득 품고 살았던 터라 세상에 대한 관심이 없을 수 없지만, 그래서 아쉽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낯선 사람이 물고 오는 세상의 소식들이 반갑고 흥미롭다.
얼마 전에는 일본이 자랑하는 이와나미 서점(岩波書店)이 진보초 간다 거리에서 문을 닫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신문에서는 잘 안 나는 기사다. 이와나미라면 대학 다닐 때부터 익숙한 출판사였다. 그때는 유명한 책들 중에는 이와나미에서 나온 책들이 참 많았다. 일본의 지성이 곧 이와나미였다. 80년대를 향수할 수 있는 아이콘 중 하나라고나 할까. 그런 이와나미가 일본 최대의 출판 거리에서 영업점을 철수했다는 말이다. 몇 년 그 거리에서 5층짜리 건물 앞에서 사진도 찍었던 기억이 나는데... 일본도 출판계가 얼마나 불황인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몇 년 진보초 간다 거리를 걸으면서 마주쳤던 이와나미 건물의 그 꼿꼿했던 자태(?)도 이젠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소식을 들으니 이유 없이 아쉬운 생각이 든다. '책이 안 팔려서 걱정'이라는 대학 후배, 지금은 어느 유명 출판사의 편집장이지만, 도쿄나 서울이나 책에 관한 한 이야기는 비슷하다. 그래서 조금은 겁도 나는 게 사실이다. 점점 시들해져 가는 책 문화 속에서 글을 쓰는 작가가 되겠다고 덤비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지금 난 까페 손님을 통해서 세상 소식을 듣는다. 그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무척 오래된 구전 동화의 한 구절을 듣는 기분도 들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시대를 역행하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간 좋은 날이 오겠지...
'책과 여행', 이 두 가지는 나에겐 남은 인생 평생을 같이 할 친구 같은 존재들이다. 나는 늘 거기서 힘든 고비를 헤쳐나갈 용기를 얻었고 세상을 살아갈 지혜를 얻었다. 때로는 내가 가 보지 못한 세상들, 그 흥미로운 이야기들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그들의 글과 말은 내가 할 수 없었던 도전과 탐험의 모험담이었다. 내가 못한 것들의 아쉬운 고백이었다. 하지만 그게 정글이 되던 우주가 되든 상관없다. 호기심 가득하고 지적인 자극들로 충만한 이야기의 세상 속으로 그저 뚜벅두벅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누구나 첫걸음을 떼기가 어렵겠지만, 일단 시작하면 우리 몸에는 놀라운 관성의 법칙이 있다. 한 걸음이 두 걸음이 되고, 저 먼 괴물의 나라도 가볼 용기가 생겨날 것이다. 난 그런 것들과 함께 하는 인생이야말로 즐겁고 의미 있는 삶이 믿는다.
원래 '에세이'라는 말은 몽테뉴의 <수상록>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어원적으로는 '에세이'란 프랑스어 'essayer', 뭔가를 시도하고 시험해 본다는 말에서 파생됐다. 그래서 '에세이(essai)'는 뭐든 해볼 수 있고 뭐든 도전해 볼 수 있는 생각의 표현이다.
그래서 이런 말도 가능하다. 에세이를 쓸 수 있다면, 아니 에세이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지금 당신은 아마 뭔가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슴이 터져오는 것!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우리는 언제나 가슴을 두근거리는 에세이가 필요한 게 아닐까. 당신의 에세이, 그 작은 시작을 위해 오늘은 건배! 에세이는 곧 도전이다.
글: 김덕영 (작가, 다큐멘터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