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 통의동 골목길에서의 기록
'나의 통의동 다이어리' (107)
목표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사람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책상 앞에 무슨 무슨 '목표 달성'이라고 적어서 붙여놓은 A4 용지 한 장이 때로는 인생에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목표가 있는 삶은 험난한 인생을 조금은 수월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든다. 그때 책상 앞에 붙여져 있는 네 개의 글씨는 10여 센티미터의 물리적 공간이 차지하는 가치를 뛰어넘어 강력한 에너지를 표출시킨다.
일본의 아사히나 다카하시라는 지휘자는 95세의 나이가 될 때까지 지휘봉을 놓지 않았던 전설적인 인물이다. 정규 클래식 음악 과정을 제대로 이수한 적도 없는 그가 NHK는 물론이고 일본 유수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수 있었던 힘도 어쩌면 단 하나의 목표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것은 바로 95세가 활동했던 폴란드 출신으로 세계 3대 오케스트라 중의 하나였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던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를 뛰어넘겠다는 확실한 목표 의식.
아사히나에게 스토코프스키의 전설적인 기록은 자신의 험난한 음악 인생에서 북극성이었다. 목표가 있으니 그곳에 도달하기까지 모든 과정은 아무리 힘들어도 걸어가야 할 의미를 지닌다. 목표의 힘이고 목적지의 운명이다.
터키 히사를리크 황무지 언덕 위에서 전 재산을 쏟아부으면서 고대 그리스의 트로이 유적지를 발굴해낸 하인리히 슐리만에게도 확고한 목표가 있었다. 그건 그의 자선에 따르면, 무려 8살에 만들어졌다. 슐리만은 어릴 적 아버지가 들려주었던 그림 동화에서 나온 트로이 목마의 격전기를 읽으면서 자신이 인생에서 해야 할 일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 밑바닥 험난한 직종을 훑어가면서 사업가로 성공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트로이 목마의 유적지를 찾아내겠다는 단 하나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부지리로 그는 그 과정에서 15개국 언어를 마스터하는 경이적인 체험을 하기도 했다. 보통의 평범한 인간이면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15개 언어라니!
그런데 목표가 있다는 사실과 목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나의 경우에는 목표가 너무 많다는 데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목표가 많아지면서 걸음걸이가 갈지자로 휘청거리도 한다. 그러다 보면 자꾸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경우도 생긴다. 가끔은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TV만 보다가 잠이 드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그러고 나서 다음 날이다.
다음 날은 어김없이 스트레스 치수가 높아진다. 그건 모랄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몸에 안 맞는 옷들로 치장을 하고 거리 한 복판에 나서는 기분이다. 신체의 리듬도 깨진다. 머리도 지끈거리고 이유 없이 근육통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렇게 생활의 리듬이 깨지면서 결국엔 소중한 것을 한순간에 잃어버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언제부턴가는 '목표 설정'보다 더 중요한 것이 '목표 유지'에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고 있는 중이다. 도대체 매일 매일 동일한 수준으로 목표를 향한 걸음걸이를 옮길 수 있는 방법은 뭘까?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전업작가로 본격적인 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그런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게 그의 자전적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가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다. 그는 그 책에서 달리기를 통해서 삶의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터특하고 있는 것 같다.
공교롭게도 내가 그를 삶의 모델로 삼은 이유는 그가 도쿄의 재즈바를 7년 동안이나 운영했다는 사실이었다.
고작 2년밖에 안 된 내가 보기에 글쓰기와 재즈바는 쉽게 섞여서 용해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닌 것 같다. 그걸 7년 동안이나 해낸 그가 우선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나의 경우엔 벌써부터 좀이 쑤시고, '이젠 그만 할까'하는 생각들이 꿈틀거리는데.
어쨌든 그나 나나 별로 유명한 상을 타거나 어떤 야심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진 않고. 중요한 건 하루하루의 생활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때로는 그의 생활이 무척이 궁금하기도 하고.
하루키에게 글 쓰는 재능, 지구력, 그리고 집중력으로 요약될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늘 지구력이 문제였다. 때로는 재능이나 집중력은 한 바구니에 놓여있는 것들일 수 있다. 그건 신이 부여한 선물일 수도 있고, 인간 노력의 산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구력은 100퍼센트 인간의 조건이다. 그렇기에 나는 늘 그게 힘들다.
그건 또 한 차원을 달리하면 습관과 연관된 사안이다. 난 원래 좋은 습관보다는 나쁜 습관이 많으니 더욱 힘들 수밖에. 그래도 처절하지만 좋은 생활의 습관, 궁극적으로는 글쓰기의 리듬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이 화창한 봄날의 아름다운 하늘 아래, 통의동 골목길에서.
작가의 책은 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 예스24, 알라딘 등지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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