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카메라를 주세요. 그럼 세상을 들어 올려 보겠습니다."
'시작도 달랐으니 끝도 다르게' (7)
2013년부터 2018년까지 5년 동안 서촌, 통의동이란 곳에서 '김PD의 통의동 스토리'라는 작은 가게를 운영했다. 그 시작이 조금 달랐던 것은 애초부터 인적도 드문 곳으로 들어가서 나만의 작은 세계를 꿈꿨던 것 같다. 그것은 일종의 꿈이었다. 목표가 있는 분명한 꿈이었다. 인적도 드문 통의동 낡은 골목길에서 5년 동안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것은 또한 상처 입은 내 영혼을 치유하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그 시기 나는 일생일대 큰 결단을 쉼 없이 내려야 했다. 삶의 전환기에 누구나 찾아오는 번뇌와 갈등,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바꿔야 했고, 사랑하는 아이들과도 멀리 떨어져야 했다. 돌이켜 보면 그런 힘겨운 일상을 버텨내기 위해서 더욱 통의동 골목길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넣었던 것 같다.
평생 다큐멘터리만 만들며 살아오던 내가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하루에도 수십 번 설거지를 하는 삶으로의 전환은 그렇게 시작됐다. 낯선 손님들에게 와인과 음식을 서빙하며 그들과 이야기 한 마디라도 나눠야 속이 시원했다. 그렇게라도 세상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싶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속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다큐멘터리 제작 현장에서 무수히 나눴던 인터뷰를 그렇게라도 계속하고 싶었다. 덕분에 매일매일의 일상 속에서 나는 한 편의 작은 다큐멘터리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냈다. 통의동 다이어리를 쓰며 서촌의 일상을 기록에 옮겼다. 그런 즐거움이 없었다면 과연 그 인적도 드문 통의동 골목길에서 5년을 버틸 순 없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로 글을 쓰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이른 아침 경복궁 영추문을 돌아 통의동 스토리를 찾아 출근하던 그 순수했던 기억이 증거다. 그 '기억의 터'를 찾아 구비구비 골목길을 돌아돌아 가면서 단 하루를 살아가는 하루살이처럼 그날그날의 삶의 목표와 꿈을 키웠다. 그중 하나는 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었다. 파리의 골목길에서 보았던 중고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실비아 비치처럼 가난한 예술가들과 따듯한 수프와 창작의 공간을 나누고 싶었던 마음과 어쩌면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파란 파도가 넘실거리는 에게 해의 산토리섬에서 만났던 '아틀란티스'라는 이름도 거창한 중고서점에서 보았던 영국 청년들의 과감한 도전 정신과도 맥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서촌의 골목길에서 문화와 예술을 접목시킨 독특한 까페가 만들어진 이유였고 작은 행위들의 결과였다.
그리고 이제 그 모든 '기억의 터'를 마감하려고 한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2018년 11월 30일까지다. 며칠 전부터는 그 5년 동안 기억이 담겨 있는 공간의 작은 역사들을 차분하게 정리하는 작업들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아예 '영업종료일까지 D-30'이라 이름 붙이고 하루하루 날짜를 역산하고 있다. 오늘은 D-27일에 해당된다. 그런 행동을 보고 재밌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아쉽다는 사람도 있다. 다른 건 몰라도 나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그래, 세상천지에 가게를 정리한다고
'영업종료일까지 D-30'이라 써붙이면서
하루하루 날짜를 광고하는
가게는 없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통의동 스토리'라는 작은 가게, 문화의 향기가 풍기는 생활의 공간이 갖고 있던 저력이 아니었을까? 마음으로 응원가를 외치던 수많은 서포터스들을 둔 든든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들과 마지막 작별을 아쉬워하는 김PD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아무리 삶이 팍팍해도 '나는 앞으로 또 어디서든 그런 당당함으로 세상과 맞짱을 뜰 것'이라는 결단과 각오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아무튼!
이제 다큐멘터리 PD로 현장 복귀한다. 처음 카메라를 잡고 세상을 기록했던 1989년으로의 복귀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기록이 즐겁다. 필름이 됐든, 디지털 신호가 됐든, 영상이 됐든 글이 됐든 기록하는 모든 것들은 고유한 가치와 각자의 운명이 있다고 믿는다. 무언가를 기록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역사의 작은 조각들을 남기는 아름다운 활동이다.
'K-Pop도 되는데, K-Drama도 되는데,
K-Book이나 K-Docu라고 안 될 건 뭐 있어!'
그래. 그런 각오로 좀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려고 한다. 깊고 넓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갖고 싶다. 글로벌리하게 러블리하게 카메라에 세상을 담을 생각이다. 카메라에 담길 만한 가치로운 것들을 담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에 기록되어 가치롭게 남겨질 것들을 담아낼 생각이다. 조금은 말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중요한 문제다. 기록될 가치가 있는 것들을 찾아 나서는 일과 기록을 해서 가치롭게 남겨질 것들을 찾아 나서는 일은 나에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전자가 많은 탐색과 사고를 요구한다면, 후자는 즉자적이다. 감각적이고 행동이 앞서는 일이다. 생각보다 기록할 것은 세상에 널려 있다. 오늘날 유튜브의 발전을 보면 일상의 아무렇지 않은 일들이 어떻게 타인의 흥미를 끌고 재미를 주는지 잘 알 수 있다.
일단 기록하고 생각은 나중에 한다는 정신 또한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생각이 많아져서 행동이 느려지고 상념만 많고 결과는 없는 그런 한계를 극복하게 한다. 무엇이든 일단 '시작'을 하고 달리면서 생각할 것이다. 오늘 우리의 생활을 뒷받침하는 스마트한 전자 장비들 덕분에 무엇이든 빠르게 접속할 수 있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생각만 많이 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달리면서 생각하고 움직이면서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시대에 굳이 가만히 골방에 앉아 완벽한 계획표를 짤 이유도 없다. 어차피 계획이 완성될 때 세상은 또 저만큼 멀어져 갈 것이고, 그럼 계획표는 또 고쳐야 한다. 그것이 계획만 잔뜩 세우는 이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카메라를 든 사나이>를 만든 지가 베르토프는 러시아가 자랑하는 다큐멘터리 감독이었다. 그의 영화는 당당히 세계 영화사에 한 자기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기록하는 행위'였다. 말 그대로 '카메라를 든 사나이'였다. 기록할 만한 것들 찾아서 카메라의 초첨을 맞춘 것이 아니라, 기록될 수 있기에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카메라에 담으려 했다. 기록되었기에 오늘날 가치로운 역사가 되었던 것들이다. 그리고 그렇게 1920년대 러시아의 일상들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겼다. 결국 베르토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가치를 찾아 방랑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롭게 행동하는 것이었다.
베르토프와 관련해서 재밌는 일화는 그의 이름과 관련이 있다. 그는 본명이 다비드 카우프만이라는 유대인 계통의 러시아인이었다. 유럽 사회에서 유대인들이 나치의 박해 이전부터 멸시와 경멸의 대상이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때문에 러시아 영화계에서 중심에 살아남기 위해 이름을 바꿨을 것이라는 가정도 있지만, 그보다는 새로운 예술적 실험과 장르적 도전에 올인하고 싶었던 그의 열망이 '지가 베르토프'라는 새로운 이름에 담겼다고 보는 게 설득력 있을 것이다.
이를 입증하듯, ‘지가(Дзига)’란 러시아어로 팽이(юла, волчок)를 뜻한다. ‘베르토프’는 ‘돌리다’, '회전하다', '방향을 바꾸다'라는 의미를 지니는 동사 ‘베르테티(вертеть)’에서 나왔다. 결국 '지가 베르토프'란 빙글빙글 돌아가는 팽이처럼 끊임없이 움직이며 중심을 찾아나가려 했던 그의 생각이 담긴 이름이었다. 그는 새롭게 변신했고 역사는 그를 20세기 가장 위대한 다큐멘터리 감독 중의 하나로 기록하고 있다. 물론 세상을 촬영하면서 필름을 돌리듯이 본인 스스로 영원히 '카메라를 든 사나이'가 되고 싶었던 베르토프의 열망도 어느 정도는 그의 이름 속에 담겨 있었을 것이다.
기원전 212년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는 “나에게 설 땅과 충분히 긴 지렛대를 주면 이 지구도 움직여 보이겠다"라고 외쳤다. 부력과 지렛대의 원리를 발견해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수학자 중의 한 인물로 기록된 아르키메데스에게는 그런 패기가 있었다. 근거와 논리란 때로는 사람을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만든다.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해 세상을 읽어내는 힘, 그것이 논리의 힘이다. 다큐멘터리 역시 기록을 통해 세상의 보이지 않는 힘을 작동시킨다. 그래서 어쩌면 이제부터 나에게도 아르키메데스의 패기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나에게 카메라를 주세요. 그럼 세상을 들어 올려 보겠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세상으로 향한다. 어쩌면 그곳에서 서촌, 통의동 스토리에서 품었던 꿈과 다시 만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적도 드문 곳에서 펼쳐졌던 문화와 예술의 작은 향연들을 함께 즐기고 박수 쳐줄 새로운 벗들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나는 간다. 가다가 돌아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유는? 그곳에 기록될 만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그걸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당신에게도 들려주고 싶을 만큼...!
'브라보 마이 다큐멘터리 월드!'
글: 김덕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