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비평

구원의 영화 <로마>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노스탤지어>가 떠올랐던 이유

by 김덕영

5년 전 알폰소 쿠아론의 영화 <그래비티 Gravity>(2013년)를 본 뒤 극장을 빠져나와 십여 분 동안 벤치에 앉아 하늘만 바라보았던 순간이 기억이 난다. 마치 저 우주 공간 어디선가 미아가 된 주인공 산드라 블록이 불타는 우주정거장을 빠져나와 지구로 귀환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아무리 달에 인간이 발을 디딘 지 50여 년이 지났고,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까지 인공위성을 보내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주 공간은 일상의 복귀가 불가능한 영역이다. 사막을 횡단하는 것이나 북극점을 왕복하는 것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낯선 영역이다. 그런데도 알폰소 쿠아론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지구로 돌아올 수 있는 우주 왕복선마저 고장 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우주 미아가 된 산드라 블록에게 집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을 노래한 영화가 바로 <그래비티>였다. 그리고 그것이 영화를 만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을 내가 기억하는 이유였다.


전작이 훌륭하면 사람들은 자연히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된다. 2018년 그는 <로마(Roma)>라는 약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제목의 흑백 영화 한 편을 세상에 내놓는다. 영화의 배급 방식도 새로웠다. 그는 극장이 아니라 넷플릭스를 선택했다. 영화의 개봉 역시 넷플릭스의 인터넷 스트리밍 방식을 통해 독점적으로 공급했다. 영화는 2018년 베니스 영화제 대상인 '황금 사자' 상을 수상하면서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동안 극장 상영작들에게만 수상했던 메이저 세계 영화제들의 독점적 카르텔이 붕괴하는 순간이었다.


<로마(Roma)>를 애타게 기다렸던 이유는 그런 이유들 때문이었다. 세상에 존재했던 많은 영화들은 줄기차게 세상의 권위와 아성에 도전했다. 그것이 영화의 존재 근거이자 사람들을 열광케 한 이유였다. 그런 영화들은 철저하게 몇 가지 공식을 따른다. 일단 무지무지 재미없다. 영화 <로마> 역시 그 영화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 여러 번 다시 보기를 시도했다. (넷플릭스리가 아니라 영화관이었으면 그마저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치 영화 안에 수면제라도 발라놓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끝을 보고 싶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다. 그리고 끝에서 사람을 눈물짓게 만들고 가슴에 큰 울림을 새겨준다. 그런 영화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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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것이 지금 이렇게 그토록 잔인하게(?) 재미없었던 영화의 리뷰를 쓰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하루 종일 내게 왜 이런 감정이 남아 있는지 이유를 찾았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이유를 찾았다. 그건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가 1990년대 보았던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영화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때도 나는 타르콥스키의 영화를 보면서 졸려서 죽는 줄 알았다. 그래도 영화의 끝을 향한 호기심은 강렬했다. 그렇게 허벅지 꼬집어 가면서 본 영화가 <노스탤지어>(1983년)였고 <희생>(1986년)이었다.


알폰소 쿠아론이나 안드레이 타르콥스키나 나에겐 하나의 점으로 모아진다. 그건 바로 '구원'이었다. 가끔은 그렇게 미친 듯이 인간의 근원, 인간성 자체를 성찰하게 만들어주는 영화들이 있다. 사는 이유를 묻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게 만든다. 타르콥스키의 <노스탤지어>에서 주인공 안드레이는 미친 광이 노인의 '촛불'에 관한 전설을 듣는다.


"어느 시골에 가면 온천이 하나 있어.
이젠 물조차 말라버린 쓸모없는 버려진 온천이 하나 있을 거야.
거기에 가서 끝까지 촛불을 꺼뜨리지 않고
온천을 가로지를 수 있는 자가 나타난다면,
세상은 멸망치 않고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거야..."

미치광이 노인의 말 한마디를 믿을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아니 멸망 직전에 이른 인류를 구원하는 게 고작 촛불을 들고 물조차 말라버린 온천 바닥을 횡단하는 것이라고? 그런데 희망이 사라진 세상에 서면 그런 말 한마디조차 희망의 근거가 된다. 게다가 미친 노인이라 여겼던 그가 스스로 몸에 불을 붙이고 분신을 한 뒤 세상의 구원을 외치며 죽음 선택한다. 그것이 주인공에게 촛불을 들게 만든 이유였다.


드디어 안드레이는 바람에 촛불이 꺼질까 코트 깃을 방패막이 삼아 온천 바닥을 조심조심 건넌다. 카메라는 조심조심 촛불을 들고 온천을 횡단하는 남자를 트랙킹으로 쫓는다. 그가 아무리 조심을 한다 해도 약하디 약한 촛불 하나가 바람에 버틸 리 없다. 꺼지고 또 꺼지길 몇 번째, 드디어 주인공은 촛불을 꺼트리지 않고 온천 바닥을 횡단한다.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난다. 만약 미치광이 노인이 말했던 세상에 대한 구원은 이뤄졌을까,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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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주인공 안드레이의 촛불 롱테이크 씬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에도 비슷한 트랙킹 씬이 존재한다. 백인 가정의 가정부로 일하는 순박한 처녀 클레오가 파도에 휩쓸린 주인집 아이들을 구해주기 위해 파도가 무섭게 치는 바다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이었다. 아이들을 향한 클레오의 손길이 애절했던 이유는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아이를 홀로 낳아야 했던 장면과 중첩된다. 결국 클레오는 사산아를 출산한다. 이미 목숨이 끊어진 생명을 엄마로서 마지막 안아보며 흐느끼는 장면은 마치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는 것처럼 리얼하고 순수했다. 왜 감독이 이 영화를 흑백으로 선택했는지 그 이유가 느껴졌다.


색이 사라진 영화라서였을까. 응급실 침대에 누워 하얀 천에 감싸이는 죽은 아기의 몸을 바라보는 클레오의 슬픈 시선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었다. 자신의 생명을 지킬 수 없었던 한 나약하고 힘없는 여성이 파도치는 바다 한가운데로 아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걸어가는 장면에서 나는 타르콥스키가 그리고자 했던 구원을 떠올릴 수 있었다.


Roma-Trailer.jpg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 중 하나였던 바다 씬 역시 롱테이크로 촬영되었다


알폰소 쿠아론이 그리고자 했던 1970년대 멕시코의 혼란스러운 상황이나 안드레이 타르콥스키가 그리려 했던 1980년대의 멸망 직전에 놓인 세상의 어느 한 구석이나 절망스럽긴 마찬가지다. 그래도 그런 절망의 속에서 실낱 같은 희망의 단서들을 찾으려 애쓰는 영화들이 있다. 영화를 통해 '구원'을 노래하는 영화들의 공통점이다. 희망을 잃어가는 세상에 주는 단비 같은 영화들이다.


실제로 영화 <로마>의 기자회견장에서 알폰소 쿠아론은 가정부 역으로 등장하는 클레오라는 여성의 캐릭터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나 자신에게 가장 사랑하는 여성의 캐릭터이자, 작게는 가정에서부터 크게는 멕시코, 더 나아가서는 전 인류의 상처를 지닌 인물이다."


세상에 영화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들이 있다. 재미가 있고 삶의 위안이 되고 감동을 통해 추억을 선물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영화들도 있다. 지독할 정도로 재미와 거리가 멀지만, 영화를 통해 구원을 노래하는 영화들이 있다. 그것이 세상이 됐든, 가정이 됐든, 아니면 하나의 작은 점에 불과한 평범한 개인의 삶이 됐든 그들의 삶에 조용히 나비처럼 내려앉아 상처를 보듬어주려는 영화들이다. 그런 영화들에는 위로가 있다. 그래서 숭고한 희망의 근거들이 느껴진다. 나는 그런 영화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보고 나서 마음이 착해지는 영화, 순수함에 이끌려 조금이라도 일상의 묵은 때를 벗어버리는 느낌을 주는 영화, 그런 영화들이 있다. 세상엔 분명 그런 영화들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하나 더. 영화에선 여러 번 비행기가 화면을 가로질러 날아간다. 첫 오프닝부터 마지막 엔딩까지, 영화 곳곳에서 우리는 감독이 슬쩍 숨겨놓은 비행기들과 만나게 된다. 알폰소 쿠아론이 거장이 된 이유는 그 비행기들이 끊임없이 하늘 위로 시선을 들게 만든다는 점이다. 작은 점에 불과한 비행기들을 찾는 재미가 있다. 은근히 기대를 하게 되고, 감독은 여지없이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어쩌면 '희망'도 그런 것이 아닐까. 그렇게 희망을 기다리며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재미없는 영화 <로마>의 리뷰를 기록에 옮겨놓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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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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