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비평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통해 다시 찾은 추억들...

음악 하나에 저마다의 사연 하나쯤 없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by 김덕영

뜻도 모르고 제대로 된 발음도 아니었겠지만, 한때 팝송으로 아침을 시작해서 하루를 마감하던 시절이 있었다. 라디오가 살아 있던 시대였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비롯해서 전영혁이나 성시완 같은 전설적인 라디오 디제이들이 들려주던 음악의 세계에 온몸을 맡기던 시절의 이야기다.


요즘에야 스마트폰 앱을 통해 들려오는 잡티 하나 없는 깨끗한 음질에 익숙해졌지만, 역시 음악은 라디오 주파수를 타고 조금은 지지직거리며 듣는 맛이 있다. 인공의 맛보다는 왠지 모를 아날로그의 자연스러움이 있다. 레코드 LP판에 낀 먼지를 입으로 호호 불어대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턴테이블 위에 바늘을 올리며 듣는 음악에는 그런 정겨운 추억들이 있다.


퀸(Queen)은 그런 시절의 음악이었다. 그리고 그런 추억이 가득한 그룹 퀸에 대한 영화가 나왔다고 했을 때 어느 정도 흥행이 될 거라 예상은 했다. 과거에 대한 '향수(鄕愁)'란 게 살면서 반드시 꼭 있어야 하는 필수 불가결한 것은 아니다. 그거 하나 없다고 죽는 것도 아니지만, 언젠가 한 번은 꼭 만나야 할 사람, 가보고 싶은 곳에 가봐야 한다는 운명적인 이끌림 같은 게 있다. 퀸에게 그런 운명적인 이끌림을 받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저마다의 노래가 있으면, 저마다의 인생사 사연도 있는 법이니까.



퀸의 전성기는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보헤미안 랩소디'를 중심으로 한 1975년부터다. 이후 매년 주옥같은 명곡들이 탄생했다. 1976년의 'Somebody to love', 1977년의 'We are the champion'을 거쳐 1984년 'Radio Ga Ga'까지 이어진다. 공교롭게도 노래처럼 라디오 시대의 종말을 예고하면서 퀸도 끝나고 TV의 시대로 넘어간다. 노래 하나하나가 다 별들의 잔치요, 명곡의 행렬이다. 나에게도 퀸의 노래들에는 특별함이 있다. 행복했고 그래서 가슴 뛰고, 슬퍼서 가슴이 아픈 추억들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의 노래는 내가 세상에서 처음으로 목이 터져라 불렀던 팝송이었다는 점. 영어로 된 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일일이 사전을 뒤져가면 친구들과 번역을 해가며 불렀던 노래였다. 지금에야 손쉽게 인터넷에서 검색만 하면 찾을 수 있겠지만, 예전에는 레코드 판 속에 들어 있던 앨범 설명서에 영어로 된 가사가 수록되어 있었다. 하얀색 종이 위에 인쇄된 깨알 같은 영어 단어들을 하나하나 해석한 다음, 두 개의 스피커가 진동하는 스테레오 전축을 앞에 나란히 친구들과 앉아서 따라 불렀던 노래들이다.


특히 'Don't stop me now' 같은 노래는 워낙 신나고 강렬해서 음악만 가만히 들을 수 있는 곡이 아니다. 하얀 러닝 셔츠 바람에 프레디 머큐리처럼 폴대 위에 달린 마이크를 손에 움켜 잡고 두 다리를 흔들흔들하며 불러야 제맛이 난다. 마이크 폴대가 집에 있을 리 없다. 그럴 땐 그냥 콜라병이라도 움켜 잡아야 느낌이 살았다. 혼자 부를 때보다 친구들과 함께 소리 내서 부를 때가 더 흥에 겨웠다.


그렇게 'Don't stop me now'를 함께 부르던 친구가 있었다. 뭐든 처음은 기억에 오래가는 법. 처음 부른 팝송이었고, 처음 외국으로 훌쩍 떠나버린 친구였다. 그리고 그랬던 그가 어느 날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살면서 처음으로 접하는 친구의 죽음이었다.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믿기조차 힘들었던 젊은날의 한순간이었다. 남들은 저마다 극장으로 달려가 과거의 추억과 조우하는 순간에도 발길이 극장으로 향하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것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였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친구의 죽음이 곧바로 떠오르는 그런 영화를 마음 편히 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어린 시절의 향수, 다시 만날 수 없는 친구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나에겐 조금은 특별한 영화 한 편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영화가 시작되자 주인공 프레디 머큐리의 얼굴보다 세상을 떠난 친구의 얼굴이 자꾸만 스쳤다. 어쩌면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 잊고 싶었던 추억들이 마음 가득 남아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는 내내 그 친구와 함께 불렀던 퀸의 노래들이 어느쯤에나 나올까 궁금했다. 영화의 스토리나 긴장감 넘치는 장면들보다 곧 등장할 노래들에 온 신경을 쏟고 영화를 본 건 처음이지 않나 싶다. 그렇게 눈으로 보는 영화가 아니라 귀로 듣고 마음으로 보았던 영화였다.


나처럼 음악 하나에 이런 저마다의 사연 하나쯤 없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것이 퀸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흥행하는 이유일 것이다. 잊고 싶은 추억도 있고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기억도 있는 우리들 인생. 삶은 언제나 직선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며, 위로 아래로 제 마음대로 선을 긋는다. '초콜릿 상자에서 어떤 초콜릿을 먼저 먹게 될지' 아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 아련히 남아 있는 내 친구와도 같은 추억을 담은 노래 한 곡 정도는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그재그 갈팡질팡 이어지는 우리네 인생에서 그런 노래 하나 가슴에 품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이 보여지기만 하는 시대 속에서 눈을 감고 마음으로 누군가와 만나고 싶었던 라디오의 시대가 남겨놓고 간 유산이 아닐까. 프레디 머큐리와 내 친구가 저 하늘나라 위에서 함께 노래하고 있으리라 나는 믿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며 사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라디오, 혼자 앉아 너의 불빛을 지켜보고 있어. 오늘밤에 너는 나의 유일한 친구야.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나는 라디오를 통해서 들었어. 너는 옛 스타의 노래를 들려주었지. 전쟁 같은 세상 속에서도 너는 사람들을 웃기고 울렸어. 넌 우리가 날 수 있다고 믿게 해주었어. 라디오, 단지 시끄러운 백그라운드는 되지 말아 줘... 너의 최고 시간은 아직 오직 않았어.' (Queen, Radio Ga Ga, 중에서)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



* 현재 아이슬란드 정착 생활을 준비하며 쓰고 있는 '도전적인 삶을 위해 낯선 곳에 정착하라'라는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모든 글은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느낀 것들을 중심으로 쓰일 것입니다. 일상에 매몰된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을 읽고 공감하신다면 널리 공유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쓴 책들은 현재 시내 유명 서점과 온라인 서점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구매해주시는 책들은 다큐멘터리 제작과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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