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만 있으면 다 될 거라 여겼던 세상이여, 안녕!
(리뷰) 쓰리 빌보드
Three Billboads Outside Ebbing, Missouri
각본,감독,제작: Martin McDonagh
cast: 프란시스 맥도맨드, 우리 해럴슨, 샘 록웰
미국 미주리 주 가상의 작은 마을 에빙,
차도 잘 다니지 않는 도로에 방치되어 있던
광고판(빌보드)에 새로운 문구가 등장한다.
'죽어가면서 강간당했다'
'그런데 아직도 못 잡았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윌러비 서장'
오리무중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될
자기 딸의 강간 살해범을 잡지 못하는
경찰을 향해 엄마의 분노가 폭발한다.
집 나간 남편 트레일러를 팔아서
마련한 5천 달러로 광고판 세 개를
임대 계약한 것이다.
세 개의 광고판은 가뜩이나 살해범을
잡지 못해 뒤숭숭했던 작은 마을에
분열과 갈등의 회오리바람을 일으킨다.
'그래 나 인종차별주의자다.
그래서 감옥 안에서 흑인을 팼다.
어쩔래?'
경찰관 배치에 제복을 입었다고
다 경찰일까,
거칠고 무능력해서
원칙 따위는 개뿔이다.
범인 잡을 생각 따위는 아예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보이니,
딸 잃은 엄마 입장에선
오죽 답답하고 분통이 터질까.
빌보드로 향하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 역시 곱지는 않다.
왜냐하면 착하고 인심 좋은 경찰 서장
윌러비를 광고판으로 모욕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한번 결심한 건 포기할 수 없는 것.
딸을 잃은 엄마의 심정을 니들이 알기나 알아!
광고판, 딸을 잃은 여자, 무능하고
원칙 없고 폭력에 인종차별까지
서슴지 않는 경찰관.
그지 같고 모순으로 가득 찬
세상의 축소판과 같다.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면서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게 사람이야!
눈에는 눈이고,
분노에는 더 큰 분노로 복수를 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 아냐!
여기까지가 아비귀환 같은 세상에 대한
프롤로그(prologue)다.
오페라로 치자면 서주,
프렐류드(prelude)다.
여기까지 아주 느리고 별 볼일도
없어 보이는 시골 마을이 전부였다.
(한국에서 박스오피스 9만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거머쥔 이유도 아마
그것일 게다.)
그런데 서주가 끝나자
갑자기 템포가 빨라지기 시작한다.
이제 감독은 여태껏 보지 못한,
익숙하지 않은 서사를 펼친다.
인물의 성격이 캐릭터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셰익스피어의 금언은 여기서부턴
완전 올드 패션이다.
캐릭터의 반전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소소한 일상의 작은 반란들이
진하게 여운을 남긴다.
영화에 대한 비평으로 소문난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에 92점이나
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스토리의 전개에
당황하기 시작할 즈음부터 감동이 밀려온다.
여태껏 느껴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이다.
전형적인 로맨스나 영웅 서사에서 본
감동과는 차원이 다르다.
뭐라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다. 낯설지만 새롭고 신선하고
생각에 생각을 더하게 한다.
그것이 이 영화의 최고의 장점이다.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따지는 것은
어쩌면 이제 낡아버린 도식인지 모른다.
개인이 무능한 법과 제도를 비웃으며
스스로 범인을 징벌한다는 스토리 역시
낡은 틀이다. 이미 관객들도 그런 스토리가
유치함을 알고 있다.
진실은 분명 있고, 그걸 지키는 것이
꼭 조직이나 집단이 아닐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 진다.
'그래, 희망만으로는 세상을 살 수 없어.
딸의 죽음은 나에겐 세상 전부를 잃어버리는
고통스러운 아픔이었지만,
너희들에겐 그저 그런 뉴스거리밖에
안 되잖아? 그래서 범죄자는 내가 징벌하는
게 옳은 거야!'
마치 영화는 그렇게 말을 걸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런데 그저 그게 전부라면
세상은 그저 그지 같기만 하잖아.
희망만으로 세상에 맞설 수는 없다.
그래서 뭐라도 해야 하는 거잖아?
그게 뭐가 됐든...
나의 경우 영화를 보면서
세 번 전율했다.
세 개의 빌보드 사인과는
전혀 무관하지만
공교롭게도 세 번이다.
그 세 번의 전율은 하나의 공통점을
지닌다.
‘그지 같이 엉망진창인 세상이지만,
그래도 뭐라도 해야 하는 거잖아.
그래야 하는 거잖아!
그게 인간이잖아...’
희망만 있으면 그래도 살아갈 수 있는
거라 여겼던 세상은 안녕!
그래 역시 그것만으로는 안 돼!
중요한 건 뭐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일단 가보고 가면서 생각하고
결정은 나중에 하자!
글: 김덕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