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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Aug 25. 2019

밖에서 안을 본다

도전적인 삶을 위해 낯선 곳에 정착하자(12)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말했다. 직관은 '몸을 통과하는 이성'이다. 솔직히 직관(直觀)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서 '몸'과 연관시켜 정의를 내린다는 게 놀라웠다. 하지만 곰곰이 따지고 보면 인간이 살아오면서 가슴이 됐든 머리가 됐든, 아니면 손과 발이 됐든 어쨌든 우리 '몸'에 우리가 알게 모르게 쌓인 뭔가를 이해하고 판단하는 기준들이 존재한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베르그송의 그 정의, '몸을 통과하는 지성'이라는 표현은 가장 마음에 드는 표현이다. 직관을 서양에서는 'Intui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성찰이나 숙고를 뜻하는 라틴어 'Intuit'에서 유래된 개념이다. 무엇 무엇에 대한, 혹은 안을 뜻하는 'in'과 바라보다라는 의미를 지닌 'tuero'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안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내부, 성찰을 포함고 있다. 교사를 뜻하는 'tutor' 역시 가만히 제자를 '지켜본다'는 의미에서 출발한 개념일 것이다.


경험과 논리가 중심이 된 과학적 방법론에 치중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서양 철학이 스스로 관념론적인 밸런스를 찾아가는데 이런 단어들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어찌 보면 전형적인 동양적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다만 전통적으로 서구 사상에서는 그 '무언가'를 알고자 하는 열망이 동양 사상보다 강렬했다. 동양 철학이 안정된 사회를 이끌고 유지할 수 있는 윤리적 덕목에 집중된 것과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이게 무엇이지', 라는 질문은 그 답을 찾는 과정은 물론이고 결론조차 다를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오늘 같은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지역적 구분은 별 의미가 없다. 얽히고설키듯이 살아가는 것이 오늘을 사는 지혜일 테니 말이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나도 그렇게 조금은 복잡한 구조 속으로 나를 몰고 가고 싶었다. 2019년 1월 훌쩍 여행가방을 싸고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를 떠날 수 있었던 것도 밖에서 안을 보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안이라는 범주 속에는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이 된다.


그렇게 대한민국을 떠난 지 8개월째다. 이런 걸 여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주형 유목생활(停住形 遊牧生活)이라고 스스로 여행의 개념을 잡았다. 이민보다는 가볍고, 여행보다는 무거운 삶의 형태를 찾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하루 종일 먹이를 입에 물고 집으로 돌아오는 개미처럼 일상의 낯선 경험들을 모아 보기로 작정했다. 여행가방만 싸고 에펠탑 같은 근사한 기념물 앞에서 사진이나 찍고 돌아오는 그런 여행은 하기 싫었다.


문제는 먹고 자고 하면서 생활하는 것이다. 누가 보면 호사한다고 비난할 수 있겠지만, 그런 여유로운 삶을 살만큼 돈이 많은 것은 결코 아니다. 그냥 평생을 살면서 모은 돈을 은행에 넣고 곶감 빼먹듯이 한 개 한 개 빼먹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삶이 두려운 것은 언젠가 은행 잔고가 바닥나면 내 삶도 끝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깔려 있다는 점이다. 어쨌든 그런 짜릿한(?) 하루하루를 살면서 나를 돌아보고, 내 조국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낯선 경험들을 모아서 책도 쓰고 내가 좋아하는 다큐멘터리도 만들면서 한번 바람처럼 세상을 살아보고 싶었다.


아무튼. 그렇게 요즘 밖에서 안을 본다. 나 자신도 보고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도 본다. 밖에 나와 보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고 하는 말은 사실이다. 여러 가지 생각도 복잡하고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사건에 대한 이해도 달라진다. 하지만 밖에 나와서 누구나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안에서 보지 못하는 보다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시선이다.


그런 시선으로 바라본 대한민국은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경제는 물론이고 외교, 안보할 것 없이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 희망이라는 것도 결국은 희망의 단서를 찾아내야 비로소 물성을 지닌다. 희망의 단서가 없는 희망이라는 것은 공허한 말장난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바로 그 희망의 단서를 찾는 일이라 믿는다. 추상적인 어떤 개념이 아니라 물컹물컹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확실한 물성을 지닌 것으로 말이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조국 후보자를 둘러싼 갖가지 논쟁, 그리고 '청문회에서 답하겠다'는 그의 말장난 같은 발언들은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희망의 단서를 앗아가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정의 상징이었고, 존경하는 삶의 모델이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이 강조했던 정의로운 말의 성찬들과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았다는 게 밝혀지고 있으니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를 둘러싼 현재 한국 사회의 담론 구조다. 많이들 하는 얘기지만, 우리는 이번 조국 후보자와 그의 딸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서 기시감이 있다. 이미 한 번 경험한 것들이다. 그런데 소위 정의로운 삶을 살라며 그토록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들이 이번 조국 사태에서는 거의 입을 다물고 있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행태들에 젊은 세대들이 더욱 분노하는 것이다.


공부 잘하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마케팅으로 100만 명의 유튜브 팔로우를 지니고 있던 K**라는 사람은 그동안 10대들의 우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10대들에게 공부 잘하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그의 말 한마디가 갖고 있는 파괴력이 얼마나 강했겠는가. 그러나 그는 공부 방법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발언들을 빼놓지 않았다.


자신이 유튜브를 통해 밝혔듯이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 유행이 되었던 '노란 리본'을 처음 기획한 것도 바로 자신을 지지하는 온라인 모임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한 척의 배가 침몰한 바다에서 일어난 소용돌이는 거대한 태풍이 되어 정치적 격변으로 이어졌다. 그는 분명 정치적인 인물이었다. 2017년 탄핵 국면 당시 그가 유튜브 방송을 통해 쏟아낸 수많은 정치적 입장과 판단들은 그렇게 수많은 10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어디 비단 그뿐이겠는가, 10대들에게 K**가 있다면 20대, 30대들에겐 그들만의 우상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인다. 그들이 하는 말 한마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정의로운 존재들이 지금 이 사태에는 왜 침묵하고 있는가이다. 그렇게 공정함을 부르짖던 사람들이 누가 봐도 공정하지 못한 일들에 대해서 왜 편향된 자세로 일관하고 있는가이다. 그들에게 정의란 필요와 편의에 따라 이리저리 붙였다 뗄 수 있는 도구일 뿐인가. 사상이란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왜 행동으로 자신의 생각을 옮겨왔는가? 말과 글로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에 영향을 미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는가. 그렇다면 지금도 정의라는 생각을 남에게 옮겨야 하는 것이다. 그들의 정의란 누구한테는 써도 되고, 누구한테는 쓸 수 없는 편의적인 도구인가. 그렇게 단순한 것을 왜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그토록 전파시키고 싶었던 사람들이 아니었는가. 결국 그들의 정의란 그들만의 정의였다는 것을 이번 사태는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사회적 원칙, 정의가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사회에 어떤 미래가 있을 수 있을까.  


프랑스 사람들은 직관을 가리켜서 '여섯 번째 감각'이라 불렀다. 보고 듣고 느끼는 인간의 다섯 가지 감각 너머에 존재하고 있는 또 하나의 세상을 인식하는 도구이다. 그 특별한 감각을 키우기 위해서 우리는 부단히 노력해야 함을 잊지 않고 있다.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여행을 하고, 더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해 책을 읽는다. 자신을 알기 위해서 매일 아침 성찰의 시간을 갖고, 그걸 기록으로 남기며 글을 쓴다. 그걸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일상의 삶에 큰 가치를 둔다. 부디 그들만의 정의만 부르짖지 말고, 그들이 더 넓은 세상,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직관력을 키우기를 바란다. 오히려 요즘은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과 직관이 오히려 그들의 정의를 압도하고 있다.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Two Homes' 감독, 작가)



국제 영화제들에 참가신청서를 보낸 상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계획대로 된다면 2019년 말부터 세상에 공개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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