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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Jul 25. 2019

떠난다. 떠났을 때 가장 많이 자랐다.

'도전적인 삶을 위해 낯선 곳에 정착하라' (9)

'또 떠난다. 성장하기 위해 떠나고, 떠났을 때 가장 많이 자랐다.'


그럼 언제 떠나야 하는 것일까? 아마 그걸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일 것이다. 자신의 삶이 조금은 무료해 보이고,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이 될 때가 있다. 그때가 바로 떠날 때다. 나는 늘 그렇게 떠났고 조금씩 성장했다. 나이가 들었든 그렇지 않든 지적인 성장, 영적인 발전은 언제나 가능하다. 육체의 성장이 특정한 시기에 멈추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가능성이다.


언젠가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검색을 해서 모아 본 적이 있다. 어떻게 떠났고, 왜 떠났고, 어디로 떠났고, 결국 떠났다 다시 돌아왔는지, 뭐 그런 시시콜콜한 그런 이야기들을 수집했던 때의 일이다. 그만큼 '떠남'에 대한 어떤 간절함이 있었다. 다큐멘터리 프로듀서의 삶을 30년 이상 해낼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그런 까닭이었을 것이다.


그때 내린 결론 중 하나는, '역시 예술가들의 떠남에는 어떤 근사한 이유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소설가, 화가, 음악가 할 것 없이 그들의 떠남은 처절한 생존을 건 싸움이었고, 창작을 향한 도전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그리기 위해, 쓰기 위해 떠났다. 떠나지 않으면 안 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떠나기 전과 떠난 뒤의 그들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들의 떠남은 본능적이었고 직감적이었다. 그건 예술의 본성과 통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의 방랑(?)은 나름대로 이유 있는 방황이었다. 19세기 프랑스의 자본주의는 제국주의와 결합되면서 세계 지배를 현실화시킨다. 여유로운 유한계급들의 사치와 소비문화가 대중에게까지 파급되고 살롱의 문화는 고급문화로 추앙받는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동시에 그 추악한 이면 또한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것이 보들레르에게는 방랑과 반항의 대상이었다.


"언제나 취해 있어야 한다... 술에, 시에 혹은 미덕에, 그대 좋을 대로."
"어디라도 괜찮다! 어디라도 괜찮다! 이 세상 밖이기만 하다면!"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


그중에서도 역시 눈에 띄는 건 '이 세상 밖이라면 어디라도'(Any where out of the world)라는 구절이다. 도대체 왜 그에게는 떠나는 것이 중요했던 것인가? T.S 엘리엇은 보들레르의 떠남에 대한 열망에 관해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평생 동안 보들레르는
항구, 부두, 역, 기차, 배, 호텔방에
강하게 끌렸다.
자신의 집보다 여행을 하다 잠시 머무는
곳에서 더 편안함을 느꼈다.
파리의 대기가 그를 짓누를 때면,
세상이 단조롭고 작아 보일 때면,
그는 떠났다.
'떠나기 위해 떠났다'.
항구나 역으로 가,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열차야, 나를 너와 함께 데려가다오.
배야, 나를 여기서 몰래 빼내다오!
나를 멀리, 멀리 데려가다오."
- T. S. 엘리엇


아마도 보들레르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하지 못한 과감한 떠남에 대한 어떤 미련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엘리엇 역시 떠남에 대한 미련을 보들레르를 통해서 상상 속에서나마 만족하지는 않았을까. 어쨌든 보들레르의 떠남은 과감했다. 속된 말로 물불 가리지 않았다. 그가 만나는 사람 역시 여행의 방식과 비슷했다. 속된 말로 격식 따지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렸다. 매춘부의 딸이자 아이티 태생의 혼혈 흑인과 오랫동안 동거한 것만 봐도 그가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과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삶이었다.


그의 일화 중에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파리의 우울>에 등장하는 구걸하는 거지와 주먹싸움을 한 일이다. 그는 동냥을 하며 구걸하는 거지를 보고 푼돈 몇 푼을 집어주지 않았다. 그에게 먼저 주먹을 날려 싸움이 시작됐고, 결국 그의 이가 네 개나 부러졌다. 남들이 보면 미친 짓이었을 것이다. 돈을 주거나 아니면 거절하면 그만인 일인데 그는 왜 거지에게 주먹을 날렸을까? 그것은 그가 한낯 비루한 거지를 인간이자 인격으로 대우하겠다는 의지의 표출이었다. 남에게 구걸하는 거지에게 스스로 더 이상 비굴하지 말고 인간이 되라는 일종의 충고였다. 대가는 이가 부러질 정도로 혹독했지만,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철학적 즐거움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상이었다.


그는 엽기적 행동과 연애로 현실 자본주의 세계로부터 벗어나려 했다. 다분히 의도된 행동이었고 자신의 생각을 실천하기 위한 철학적 움직임이었다. 거지와 주먹다짐을 하고 난 이유에 대해서 훗날 그는 이렇게 썼다. “갑자기, 오, 기적이여! 오, 자신의 이론의 훌륭함을 검토하는 철학자의 즐거움이여!".


결국 중요한 것은 행동이다. 생각이 길어지기만 하고 움직이지 못할 바에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고 한 걸음씩 떠나는 연습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한 걸음, 한 걸음 그렇게 직감에 몸을 맡겨 방향을 정하는 것도 때로는 큰 걸음을 위한 준비가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떠나기 위해서 떠나야 한다. 그대로 머물기에는 낯선 곳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이 너무나 강렬하다. 그렇다면 떠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이 떠나야 하는 것인가.


어쨌든 그렇게 떠나면서 아 역시 중년의 나이에 다시 성장을 하는 기분이 든다. 2019년 1월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고향>은 그렇게 시작됐다. 독일의 고풍스러운 작은 도시 레겐스부르크에서 시작해서 폴란드, 체코, 헝가리, 루마니아, 그리고 불가리아까지 모든 여정이 순조로울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내 안에 잠자고 있던 나를 흔들어깨운 떠남에 대한 본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니, 어쩌면 나 역시 보들레르처럼 내 안에 숨어 있는 거지 같은 본능에 주먹을 날린 것은 아니었을까.


글: 김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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