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omes' 2019년 폴란드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
다큐멘터리 '두 개의 고향'(Two Homes) 제작을 위해서 독일 뮌헨행 비행기에 올랐던 게 지난 1월 5일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늘 그렇지만 과거의 시간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빨리 흘러가버린 느낌이 든다. 올해 초 1월 가족들의 전송을 받으며 인천 공항을 출국했던 순간이 엊그제 일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있다. 지난 10개월 동안 무슨 일이 있었고, 지나 간 시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는 것일까? 문득 다큐멘터리 한 편의 제작에 담겨 있던 남다른 경험과 순간들을 기록에 옮기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나는 무슨 오기로 한낱 모래알 같은 개인의 자격으로 1950년대 5천 명 이상의 북한 전쟁고아들이 동유럽으로 이주했다는 역사적 사실과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일까? 무슨 깡으로 거대한 역사의 기록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일까? 제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돌이켜 보면 그 자체가 미스터리 투성이다. 수천 만 원에 해당하는 제작비를 마련하는 일도 그렇고, 다섯 개 나라, 10개 도시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숨겨진 역사의 기록들을 발굴해냈다는 것도 돌이켜보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쨌든 그걸 다큐멘터리 '두 개의 고향'(Two Homes)을 통해 실현시켰다. 무슨 단체나 제작팀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부디 개인이 찾아낸 기록이란 부분에 방점이 찍히길 바란다. 솔직히 개인이라는 것을 자꾸 강조하는 이유는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진정한 '개인주의'의 가치에 대한 하나의 실천적 의미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 사회가 급격한 경제발전을 이룩했다고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제대로 된 개인주의가 정착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숱한 이념과 가치에 대한 논쟁이 있었지만 실제로 가장 근본이 되는 개인들 스스로의 생각에 대한 성찰이 진지하게 또 광범위하게 일어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귀국 직전 몇 달 동안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일명 '조국 사태' 역시 근본은 개인과 생각에 대한 문제에서 출발하는 이슈였다. 과연 무엇이 옳은 것이며, 과연 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이슈가 한국 사회의 철학적 논쟁으로 발전했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어쨌든 오늘 그걸 다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출발 전, 나는 평생의 작업이 될지 모를 이번 작업을 가리켜 '도전적인 삶을 위해 낯선 곳에 정착하자'라고 이름 붙였다. 낯선 곳에 대한 동경은 이미 한국 사회에서 오래전부터 논의되어 온 이슈였다. 나 역시 개인적인 글쓰기를 통해 낯선 곳이 주는 매력과 가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문제는 누구나 갖고 있는 그런 동경과 호기심이 돈이나 시간 때문에 방해를 받는다는 현실이었다. 그렇다면 물리적인 장애를 뛰어넘어 실제로 행동에 옮겨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찾는 일이 중요해진다.
나의 경우에는 삶에 대한 절박함도 한몫을 했다. 삶이 고단하고 두려운 것은 누구에게나 같다. 하지만 두렵다고 머리를 땅속에 파묻고 있을 수만도 없는 일이다. 때로는 두려움 그 자체에 시선을 똑바로 고정시킬 필요도 있다. 나의 경우에 그것은 50대 중반의 나이가 주는 심리적 중압감, 안정적인 보수를 얻지 못한 것에서 찾아오는 경제적 압박 등으로 찾아왔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무거운 촬영 장비를 이동시킬 때마다 느껴야 했던 신체적 한계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모든 일이 그렇지만 사람은 자신이 진정 가치롭다고 여기는 일, 간절히 바라는 어떤 것이 있다면 모든 일도 가능해진다. 나의 경우에도 그랬다. 어떨 때는 일주일 간격으로 여행의 보따리를 풀었다 쌌다 하는 일 자체가 고역으로 느껴질 때도 많았다. 때로는 밤늦게 낯선 도시에 도착해서 숙소를 찾기 위해 어둠 속을 헤맸을 때도 많았다. 순간순간이 그런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지난 순간들을 관조한다. 마치 나라는 존재, 의심과 불신이라는 내 안의 오래된 유혹과 맞서 싸운 뒤에 찾아오는 일종의 쾌감 같은 것이 꿈틀거린다. 그것이 내가 늘 여행을 떠났던 이유였다. 여행은 즐거울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나에겐 나와의 오랜 힘겨루기, 일종의 투쟁이었다.
늘 그렇지만 힘든 시간들도 조금만 위치를 달리해서 바라보면 즐겁고 행복한 순간들로 느껴질 때가 있다. 여행의 순간들이 특히 그렇다. 나의 다큐멘터리 제작 여정은 그런 면에서 보자면 힘들지만 즐겁고 의미 있는 여행의 순간들이었다. 그런 작은 생각의 변화가 실천을 만들어낸다. 한 걸음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뭔가 가치로운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실천의 윤활유가 된다. 맹탕 국물 같은 내 삶에서 양념이 된다. 그런 생각의 조화들이 모여서 남들이 가보지 못한 낯선 곳으로 나의 발걸음을 이끌었다. 다른 건 몰라도 모든 가치로운 일들은 끝난 뒤에 어떤 쾌감보다 강렬한 기쁨을 준다. 그것이 가치로운 일에 중독되는 자들의 매커니즘일 것이다.
이런 생각들의 정리를 통해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보다 백 배는 더 크고 강한 존재로 거듭난다. 어쩌면 바로 그것이 이번 다큐멘터리 제작에 감히 개인의 자격으로 나설 수 있었던 근거였던 것 같다. 어디서 그런 깡이 나왔냐고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행히 귀국을 이틀 남겨놓고 작은 결과를 하나 얻은 것도 나에게는 행복한 추억이다. 우리 다큐멘터리 영화가 '폴란드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정식으로 초청받았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이메일을 열었다가 사무국에서 보내준 축하 메시지를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옆에서 함께 고생했던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이 그렇게 행복한 것인지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들이 내 여정에 함께 해주지 않았다면 아마 불가능했던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해냈다. 이번에도 또 어떤 미래가 나에게 다가오고 있을지 그걸 기대하는 것도 어쩌면 낯설고 힘든 여정 뒤에 찾아오는 기쁨일 것이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오래된 말이 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옛날 사람들 말 하나도 틑린 것은 없는 것 같다. 이번 작업을 통해 슬픔을 나누고, 기쁨도 함께 나눌 수 있었던 모든 사람들과 이 가치로운 일에 함께 해줘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낯선 곳에 다녀온 여행자의 큰 행복일 것이다.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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