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이 통하는 방식

세상 어딘가에 있을 '스물넷'과 '1965년 생 아버지'를 위하여...

by 김덕영

도전적인 삶을 위해 낯선 곳에 정착하라 (10)


"책 한 권 주세요!"


통의동에서 까페를 할 때 얘기다. 보통은 가게 안에 들어와서 '어라! 여기 작가가 운영하는 까페네' 하고는 책을 사거나, 아니면 일부러 책을 읽어 본 뒤에 작가의 얼굴 한번 보겠다는 마음으로 가게를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책 한 권 주세요!' 하면서 다짜고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던 그 '스물넷' 여대생의 등장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가 달라고 한 책은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하고 많은 책들 가운데 조금은 연령대 있는 책을 새파랗게 젊은 친구가 달라고 하니 조금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엉겁결에 돈을 받고 그녀가 원하는 책을 건넸지만, 호기심이 발동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사실 그 책은 마흔아홉을 지나면서 나 자신을 위해 쓴 편지 같은 글들이 담겨 있었다. 인생에서 늦은 나이란 없다, 다시 하면 된다는 자기 암시와 희망의 근거들을 모아놓은 책이었다. 자연히 책을 사는 독자들도 4,50대 주류를 이룬다. 그러니 그 '스물넷'의 당돌한 모습에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책을 만들 때만 해도 인디자인과 같은 책 전문 편집 프로그램을 다룰 줄 몰라서 아래아 한글을 이용했다. 지금에서 말이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무식하고 무모한 작업이었다. 편집을 하다가 중간에 문장 하나를 비울라치면, 모든 문장의 배열이 흐트러진다. 사진 하나 새로 넣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책 편집 프로그램들이 문장을 삭제하거나 이미지를 넣어도 판형이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알았다.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일일이 수정과 편집을 반복하면서 수공업적으로 마무리한 책이 바로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였다.


당연히 책에 대한 애정도 깊을 수밖에 없다. 어느 책이나 책에는 헌사라는 것이 담긴다. '이 책을 누구누구에게 바치고 싶다'는 작가의 마음을 표현하는 매우 소중한 페이지다. 헌사에는 책을 쓸 때 갖고 있었던 작가의 고유한 정서와 정신이 고스란히 담긴다. 짧지만 강렬한 문장 하나가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어쨌거나 그래서 나 역시 헌사를 쓸 때 고민 고민하게 됐다. 처음엔 평범하게 '이 책을 다시 인생을 시작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치고 싶다' 정도로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래아 한글로 생고생을 하면서 작업을 한 게 떠올라서 도저히 그런 평범한 헌사로 책을 세상에 내놓고 싶지 않았다. 며칠 동안 헌사 하나를 놓고 고민이 시작됐다. 책을 쓴 작가로서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책을 통해 나의 간절함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고 싶었던 마흔아홉 살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결국 나의 헌사는 모든 평범한 것들을 뒤로하고 이렇게 문장이 완성되었다.


'제2의 인생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을!
특히 1965년,
그 해 세상에 태어난 이들에겐 좀 더...!'

돌이켜 보면 그래 그건 일종의 독기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독자들에게 책을 팔아야 하는 마케팅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빵점짜리 문구일 것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아니, 난 1966년 생인데, 그럼 나는 뭐야?!', '1964년은 사지 말까' 하는 볼멘소리들이 들려올 수 있는 헌사였다. 그렇게 1965년이라는 시간을 한정한다는 게 장점이 되지 않을 거란 사실은 명확했다.


하지만 나는 늘 그렇지만 중요한 순간들은 논리보다 마음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때도 그랬다. 머리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문장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 '1965년'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아니, 그렇게라도 해서 처절하고 간절했던 나의 '마흔아홉'과 마주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랬다. 나는 책을 사고 밖으로 나가는 그 '스물넷'에게 달려갔다. 그리고는 물었다.


"손님, 죄송하지만 제가 그 책을 쓴 작가인데요..."


'스물넷'은 깜짝 놀라는 눈치다. 그럴 수밖에 책을 사들고 밖에 나가는데 갑자기 작가라는 사람이 등장해서 말을 걸고 있으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제가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그 책은 좀 나이가 있는 분들이 사가는 책인데, 손님 같은 젊은 분들이 갑자기 책만 사겠다고 가게 안에 들어오셔서 제가 어떤 분인지 호기심이 생겨서요..."


그제야 '스물넷'은 약간 안도하는 눈치다. 그러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아. 그러셨군요. 사실은 제가 읽으려고 산 책은 아니에요."


"그럼 도대체 왜...?"


"아버지 드리려고요. 평생 노동일을 하시면서 저를 키워주셨는데... 그래도 단 한 번도 저한테 몸이 아프시다는 말도 안 하시고 건강하셨는데... 얼마 전부터 아빠가 갑자기 힘없는 모습을 보이시더라고요. 그게 마음에 걸렸어요. '우리 아빠도 나이가 드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 우연히 여기 가게 앞을 지나다 이 책을 봤어요. 거기에 이 책을 1965년들에게 바친다는 글귀를 봤어요. 사실 저희 아빠도 1965년 생이시거든요."


아빠를 위해 책을 산 마음씨 고운 딸이었다. 그 말을 듣고 순간 갑자기 왜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는지 나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 '스물넷'이 아무렇지도 않게 꺼낸 '1965년 생 아빠'란 말 한마디 때문이었을 것이다. 뭐라고 한 마디 건네야 할 것 같긴 한데... 그 순간 마음속에 두 개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지금은 만날 수 없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멀리서 지켜봐야 하는 내 아이들의 아버지로서의 나. 과연 나는 그들에게 어떤 아들이었고, 또 어떤 아버지였을까?


누구나 '아버지'라는 단어 앞에 서면 마음이 복잡해지는 질 것이다. 아쉬움도 있고 때로는 원망도 있겠고, 하지만 그 단어만큼 가슴이 푸근한 단어가 또 있을까? 우리는 그가 어떤 사람이건 그를 통해 세상을 배운다. 그의 어깨는 우리가 언제나 기댈 수 있는 거친 세상의 유일한 방패막이다.


나는 '스물넷'을 통해 그렇게 세상을 배웠다. 거창한 형식보다 때로는 솔직한 마음이 담긴 한마디 말, 한 문장의 글귀가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나의 진심을 전하는 도구가 된다. 당장 돈이 되지 않는 일이라도 언젠가는 더 커다란 선물 보따리를 안겨준다. '스물넷'과 한 번도 만나지 못한 '1965년' 아버지의 존재 역시 그렇다.


다시 여행 가방을 싼다. 늘 떠날 때마다 두렵고 떨리는 순간들과 마주해야 한다. 때로는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게다가 이번 여행은 동유럽에 있었다는 1950년대의 북한 전쟁고아들의 흔적들을 취재하는 정말 쉽지 않은 길이다. '과연 해낼 수 있겠어?'라고 속삭이는 목소리들이 매일 같이 귓가에 맴돈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속 어느 구석에선가 또 이렇게 말을 한다.


'괜찮아. 길에 서면 길이 보일 거야... 늘 그랬듯이...'


2018년 12월의 해가 저물고 있다. 다시 여행의 끈을 묶는다. 새로운 출발점에서 왠지 모르게 오늘은 그 '스물넷'과 '1965년' 아버지가 보고 싶어 진다. 두 분 다 잘 살고 계시겠지요? 어디에 있든지 건강하시고 행운이 늘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1965년에서 2019년을 준비하며...

김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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