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감동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다큐멘터리 '두 개의 고향'(Two Homes) 작은 소극장 시사회에서

by 김덕영

'도전적인 삶을 위해 낯선 곳에 정착하자' (10)


영화를 만들든 글을 쓰든 감독이나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목적은 '공감'이 아닐까? 자신의 생각이 반영된 작품을 통해 타인의 공감을 얻는 것이야말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창작자의 기쁨이다. 그렇다면 반대편에 있는 관객이나 독자의 입장에서 목적지는 어딜까?


나는 그것이 '감동'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벗어나서 뭔가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싶어 한다. 새로운 지식이나 경험을 얻기 위한 것도 따지고 보면 자신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감동(感動)'이라는 개념 역시 '뭔가를 느끼고 그것을 통해 마음이 움직인다'는 의미다. 결국 행동으로 변화한다. 사람을 변화시킨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삶에서 생각의 전환은 대부분 감동으로 시작한다. 깊은 감동을 준 영화, 소설,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인생을 보다 인간다운 삶으로 변화시킨다. 그래서 나는 이런 감동의 선순환 법칙이 주는 에너지들이 사회를 건강하게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다큐멘터리와 영화, 글쓰기를 평생의 작업으로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 그 행복하고 짜릿한 쾌감보다 더 강렬한 것을 나는 찾지 못했다. 다큐멘터리 '두 개의 고향(Two Homes)' 역시 그렇게 시작됐다. 그걸 완성시키는데 15년의 시간이 걸린 것은 개인이 하기에 너무 버거운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를 지탱시켜주었던 사람들의 숭고한 삶의 가치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작업이 계속되었고, 이제 하나의 근사한 작품으로 완성되어 세상에 공개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사실 어제는 베트남 하노이 독립영화협회와 함께 작고 소박한 '두 개의 고향(Two Homes)' 시사회를 가졌다. 30석 규모의 작은 소극장에 모여든 20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 1시간 20분이 넘는 영화를 함께 보며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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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고향(Two Homes)>, 시사회 장면, 하노이 독립영화협회


과연 한국어 더빙과 영어 자막만으로 이뤄진 다큐멘터리 한 편을 그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1950년대라는 동유럽의 낯선 시간들 속에서 북한의 전쟁고아들이 보낸 삶의 체험들을 제대로 공감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커뮤니케이션에서 문제가 있지 않을까를 고민하며 시사회장으로 향했다. 이미 현장에는 몇몇 관객들이 와 있었다. 놀랍게도 어떻게들 알고 왔는지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기대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왔고, 그들 틈에서 나 역시 영화를 감상했다.


영화가 끝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사실 그 시간들이 나에게는 감동적인 시간들이었다. 그들은 비록 낯선 시간, 자신들의 삶과는 무관했던 1950년대의 북한 전쟁고아들의 삶에 대해서, 그리고 그들과의 재회를 꿈꾸는 유럽의 생존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북한인 남편을 기다리는 파란 눈의 유럽 여성들이 전하는 순수한 사랑 이야기에 눈물지었다.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가슴으로 받아 안았다.


영화가 끝나고 감독과의 대화 시간, 나에게는 그들이 들려주는 자신들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감동이었다. 애초에 큰 기대를 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과연 제대로 영화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거의 완벽하게 영화를 이해했다. 그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언어와 국경을 초월해서 이 한 편의 이야기가 세계인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그것은 엄청한 용기로 다가왔다. 앞으로 참가할 해외 영화제들에서도 뭔가 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체코, 헝가리까지 실제로 동유럽 다섯 나라는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장소들이다. 그 다섯 나라들은 북한 전쟁고아들을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받아주고 보살펴주었던 유럽의 땅이다. 제2차 대전으로 모든 게 초토화되었던 자신들의 나라에서 그들은 헌신적으로 아이들을 보살펴주었다. 정치나 이념, 프로파간다로는 다 설명될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빵에 버터를 발라 먹어 보는 것이 어릴 적 소원이었다'라고 말하는 한 불가리아 생존자의 이야기는 그들이 어떤 상황 속에서 북한의 아이들을 보살펴줬는지를 그 어떤 말이나 수식어보다 잘 설명해주는 대목이었다. 자신들도 먹을 것이 부족했던 상황 속에서 그들은 북한에서 온 아이들을 위해 따듯한 잠자리와 정성을 담은 식사를 제공했다. 놀랍게도 그 어려운 상황에서 그들은 북한 아이들에게 하루 다섯 끼의 식사를 제공했다.


70년 전의 기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그들은 아직도 함께 뛰어놀았던 북한 친구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 친구의 이름은 김금순이었습니다', '까만 머리에 빨갛던 볼까지 아직도 내 친구 진우의 얼굴이 기억납니다', '이름이 전낙원이었요. 우리는 걔를 부를 때, '낙원아!'하고 불렀죠. '낙원아! 잘 지내고 있니? 너를 만날 수 있다면 어디든 달려갈 거야'......


sofia02.jpg 자신들의 소중한 추억과 사진 앨범을 선물해주었던 불가리아 북한 전쟁고아 친구들


내가 그들과의 인터뷰를 끝내고 머리 숙여 감사하다 인사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나에게 준 선물 같은 감동 때문이었다. 아주 가끔이지만 카메라를 든 손이 떨릴 때가 있다. 카메라 앞에 앉아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 사람의 따듯한 마음속 온도가 그대로 전해져 올 때다. 그날도 그랬다. 그들이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이름들이 하나하나 불려질 때 카메라 뒤에 선 내 눈에 자꾸만 이슬이 맺혔다. 과연 이런 순수한 우정과 사랑이 또 있을까.


누구나 사람이란 자신이 먼저 배부르고 나서야 남을 도와줄 생각을 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자신들이 가진 것이 그리 많지 않아도 남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외투를 벗어주고 자신의 빵을 나눠주는 그런 착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내가 그날 불가리아에서 만났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온전하게 세상에 전하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에 나부터 감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촬영이 끝나고 그들 앞에서 머리 숙여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대신했던 이유였다. 사실 내가 1950년대 북한 전쟁고아들과 무슨 관련이라도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냥 같은 시간 속을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그냥 머리가 숙여졌다.


아직도 북한 전쟁고아 문제에 있어서 아무런 공식적인 자료 한 장 내놓지 않고 있는 북한, 60년 동안 남편의 생사 확인 요청에 제대로 된 성의 있는 답변조차 하지 않고 있는 은둔의 사회, 북한이라는 그 독특한 이름 뒤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치나 이념을 떠나서 나는 그날 불가리아의 평범한 노인들에게 인간의 가장 소중한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지금도 그들에게 감사하고 있는 이유다. 나에게 이런 감동을 주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건 2천 년 전에도 했었고 2천 년 후에도 영원히 숙제로 남을 질문들이다. 어쩌면 그걸 스스로에게 묻고 답을 찾는 과정이 인간다운 삶은 아닐까. 다큐멘터리 '두 개의 고향(Two Homes)'은 결국 이념과 이데올로기 속에서 변하지 말아야 할 소중한 인간의 가치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될 것이다. 정치나 프로파간다가 도달할 수 없는 숭고한 인간의 사랑과 자유에 대한 갈망 등이 담길 것이다. 그걸 같이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나에게 엄청난 가능성의 발견이었다. 그걸 어제 베트남의 한 작은 소극장에서 같이 느꼈다. 그것이 같이 눈물을 흘려주고 공감해주었던 관객들에게 내가 감사해야 하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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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상영이 끝나고 진행되었던 관객과의 대화 시간은 나에게 큰 감동과 용기를 주었다.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두 개의 고향'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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