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이런 작품 하나 세상에 남기는 것도 참 행복한 일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고향> (The Two Homes)에 영어 자막을 입히는 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이번 작업에는 대학 동문 선배이자 콜로라도 대학 교수로 계시는 선배님께서 큰 도움을 주셨다. 사실 그분께 연락을 해서 영어 번역본의 감수를 부탁을 드린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연락을 할까, 말까 고민하던 중에 헐리웃 영화를 한 편 봤다. 백악관을 북한 테러리스트들이 장악한다는 영화였다. 그런데 영화 내내 북한식 어눌한 억양과 어색하고 낯선 '한국어'가 들려 왔다. 어찌나 한국말이 어색하던지 이해는 고사하고 영화에 대한 반감까지 생길 정도였다. 아마도 헐리웃 작가가 한국어 고증을 거치지 않고 대충 번역기 정도로 번역을 해서 대본을 쓴 탓일 게다.
그런데 순간 '아. 만약 내 영화에서도 영어 자막이 저렇게 어색하다면 영화 전체가 엉망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를 내서 선배님께 연락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이유였다.
고생해서 만든 작품이 마지막에 영어 자막 때문에 엉망이 된다면 사실 얼마나 속상한 일인가?!
영어 번역 작업에는 파리에 계시는 선배님의 따님이 직접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아버지와 딸이 그렇게 이 작고 내세울 것 변변치 않은 다큐멘터리 작업에 함께 해주셨다.
늘 그렇지만 방송이나 영화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정해진 영화제 출품 마감일이 있어서 제때에 마무리를 못하면 모든 게 허사가 되는 것이다. 마음이 점점 조급해졌다.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파리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분도 속도를 냈다.
사실 아무런 대가나 보수도 없이 시작된 일인데, 그걸 이렇게 열심히 도와준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세심하고 꼼꼼하게 원작자의 의도를 물어보면서 피드백을 나누며 작업을 이어갔다. 그만큼 시간과 정성이 더 들어갔다.
오늘 새벽 파리에 있는 그녀로부터 번역이 완성된 영어 대본을 메일로 받았다. 메일 안에는 곳곳에 빨간색으로 체크한 수정된 부분들과 메모를 첨부해서 의심나는 부분들을 일일이 체크하는 세심한 배려가 드러나 있었다.
그걸 읽어 내려가면서 이 한 편의 다큐멘터리 작업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도와줬던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내 마음도 덩달아서 뿌듯해졌다. 그들을 통해서 지난 7개월 동안 정신없이 유럽 곳곳의 낯선 곳들을 취재하던 일들도 스쳤다.
'그래, 어쩌면 살면서 이런 다큐멘터리 하나쯤은 세상에 남기는 것도 참 보람있고 행복한 일인 것 같다.'
인간의 순수한 감정과 마음보다 더 인간을 감동시키는 것은 없다. 취재 내내 더 용기를 내서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순수한 인간애를 지닌 사람들이 보내준 성원이었다.
작품을 통해서 세상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이 작품이 주었던 큰 행운이었다. 그건 정말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영어 자막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그녀가 메일 끝에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문장을 읽으며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말과 글이란 게 사람을 이렇게 감동시킬 수 있구나, 사람에게 이렇게 큰 용기를 줄 수도 있구나, 사람을 참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구나... 그가 남겨준 글을 읽으며 그런 생각들이 스쳤다.
'This is a beautiful piece of work.
Thank you for a worthwhile read,
and I can't wait to see the final production.'
애초에 처음 시작할 때 열 개 중 하나를 갖고 시작한 작업이었다. 부족한 것 투성이였던 작업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부족한 나머지 아홉 개를 메워주기 위해 헌신과 애정으로 함께 해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용기를 내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다시 한번 그들 모두에게 감사한다. 다큐멘터리 <두 개의 고향>(The Two Homes)은 이제 완성 직전이다.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감독,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