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다큐멘터리 제작에 15년의 세월이 소요되었던 이유?

다큐멘터리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의 편집을 마치며...

by 김덕영

2019년 7월 1일 두 번의 걸친 더빙을 했다. 나래이션 원고 전체를 수정했고 녹음 자체를 두 번에 걸쳐서 진행했다. 그만큼 원고에 신경을 썼다는 뜻도 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1950년대라는 시간을 배경으로 펼쳐졌던 북한 전쟁고아의 동유럽 이주라는 낯선 소재를 다루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당시 자료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제작기간이 길어졌던 것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KBS <수요기획> '나의 남편은 조정호입니다'라는 작품을 통해서 한국 현대사에서 그동안 잠자고 있었던 한국 현대사의 한 부분을 발견한 것이 2004년의 일이었다.


2004년 2월 꽃샘추위가 한창이던 어느 날 영화감독 박찬욱 선배 쪽에서 전화 한 통이 왔다. 대학 동문 선배이기도 한 그는 당시 전 세계를 열광시켰던 <올드보이>의 제작을 마치고 동유럽의 여행을 다녀왔다. 사실 모든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아주 기막힌 사연을 지닌 할머니 한 분이 있다..."


그를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렇다.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우연히 할머니 한 분을 알게 되었는데 그분이 북한인 남편을 평생 동안 기다리며 홀로 살아가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제오르제타 미르초유. 1952년 19살 나이에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그녀는 처음으로 교사 발령을 받는다. 루마니아 북부 몰도바 접경 지역에 위치한 시레트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곳에서 그녀는 3천 명의 북한 아이들과 만나게 된다.


'코레아'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그녀는 전쟁이 한창이던 지옥 같은 땅에서 부모를 잃고 버림받았던 3천 명의 북한 고아들을 위해 미술을 가르치는 교사가 된다. 그리고 그 3천 명의 아이들을 인솔하고 함께 루마니아에 도착한 조정호라는 북한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당시는 공산국가들 사이에서도 연애나 결혼이 금기시되던 시대였다. 냉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외국인과의 사귀는 것은 간첩으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엄혹한 시대였다. 그런 시대 속에서 미르초유와 북한 남자 조정호는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4년 동안의 연애를 거쳐 1957년 그들의 공식적인 결혼이 양국의 승인 속에 진행되었다.


이들의 펼쳐나간 러브 스토리에는 바로 북한 전쟁고아들의 동유럽 집단 이주 프로젝트가 존재한다. 한국전쟁의 여파로 발생한 남북한 10만 명의 전쟁고아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를 놓고 남과 북은 각기 다른 고민을 하게 된다. 남한의 전쟁고아들이 미국이나 유럽에 입양된 것과 달리 북한은 사회주의 종주국 소비에트 연방의 주도 속에 고아들을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에 집단 이주시키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2004년 4월 루마니아 부쿠레쉬티에 도착해서 미르초유 여사를 만나기 전까지 사실 이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사실 믿기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당시 통역일을 도와주던 사람에게 루마니아 국립대학교 도서관과 루마니아 기록보관소에서 반드시 북한 전쟁고아들이 루마니아 왔었다는 확실한 자료를 찾으라고 주문을 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전체 10일 정도의 취재 기간 중에 3,4일을 온전히 역사적 자료를 찾는데 할애했던 것은 아무리 사연이 독특하다고 해도 그들의 삶을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를 찾지 못하면 다큐멘터리로써 가치가 떨어진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결국 취재가 끝나가던 어느 날 통역자는 신문과 기록 필름에서 북한 전쟁고아들의 루마니아 생활에 관한 기록들을 찾아낸다. 그들의 역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지금 제작하고 있는 나의 다큐멘터리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이 잉태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루마니아 기록보관소에서 발견된 북한 전쟁고아들에 관한 기록, KBS <수요기획> '나의 남편은 조정호입니다'(연출 김덕영)


아이들은 모두 같은 시간에 기상을 했고 아침 조회 시간에는 김일성의 얼굴이 그려진 인공기를 향해서 경례를 했다. 그들은 '김일성 찬가'를 부르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것이 내가 처음으로 마주했던 북한 전쟁고아들에 관한 기록이었다. 그리고 북한의 전쟁고아들이 루마니아에서만 생활한 것이 아니라 폴란드, 불가리아, 체코, 헝가리, 심지어 몽골과 중국에서도 생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말 그대로 엄청난 숫자의 전쟁고아들이 전쟁터를 벗어나서 사회주의 연대의 깃발 아래 보다 안전하고 안락한 곳에서 생활했다. 전쟁고아들을 대피시킨 사례는 북한 전쟁고아들이 처음이 아니었다. 스페인 내전이 한창이던 1930년대 말에도, 그리스 내란이 일어났던 1940년대 중반에도 전쟁터에서 아이들을 대피시킨 사례가 발견되었다.


15년 동안 다큐멘터리 제작이 길어졌던 이유는 그런 이유였다. 시간은 물론이고 지역 자체도 전 세계를 커버할 정도로 방대했다. 하나의 완전한 역사적 실체를 다큐멘터리로 다루기 위해서는 지엽적인 사건에 매몰될 수 없었다. 적어도 몽골이나 중국까지는 아니더라도 동유럽 5개 나라를 취재하고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발굴해야 했다. 당연히 제작비가 걸림돌로 작용되었다. 어느 정도의 제작비가 소요될지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당시로서는 이런 북한 전쟁고아들의 다큐멘터리 지원을 아끼지 않을 정도로 관심을 가진 단체나 기업도 없었다.


2017년 4월 폴란드의 여성 영화감독 욜란타 크리소바타가 자신의 다큐멘터리 <Kim Ki Dok>(2006년)을 들고 한국을 찾는다. 그녀는 2003년 우연한 기회에 폴란드 시골 마을 프와코비체에서 북한의 전쟁고아들이 생활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욜란타 씨는 1500명이 생활했던 프와코비체에서 유일하게 사망했던 한 명의 북한 아이에 주목한다. 실제로 그녀가 역사적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도 그 소녀의 무덤 때문이었다. 한글로 쓰인 묘비명. 그리고 50년이 지났는데도 무덤을 지키고 있는 폴란드인들의 모습에 감명받은 것이 그녀가 작품을 제작한 시작이었다.


당시 백혈병에 걸렸던 김귀덕이라는 북한 여자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헌신적으로 매달렸던 한 폴란드 의사, 그리고 10여 명에 달하는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전쟁과 대립, 사회주의 이념과 그것을 선전하기 위한 프로파간다들 속에서 피어났던 인간들 사이의 아름답고 숭고한 이야기에 주목했다. 나는 그것이 그녀의 다큐멘터리가 갖고 있는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2004년부터 매년 해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다이어리의 맨 앞장에 내가 기록한 것은 북한 전쟁고아들의 동유럽 생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계획이었다."


사실 한 개인이 이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벌어졌던 방대한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기에는 벅찬 일이었다. 제작비를 마련하는 일도 그렇고 동유럽 각국에 숨겨져 있는 역사적인 기록물들을 찾아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폴란드에서부터 체코, 헝가리, 불가리아, 그리고 루마니아까지 이들 나라들은 서로 언어가 달라서 개인적으로 기록물을 접근하기도 쉽지 않았다. 당연히 제대로 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것이 이 역사적 사실에 오랫동안 매달려야 했던 이유였다.


2019년. 나에게는 특별한 한 해다. 무엇보다 나는 나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그걸 위해서 2018년부터 '낯선 곳'에 눈을 돌렸다. 삶을 송두리째 바꿔보고 싶었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이념의 대립 속에서 분열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에 실망한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내가 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목적은 이념의 대결이 치열했던 냉전의 시대 속에 피어났던 인간들 사이의 순수한 사랑과 우정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북한이란 단어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 북한이라는 존재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내가 설 자리는 없었다."


1950년대 한반도에서 벌어졌던 전쟁과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진행되었던 북한 전쟁고아들의 동유럽 집단 이주 프로젝트는 이유와 목적이 어디에 있든 인간의 본성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한다. 그리고 남을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치열한 경쟁과 대결의 시대 속에서 물음을 던진다.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가?'


이제 다큐멘터리 <김일성의 아이들>은 세상에 공개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15년 동안 이 한 편의 다큐멘터리에 매달릴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고 용기를 주었던 벗들과 선후배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들의 한마디 말이 없었다면 이 작품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 역사를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난 것입니다.
그사이에서 사랑과 우정, 휴머니즘이 싹 튼 것입니다.
정치나 프로파간다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무인도와 같은 것이었습다.
무인도에 사는 사람들이 외부와 전혀 개의치 않고 사람들끼리 만난 것이죠.
같이 있었기 때문에 외롭지 않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다큐멘터리 <김일성의 아이들> 중에서


기록을 위해서 한 가지 더 밝히고 싶다. 2018년 나는 이 작품 제작에 필요한 재원을 얻기 위해서 대한민국 '영화진흥위원회'에서 공모한 다큐멘터리 제작지원에 지원서를 냈다. 평소 남에게 손벌리기를 싫어하는 성격이지만 워낙 많은 제작비가 소요될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제작에 필요한 재원을 확복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솔직히 그때 조그만 장려상(?) 같은 거라도 타서 제작비 조달에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은근히 기대했었다.


'귀하의 작품은 해당사항 없슴!'


도대체 이유가 뭐였을까? 도대체 그 이유가 뭔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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