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거인의 어깨를 밟고 세상을 본다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에 대해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것들

by 김덕영

미국의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마이클 무어와 켄 번즈는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두 사람 모두 약간은 진보적인 성향의 감독들이고, 두 사람 모두 역사를 통해 시대를 뛰어넘는다. 사건이 됐든 사실이 됐든, 그들은 자유롭게 역사를 해석한다. 그런 주관 있는 뚝심 덕분에 그것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일단 재밌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도 결국은 따지고 들면 누군가의 '생각'을 유희하는 것이니까. 그런 점에서 나는 두 사람의 다큐멘터리를 즐긴다. 그들의 시선, 그들의 생각을 따라가면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낯선 장르. 사실 1995년도에 자립적으로 만든 영화 한 편이 크게 성공한 적이 있다. 그 돈으로 프랑스로 유학을 갈 정도였으니까, 나로서는 대단한 성공이었다.


'두 개의 고향'(Two Homes)은 어쩌면 내 인생의 커다란 원점 회귀가 아닐까 싶다. 다시 영화라는 필드로 되돌아오는 과정이니 말이다. 누구나 그렇지만 먹고살기 위해,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은행 통장의 월급봉투 같은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매달렸던 방송 다큐멘터리의 삶. 하지만 달콤함은 그것으로 그만이다.


그렇게 15년 정도를 더 기다렸고, 이제 새로운 나 자신과 만날 준비를 한다.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서 정식 데뷔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켄 번즈가 됐든 마이클 무어가 됐든 재밌고 감동이 있는 사람의 이야기들을 영화 속에 표현할 생각이다. 그런 각오로 이번 북한 전쟁고아들에 관한 행적을 쫓았다. 무려 15년의 기다림이었다.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
한국 최초의 북한 전쟁고아 문제를
다룬 작품이라고?!
그건 진실이 아니다.


진실이 뭐가 뭔지 몰라서 남이 써준 보도자료만 보고 기사를 써대는 대한민국 기자들. 덕분에 추상미는 한국에서 북한 전쟁고아들의 역사를 밝힌 개척자가 됐다. 천부당만부당 소리다.


누구나 거인의 어깨를 밝고 세상을 본다. 나도 그랬고, 추상미도 그랬으며, 앞으로 올 또 누군가도 그래야 한다. 그것이 사회의 지성이 발전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추상미 이전에 2006년 욜란타 크리소바타라는 폴란드 저널리스트에 의해서 폴란드에 살았던 북한 전쟁고아들에 관한 다큐멘터리 'Kim Ki Duk'이 만들어졌다. 그녀는 당시 살아 있던 북한 고아들의 교사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그것이 욜란타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이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욜란타의 작품을 그대로 차용한 작품일 뿐이다.


폴란드 여성 저널리스트 욜란타 크리소바타의 작품 'Kim Ki Dok'(2006년)


2003년에는 '루마니아 여인'이라는 소설도 나왔다. 그 작품 역시 북한 전쟁고아들에 관한 행적을 중심에서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2004년 KBS 수요기획 '나의 남편은 조정호입니다'(연출 김덕영)라는 작품은 루마니아 현지 취재를 통해 루마니아에 있었던 북한 전쟁고아들의 행적과 역사를 조명한 1시간짜리 다큐멘터리였다.


KBS 수요기획 '미르초유, 나의 남편은 조정호입니다' (2004년 방송, 연출 김덕영)


부디 추상미 씨는 더 이상 자신이 '북한 전쟁고아 역사'의 개척자, 선구자로 자신을 위장하지 말기를 바란다. 정말 그건 보기 안 좋다.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실을 추구하는 다큐멘터리 세계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행위고 발언이다. 게다가 현재도 북한 전쟁고아들에 관한 행적을 다룬 영화 제작비를 모금한다고 또 미국 교인들을 만나고 다닌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그런 작품에 돈을 대는 교인들, 추상미 다큐멘터리가 2억 5천만 원의 제작비를 들여서 만들 수 있었던 것에는 한국 교계의 역할도 있었으리라.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폴란드 영화감독은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촬영 현장을 지켜보며 이렇게 말을 남겼다. 추상미 씨는 그의 말을 곰곰이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추상미 씨가 북한 전쟁고아들을
위해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위해
영화를 만들었을 뿐이다."

결국 이 다큐멘터리를 왜 만들었는지, 그 이유는 역시 작품이 말을 할 것이다. 1950년대 한국전쟁부터 1960년 북한 내부의 종파투쟁까지, 북한 전쟁고아들의 행적과 역사는 공교롭게도 그 격동의 현대사를 관통한다.


'왜 왔는지?'
'어떤 아이들이었는지?'
'유럽이란 낯선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왜 모두 돌아가야 했는지?'
'지금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 다섯 가지 질문들을 통해 한국의 현대사를 재조명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장, 처참한 서민들의 삶, 주체사상, 김정은의 외교노선까지 북한의 현재를 이해할 수 있는 모든 과거의 단초들이 그 시기에 집중되어 벌어졌다. 그것이 1950년대 북한 전쟁고아들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다. 그 시기를 제대로 알아야 현재의 북한을 이해할 수 있다.


결코 우리와 동떨어진 남의 이야기가 아닌 이유는 또 하나 있다. 어쨌든 그 시기 북한의 전쟁고아들이 사촌 집에 가서 잠시 살다 왔다면, 남한의 전쟁고아들은 완전히 다른 가정에 들어가 산 것이나 다른 게 없다.


공교롭게도 이런 까닭에 전 세계 해외 고아 입양 데이터를 보면 1950년대부터 2010년대 중순까지 대한민국은 단 한 번도 Top 5 자리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다. 놀랍지 않은가? 세계 10권의 경제 대국에서 아직도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입양되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사실 부끄러웠다.


마이클 무어와 켄 번즈의 이야기를 쓰려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언제가 한 번은 쓸 이야기였다. 왜 이 작품을 제작하는지 스스로 이유를 정리할 필요도 있었고. 추상미 작품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힐 필요도 있었으며. 앞으로도 기회 있을 때마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글들은 계속해서 쓸 생각이다.


끝으로 켄 번즈의 'The Vietnam War'에서 가장 감명 깊은 장면 하나를 공개하면 글을 마친다.


"언제부터 이 나라에 애국심이 더러운 단어가 되어가고 있지?!"


베트남전으로 좌우가 분열되고 충돌했던 1970년대 미국에서 미국을 바로 잡은 것은 한 국회의원의 연설이었다. '언제부터 애국심이 더러운 단어가 되어버렸는지...' 그 말 앞에서 미국의 좌우는 고개를 숙이고 하나로 뭉쳤다. 그것이 정치의 힘이다.


정치는 결국 말발로 하는 거고, 그래야 정치가 정치다운 것이므로... 칼이나 총으로 할 거면 정치를 왜 하겠는가? 군사를 하지...


나라 밖에서 나라를 생각한다. 대한민국에선 지금 '애국심'이 더러운 단어가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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