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다이어리, 2020년 1월 8일
20년 만에 대학 후배를 만났다. 거의 정확히 내가 만나지 못했던 그 20년만큼 그는 영화판을 누비며 살았다. 숫자가 때로는 많은 말을 할 때가 있는데 그날이 꼭 그랬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북한 아이들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돈이 되겠어?’ 마시던 커피가 목구멍에라도 걸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명색이 내가 선배인데… 어디 쥐구멍에 머리라도 박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이 50을 넘겨서 아직도 철없다는 소리와 결국은 하나도 다를 게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긴 그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나는 한겨울 매서운 바람 몰아치는 동유럽의 벌판 위에 맨몸으로 설 수 있었는지, 무슨 깡으로 역사의 강을 건넜고, 역사의 숲을 지나 꽁꽁 숨어 있는 70년 전 북한 아이들의 흔적들을 찾으려 했을까?’ 돌이켜 보면 좀 제정신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 역시도 이젠 과거일 뿐이니. 그래도 내가 걸어왔던 길을 돌이켜 보며, '그래, 나는 이렇게 살 거다. 어쩔래?!' 하며 삿대질이라도 한 번 할 수 있는 게 어딘가. 그렇게 해서 만든 영화가 ‘김일성의 아이들'이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을 손에 쥐고 귀국을 하면서 하루아침에 내 인생에 꽃길이 펼쳐질 것이란 기대 같은 건 손톱만큼도 없었다. 그보다는 솔직히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라는 물음표들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고나 할까. 아무튼 떠날 때도 그랬고 돌아올 때도 근거 없는 기대감 같은 것은 없었다. 차라리 약간의 두려움 같은 거라고 해두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통의동 스토리'라는 서촌의 오래된 가게 하나를 접으면서 정리한 돈을 몽땅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에 쏟아부었으니 속이 타고 목이 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 만약 계획한 대로 영화가 제작되지 못하거나, 또 개봉이 되고 나서 일정 정도 수입을 올리지 못한다면, 쉽게 말해서 흥행에 실패한다면 그다음에는 뭘 해 먹고살지. 누구나 그 상황이 되면 찾아올 수 있는 숱한 고민들로 생각이 깊어졌다.
그런데 천성이라는 게 있는 건지, 아니면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것인지, 또 그것도 아니면 겁이 없는 것인지, 그것이 무었든 간에 나는 오늘도 뚜벅뚜벅 앞으로 전진한다. 적어도 어둠 속에서 전진하는 것은 내 주특기다. ‘굼벵이도 구르는 기술이 있다’라는 속담이 이럴 때 써도 맞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뒤도 안 돌아보고 앞으로 굴러가는 건 내 주특기인 게 확실해 보인다.
성공해서 돌아오겠다며 논 팔고 집 팔아서 멀리 길 떠나는 자식에게 어미는 아무 말 못 하고 가슴만 쓸어내렸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뭔가 믿는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녀석이 일을 벌였으니 주위에서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우리 모두는 순탄하지 않은 인생을 산다. 어디 일뿐이겠는가. 사람과의 만남은 더 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을 것이다.
누구나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하고 미워하고 이별을 한다. 이별 뒤에는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을 것 같은 사람과도 다시 만날 수 있는 인생. 그렇게 운명이라는 강에 몸을 맡기고 몸부림치며 인생을 산다. 사람에 지치고 사람 때문에 괴로워하지만, 막상 사람 때문에 인생을 산다. 인생의 길에는 타락한 악마도 존재하지만 어디선가 짠하고 나타나는 천사들도 많다. 그래서 순탄하지 않은 인생이라도 살아볼 가치는 누구에게나 있다.
내 인생도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힘든 일만큼 즐겁고 의미 있었던 시간도 많았다. 사람 때문에 아파하고 그러면서도 사람을 그리워하듯이 힘든 일에 주저앉기도 했지만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극복하는 순간 또 다른 즐겁고 재밌는 일들도 찾아온다. 그렇게 돌고 또 도는 순탄하지 않은 인생을 산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하늘을 보고 별을 보며 방향을 찾는다.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나의 중심을 찾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글쎄. 방법은 각자 찾는 거겠지만, 그래도 굳이 하나 덧붙이자면 ‘가치로운 일’이 아닐까. 그날 20년 영화판 인생을 살았던 후배는 그가 평생을 살며 경험했던 모든 노하우를 나에게 전해줬다.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들이었다. 그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다시 심장을 뛰게 하고 온몸 구석구석 피를 돌게 만들 이야기가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나에게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주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문득 그 이유가 궁금했다. 일단 내가 그에 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그는 왜 나에게 그가 힘들게 얻었을 것들을 나에게 아낌없이 준 것일까? 이유가 정말 궁금했다. 퇴근길 차는 점점 막혀 왔지만, 그 질문 하나가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진.정.성이라는 가치가 아니었을까?’
요즘 들어 자주 하는 질문이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어쩌면 나는 그날 그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는 작은 실마리를 찾은 게 아닌가 싶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 그것은 ‘가치로운 일’을 의미한다. 가치로운 일이란 종류도 많고 성격도 다르겠지만, 적어도 인간의 숭고한 희생이 담긴 이야기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들이다. 내가 동유럽 역사의 숲 속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인생이 그랬다.
그들의 인생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주었던 숭고한 사랑의 이야기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자 나는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렇게 순수한 영혼들과 만났다.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는 것은 카메라를 든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날 후배는 비록 아무 말도 안 했지만 그런 내 이야기를 가슴으로 듣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은 호기심이 풀렸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2019년 작년은 거의 1년 동안 한국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흥행한 영화들이 뭔지도 몰랐다. 그중 하나가 1,600만 명을 동원했다는 ‘극한직업’이라는 영화였다. 1,600만 명의 관객이라니! 나는 고작 1,600명 모으기도 버거운데 말이다. 아무튼 대중의 취향을 공부할 겸 영화를 봤다. 어쩌면 오늘의 결론이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영화에는 평범한 일상을 힘들 게 살아가는 우리네 이웃들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었다. 그 힘들고 힘든 인생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이유를 거창한 메시지 하나 없이 잘 표현했던 것 같다.
누구는 어깨 힘주고 말할 것을 아주 재밌고 교훈적으로 표현했던 것 같다. 영화 안에는 적어도 1천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을 법한 명대사(?) 하나가 있었다. 오죽했으면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나는 그 부분을 수없이 돌려봤다. 마약 조직의 두목을 붙잡기 위해 퇴직금으로 치킨집까지 열어야 했던 주인공 형사와 마약조직 두목의 대사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야이 ㅅㄲ야. 치킨집 하면서 왜 목숨을 걸어?!”
“니가 침범했잖아 ㅅㄲ야! 니가 소상공인 존나게 모르나 본데… 우린 다 목숨걸고 해. 시ㅂㄴ아!!”
그렇지. 누구나 목숨걸고 사는 게 인생이지... 그 대사 하나에 울컥했던 이유는 나도 장사를 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린 다 목숨걸고 한다'는 그 마지막 대사를 듣고 대한민국에서 가게 열고 장사하는 사람들 중에 눈시울 붉어지지 않았을 사람은 없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믿는다. 그건 얄팍한 상술과는 거리가 있다. 그 안에는 적어도 평범한 인생을 힘겹게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맺힌 울분을 풀어주는 카타르시스 같은 것이 존재한다. 그래서 1,600만이란 숫자는 숫자 그대로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단어, ‘진.정.성’이라고 믿는다.
누구나 순탄하지 않은 인생을 산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인생이라는 무대에는 늘 감동이라는 엔딩이 있는 것 같다. 우리 영화도 그렇게 잘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나도 목숨걸고 한다'.
글. 김덕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