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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Apr 08. 2016

베스트셀러가 나라를 바꾼다

' 내 나라 운명은 베스트셀러와 함께'


   글을 쓰다 보면 은근히 자랑을 하고 싶은 글이 있기도 하고, 또 어떤 글들은 '독자들이 꼭 읽어줬으면'하는 마음이 생기는 글들도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며칠 전 바로 그런 느낌, '이건 꼭 읽어줬으면'하는 바람이 생기는 글을 하나 썼기 때문이다. 제목은 이렇다.


   "이 글은 직접광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마 제목이 떠오르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광고라고 해봤자 뭐 대단한 어떤 걸 광고하는 게 아니라 내가 쓴 책에 관한 몇 줄 자랑하는 정도였다. 간혹 TV를 보면 드라마 같은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 '이 프로그램은 간접광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는 걸 보게 되는데, 그걸 좀 흉내 낸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글은 독자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을 당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다시 읽어봐도 별 문제가 없는 글인데, 나는 그 순간 혹시 제목 때문에 그런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광고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광고'라는 말만 봐도 알레르기가 생기는 건 아닐까.


    아무튼 내 좌절감은 적지 않았다. 그건 월드컵 최종예선전 마지막 경기에서 일본에 지고 월드컵 출전이 좌절되는 느낌하고 비슷한 거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최근 글쓰기에 힘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게 읽어주는 자들의 힘이었지만, 덕분에 나는 포기하지 않고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는 어떤 힘을 얻고 있는 기분이었다. 사실 어떤 글은 조회수가 12,000만 회를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니 내 좌절감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럴 땐, '에이, 뭐 그럴 때도 있는 거지. 다음엔 더 잘 쓰면 돼',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뭔가 개운하지 않은 느낌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결국 이 글을 쓴다. 그냥 버려지기에는 너무 아깝다. 이 글이, 내 입장에선.


    잠깐 화제를 돌려서, 나는 최근 '글쓰기'에 관한 몇 가지 실험을 하고 있다. 쟁반 여러 개를 동시에 공중에 돌리는 곡예 같은 '동시다작'의 글쓰기가 있고(그건 까페를 운영하면서 어쩔 수 없이 집중력 부족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전략에서 출발했다. 이것 때문에 지금 엄청 힘들다), 어떤 건 전자책으로 직접 제작하는 글쓰기도 있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는데, 내가 'sustainable writing'라고 이름 붙인 글쓰기다. 이건 사실 자신이 쓴 글을 계속 업그레이드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지속적인 관심을 유도해내는 뉴욕 기자들의 'sustainable reading'이란 개념에서 따왔다. 나는 중심을 독자가 아니라 작가로 바꾼 셈이다. 같은 글이라고 해도 글의 성격, 시대의 분위기에 따라서 글은 운명이 바뀐다. 그럴 경우 글은 계속 새롭게 변신하고 업그레이드된다. 물론 같은 글을 말한다. 조금씩 바뀌면서 모습이 성장하는 걸 글 쓴 사람이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그건 한 번 구입한 냉장고를 몇 년이 두고 계속 쓸 수 있게 만들어주는 일종의 'After Service'와 같은 것이다. 그럴 경우 글에 놀라운 생명력이 붙는 느낌이 든다. 마치 살아 있는 글처럼 끊임없이 변화한다. 글쓰는 사람의 책임감 역시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나는 그런 글들이 몇 개 있다. 매 년 한 번 정도는 서랍에서 글을 꺼내 새롭게 변신시킨다. 닦고 기름치고 조이면서 글이 더욱 튼튼해지길 바란다. 어쩌면 이 글도 그런 글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자. 여기까지가 서론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나는 며칠 전 내가 쓴 글을 다시 이곳을 통해 공개할 생각이다. 이유는 앞서 말한 것이 전부다. 글의 내용이 그냥 덮어버리기에는 좀 아깝고, 누군가 꼭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글이기 때문이다. 'sustainable writing'을 통해 끊임없이 살아 있는 글을 쓰고 싶기 때문도 있다. 하지만 글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내 글에 대한 '애프터서비스'를 끝까지 하고 싶다. 그래서 내 글 하나를 통해서 맺어진 독자들과 아주 오래 계속 함께 하고 싶다. '띵동! 손님, 애프터서비스 나왔습니다~!'


   이 글을 이미 읽으신 분들은 여기까지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줄부터는 진짜 같은 내용의 반복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여기까지 같이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글은 직접광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거짓이 아니라 사실이다. 지금부터 당신이 읽어 내려갈 이 글은 아주 많은 직접광고를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고 페이지를 벗어나지는 말라. 적어도 글이 끝날 즈음, 요즘 말로 '낚였다'는 느낌이 들게 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할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당신의 공감을 얻고 싶다. 그리고 중요한 건 지금부터 '무엇'을 광고하느냐가 아니라, '왜' 하느냐 하는 것이다.


   얼마 전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기사 하나를 읽었다. 제목은 이렇다.


'작가들의 이중생활. 도시락 배달·경비원·사우나 알바… 투잡·스리잡 뛰며 글쓰는 작가들' (조선, 2016년 3월 26일 자)


   한 마디로 글쓰기 위해서 생존을 건 모험에 나선 작가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한 달에 100만 원도 안 되는 돈을 벌면서 자신만의 글을 쓰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두려워졌다. 왜냐하면 내가 하려고 하는 것도 바로 글을 쓰려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난 아직 고치를 벗어나지도 못한 애벌레 정도일 뿐이니 더더욱. 아마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은 누구나 느껴졌을 공포심. 혹자는 그런 것 때문에 글쓰기를 포기한다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글쓰기를 가능케 하는 사회적 배경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건 구조적인 문제다. 그걸 극복하는 것은 작가의 몫이 아니라 사회의 몫이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을까?  


   만약 지금까지 세상에 가장 많이 팔린 책들 100권을 일렬로 줄을 세운 다음, 그걸 언어 순으로 분류한다고 가정해보자. 당연히 영어로 쓰인 책들이 가장 긴 줄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겨우 한 두 권 정도의 차이로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중국어 순이다. (이건 내가 직접 구글을 통해서 확인한 내용이다. 한국어도 한 권 있다. 책이름은 계속 개정되는 책의 분류 항목에 포함되어 있는 홍성대의 '수학의 정석' ) 여기서 2등부터는 별 의미가 없다.


   책의 세상은 영어가 독식하고 있다. 2등이 의미가 없다고 하는 것은 98등 정도까지 영어가 차지하고 나머지를 다른 언어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말한다. '세계에서 가장 강국이니까 당연히 그 나라의 언어로 쓰인 책이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거 아냐?'하고.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보자. '그 나라의 언어로 쓰인 책이 세계를 장악했기 때문에,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건 아닌가?'라고.  


   우리는 당연한 걸 너무 당연하게만 생각해오는 습성이 있다. 이걸 논리학으로 표현하자면, 선결문제 미해결의 오류다. 가장 기본이 되는 전제를 충실하게 논증한 다음에 두 번째 단계로 나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다는 뜻이다. 책 세상에서 절대 강자는 힘의 논리에 지배받고 있다는 생각.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할 수 없다'는 논리적 귀결. 하지만 책세상을 지배한 자가 절대 강자가 된다는 생각으로 접근해보면 세상이 달라진다. 그래야만 한 달에 100만 원도 안 되는 투잡 뛰는 작가들이란 이름이 붙은 그런 기사들로부터 마음이 조금은 여유로워질 수 있다.


   나는 베스트셀러에 관심이 많다. 그건 베스트셀러를 통해서 사회를 읽고 역사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지식인 와타나베 쇼이치는 <지적으로 나이 드는 법>을 통해서 일본의 근대화가 한 권의 책을 통해 시작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이야기는 에도막부 시대 일본의 한학자이자 일종의 스파이(?) 같은 역할을 했던 나카무라 마사나오라는 인물에서 시작된다. 메이지 유신으로 막부 체제가 무너지기 직전, 일본은 서구 문명에 대해 엄청난 동경심을 갖고 있었다. 특히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번영이 그들 관심의 초점이었다. 그래서 막부 체제는 나카무라 마사나오를 영국으로 보내 그 나라가 발전할 수 있었던 비결을 알아오라는 은밀한 지시를 내린다.


   유학생의 신분으로 영국에 정착한 나카무라는 영국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를 하기 시작한다. 주로 상류층을 차지하고 있던 정치인, 경제인, 학자, 지식인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나카무라는 영국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을 알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그 명쾌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 그 현상의 이면에 숨겨진 본질을 찾는 것. 그것이 천재적인 지식이었던 나카무라의 고민이었다. 얼마 후, 생명이 다하는 환자의 가쁜 숨이 멈추듯 일본에서 막부 체제가 무너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제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이라는 새로운 시대적 조류가 움트기 시작했다. 숨 가쁘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나카무라는 포효하는 강물 위에 흘러가는 작은 나뭇잎이었다. 귀국 일정이 잡히고 일본으로 돌아갈 날은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정작 나카무라는 손에 쥔 것이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세계 지도의 4분의 1을 차지하게 만든 대영제국의 힘이었을까. 고민이 많으면 병이 생긴다고, 나카무라는 귀국을 며칠 앞두고 심한 몸살에 걸려 몸을 가눌 수도 없는 형편이 된다.


    보다 못한 영국인 친구 한 명이 병에 누운 나카무라를 위로하기 위해 찾는다. 둘의 대화는 아마 이렇게 이어졌을 것이다. 말을 먼저 꺼낸 건 아마 영국 친구였을 것이다.


   "어이 나카무라, 몸은 좀 괜찮은가?"

   "죽지 못해 살고 있네..."

   "아니 자네 그게 무슨 말이야?!"


   나카무라는 그제야 자신의 가슴속에 숨겨둔 비밀을 털어놓는다.


   "난 말이야... 순수한 유학생이 아니라네."

   "그게 무슨 말인가?"

   "난 영국이 어떻게 강국이 되었는지 그 비결을 알아내라는 목적으로 우리나라 정부가 보낸 밀정이야."

   "별 이상한 소리를 다하는군."

   "아니, 사실이라네. 내가 지금 몸살이 난 건, 이제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네. 어쩌면 난 일본에 돌아가서 벌을 받을지도 몰라. 어려움에 처한 조국을 등지고 외국에 나가 호화로운 생활이나 하면서 국비를 축낸 무능력한 자로 말일세."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긴가?"

   "그럴지도 모르지..."

   "그럼 안되지!"


   영국인 친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몸을 가눌 수도 없는 나카무라를 일으켜 외투를 입혔다. 그리고 곧장 서점으로 데리고 갔다. 서점에는 마침 그 당시 베스트셀러로 영국인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던 한 권의 책이 있었다. 책의 이름은 새뮤엘 스마일즈가 쓴 <자조론>이라는 책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격언이 탄생했던 바로 그 책이었다. 영국인 친구는 책 한 권을 나카무라에게 건네며 말했다.


   "나카무라. 이게 자네가 찾는 답은 아닐 걸세. 하지만 영국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던 힘을 이해할 수 있는 비밀이 어쩌면 이 책 안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네. 이걸 갖고 일본으로 돌아가서 자네 나라 정부에 보고를 하게. 아마 그들도 자네를 어찌할 수는 없을 걸세."


   결국 나카무라는 <자조론>을 들고 일본 귀국길에 오른다. 그 당시에는 선박으로 귀국을 해야 했기에, 나카무라는 일본으로 돌아가는 몇 주 동안의 시간 내내 <자조론>을 읽고 번역하기 시작했다. 1868년의 일이다. 나카무라의 <자조론>은 일본어로 <서국입지편>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때는 바야흐로 일본의 모든 전통적 가치가 시험대에 오르고 새로운 사상이 꿈틀거리는 메이지 유신의 시대. 서점에 나온 <서국입지편>, 즉 일본판 <자조론>은 서구에 대한 동경심에 가득한 일본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불티나게 팔렸다. 메이지 유신 시대에만 100만 부 정도가 팔렸다고 하니 그 판매량이 얼마나 많았는지 짐각이 간다. 그러나 중요한 건 책의 판매 부수가 아니라 책을 읽은 100만 명의 마음이었다.


   난 이런 가정을 한번 해본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그 힘의 원천에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친 100만 명의 독자들이 존재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뭉치면 사상이 된다. 일본의 경제발전에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겠다는 의식을 지닌 100만 명의 독자가 존재했다. 그건 1945년 패망한 일본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비단 이건 일본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자조론>을 쓴 새뮤엘 스마일즈의 적자를 자처하며 미국에서는 수많은 성공학 전도사들이 등장했다. 데일 카네기와 나폴레온 힐 같은 작가들을 보면 한 권의 베스트셀러가 미국 사회를 얼마나 바꿔놓았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자조론>을 단지 경제적으로 성공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한 성공학 교과서 정도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 그 안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가치관이 담겨 있다. 그것이 어쩌면 오늘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과 일치하는 주제다. 바로 '인격'이라는 이름을 갖추고 세상에 영원히 빛나고 있는 횃불 같은 존재다. 그 이야기를 하려면 1952년에 일어난 영국 해군의 수송선 버큰헤드호 조난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1952년 2월 동이 트기 전 차가운 새벽, 군인 472명과 일반인 162명을 태우고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지나던 버크헤드호가 암초에 부딪히면서 좌초하기 시작했다. 배는 두 동강이 났고 승객들은 시시각각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배의 갑판 위에서 울부짖으며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을 구조할 수 있는 구원의 손길이 도착하기엔 너무 먼 거리였다. 남은 것은 오직 세 척의 구명보트. 한 척에 60명씩 모두 180명 정도가 탈 수 있는 구명보트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과연 그다음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그때 갑자기 북소리가 울렸고 동시에 갑판으로 집결한 병사들은 함장의 ‘차렷’ 구령에 정렬했다. 병사들은 함장 지시에 따라 횃불을 밝힌 뒤 차분하게 여자와 어린이들을 구명보트에 태워 구조 준비를 끝냈다. 구명보트에는 약간의 자리가 남았다. 구명보트 승선자들이 ‘여유가 있으니 뛰어내리라’고 소리쳤지만 병사들은 끝내 꼼짝하지 않았다. 보트가 휘청거려 전복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군인 472명은 구명보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거수경례를 했고 결국 버큰헤드호와 함께 전원 수장됐다.' (한겨레, 2014년 4월 18일 자)


   여기서 중요한 건 이 기사의 출처다. 해군 472명의 명예로운 죽음을 기록하고 있는 이 이야기는 1859년 영국의 작가,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새뮤엘 스마일즈가 쓴 <자조론>에 기록되어 있다. 놀랍지 아니한가. 베스트셀러의 힘은 이렇게 사람들의 운명을 사로잡는다. 죽음 직전의 상황 속에서도 명예로운 죽음 선택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다. 그것이 책의 운명이다. 버큰헤드호 472명의 해군 병사들의 놀라운 인격적 희생을 만들어낸 것 한 권의 책이었다. '모든 책에는 고유한 운명이 있다. 읽어주는 자에 따라서'


   '1만 권을 목표로 잡겠습니다!'


   앞서 나는 이 글이 직접광고를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부터가 직접광고에 관한 본격적인 시작이다. 나는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라는 책을 쓴 작가다. 아직은 전업작가의 대열에 끼지 못했고, 그래서 낮에는 글을 쓰고 밤에는 서촌의 '김PD의 통의동 스토리'라는 와인바에서 와인을 서빙하면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난 2013년 아주 우연한 기회에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라는 책을 썼다. 제목 그대로 나이가 들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던 명예로운 노년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놀랍게도 그 책은 3년이란 시간 동안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이 강인하냐고? 혼자서 글쓰고, 원고와 표지 디자인까지 해낸 1인출판의 책으로 치자면 매우 질긴 생명력을 지닌 책이다.


    대만의 한 자기개발서 전문 출판사가 이 책의 중국어판 제작에 관한 의사를 타진했을 때만 해도 그렇게 강인한 생명력을 지닐 거라 믿지 않았다. 그 시기를 전후해서 이 책은 국립중앙도서관 추천 도서로 선정되기도 했고, 시내 유명 서점에서 3개월 동안 베스트셀러 코너에 꽂혀 있기도 했다. 직접광고가 슬슬 지겨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조금만 더 참아주길 바란다. 내가 왜 이 책의 생명력, 그리고 1만 권의 목표를 설정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난 이 책을 알리기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개인의 힘으로 이 책을 1만 권의 대열에 올리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난 별별 희한한 방식으로 이 책의 홍보에 나섰다. 어떻게 들리면 좀 우스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난 이 책을 1만 권의 세일즈 목록에 올리기 위해서 뮤지컬 시나리오도 썼다. 뮤지컬로 제작된다고 하면, 사람들이 내 책에 관심을 더 많이 가져줄 수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이건 진심이다.)


    이 책은 나에겐 새로운 운명의 시작을 열어준 책이다. 덕분에 서촌의 작은 까페 겸 와인바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들과의 만남 덕분에 내 정신적 삶이 풍요로워지고 있다. 난 그곳에서 많은 예술가들과도 교류한다. 그들의 자유로운 영혼과 만난 덕분에 나는 자유롭게 산다는 것이 결코 사치가 아니며, 두려운 미래만 있는 것이 아니란 확신이 들었다. 책 한 권을 통해 내 운명이 바뀐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가 남는다. '왜?'


   난 늘 사회에서 내 할 일을 찾으려 애썼다. 1984년 대학에 들어갔고 그때는 데모 안 하는 애가 이상한 애로 보일 정도로 세상이 뒤죽박죽이었다. 운동권 선배들 사이에서 소위 사회 비판의 목소리를 담은 사회과학 원전 스터디라는 거 하기 싫다고 경찰들 눈을 피해 겨우겨우 숨어 들어간 선배의 '아지트'에서 하루 만에 도망치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엔 '서강TV'라는 방송국을 만들었는데, 그것 역시 학교의 지원 한 푼 안 받고 시작한 일이었다. 물론 학교의 허락도 없었다. 그런 서강TV가 이제 어엿한 학내 방송국이 되었고, 27기나 배출한 나름 꽤 전통 있는 기구로도 발전했다. 처음엔 그렇게 될 줄 나도 몰랐다. 이후엔 독립영화 제작을 거쳐 방송 다큐멘터리 PD까지 활동의 폭을 넓혔다.


    어떻게 보면 내 삶이 늘 그랬던 것 같다. '혼.자.서'. 외롭지만 그래서 더 흥미진진했다. 혼자서 책임지고 끝내야 할 일들이 많아지다 보면 삶이 다이나믹하게 변한다. 어차피 삶은 혼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인데, 남에게 기댈 수 없는 것들인데. 그렇게 '나'를 중심으로 놓고 살면서 세상을 내 방식대로 변화시키려 했다. 그건 이제 곧 밀려올 100세 시대의 온갖 걱정거리들로부터 '나'를 지켜내기 위한 수단이었다. 나를 위해서 쓴 책이란 뜻이다.


   정리하자면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는 이제 곧 밀려올 100세 시대에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를 이야기하려고 쓴 책이다. 그 책은 성공을 향한 방법론 따위는 없다. 그보다는 자기 인생에서 참다운 성공의 가치란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걸 입증하고 싶었던 책이다. 외롭지만 혼자서 가야 할 이 인생의 길에서 개인의 의식과 사고방식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 차이를 불어오는지를 말하고 싶었던 책이다. 좀 더 거창하게 말한다면, 노후를 위한 사회보장 제도 하나 변변히 마련되어 있지 않은 우리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자신의 노후를 안정적으로 지켜낼 수 있을까를 고민한 책이다.


    그래서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어야 한다. 당신과 나의 보장된 것 없는 미래에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이 한 권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어야 한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 <자조론>이 있듯이, 다가올 100세 시대에 우리가 행복한 노년을 맞이하기 위해서 이 책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내야 한다. 자기 노년의 미래를 도우려는 자들을 부르는 책이다. 난 할 수만 있다면, 그들과 함께 세상을 바꿔놓고 싶은 간절한 염원도 담겨 있다.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하나 생각해보면 길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후대들을 위한 버큰헤드호 472명의 해군 병사들이 돼야 할지도 모른다. 아낌없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는 그런 존재들로서 말이다. 그것이 내가 발견한 가장 숭고한 인격적 존재들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그보다는 가급적이면 우리 스스로가 우리 인생의 '자조론'을 쓴 주인공이 되길 바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노년을 돕는다.'


    그동안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를 주목해주고 지원해준 곳들은 다음과 같다.


교보문고 시니어부문 베스트 셀러

국립중앙도서관 사서추천 교양도서

대만 북마스터스 출판사 '중국어판' 발간

출판진흥원 '영어 번역 지원 사업' 선정

미래에셋은퇴연구소, 국가평생교육원 장기 연재






지은이: 김덕영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저자

다큐멘터리 PD

서촌의 복합창조문화 공간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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