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돌무더기 여행의 기억들로부터
나는 개인적으로 인생에서 은퇴란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비록 직장에서는 나이 하나 때문에 은퇴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라도, 내가 살고 싶은 삶을 내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 은퇴란 존재할 수 없다. 평생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겁게 인생을 살다가, 기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 그것이 내 생의 최고의 가치다. 그렇게 내 인생의 가치를 정하고 나니까 몇 가지 눈에 들어오는 '직업'(?)이 있었다. '올드 스톤 리서처(old stone researcher)'는 그렇게 해서 내 시야에 들어온 개념이다.
'올드 스톤 리서처(old stone researcher)'라는 말이 실제 학문적으로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구글 검색으로 나오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거나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는 개념인 것 같다. 어쨌거나 나는 오래된 돌에 관심이 많다. 내가 갖고 있는 오래된 돌에 관한 관심은 고고학과 인문학, 그리고 지리학을 포괄한다. 이 세 가지 학문을 점으로 삼아 삼각형을 만든 다음, 한 가운데로 선을 그어 만나는 지점에 아마도 내가 갖고 있는 오래된 돌에 관한 이야기들이 자리를 잡고 있지 않을까.
돌에 관심 덕분에 나는 고대 유적지를 여행하는 동경을 오래전부터 했다. 스톤헨지, 마추픽추, 피라미드, 그리고 이스터 섬의 거대한 석상까지 내가 가보고 싶은 여행의 목적지는 한 둘이 아니다. 실제로 나는 오래된 돌에 관한 호기심 하나로 무작정 배낭을 메고 고대 그리스의 유적지 탐방에 나선 적도 있다. 그 당시 내 여행의 결정적 자극은 단지 신화의 세계로만 여겨졌던 고대 그리스의 유적지들이 아직까지도 옛 모습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는 다소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고대 그리스 신화나 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출발지는 '밀레토스(Miletos)'였다. 서양 철학사의 어떤 책을 펼쳐도 첫 페이지에는 어김없이 '이오니아 학파'가 등장한다. 이오니아라는 지명은 제우스의 정욕을 파히기 위해서 소로 변신한 '이오(Io)'가 등에에게 찔려가며 눈물로 에게 해를 건넜다는 바로 그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오니아(Ionia)' 학파는 밀레토스라는 도시를 기반으로 삼아서 발전했던 고대 그리스의 맨허튼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밀레토스는 아테네나 스파르타가 있는 그리스의 땅이 아니라 이슬람의 땅 터키에 자리 잡고 있다. 나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삶의 중심이 당연히 그리스 본토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아테네 출신의 소크라테스를 비롯해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생존했을 당시 그들은 아테네에서 에게 해 건너 동쪽에 자리 잡은 이오니아 지방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건 오늘날에도 성공을 꿈꾸며 세계적인 도시 뉴욕이나 런던, 파리로 유학을 가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유럽의 문명의 만나는 곳에 바로 밀레토스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유명한 인물들을 따라서 고대 그리스의 귀족, 부유층 자제들도 가방을 꾸려 이오니아 지방으로 유학을 떠났다. 부모들이 자식들을 그곳에 보낸 이유는 뭔가 새로운 것이 배울 것이 있다는 판단에서였을 것이다.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오니아에는 많은 전설과 역사가 층층이 쌓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모든 것들이 같은 장소 위에 서로 다른 시간대들이 시루떡처럼 싸여 있다고 생각해보라. 놀랍고 경이적이지 않은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이오니아 지방은 '아나톨리아(anatolia)', 즉 '태양이 솟구치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태양이 뜨는 곳, 생명이 시작되는 곳이며, 저물어가는 석양과 정반대에 자리 잡은 창조적인 원천이었다. 그곳에서 삶의 터전을 만들었던 문명으로는 고대 그리스를 비롯해서 히타이트, 셀추크 투르크, 오스만 제국까지 다양하다. 문명의 출동을 피할 수 없는 숙명을 지닌 곳이기도 하다.
충돌이 있는 곳에는 다양성이 꽃을 피운다. 정체되고 고여서 썩어가는 물이 아니라 요동치는 강물이고 그래서 늘 맑고 깨끗하다. 문명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피를 흘리는 곳이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찾는 스토리텔러들에게는 보물창고 같은 곳이다. 게다가 나는 '올드 스톤 리서처'를 꿈꾸는 사람이다 보니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시작해서 버스로 하룻밤을 달려 고대 그리스 최고의 격전장이었던 '트로이 목마'의 현장을 찾았다. 터키에서는 '차나칼레'라 부르는 곳으로 에게 해를 인접하고 있는 해안도시다. 바로 절세의 미녀 헬레네를 사이에 두고 벌어졌던 고대 그리스 최대의 격전장이었다. 그리스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을 필두로 아킬레우스, 오디세우스 등이 트로이 진영의 전사 헥토르, 그리고 헬레네의 남편이 되고자 했던 파리스 등과 칼을 겨루며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바로 그곳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동화 속 이야기 같았던 '트로이 목마'에 얽힌 신화가 모조리 역사적 사실이었다는 점이다. 신화가 역사로 바뀌는 순간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가능케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 바로 독일 출신의 아마추어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Heinlich Schlimann)이다.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유년기 때부터 스스로 돈을 벌어서 생활을 해야 할 만큼 슐리만의 생활은 궁핍했다. 그래서 그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돈이 되는 일은 무엇이든 뛰어들었다. 일자리가 없어 단지 돈을 벌기 위해 남미로 향하는 배를 탔다가 배가 네덜란드 해안가에서 좌초되는 바람에 죽음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슐리만에게는 고대 그리스 유적지 트로이를 발견했다는 전설적인 모험담과 더불어서 15개 나라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믿기지 않는 또 하나의 전설적인 이야기가 존재한다. 그의 삶을 기록한 자서전 <고대에 대한 열정>을 보면, 그가 그토록 많은 외국어에 집착한 이유가 나온다. 바로 고대 그리스 유적지 '트로이'에 대한 열망이었다. 남들은 신화일 뿐이라 믿었던 고대 '트로이'가 신화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적 사실일 수 있다는 믿음.
슐리만은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사업에 성공한 뒤, 자신이 모은 전 재산을 '트로이' 발굴에 쏟아부었다. 공식적인 기록을 보면 1870년 터키 히사를리크 황무지 언덕에서 첫 삽을 뜬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남들은 미친 짓이라며 조롱했지만, 슐리만은 개의치 않았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 싶은 방식대로 하는 삶. 조금이라도 일찍 내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사는 삶이란 게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깨달은 슐리만에게는 두려움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트로이 유적지 발굴이라는 커다란 헤드라인이 장식된 신문이 유럽의 거리 곳곳에 뿌려진 1783년까지 무려 3년 동안을 그는 황무지 언덕 위에서 생활했다. 그리고 결국 그는 해냈다. 남들은 황무지에 돈을 쏟아부은 정신병자라 놀렸지만, 그는 먼지 풀풀 나는 풀 한 포기 없는 버려진 땅 위에서 새로운 고고학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다. 오로지 그 밑에 트로이의 역사가 실재할 거라는 믿음 하나만을 갖고 말이다. 보통의 인간이라는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번 전 재산을 쏟아부으면서 말이다.
나에겐 하나의 오래된 돌덩이, 돌무더기 속에 스며 있는 그런 인간의 이야기가 흥미를 끌었다. 늘 놀라는 일이지만 수천 년이 지난 고대인들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 이상이다. 예술과 문명의 남겨진 흔적들을 보고 놀라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를 놀라게 만들고 경이로운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드는 것들이 바로 돌덩이였다. 돌은 그렇게 시간을 이겨내는 힘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돌이라고 해서 시간을 이겨낼 순 없다. 돌도 시간과 함께 본래의 모습을 잃어간다. 하지만 버티기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돌을 이겨낼 게 없다. 적어도 돌은 자신의 원형을 버리지는 않는다. 난 그런 묵직한 돌의 물성이 좋았다. 시간 속에서 산화해서 제 모습을 쉽게 잃어가는 금속에 비하면 돌은 거의 영원에 가까운 존재들이다.
돌이야말로 옛사람들의 생활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결정적인 자료들이다. 우리가 돌무더기에 배울 수 있는 옛사람들의 지혜, 어쩌면 슐리만도 그런 생각이지 않았을까. 고대 그리스의 돌무더기 속에서 지혜를 얻고자 하는 마음. 그런 열망 하나로 그는 황무지를 파고 내려갔던 것이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시작된 나의 오래된 돌무기를 찾아가는 여행도 그랬다. '트로이'를 거쳐, 클레오파트라와 시저가 함께 횃불을 밝히며 연극을 관람했다는 '에페소스'의 원형극장, 파피루스에 대항해서 양피지를 만들어야 했던 '베르가마' 사람들이 세운 산 꼭대기 위의 왕궁,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기리며 만들었다는 거대한 '디디마' 신전, 우리에겐 이온음료 포카리 스웨트로 유명한 그리스 최고의 휴양지 산토리 섬에 현존하고 있는 고대 그리스 도시 '티라'에 이르기까지 에게 해를 따라서 해안 도시들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는 고대 돌덩이들과의 조우란......
그걸 한 마디의 감정으로 다 담을 수는 없겠지만, 나는 '시간의 선물'이라 말하고 싶다. 영원하지는 않겠지만 영원을 닮고자 했던 인간의 지고한 정신 세계가 만들어낸 그 위대한 흔적들. 수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곳에 존재했던 인간의 숨결과 자취는 나에겐 하나의 경이로움이었다. 그건 마치 시간이라 이름 붙여진 신이 삶을 위해 분투하고자 하는 인간을 위해 건네주는 보상의 대가와도 같은 것이었다. 삶을 포기하지 않은,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삶을 사랑했던 인간들에게 주는 달콤한 보상.
지금도 난 고대 그리스의 돌덩이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여행했던 그 순간순간들을 잊을 수가 없다. 아마도 가장 순수했고 그래서 행복했던 나 혼자만의 여행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무엇이 나에게 남았는지는 아직 다 모르겠다. 뭔가 분명 남았겠지. 아마도 돌덩이처럼 강한 마음,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도 나를 지탱시켜 주는 돌기둥 같은 굳건한 무언가가 내 심장을 떠받치고 있다는 확신. 그래, 고대 그리스의 돌덩이 여행은 나에게 그런 의미로 여전히 살아 있는 것 같다. 바로 그것이 삶에서 은퇴하기 싫은 내가 찾고 싶은 또 하나의 직업, '올드 스톤 리서처'이다.
지은이: 김덕영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저자
다큐멘터리 PD
서촌의 복합창조문화 공간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대표
작가의 책은 교보, 영풍, 반디앤루니스 등의 시내 유명 서점과 예스24, 알라딘 등지에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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