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다이어리' 2020년 5월 7일

'유럽의 친구들이 애타게 북한 친구들을 찾고 있습니다.'

by 김덕영

KBS Radio '통일열차'에 출연했습니다. 진행자가 월드컵 때 축구 캐스터로 우리에게 유명한 서기철 아나운서라서 왠지 모르게 친숙한 느낌이 들고 마음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라디오 '통일열차'는 북한에도 방송이 된다고 합니다. 어쩌면 북녘 땅 어디선가 저희 영화에 관한 소식을 듣는 사람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이 드니까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그래서 출연 전날 밤, 북한 전쟁고아들의 친구였고, 그들을 정성껏 돌봐준 유럽의 선생님들이 애타게 찾고 있는 북한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노트에 적었습니다.


1시간가량의 녹화가 끝나고 서기철 아나운서의 마지막 엔딩 멘트가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마치 손이라도 번쩍 들듯이 엔딩 멘트 사이에 '한마디 꼭 해야 할 게 있다'면서 끼어들었습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진행자는 당황하지 않고, '그런 게 있으면 하셔야죠!'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어렵게 잡은 마지막 1분 간의 시간, 나는 전날 밤, 꼼꼼히 준비해 간 나만의 멘트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을 만든 김덕영 감독입니다.... 마리아 아말리에바 씨는 김진우 씨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카타 파넬루토바 씨는 김금순 씨에게 인사를 전합니다. 불가리아 프로보마이에서 북한 친구들을 만나 우정을 나눴던 릴카 아나타소바 씨가 전낙원, 박인숙 씨를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그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이렇게 대신 전합니다.


'내 친구들이 항상 건강하기를 빌어요. 그들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래요. 자손도 많이 낳고요. 그들이 어렸을 때 모습 그대로 순수한 아이들처럼 살아가길 바래요. 그때 내가 만났던 코레아의 아이들은 정말 좋았어요. 그리고 전낙원, 박인숙에게는 그들을 잊지 않겠다고 전해주고 싶어요. 내가 살아 있는 한, 그들을 절대로 잊지 않을 거예요.'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 중에서


폴란드 프와코비체에서 함께 생활했던 스타니스와프 바할 선생님께서는 원청동 씨를 잊지 않고 계십니다. '늘 도와줘서 고맙다'고 하십니다. 체코 발레치 시골 마을에서 만났던 마리아 코페치카 선생님께서는 지금 치매에 걸려 의식이 없습니다. 그녀는 의식을 잃기 직전 소중한 사진 앨범 하나를 맡기셨습니다.


사진 앨범에는 아이들과 함께 찍은 1950년대 사진과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습니다. 그 이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리숙자, 김장진, 정보배, 고종옥, 강기찬, 양문희...


마지막으로 폴란드 오트보츠크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할리나 도벡 선생님께서는 김영학 씨를 보고 싶어하십니다. 만약 김영학 씨를 만날 수 있다면 이렇게 말을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김영학 군에게 폴란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사를 보낸다. 오트보츠크에서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을 아직 기억하고 있니? 너는 나에게 있어 최고의 학생이었어.
너의 선생님으로서 항상 너의 건승을 빈다.'


지금까지 혹시 제가 불러드린 분들 중에 아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그들의 메시지를 꼭 전달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멘트를 마쳤다. 순간 스튜디오 안에는 묘한 적막이 흘렀다. 앞에서 마지막 엔딩 멘트를 준비하던 진행자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 영화를 왜 만들었을까?' 글쎄...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제 나는 내가 15년이란 긴 세월 동안 포기하지 않고 이 영화를 만들어왔던 이유 중 한 가지를 발견했다. 그건 그냥 너무나도 평범하고 당연한 것, 바로 '인간에 대한 예의'였다. 사랑하는 사람, 친구, 가족과 함께 살아가고 싶은 소박한 마음들, 그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인간에 대한 믿음.


혹시 아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이란 제목이 만들어지기 전, 또 다른 제목이 하나 있었다. 그 제목은 '두 개의 고향, Two Homes'였다. 나는 여전히 그 제목도 좋다.


글. 김덕영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 감독)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 CGV 극장 개봉 확정! 한국전쟁 70주년, 6월 25일 대개봉합니다.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