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창작시대, 나의 실천적 활동과 가치의 덕목들
'개봉 다이어리' 2020년 5월 21일
극장에 자신의 영화를 개봉할 수 있다는 것은 영화감독에게 있어서는 가장 행복한 일이다. 그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지금도 수많은 영화감독 지망생들이 땀 흘리고 있다. 내가 아는 한 후배는 2,30대 젊은 시절을 모조리 영화 현장에 쏟아부었다. 우리가 익히 알 만한 상업영화들 중에서 무려 7편이나 조감독을 담당했을 정도니 그가 꿈꿨던 극장 개봉작 영화감독의 꿈이 얼마나 간절했을지 짐작하고도 남는 일이다. 그것을 그들은 소위 '입봉'이라고 말한다.
'입봉'이란 영화나 방송가에서 쓰이는 말이다. 일본어 '잇본(一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견습과정을 마치고 일정한 기준에 달한 어엿한 기생'이라는 뜻을 지닌 화류계 은어가 영화계까지 전파된 것이다. 힘쓰고 고단한 일이 많은 직종에서 일본어 단어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참 흥미로운 일이다. '입봉'을 우리말로 바꾸기가 쉽지 않은 것은 우리 사회가 그런 개념들을 스스로 창조해내지 못했다는 한계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영어로 하면 '데뷔(debut)'가 적당하겠지만, 이 역시도 프랑스에서 유래했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몇 년 전 우연히 그를 만났을 때, 제일 먼저 궁금했던 것도 바로 그 '입봉'이었다. 10년이 넘는 세월, 젊은 시절을 온전히 영화 현장에 바쳤던 그에게 '입봉' 정도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훈장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싸늘했다. 죽도록 노력했지만 결국 극장에 영화를 올리는 개봉작 감독이 되는 것에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밤늦은 시간 그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잠깐 화제를 돌려서 어제는 영화 마케팅을 위해서 축구계에서 내로라하는 마케팅 전문가를 만났다. 지난 1월부터 지금까지가 홍보의 단계였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마케팅의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 절박한 이유도 있었다.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다가 영화 홍보에만 무려 6개월을 쏟아부었다고 말하자 그는 무척 놀라는 기색이었다. 보통 상업영화들은 2개월 정도 집중한다고 한다. 그들의 3배를 영화 홍보에 집중했다는 이야기다.
일단 결론적으로 우리 영화처럼 작고 힘없는 소위 말하는 빽도 없는 영화들이 영화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영화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할 필요는 없다고 믿는다. 아니 오히려 그들과 다른 방법, 다른 시도들을 끊임없이 해내야 한다. 적어도 지금까지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에서 얻은 성과들, 그리고 앞으로 또 오리라 기대하는 성과들은 거저 얻은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노력했고 땀 흘렸고 즐겁게 거친 파도와 맞섰다. 그것이 인생의 가치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중년의 늦은 나이에 '입봉' 영화감독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다. 누구나 성공을 바라며 노력을 한다. 나의 경우에는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했다. 아무리 힘든 과정이라도 해도 가는 길이 즐거우면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와도 배는 거친 파도를 헤치며 제 길을 간다. 그런 뱃길에서는 캄캄한 밤하늘에 떠 있는 북극성 하나가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인생에서는 각자의 북극성이 존재한다. 나는 그것이 롤모델이라 믿는다. 따라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만큼 인생이란 길을 조금은 수월하게 걸어갈 수 있게 해 준다.
'1인미디어', '원맨파워', '1인창조시대'라는 시대적인 흐름에 몸을 맡긴 것도 이번 영화가 극장에 걸릴 수 있게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됐다. 만약 모든 것은 분업화된 조직적 체계 속에서 진행했다면 비용도 비용이지만 시간적으로도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거의 모든 것을 감독 스스로 해낼 수 있다면 비용의 감소는 극대화되고 속도는 급속도로 빨라진다. 시시각각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혼자서 해낼 수 있다는 것은 현실의 변화를 신속하게 받아들이면서 일을 추진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기획, 시나리오, 촬영, 편집, 홍보, 배급, 심지어 포스터와 영화 전단지도 감독의 손에 의해서 제작되었다. 아마 편집이나 촬영을 직접 하는 감독은 많아도 '전단지를 만드는 영화감독'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걸 위해서는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기술적 테크닉을 갖춰야 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오늘날 스마트한 애플리케이션이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오는 이 시대에 모든 기술과 테크닉은 손쉽게 배울 수 있는 것들로 넘쳐난다.
결국 중요한 차이는 인간의 마인드에서 결정된다. 어떤 생각, 어떤 마음가짐이 인간의 삶을 결정한다는 지극히 오래된 진리를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다. '전단지를 만드는 영화감독'은 무슨 일이든 두려울 게 없고 어떤 일이든 즐겁게 마주할 수 있다. 심지어 '전단지를 돌리는 영화감독'이 되는 것에도 부끄러울 게 없다.
7편의 조감독을 했던 후배가 요즘 들어 자꾸 떠오른다. 아무래도 지금 극장 개봉과 홍보,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 보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를 만났던 날, 나는 그와 헤어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무리 위로가 되는 말을 한다고 해도 그게 위로가 되겠는가. 젊은 시절을 몽땅 영화에 바쳤던 그 후배는 쓸쓸하게 7편의 조감독의 길을 접고 영화계를 떠났다. 비정한 현실이다. 내 인생도 아니지만 조금은 먹먹한 아쉬움이 남는다.
만약 그를 다시 만난다면 과연 나는 무슨 말을 하게 될까...?
'전단지를 만드는 영화감독'은 이제 전단지 돌릴 일부터 고민한다. 그게 우리네 인생이다.
글. 김덕영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 감독,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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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영(다큐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