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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Mar 01. 2021

재일교포 북송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귀국선>

또 하나의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며... 삼일절 아침에.


'귀국선 제작노트' 

2021년 3월 1일. 삼일절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힘 있는 자들의 정치적 표적이 되어 인생이 송두리째 휩쓸리기도 한다.' 재일교포 북송 사건을 10년 동안 추적한 했던 한 영국 출신의 작가는 그렇게 말을 남겼다. 돌이켜 보면 나 역시 그 한 마디 말에 이끌려서 지금까지 온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인간의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솔직히 힘 있는 자들의 놀음에 시작된 사례는 너무나도 많다. 문제는 평범한 사람들로 살아가면서 그들의 놀음이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알아채기가 참 힘들다는 데 있을 것이다. 


결국 지식인, 작가, 영화감독 같은 자들이 세상에 필요한 이유다. 그걸 어떻게든 파헤쳐서 대중의 눈높이로 함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볼거리, 읽을 거리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중문화, 특히 책이나 영화 같은 문화적 콘텐츠들은 사회를 변화시키거나 심지어 혁명적으로 뒤바꿔 놓은데 큰 역할을 맡는다. 힘 있는 자들이 감추거나 조작하려 했던 사건의 본질을 파헤치는 퍼즐의 조각들을 세상에 던져놓기 때문이다. 


그런데 퍼즐의 조각도 거짓이 있고 진실이 있다. 던지는 자의 머릿속에 무엇이 들었는지에 따라 그가 인도하는 길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지옥으로 떨어지는 길일 수도 있다. 


2년 전 2019년 12월 1일, 그해 겨울 문재인 대통령이 연차를 내고 책을 읽었다면서 국민들에게 추천한 책 몇 권이 있다. 그중에서 김용옥이 쓴 '통일, 청춘을 말하다'라는 책에는 오늘 북송 사건과 관련된 놀라운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참고로 그 책은 유시민의 '알릴레오'에 김용옥이 출연해서 대담을 나눴던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Q. (유시민). 북송선 탄 사람들이 대부분 남쪽 사람들인데 왜 대거 북한으로 이주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아요. 일본은 호황이었고 자유가 보장된 나라였는데 자유주의 국가에서 공산주의 국가로 이주한다는 것, 베를린 장벽 역행현상 같은데...?


다음은 그 질문에 대한 김용옥의 답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북송선에 전혀 강제성은 없었다는 것입니다...(생략) 제주 4.3항쟁, 대량학살 사건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당시 일본에 살고있던 조선인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한사회가 남한사회보다 더 도덕성이 있고, 삶의 조건도 더 매력이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는 것이다. 이런 역사를 우리는 객관적으로 반추해봐야 합니다."


여기 김용옥의 말에는 두 가지 큰 결함이 있다. 첫째, '전혀 강제성은 없었다'는  그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당시 일본 정부와 북한은 어떻게든 재일교포 북송 사업을 '인도주의'로 포장하길 원했다. 그래야 같은 체제이자 한일협상이 진행 중인 한국에 대한 명분이 설 수 있으며,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양측 정부가 제네바 국제접십자위원회의 중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문제는 제네바의 요구를 북한 측은 결코 수용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강제성이 없는 '자발적인 귀국 확인'을 위해서 국제적십자가 내건 조건은 '일대일 개별 면접'으로 귀국자의 자유의사를 확인하는 것. 이를 위해 정치적 신조, 출생지, 소속, 직업 등을 물어볼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북한 입장에서는 생각이 달랐다. '정치적 신조'를 물어본다는 것은 곧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반감이나 불안감을 불러 일으켜 중간에 귀국 희망자가 의사를 포기하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출생지'도 문제가 됐다. 남한 출신이 97%나 되었기 때문이다. 재일조선인에 대한 역사적 인식이 부족한 제네바 사람들로 하여금 '도대체 이 많은 남한 출신 사람들이 왜 북으로 가려고 하지?'라는 의문은 인도주의, 중립성 원칙을 표방하는 국제적십자가 정치적 사안이라는 늪 속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줄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국제적십자의 당연한 요구, 개인의 자발적인 의사를 확인하게 해달라는 요구를 북한은 결코 수용할 수 없었고, 그들은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 북송 사업 보이콧을 선언했다. 1959년 9월 부터 시작된 귀국 희망자 접수 창구가 한동안 썰렁했던 이유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조총련이 귀국자들에게 압력을 가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놀라운 것은 결국 북한의 뜻대로 '일대일 개별 면접'이 거부된 직후, 다시 말해서 조총련의 보이콧 결정이 철회되면서 귀국 희망자 접수 창구가 인산인해를 이뤘다는 사실이다. 


모든 사회 현상을 혁명적(?)으로만 바라보는 김용옥의 눈에는 총칼로 무장한 사람들의 무력만이 강제성의 근거로 보이는 듯하나, 누군가의 생각과 행동을 '강제한다'는 것은 결국 그의 자유로운 이성적 판단을 방해하는 모든 행동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서 '사기'와 '기만' 역시 타인의 행동을 강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책략, 기만, 협잡, 지금까지 현대사에서 이렇게 힘 있는 자들이 힘 없는 사람들을 속이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한 사례가 또 있을까? 게다가 그 배경이 되고 있는 곳이 고도성장으로의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일본이라는 사실이 어처구니 없고 놀랍기만 하다. 


자연스럽게 김용옥의 주장에 대한 두 번째 문제제기가 이어질 수 있다. '북한사회가 남한사회보다 더 도덕성이 있고 매력적인 사회'였다는 바로 그 발언이다. 


인간이 사회에서 도덕성을 논할 때는 결국 '인간다움'에 대한 이야기와 직결되는 것이라 믿는다. 자유와 인권의 척도가 그 사회의 도덕성을 논하는 척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 의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렇게 북한 사회가 도덕적인 사회라면, 왜 아직도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하는 귀국자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가? 비참했던 북한에서의 생활을 증언하는 귀국자들의 증언이 계속되고 있는가? 그렇게 도덕성 있고 매력적인 사회였다면 왜 자신이 원할 때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되어야 했을까? 


김용옥은 부디 재일교포 북송 사건이 어디서 어떻게 왜 시작되었는지 다시 공부하길 바란다. 스스로를 철학자라 자처하는 사람이 사건의 전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역사를 왜곡시키는 일에 앞장서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아무튼. 


공교롭게도 이 일은 영화 제작에 대해서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하고 있던 나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누군가는 진실을 찾아내야 하며, 그 평범했고 힘 없는 자들이 당했던 기만과 사기, 비극의 역사를 제대로 규명하는 작업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맞이하는 삼일절 아침. 억압과 압제에 맞섰던 용기 있는 선열들의 기백을 믿고 나도 용기를 내서 다시 역사의 숲으로 걸어가 보려고 한다. 이 작업에도 신의 뜻이 함께 하길... 정의가 함께 하길 간절히 기원한다. 


영화 제작에 힘을 보태주실 분들을 찾고 있습니다. 많은 성원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공식 후원 계좌:

국민은행 878301-01-253931

김덕영(다큐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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