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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Mar 03. 2021

북송 재일교포, 그들의 마지막 말은 사요나라!

생활 습관, 문화, 사고방식, 그리고 언어까지 일본 사람이었던 그들


'귀국선 제작노트' 2021년 3월 2일 

생활 습관, 문화, 사고방식, 그리고 언어까지 일본 사람이었던 그들, 재일교포 귀국자들


작년 이맘 때쯤 코리아 타임스와 인터뷰했던 기사가 주말 코너에 전면으로 실린 적이 있었다. 제목도 무척이나 도발적이고 신선했다. 벌써 1년 전 일이다. 


'Korea's film market grows at the expense of indie films'

(한국 영화 시장은 독립영화의 희생 위에 성장하고 있다) 

'코리아 타임스', 2020년 1월 17일 자 기사

별로 내세울 게 많지는 않지만, 1989년 처음 카메라를 잡고 세상을 기록하기 시작했으니까 벌써 30여 년째다. 가끔은 기록자의 위치를 벗어나서 그냥 순전히 가공의 인물과 상상 속에서 허구의 존재들을 만들어내고 싶은 욕구도 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운명처럼 나에게 '기록한다'는 것은 가공이나 상상보다 더 즐거운 작업이었다. 객관적 실체를 파헤치면서 숨겨진 퍼즐 조각들을 찾아내고 맞춰가는 재미가 있다. 역사적 사건들은 낡은 사진첩 속의 사라진 사진처럼 희미한 흔적만 남겨놓을 때가 많다. 실오라기 같은 단서를 붙잡고 퍼즐을 찾아보면 어느 순간엔가, '유레카!'라고 소리지르고 싶을 정도로 짜릿한 순간들이 있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영화 <귀국선>도 그랬다. 도대체 그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무얼 믿고 북한이라는 폐쇄적인 사회 속으로 빨려들어갈 수 있었는지, 놀랍게도 당시 일본에서 북한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한국어를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였다. 


1959년 12월 14일, 소련 선박 토불스크호가 처음 니가타 항을 출항하던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흑백 필름 속에는 더 좋은 곳으로 희망을 찾아서 떠나는 사람들의 작별의 순간이 기록되어 있다. 가운데 붉은 별을 새긴 인공기, 영웅들의 귀환이라도 되듯 하늘 위로 나부기는 오색의 종이들, 떠나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이나 모두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역사 순간 속에 담겼다. 


그 기록필름을 몇 번이나 돌려봤다. 가끔은 본능적으로 신경이 예민해지고 이상징후를 감지할 때가 있다. 바로 그순간이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상황을 감지해야 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화면 속 사람들이 뭔가 이상하다. 도대체 뭐지?'


대여섯 번을 다시 돌려보고 나서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피부색, 생김새, 차려입은 누추한 행색, 그렇게 모습은 누가 봐도 '코리안'이었지만, 떠나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이나 들려오는 소리는 오직 하나, "사.요.나.라!" 그들이 마지막 일본을 떠나며 외치는 눈물젖은 소리는 일본어였다. 


그순간 나는 이 역사적 사건이 갖고 있는 모순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바로잡혀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일본말을 하고 일본 음식이 익숙해져 있던, 일본의 문화, 생활을 사랑하려 했던 사람들. 역사는 그렇게 누군가를 차가운 길바닥 위에 내동댕이쳤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북으로 건너간 귀국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희망과 거리가 먼 또 하나의 차별이었다. 실제로 1971년 북한은 모든 주민을 3개의 계층과 51개 부류로 분류했다. 재일 귀국자들은 그렇게 북한 사회에서 '동요계층'으로 분류가 되어 적대적 존재로 감시를 받아야 했다. 


1959년 12월 14일, 북의 청진항을 향해 니가타를 출발한 배 위에 타고 있던 975명의 재일교포들 중 그 누구도 자신들에게 닥칠 그런 비운을 삶을 예상했던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것이 이 사건을 '악마의 속삭임'이라 감히 부를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들을 태운 북송선 토볼스크 호가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의 함정의 호위를 받으며 드디어 일본 영해를 벗어나는 순간, 어디선가 스피커를 통해 마지막 일본어가 들려왔다. 


"이제 공해로 들어갑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사.요.나.라!”


그것이 그들이 들은 마지막 일본에서의 작별 인사였다. 


그러고 보니 일본 사람들에게 '다시 만납시다'란 표현은 왠지 익숙하지는 않은 것 같다. 재일교포 북송 사업이 성공적으로 완수되면서 일본은 그렇게 1960년대 '고도성장' 사회로 진입해들어갔다. 그 풍요로운 시대 아래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의 일본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이다. 우리도 마찬가지고...


공식 후원 계좌: 국민은행 878301-01-253931 김덕영(다큐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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