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덕영 Mar 30. 2021

'드라마 조선구마사 논란'은 우리에게 무얼 남겼나?

긴급토론회를 통해 얻는 작은 대안들을 공유합니다.

* 어제 3월 29일, 리버티국제영화제 주최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드라마 조선구마사 논란' 대한 긴급 화상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중국의 문화 패권주의가 노골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과연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와 지혜롭고 합리적인 대안은 무엇일까? 아래 글을 어제 토론의 내용들을 정리한 글입니다. 



어제의 토론회를 마치며...


'조선구마사'라는 드라마 한 편으로 시작된 파장이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이미 중국과 일본의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이번 사태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분위기다. 얼핏 한국인들의 놀라운 응집력에 놀라는 눈치다. 사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중국의 문화 패권주의는 이미 20년 전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 역사의 일부로 편성하려는 동북공정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우리 고유의 문화와 전통이라 여겼던 김치, 한복, 심지어 한국어로 사고하고 시를 썼던 민족의 저항시인 윤동주까지 중국인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의 행태를 보며 그동안 부글부글 끓고 있던 국민들의 분노가 조선 왕조 역사를 희화시킨 드라마의 등장으로 인해서 한순간에 폭발한 것으로 보여진다. 


덕분에 어제는 전문가들과 함께 '조선구마사 논란의 핵심'을 짚어보는 화상 토론회를 개최했다. 갑작스럽게 준비한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20여 명이나 되는 참가자들의 열띤 토론이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어제 논의되었던 내용들을 정리하면서, 앞으로의 전망과 대안들을 정리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겨진다. 


'중국 공산당이라는 국가 권력과 중국 시장이라는 자본이 결합된 문화 패권주의' 


2019년 10월, 베트남에서는 갑작스럽게 미국 드림웍스와 중국 펄 스튜디오가 공동제작한 애니메이션 '스노우 몬스터'라는 영화가 개봉 열흘만에 갑작스럽게 상영 취소가 되는 사태가 있었다. 당시 논란이 된 부분은 중국과 남중국해 지역국들 사이에 영유권 논쟁이 되고 있는 '9단선'의 등장이었다. 


'9단선'이란 말 그대로 아홉 개의 섬을 연결한 선을 말한다. 중국은 남중국해에 아홉 개 인공섬을 만들고 군사기지화 하면서 자국의 영토임을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가 포함된 남중국해 80~90%가 중국 바다가 된다. 


문제는 그런 정치적 논란이 되고 있는 '9단선'을 영화 속에 교모하게 삽입했다는 점에 있었다. 영화 속 화면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지만, 고의로 집어넣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매우 정확하고 자세하게 섬들의 위치가 등장한다. 


주변국들의 거센 항의와 반발을 불러올 수 있는 논란을 스스로 자초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영화적 문맥으로 보자면, 불과 몇 초 되지 않는 배경화면 속에 굳이 9개의 섬까지 세밀하게 그려 넣을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국 자본, 중국 측 요구가 없었으면 헐리웃 특성 상 굳이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논란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았을 사안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런 교묘하고 때로는 막무가내식 방법으로 중국의 패권주의가 문화의 외양을 두르고 오늘날 곳곳에서 전파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지 드라마 한 편, 영화 한 편의 문제는 아닐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문화평론가들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문화공정' 혹은 '전파공정'이라 표현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중화 우월주의와 중국 공산당의 선전 기구, 공자학원의 몰락'


2004년 공자의 사상을 전파한다며 시작되었던 중국의 '공자학원'이 작년 7월 미국과 유럽의 거센 저항 속에서 간판을 내리게 되었던 사례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중국의 문화 패권주의에 대응할 수 있는 좋은 단서가 되고 있다. 


중국은 정부 차원의 지원 속에 세계 162개 국가에 541개의 공자학원과  1170개의 공자학당을 세웠다. 문제는 그곳에 공자는 없고 중국 공산당의 이데올로기만 선전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의 시민단체와 지식인들은 이런 공자학원의 폐해를 바로잡기 위해 행동에 돌입했다. 그 결과 2020년 7월 중국은 정부 차원의 모든 지원을 중단하고 공자학원이라는 간판을 내릴 것을 결정했다. 


물론 이 같은 결정의 속내를 들여다 보면 미국과 유럽이라는 거대 시장을 놓칠 수 없다는 자본과 상품의 논리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특유의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지배 논리가 여전히 작동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공자학원을 퇴출시킨 미국과 유럽의 사례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성숙한 시민의식, 합리적 토론을 통해 올바른 방향으로 여론을 주도한 것 등이 주효했다는 의미다. 


'자유(Liberty)를 학습할 기회가 없었던 중국인들' 


오늘날의 세계를 '연결'이라는 개념으로 규정짓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국경을 초월한 생활문화적 네트워크의 확산을 통해 지구 반대 편에 떨어진 사람과도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구조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전 지구적 공동체에서는 시민사회 구성원들처럼 국가 간, 세계시민사회에도 지켜야 할 룰이 있고 가치가 있다. 


자기중심주의, 막무가내식의 방종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배려와 합의에 기초한 진정한 '자유', 즉 'Liberty'의 개념을 공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찌 보면 현대 중국의 역사는 근대 시민사회를 잉태한 '자유'에 대한 개념을 인식하고 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오늘날 국경을 초월한 문화적 공동체, 전 지구적 시민사회로 발전하고 있는 트렌드에 역행하는 흐름 역시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 여겨진다. 


자기만의 이익과 욕망을 추구하는 것, 방종이나 제멋대로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의 합의에 기초한 보다 성숙한 세계시민사회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라도 '자유(Liberty)'에 대한 올바른 담론을 만들어가는 작업은 절실한 것 같다. 


여기서 우리의 문화예술 창작자들과 지식인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강요나 강압이 아니라 세련되고 구체적인 역사적 자료에 기초한 논리의 개발을 통해 야만의 칼날을 문명과 효율성의 도구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지나친 국수주의를 경계하고 보다 많은 대중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세련된 문화적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창조해내는 것 역시 우리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친중, 친북 노선에 경도되어 있는 현 정부로서는 거세지는 중국의 문화 패권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범위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를 증명하듯 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 한 명은 차기 대선에서 승리해서 자신이 대권을 장악할 경우, '즉각 사드배치를 철회시키겠다'며 친중 노선을 노골적으로 표명하고 나섰다. 


지금까지 역사가 말해주듯이, 합리적이고 올바른 중국과의 협력을 위해서는 굴종보다는 당당함이 오히려 답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보다 더 세련되고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의 생산 역시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토론에 참여해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귀국선' 제작발표회 홍보영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