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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May 13. 2021

바그다드에서의 추억

팬더믹 시대, 조금은 다른 다큐멘터리 글쓰기 작업

바그다드는 낯선 단어다. 전쟁과 테러가 겹치면서 부정적인 느낌으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그나마 영화 <바그다드 까페> 덕분에 이국적인 이미지로 기억되는 것이 다행이랄까. 2013년 취재를 목적으로 바그다드를 다녀왔다. AK-47과 그린존, 총을 든 경호원들과 하루 종일 함께 생활해야 했던 낯선 땅, 바그다드. 돌이켜 보면 그때의 추억은 다큐멘터리와 글쓰기, 참혹하고 냉정한 현실과 상상과 허구의 세계가 교차하는 낯선 체험이었다.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야 할지를 차분하게 되돌아보게 만든 추억이었다.


요즘 개인적으로 가장 큰 고민과 관심거리는 어떤 작품을 할 것인가 보다 '어떻게 남과 다른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허구와 상상에 기초한 소설이나 영화 시나리오 글쓰기와 달리 다큐멘터리 글쓰기 작법은 분명 뭔가 다른 게 있다. 사실과 진실을 추구하면서도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있는 감독과 작가만의 고유한 영역, 뭔가 다름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개인적으로 그 중심에 '사람'을 놓으려고 노력 중이다.


틈나는 대로 '다큐멘터리 글쓰기 작법'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지금까지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얻었던 경험과 노하우들을 글로 풀어보려고 한다. 가능하면 최대한 공허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제작 현장에서 일어났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볼 생각이다. 어쩔 수 없이 개인의 기억에 의존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때로는 정확성이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오래된 사건을 재구성하는 같은 재미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살면서 경험했던 지혜를 누군가와 공유할  있다는  역시 개인적으로는  기쁨이다. 비록 다큐멘터리 영화 시장이 극영화나 TV 시장에 비해서 그리 크지는 않은  현실이지만, 다큐멘터리는 가치로운 장르이며 발전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크다. 실제로 미국의 극영화들은 사실성에 기초한 다큐멘터리 작가들이  책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 영화 '노매드랜드'도 3년 동안 노매딕한 삶을 추적한 한 작가의 책이 바탕이 됐다. 사실이 허구보다  리얼하고 재밌다는 사실을 헐리우드는 이미 파악하고 있는 셈이다.


기회가 된다면 <다큐멘터리 글쓰기 작법>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엮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바그다드에서의 추억은 시리즈의 첫 번째 작업이 될 것이다. 팬더믹 시대, 마치 조명이 꺼진 한 여름밤의 카니발처럼 외롭게 돌아가고 있는 회전목마에 올라 탄 기분도 들겠지만, 어둠의 시대일수록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창작자의 임무는 스스로 불을 밝히는 자가발전에 있지 않을까. 때로는 추억도 글을 이어가는 힘이 될 것이다.


2013년 5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의 추억


총성이 멎지 않은 이라크 바그다드, 취재를 시작한 지 벌써 4일째다. 여기는 어딜 가나 총을 든 사람들이다. 민병대, 군인, 경호원에 이르기까지 총잡이들의 세계, 마치 서부영화의 배경 속으로 들어가 있는 기분이다. 바그다드에서 외국인은 무조건 경호 차량의 도움을 받아서 이동해야 한다.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그린존 내의 호텔을 출입하는 것 역시 허가증 없이는 불가능하다.


내가 탄 차량을 경호하는 콧수염(이름이 기억나질 않는다)도 허리춤에 토카레프를 차고 있다. 최근 부산을 통해 밀반입이 이뤄지고 있다는 영화에서 자주 봤던 바로 그 권총이다. 또 다른 경호원은 후세인이다. 나이를 슬쩍 물어봤더니 '콧수염이 자기보다 7년 위'라고만 대답을 한다. 정확한 나이를 가리켜 주는 것도 경호원에게는 금기 사항이란다. 신분이 언제 어디서 탄로 나게 될지 모르는 일이라서 개인에 관한 신상 정보 노출에는 누구나 민감하다. 내가 탄 차량은 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타고 있던 검은색 시보레 SUV. 모든 유리창이 검게 선팅이 되어 있고 창문은 방탄유리로 되어 있다.


테러가 한창이던 이라크 바그다드에 들어오게 된 것은 테러로 파괴된 이라크 의료 시설과 전쟁고아들의 실태를 조사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인류의 4대 문명 중 하나인 바빌론 고대 유적지를 방문하고 싶다는 욕망도 있었다. 취재 중간 일정으로는 바이크 알 히크마, '지혜의 전당'이라 불려지던 바그다드 국립도서관 취재도 포함되어 있었다. 2011년 이라크에서 미군이 철수하면서 시작된 이라크 내전 속에서 바그다드 국립되서관은 시아파와 수니파로 갈라진 민병대들이 벌인 시가전의 한가운데에서 고스란히 총알 세례를 받았다. 인류 문명의 보고가 무참하게 파괴된 것은 전쟁이 남긴 안타까운 상처였다.


바그다드 공항에 입국할 때부터 AK-47 소총으로 무장한 경호원들이 마중을 나왔다. 콧수염과 후세인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라크에서의 기억은 모두 이 AK-47 소총과 연관되어 있다. 영화에서나 보았던 AK-47 소총을 직접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중엔 한 번 만져보라고 해서 직접 들어보기도 했다. 생각보다 가볍고 그러면서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러시아의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1947년에 발명했다고 해서 총 이름 뒤에 47이란 숫자가 붙었다. 제작이 단순하고 가격도 저렴한 테러리스트들의 총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아프리카에서는 닭 두 마리와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하다고 한다. 이라크에서는 총 만드는 장인들이 불법 복제판까지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2억 정이 풀렸다.


경호차량은 모두 석 대. 운행을 할 때는 늘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 늘 콧수염이 운전을 맡고 있고 보조석에 탄 후세인은 말쑥한 검은색 슈트를 입고 있다. 후세인 다리 밑에는 늘 AK 소총 한 자루가 놓여 있다. 품속에 지닌 토카레프와 AK-47,  그렇게 총 두 자루를 지니고 다니는 것이 기본이라고 한다. 며칠 지나자 후세인은 차 안에서 철컥철컥 장전하는 모습까지 연출해줬다. 물론 실탄을 빼고 벌인 촌극이지만, 철컥철컥하고 소리를 낼 때마다 심장이 철렁철렁 거리는 듯했다.


그런데 벌써부터 이 두 친구가 정이 든다. 이라크 군대에서 복무하다 전쟁이 끝나면서 경호원으로 직업을 바꿨다는 두 사람. 후세인은 이십 대 후반이라고 하는데 벌써 아이가 둘이다. 얼굴도 말쑥하게 생긴 게 아주 미남형의 인물이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콧수염은 정말 운전하나는 잘한다. 앞서 가는 차량들과 거리가 조금이라도 벌어졌다 싶으면, 그냥 냅다 액셀을 밟아버린다. 부응하고 차가 움찔했다가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간다. 그러다 옆에서 달리는 차들과 시비가 붙기도 한다. 그럴 때면 엄지손가락과 검지, 중지를 세모 모양으로 모아서는 흔들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아랍어로 뭐라고 막 떠든다. 여기서 손동작은 필수다. 여기 사람들은 뭔가 맘에 안 드거나, 욕을 할 상황이 생기면 손가락을 세모꼴로 모아서는 앞에 대고 흔든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입으로 튀어나오는 욕설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말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욕을 하는 것에는 나름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솔직히 난 이들을 통해서 내가 책에서 배우지 못한 이라크의 진짜 모습을 배운다. 그들을 통해서 이라크의 현재와 미래를 느낄 수 있다. 총성이 멎지 않는 이라크 속에서 자신들의 찬란했던 문명을 회고조로 읊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농사지을 땅도 많다. 석유도 많고, 공장도 많고, 회사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전쟁으로 다 없어졌습니다."


정말 여기 와서 놀란 거지만, 이라크는 내가 생각하는 사막과 건조한 모래 바람만의 나라가 아니다. 취재하는 동안 두 번이나 비가 내렸다. 계절에 따라 다르겠지만 봄에는 습도도 높아 아침저녁으로는 피부가 촉촉한 느낌도 든다.


이라크 사람들의 화법은 늘 단순하다. 툭툭 내뱉듯이 짧고 굵게 말을 끊는다. 아랍어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지만 언어에서 그들의 성품이 느껴진다. 단순하지만 솔직하고 순수한 느낌도 든다. 아랍이라는 낯선 문화권 역시 실제가 아니라 영화 같은 가공의 세계를 통해서 경험한 것들일 뿐. 이미지가 편견을 만든다. 그런 편견으로 영화를 만들고 또 그것을 소비하기 때문에 편견은 더욱 고착화된다. 하지만 현실 속으로 발을 들이미는 순간 제일 먼저 깨지는 것은 역시 편견이다. 사람은 어디나 같다. 보편적 감성, 보편적 진리가 존재할 수 있다는 근거 역시 바로 이 살아있는 사람에서 나온다.


콧수염은 내가 느끼기에는 정이 많은 사람 같아 보인다. 아이는 넷, 선한 눈매가 착한 성품을 느끼게 한다. 콧수염은 한국에 관심이 많다. 특히 한국의 종교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불교라든가, 화장하는 문화는 그에게 매우 낯설다. 왜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하는지, 그렇게 되면 다시 천국에 갈 수 있는지, 가족들이 화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 얼마나 슬플지, 화장하는 순간 죽었지만 또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조금은 황당한 질문도 있지만, 그래도 그와의 대화는 흥미로웠다.


살아간다는 것에서부터 삶이 끝나는 것까지 우리가 던지는 모든 일상의 질문은 철학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 테러가 일어나고 있는 바그다드. 지금으로부터 천 년 하고도 오백 년이 지난 4세기경, 바그다드는 오늘날의 파리였다. 모든 문화와 예술이 한 곳에 모이고 용광로 속으로 들어가 단단한 철이 되었던 곳. 찬란했던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명이 르네상스로 연결되기 전까지 유럽은 중세의 암흑기를 거쳐야 했다. 자칫 끊어질 뻔했던 인류 문명을 연결시켜주었던 곳이 바그다드였고, 아랍의 책들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뭔가 마음속에서 고마운 느낌도 든다. 일종의 심적 동화다.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바그다드에서 찬란했던 문명까지도 함께 땅 속으로 묻혀 들어갔다. 국민들의 삶은 세계에서 가장 질 좋은 석유를 갖고 있는 나라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궁핍하다. 이동의 자유조차 없다. 경호원들의 도움 없이는 단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이런 게 모두 전쟁으로 시작됐다는 것에 부정할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전쟁처럼 팬더믹이 시작되었다. 모든 것이 자물쇠가 걸린 듯 락다운된 세상에서 창작자들의 삶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생존의 위기감마저 들기도 한다. 평범하게 거리를 걷고, 물건을 사고, 사람들과 정을 나누는 그 모든 것들을 감사하게 될 줄은... 어차피 힘겨운 현실 속 모든 이들이 겪어야 할 몫이라면, 창작자들은 누구보다 먼저 희망의 단서들을 찾아내야 한다. 늘 그렇게 시인과 작가, 화가들이 그려놓은 미래라는 그림을 통해 사람들은 살아갈 희망과 용기를 얻어냈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잘 보이지 않을 뿐. 가는 방향이 옳다면 그냥 묵묵히 왔던 방향 그대로 앞으로 전진할 뿐.


바그다드를 떠나는 날. 콧수염과 후세인과 굳게 악수를 하며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불안하기만 했던 지난 며칠 동안의 시간들 속에서 늘 나를 지켜주었던 사람들. 전쟁의 한 복판에서 살아남은 아랍의 남자답게 억센 손에선 쉽게 표현할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안락과 평온이 감도는 일상으로 이제 막 돌아가려는 사람들에게선 느낄 수 없는 강인함이다. '살아남아야 한다', 그들에겐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되는 일상의 언어들 사이에서 잠시 며칠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경험은 어쩌면 평생토록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특별한 일이었을 것이다.  


"혹시 말이야... 테러리스트들이 갑자기 나타나서 공격하면서 막 총 쏘고 그러면 말이야..진짜 우리를 지켜줄 거야? 혹시 너 혼자 살겠다고 도망가는 거 아냐?"


농담 삼아 콧수염에게 질문을 던졌다. 말을 꺼내고 나서 얼굴이 조금 화끈거렸던 이유는 질문 같지 않은 질문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냥 어색하고 심각한 분위기를 깨려는 이유였을 것이다. 그 질문 같지도 않았던 질문에 콧수염은 잠시 생각을 하며 허리춤에 차고 있던 토카레프 권총을 만지며 말했다.


"나는 당신들을 몸으로 지킬 것입니다. 죽어도 당신들을 지키는 것이 나의 임무입니다."


정색을 하며 콧수염은 그렇게 대답했다. 그의 말에는 조금도 거짓이 없어 보였다. 내가 과연 이들이 죽음까지 불사하면서 보호받을 가치 있는 존재일까, 문득 그런 생각도 스쳤다. 적어도 그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믿었고 신념을 지키며 살고 싶다는 표현이 아니었을까.


바그다드를 떠나는 비행기에 올라 현지에서 발간된 영자 신문을 집어 들었다. 신문 기사에는 어제도 바그다드의 한 경찰서가 폭탄 테러를 당했다는 소식이 큼지막하게 실려 있었다. 문득 콧수염과 후세인이 떠올랐다. 그들은 오늘도 토카레프와 AK-47을 만지며 어디선가 찾아올 또 다른 이방인을 위해 하루를 준비하고 있을 터. 그들의 하루하루가 안락하고 안전하길 기원한다. 그들 덕분에 전쟁과 테러의 위험 속에서도 나의 바그다드에서의 추억은 안전하게 지켜질 수 있었다. 혹시라도 먼 훗날 다시 바그다드를 찾게 된다면 그들과 다시 바그다드의 추억을 이어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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