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리버티국제영화제를 마감하면서
'리버티국제영화제라고 들어 보셨나요?'
지난 11월 22일부터 27일까지 대한민국 서울에서는 시민들의 힘으로 만든 국제영화제 하나가 막을 올렸다. 리버티국제영화제(Liberty International Movie Festival)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지난 1년의 노력이 결실을 거두는 순간이기도 했다.
'자유'와 '인권'이라는 두 개의 가치를 축으로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360여 편의 영화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영화제 기간 내내 언급한 것처럼 이 영화제는 시민들이 낸 1만 원, 2만 원의 성금으로 만들어진 영화제였다. '시민 참여형 영화제'라고 불렸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존의 전 세계 영화제 어느 곳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던 독특한 형태의 영화제가 탄생한 셈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영화제의 성공을 위해서 지난 1년 동안 아이디어를 기획하고 개막식까지 실무적인 일들을 총괄하는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돌이켜 보면, 결국 리버티국제영화제는 불확실성과의 싸움이었고,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었다. 헐리웃 영화 제목처럼 '미션 임파서블'한 과정이었다. 돈을 중심에 놓고 사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영화제의 형식이나 규모가 아니라 오로지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담은 좋은 영화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겠다는 순수한 정신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불확실성과의 싸움'
영화제가 끝난 뒤 개막식에 참석했던 많은 분들로부터 축하와 격려 메시지를 받았다. 다들 어떻게 지자체 예산 없이도 성공적으로 국제영화제를 개최할 수 있는지 놀라는 눈치였다. 한계와 문제점도 분명 존재했지만, 분명한 것은 그동안 대한민국 영화계가 경원시했던 자유(Liberty)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큰 성공이라고 자부하고 싶다.
사실 리버티국제영화제를 처음 기획하게 된 출발점 역시, 언제부턴가 자유라는 단어가 고리타분하고 진부한 것으로 인식되는 우리 사회의 편향성에 대한 진지한 문제제기였다. 나는 지식인이 멋을 부리거나 대중의 인기에 영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럴 경우 자칫 지식인의 참다운 본분인 진리에 대한 순종을 기만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뜨겁게 달궜던 조국 사태는 바로 그 정점에 속한다.
자유의 개념을 특정 이념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불쏘시개로 활용하려는 경향에 대해서도 누군가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믿었다. 자유란 공기와 같아서 평소에는 존재 가치를 쉽게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공기가 없는 곳에서 인간이 생존할 수 없는 것처럼 자유가 없는 곳에서 진정한 인간다운 삶은 보장받을 수 없다. 자유는 민주주의의 데코레이션이 아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는 하나의 뿌리에서 자란 두 개의 나뭇가지와도 같은 것이다.
고대로부터 근대 시민 사회까지 선진적인 문명의 기초는 인간의 자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철저한 고민과 성찰에 있었다. 현대 사회에서도 자유의 역할은 막중하다. 자유를 뺀 인민민주주의 국가인 중국이나 북한에서 진정한 자유롭고 민주적인 정치 질서가 꽃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 점에서 리버티국제영화제는 말 그대로 자유의 진정한 가치를 회복하고 경종을 울리기 위한 자유의 종소리로서 역할을 하고자 노력했다.
연간 수십 억 원의 지원을 받는 국내의 거대 영화제들이 연평균 300여 편 남짓한 작품들이 출품되고 있는 것에 비해서도 양적인 면에서 전혀 뒤지지 않는 규모의 영화제였다. 개막식이 열렸던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은 모두 1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대형 강당이었다. 코로나 방역 지침에 따라 거리두기로 좌석을 배치하면서 대형 강당이 가득 찰 정도로 많은 관객들이 참석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영화제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은 영화 자체다. 이번 리버티국제영화제에는 홍콩 민주화 과정을 3년 동안 기록한 작품 '홍콩본색'이나 미얀마 청년들의 문화 저항 운동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천사들의 보랏빛 타나카' 등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일들을 소재한 좋은 작품들이 줄줄이 시상대에 올랐다. 형식미나 상업성이란 기준에 얽매이는 기존 영화제들이 발굴하지 못한 것을 대신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북한 인권의 어머니, 수잔 솔티 여사를 비롯해서 재일교포 북송 사건으로 일본 법원에 북한 정권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는 가와사키 에이코 여사 등 국내외적으로 자유와 인권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많은 내빈들이 동영상 메시지와 참석을 통해 영화제를 빛낸 것도 리버티국제영화제가 아시아의 권위 있는 자유와 인권 영화제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일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지난 1년 동안의 과정에 대해서 정확한 평가를 내리고 내년 2022년 리버티국제영화제를 위한 올바른 전망을 세우는 일은 지금 영화제가 끝난 시점에서 나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리버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라는 역할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마무리하는 일이 될 것이다.
'내가 해낼 수 있을까'라는 의심과의 싸움
돌이켜 보면 리버티국제영화제는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이었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불안의 연속이었다. 아스팔트처럼 잘 닦인 편한 길보다 사람의 흔적이 많이 나 있지 않은 가지 않은 길로 걸어가는 것은 개인적으로 두렵고 떨리는 일이지만 삶을 익사이팅하게 만들어주는 건강한 자극이다. 그런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에는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진 느낌이다. 문제는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불안과 맞서는 일이었다.
성공한 사람들은 명확한 비전이 있고, 그것은 일종의 삶을 설계하는 청사진 같은 것이다.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볼 수 있는 관조의 힘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불확실성 속에서 가능성을 본다. 확고한 신념의 소유자들이다.
하지만 이번 리버티국제영화제를 만들고 개막식까지 달려온 전 과정은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라는 끊임없는 의심들과의 싸움이었다. 그만큼 변수도 많았고, 적어도 영화제 개막을 한 달 여 남긴 시점까지 모든 것은 오리무중이었다. 심지어 영화제 심사위원장과 중요한 직책을 맡았던 분들까지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포기할 정도였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실제로 그들은 영화제 개막 3일을 앞두고 아예 개막식 불참을 통보했다. 다행히 영화를 1년 전부터 꾸준히 심사해온 몇몇 분들 덕분에 수상작 선정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영화제의 성과를 개인적인 지명도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는 흐름도 감지되었다. 개막식 이틀 전에 긴급히 집행위원회가 소집되고 급기야 막판에 집행위원들의 표결로 그런 흐름들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영화제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평가 절하하고 악의적으로 중상모략하는 무리도 등장했다. 시기심에 눈이 먼 행동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수 없는 비상식적이고 비인간적인 행동이었다. 상식과 합리성에 충실해야 할 리버티국제영화제가 자칫 불명예를 얻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모든 과정은 건강한 시민들의 판단력에 의해서 제자리를 잡아갔다. 마지막까지 중심을 바로 세우는 역할을 해준 것도 바로 자발적으로 이 영화제에 참가한 시민들의 힘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해프닝들 덕분에 개인적으로 참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영화제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감을 부추긴 사건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무엇이 진짜 올바른 것이며, 가치로운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자칫 부끄러운 내부 사정을 공개하는 이유는 지난 과정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성찰 없이 올바른 전망을 세우는 일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누구누구 개인 탓을 하는 것이 아니라 리버티국제영화제라는 불가능에 도전했던 한 조직에 대한 냉혹한 평가이며 반성이다. 미래를 향한 또 하나의 출발이다.
그렇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라는 확신에서 출발하는 것과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불안에서 출발하는 것은 결과에서 많은 차이를 가져왔다. 결국 내가 틀릴 수도 있기 때문에 틀리지 않으려 철저히 자신을 성찰했고, 끊임없이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다. 조금 더 겸허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대안을 찾아낼 수 있는 지혜가 되었다. 출발의 차이가 결과에서 큰 차이를 가져온 셈이다. 어쩌면 세상은 그래서 여전히 배울 게 많고, 인생은 죽을 때까지 깨달음의 연속이 아닌가 싶다.
'See you next year! 2022 리버티국제영화제도 많은 성원을 바랍니다.'
행복한 나라는 건강하고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나라다. 일종의 집단 지성과도 같은 것이 작동하는 사회다. 시민들이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각자의 마음속에 간직되어 있던 희망들이 모여 만든 영화제, 그래서 멀리서 보면 조각조각 제각기 다른 모양의 조각들이 모인 알록달록한 이불보 같아 보이지만, 그것이 다양성이 지닌 아름다움의 미학이라 믿는다.
그래서일까. 한 외국인 영화감독이 건넨 말 한마디가 영화제 끝난 뒤에도 여운처럼 남는다.
"한국 사람들 놀랍습니다. 한류가 그냥 나온 게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국제급 영화제를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내다니요! 게다가 개막식 행사 보고 정말 놀랐어요. 화려하진 않지만 영화가 처음 출발했을 때, 우리 모두가 간직하고 있던 그 순수한 열정이 느껴졌습니다. 2022년 리버티국제영화제 기대됩니다. 응원할게요! 화이팅!"
수십 년 전 모친께서 해주신 말들 중에 세월이 흘러 새삼 이제서야 그 의미를 절실히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도 그렇다. 어쩌면 나는 보이지 않는 그 진실된 이야기를 증거하기 위해서 땀흘린 것이 아닌가 싶다. 어머니를 비롯해서 삶의 지혜와 용기를 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