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이해는 뭐가 다른 것일까?
우선 지식과 이해의 차이부터 정리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자. 두 가지 개념 모두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것, 그리고 알게 된 과정에 대한 인식의 과정과 결과를 가리킨다. 좀 더 세분화시킨다면, '지식(knowledge)'은 경험과 교육을 통해서 얻게 된 사물과 현상에 대한 정보, 지각된 내용, 그리고 객관적 사실 등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단어다. 이에 반해 '이해(understanding)'라는 단어에는 이해의 과정으로 포커스가 이동한다. 따라서 뭔가를 '이해했다'하는 것은 지각하는 주체와 지각되는 대상 사이의 관계, 상호작용이 포함된다. 추상적이거나 물질적인 대상, 혹은 상황에 대해서 생각하는 방식 혹은 정신적 과정을 뜻할 때 주로 사용하는 개념이다.
사실 지식과 이해에 대한 개념을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적용되는 범위나 사용 방식이 워낙 넓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사람에 따라서 '지식'과 '이해'를 정의하는 방식도 다르다. 나의 경우에는 간단히 정의해서 '지식'이란 '어떤 날 것'들이다. 인식하는 주체로서의 '나'를 둘러싸고 있는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영역들에서 지식이 형성될 수 있다. 반면에 '이해'란 지식에 비해서는 훨씬 '가공된 것들'이다. 가공이라는 단어가 좀 생경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인식 주체로서의 내가 적극적으로 개입되는 '이해'에 비해서, '지식'은 훨씬 날 것들로 존재하는 이해 이전의 영역이다. 나에게 '지식'과 '이해'의 구분은 매우 중요한데, 그것은 내가 추구하는 이상들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는 이해가 훨씬 지식보다는 감성적인 부분을 포함한다.
사실 그건 지금 구상하고 있는 차기 작품들과도 관련이 있는 문제다. 뮤지컬에서부터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시즌 2까지 개인적으로 중요한 작업들이 내 손을 기다리고 있다. 특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며, 누구나 나이가 들어서도 제2의 인생을 멋지게 살아갈 수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던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1편에 이어 진행하고 있는 후속편 작업에서는 더욱 지식과 이해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건 머리가 아니라 몸에 관한 이야기들로 구성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몸에 관한 다양한 정보가 필요하다. 그것도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몸의 가치를 소중하게 사용해서 뭔가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인생을 산 사람들의 몸뚱이가 필요하다. 나에게는 그들의 몸에 얽힌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 그렇게 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제일 먼저 명확하게 구분해야 할 개념들이 바로 '지식'과 '이해'였다. 사실 샴쌍둥이처럼 머리가 한 몸에 붙어 있는 아이들을 강제로 떼어내는 것처럼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지식과 이해를 분리한다? 그걸 꼭 해야 하는 것인가? 그냥 살아도 되는데...'
왜냐하면 둘을 분리하지 않고서는 인식의 주체로서의 내가 명확해지지 않는다. 내가 구상하고 하고자 하는 모든 일들의 출발점으로서의 '나'를 제대로 세울 수도 없다. 어쩌면 나에게 지식과 이해를 떼어내는 작업은 세상을 보는 시선을 교정하는 작업이다. 사람들을 말한다.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데, 막상 나에게 진짜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라고 말이다. 당신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아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내가 정말 알고 있는 것들이 뭔지 모르겠어!'라고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당신이나 나나 매한가지다. 어쩌면 너무 많이 먹어서 탈이 나는, 뭐 그런 지독히 어리석은 방식으로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자신이 원하는 것들에 접근할 수 있는 디지털화된 네트워킹의 세계. 물론 이런 세상도 처음에는 많이 알면 이기는 때가 있었다. 남보다 고급 정보를 알고 있으면 정보가 곧 돈이 되는 때도 있었다. 주식이나 아파트 투기 같은 것들이 그런 것들이었다. '어디에 뭐가 들어선다', '어떤 기업이 곧 상장을 한다', 뭐 이런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조금이라도 많이 알고 있으면 그걸 통해 큰 이익을 볼 수 있었던 세상. 하지만 이제 그런 세상은 갔다. 성공의 패러다임도 바뀌고 있다. 남보다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다. 그보다는 남보다 어떻게 다른 '이해'를 할 수 있는가가 성공의 관건이 되는 사회다. 여기엔 적극적인 '나(me)'가 개입된다. 정보를 인식하고 자기 것으로 창조할 수 있는 '나'의 존재가 가장 중요시되는 사회로 우리는 이동하고 있다. 아니 이동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일상의 보물들'
지식과 이해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머릿속에 한 가지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그건 7년 정 프랑스 시골을 여행하면서 아이들이 자연을 체험하는 현장들을 취재했을 때의 일이다. 답답한 교실, 틀에 박힌 교과서 중심의 교육에서 탈피한 프랑스 아이들의 자연체험 학습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관찰하는 작업이었다. 시골 농장이 어떻게 아이들의 창의적인 놀이터가 되는지를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늘 그렇지만 나의 여행은 도시가 중심이 되는 여행이었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서 전문가를 인터뷰하거나 현장을 취재하는 일들이 대부분 도시 안에서 벌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여행을 하고 일을 했다. 일과 여행이 분리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그러다 우연히 '프랑스 자연체험 농장'이라는 아이템을 취재하게 되었다. 그건 파리와 같은 대도시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시골 농장으로 이동해서 하룻 동안 학교 수업을 받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자연체험 학습이 프랑스 전역에서 거의 의무 교육처럼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 도대체 왜 프랑스는 고도로 정보화되고 있는 하이테크놀러지 시대에 얼핏 거꾸로 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시골 속 자연으로 아이들을 끌고 가는 것일까? 나는 그게 궁금했다.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프랑스는 농업국가다. IMF가 밝히고 있는 2016년 프랑스의 1인당 GDP는 약 37,700달러, 25,000달러 선에 머물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12,000달러 정도 차이가 난다. 경제 규모만으로 본다면 세계 6위 정도에 해당되는 경제 대국이다. 문화나 예술 분야의 강국으로 인식되었던 프랑스가 사실은 유럽인들의 식량을 책임지고 있는 농업국가라는 사실을 처음 깨닫게 된 것도 바로 그때였다. 오죽했으면 프랑스가 농업 때문에 영국에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내줬다는 농담 같은 말이 나올 정도였다. 프랑스가 농업국가라는 사실을 이해하려면 파리나 리용 같은 대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알 수 있다. 나의 경우에 진짜 프랑스는 파리가 아니라 베르사유 정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장대하게 펼쳐진 녹음이 우거진 푸른 벌판, 구획과 토질이 정교하게 정리된 밭과 농장들. 한마디로 도시보다 시골이 더 아름답고 잘 깨끗하게 정리된 느낌을 주는 나라는 프랑스가 처음이었다. 그만큼 시골 생활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게다가 철학적으로도 프랑스의 철학은 자연에서 시작되었다. 파스깔, 데까르뜨, 몽떼스키외, 루소 등의 근대 철학자들의 면면을 봐도 그렇다. 한 번은 우연히 '자연으로 돌아가라'를 설파했던 장 자끄 루소의 생가를 방문할 일이 있었는데, 그가 왜 그토록 자연을 외쳤는가를 잘 알 수 있었다. 알프스 산맥에서 이어져 내려온 산악지역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 샹베리, 그 시골 한적한 마을 야산에 스무 평 남짓한 꽃밭과 야트막한 산으로 이어지는 오솔길까지, 모든 게 철학자의 사색에 최적화된 환경이었다. 그런 자연을 배경으로 루소는 평생을 독서와 사색, 글쓰기로 살았다. 그처럼 프랑스인들의 DNA 속에는 자연에 대한 사랑과 경외심이 가득 배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프랑스의 농촌이 늘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 농산물에 대한 관세장벽이 철폐되면서 전 세계 농업은 말 그대로 무한 경쟁시대로 접어들었다. 대규모 기계 농법으로 공장에서 물건 만들 듯 곡식을 생산하는 농업과 달리, 사람들의 손으로 가꾸는 전통적인 농업 방식은 땅의 소중함을 배우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땅의 주인이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어느 곳에서나 농업은 늘 인간의 삶을 유지시켜 주는 소중한 가치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이런 작은 농촌마을들이 농산물 시장 개방으로 생사의 기로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렇게 위기감이 현실이 되어갈 즈음이었다. 어느 날 나에게 한 가지 제안이 들어왔다. 당시로서는 생소하기만 했던 유럽의 '교육체험농장'들을 취재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교육체험농장, 프랑스어로는 'Les Fermes Pédagogiques', 말 그대로 시골 농장이 아이들을 위한 교육의 공간으로 활용되는 현장을 말한다. 농촌이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 중의 하나로 시작되었지만, 교육체험농장은 시골과 농촌에 대한 프랑스 특유의 자연주의적 관점들이 녹아들어 있는 독특한 문화였다.
사실 얼핏 들으면 기존의 농촌체험이나 생태교육과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교육체험농장은 몇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우선 일회적인 농촌방문 체험과 달리 정규 교과과정으로 제도화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정부의 교육기관, 일선 학교가 농민들과 함께 교육 프로그램을 짜고 운영에 필요한 여러 가지 지원 시스템을 마련한다. 아이들이 단순히 농촌에 가서 색다른 체험을 한 번 하고 돌아온다는 식의 일회적인 농촌방문이 아니라 농촌과 교육현장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이런 결과 프랑스와 독일 등지에서는 오래전부터 교육체험농장 프로그램이 공식적인 학교 교육과정으로서 자리를 잡았다. 프랑스에서는 아예 정부가 나서서 세금 감면이나 규제 완화 등의 지원책은 물론이고 다양한 지원방안을 마련했다. 덕분에 프랑스 교육체험농장은 1990년대 500개 정도였던 것이 지금은 대략 2천 개 이상으로 늘었다. 교육과정 자체도 자연과 생태, 환경이라는 주제를 활용해서 언어·수학·과학·사회·역사·천문·지리·예술·창작까지 모든 교육부문을 망라할 정도로 체계적이다. 자연을 통해 인간이 지식을 배우고 지혜를 얻었던 오랜 전통 그대로 학습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당시 현장 취재는 프랑스에 있는 몇몇 지인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파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떨어져 있는 한 교육체험농장을 방문하는 파리 초등학교 아이들과 동행하는 형식으로 취재가 이뤄졌다.
40여 명의 아이들을 태운 스쿨버스가 파리를 벗어나 국도를 따라 2시간쯤 달리자 낯익은 표지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베르사유 궁전을 알리는 진입로였다. 프랑스 절대왕정의 힘과 권위가 한눈에 드러나는 웅장한 궁전 베르사유. 버스는 베르사유 궁전을 알리는 표지판을 그냥 스쳐 지나갔다. 여기까지 와서 베르사유 궁전을 구경해 보지 않고 스쳐가다니. 은근히 아쉬움이 마음속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어쨌든 그날 우리의 목적지는 베르사유 궁전은 아니었다.
30분 정도를 더 달려서 우리 일행은 프랑스 정부가 운영하는 국영 교육체험농장에 도착했다. 잘 포장된 도로, 길옆의 우거진 숲, 철조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야산에 사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대략 50여 마리의 크고 작은 사슴들이 떼를 지어 뛰어다니는 자유로운 방목장이 입구에서부터 일행을 반겼다. 시골 농장 하면 더럽고 냄새나는 곳이라는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갖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일종의 배려라는 생각이 스쳤다.
잠시 뒤 우리를 안내할 농장 직원이 나왔다. 자신의 이름을 자크라고 소개한 그는 이곳에서 농장을 처음 방문하는 외부인들을 안내하는 가이드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어디선가 따닥따닥하는 소리가 들렸다. 말이 끄는 마차였다. 동화책에서나 본 듯한 모양의 마차들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딱딱한 도로 위에 편자를 박은 말굽들이 부딪히면서 내는 소리는 마치 실로폰 두드리는 소리처럼 경쾌한 리듬감이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마차의 고삐를 잡고 있는 것은 놀랍게도 아이들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농장 직원은 그저 팔짱을 끼고 빙그레 미소만 짓고 있을 뿐, 마차를 몰고 있는 것은 아이들이었다. 재잘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커다란 마차 바퀴들이 우리 일행을 지나쳤다. 자동차에 익숙한 아이들에게는 마차를 구경하는 일도 쉽지 않을 텐데, 마차를 직접 몰아볼 기회까지 얻는다는 것은 아마 아이들 입장에서는 크리스마스 때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눈 앞에서 직접 만나는 것만큼이나 놀랍고 신나는 일일 것이다.
농장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입가경이었다. 안내원을 따라서 담장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우리가 먹는 야채나 과일을 재배하는 밭이었다. 그곳에서도 주인공은 역시 아이들이었다. 토마토며 호박이며 포도, 사과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밭에 심고 각자 이름을 적었다. 어딜 가나 카메라를 보면 흥분하는 게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웃고 떠들며 별별 포즈를 다 취해 보였다.
한 아이가 나에게로 다가오더니 좀체 알아들을 수 없는 프랑스어로 이야기를 한다. 뭔가 잔뜩 자랑할 것이 있는 표정이다. 옆에 있는 통역사에게 무슨 뜻인지 통역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런데 통역사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못 알아들겠다는 표정이다. 통역사는 아이에게 한번 더 말을 해달라고 요청을 했다. 아이는 숨을 한번 고르더니 다시 똑같은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제야 통역사가 귓속말로 얘기를 했다.
“지금 이 아이가 하는 말이 나무를 접붙여 키우는 방법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는데요. 전문용어들이 너무 많아서 제가 모르는 내용들이에요. 죄송하지만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 이 부분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해석을 다시 하는 게 좋겠어요.”
여남은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자신이 접붙이기를 한 나무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여기선 힘센 아이가 대장이 되는 게 아니라 나무를 가장 잘 아이가 대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아이는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을 감추지 않고 자기 키운 나무들을 계속해서 보여줬다. 이곳을 3년 동안 매주 빠지지 않고 다니다 보니 어느새 나무 도사가 다 된 것이다.
사과밭 너머에서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저마다 토마토 바구니를 들고 모여들고 있었다. 자신들이 재배한 토마토를 하나 가득 담아 와서는 두레박처럼 생긴 나무통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보니 주스를 만드는 중이었다. 일종의 믹서기인 셈이다. 옛날 사람들이 만들어 먹던 방식으로 토마토 주스를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아이들이 나무통의 뚜껑을 덮자 통 옆에는 손잡이를 돌려서 끼울 수 있는 고리가 보였다. 거기에 손잡이를 넣고 돌리면 통이 돌아가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신나게 손잡이를 돌리는 아이들, 잠시 후 통 속에는 발그스름한 토마토 주스가 한가득 고였다. 성미 급한 녀석들은 벌써 유리잔에 주스를 따라서 벌컥벌컥 마셔댔다. 옷은 온통 토마토 즙으로 물들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흙투성이였지만 그래도 뭐가 좋은지 마냥 행복한 표정들이다. 아이들은 옆에서 구경하고 있는 취재진을 보고는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통하지 않지만 아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낯선 이방인에게 친숙함을 보였다. 순식간에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허물없는 친구가 되었다. 나는 농장 안내를 맡은 자크에게 다가가 몇 가지 인터뷰를 요청했다.
"중요한 것은 지속성(sustainable)입니다. 일회적으로 한번 방문하는 것으로는 다 얻을 수 없는 것이 땅의 가르침이니까요."
아이들은 자기 이름을 걸고 나무를 심고 야채를 재배했다. 모든 것에는 아이들의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기가 심은 나무에 이름을 지어줬다. 마치 애완견에게 이름을 붙여주듯 자신이 심은 나무 한 그루 한그루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다른 존재에 이름을 붙여준다는 것, 그것은 곧 그 존재를 사랑하게 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아이들은 하나의 씨앗이 땅에 심어져 싹이 나고 줄기를 뻗고 나무가 되는 전 과정과 함께 한다. 더 잘 자라는 나무를 가꾸기 위해서는 열심히 땀 흘려야 한다는 것도 배운다. 노력한 만큼 열매도 많이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교실에서 배울 수 없는 땀의 가치를 땅에서 배워나간다. 이 농장이 기계보다 사람의 손으로 움직이는 농기구를 더 많이 사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저 눈으로 땅을 바라보는 것은 사진으로 땅을 구경하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그 땅속에 손을 묻고 질퍽한 흙의 물성을 경험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일이다. 그건 오직 손에 흙을 묻힌 아이들만의 특권이고 그런 아이들에게서는 분명 차이가 느껴졌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유럽의 교육체험농장은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루소에서부터 출발한다. 18세기 자연주의 철학이 바로 그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라는 말로 유명한 루소의 사상은 원래 말 그대로 자연을 배움의 터전으로 인식하려는 의도에서 그 토대가 만들어졌다. 그는 가장 효과적인 교육은 자연의 존재들로부터 감각을 얻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런 감각을 일깨우는 데 가장 좋은 환경은 농촌이다. 농촌에서는 해가 어디서, 언제 뜨는지가 중요하다. 도시에서는 해가 언제 뜨는지보다는 몇 시에 뜨는지가 중요하다. 해라기보다는, 그래서 태양이라고 부른다. 태양에 관한 정보 역시 쓰이는 용도가 농촌과는 사뭇 다르다. 곡식을 키우기 위한 햇볕이 아니라 아이들은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때로는 태양의 지름까지 외우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농촌에서는 관계가 더 중요하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 자연과 자연의 관계, 그 관계가 제대로 맺어지면 풍성한 결실을 얻는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결실도 없다. 그 관계의 중심에 자연이 있다.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중심이다. 정확히 말하면 자연 속에 포함된 인간이다. 따라서 인간은 오만할 수가 없다. 자연의 순리를 배우고 자연의 사물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이것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결국 아이들은 이것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를 배운다. 타인을 존중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바로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것을 배운다. 도시에서 숨 가쁘게 경쟁하는 법을 가르칠 때, 이곳에서는 협력을 가르친다. 백과사전의 지식과 정보를 주입한다고 해서 얻을 수 없는 것을 아이들은 이곳에서 경험한다. 그것이 바로 자연의 위대함이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은 사물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법도 배운다. 큰 틀에서 사고하는 법을 배울 뿐 아니라 작고 미세한 곤충, 벌레, 잎사귀, 싹 들에서도 배운다. 이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을 깨닫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학원에서 문제 푸는 법을 열심히 배운다고 해서 결코 얻어지지 않는 지식을 얻는 방법을 아이들은 무의식 중에 배운다. 자연에서 배운 아이들은 그래서 주의 깊게 사고를 할 수 있는 힘도 그만큼 세다. 18세기 자연주의 사상가들은 바로 이런 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인간은 자연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공교롭게도 더욱 인간다워졌다. 그리고 자각하고 깨어났다. 그래서 근대 이성의 힘이 공장이 아니라 농촌과 자연에 나왔다는 농민들의 말을 부정할 근거를 나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취재를 마치고 석양으로 물드는 베르사유의 숲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나는 파리로 돌아왔다. 몸은 피곤했지만 왠지 정신이 맑았다.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마신 탓일 게다. 과연 지식으로 넘쳐나는 사회에서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많은 것을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소중한 것들이 자연 속에 널려 있다는 사실. 일상의 소소한 작은 것들, 특별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것들 속에 세상을 살아갈 지혜가 널려 있었다는 바로 그 사실이 나를 괴롭게 했다. 어쩌면 지식이냐 이해를 놓고 힘겨운 떼어내기를 하게 된 것도 그날의 경험 때문이 아니었을까.
지식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고 맛을 보며 확장된다. 하지만 마음이 결합되지 않고서는 진정한 이해에 이르지는 못할 것 같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는 넘쳐나는 지식의 세상에서 제 갈피를 스스로 잡게 만들 수 있는 이해의 힘의 필요한 것이 아닐까.
지은이: 김덕영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저자 / 다큐멘터리 PD / 서촌의 복합창조문화 공간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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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작가는 서촌 통의동에 있는 작업실 겸 까페, '김PD의 통의동 스토리'에서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독자들과 만나면서 창작 활동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