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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Oct 14. 2022

'혼돈의 시대, 진짜 적은 내부에 있다'

빌리 브란트가 사임한 진짜 이유

1974년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돌연 사임했다. 1970년 폴란드의 유대인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장면으로 전 세계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던 그의 갑작스런 사임으로 서독 정가는 술렁거렸다.



빌리 브란트 주변에 여자 문제가 복잡하고, 너무 여자를 좋아한다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나돌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시기였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을 향해 가해지고 있는 악성 루머 역시 비슷한 부분이 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실제로 빌리 브란트가 사임한 결정적 사유는 그의 최측근이자 비서직을 역임하고 귄터 기욤이 동독의 간첩이었음이 밝혀진 다음이었다. 실제 귄터 기욤은 장장 18 동안 동독의 슈타지(비밀첩보부) 요원으로 암약했다. 빌리 브란트가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1970년대 초에는 규모를   없는 막대한 서방의 정보가 동독으로 넘어갔고, 그것은 다시 모스크바로 전달되었다.


독일이 통일 되기 전까지 서독에서는 무려 5만 명의 동독 스파이들이 활동했다. 믿기지 않는 수치다. 그들은 어느 때나 '평화'와 '공존'을 내세웠다. 말 그대로 허울뿐인 거짓말들이었다.



베트남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했다. 패망 직전 베트남의 응우엔반 티우 대통령의 비서실장도 훗날 간첩임이 드러났다. 자유 베트남이 결코 전력 상에 밀리지 않는 무기와 전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북베트남에 패배한 이유는 남베트남 정권 내부에서 호치민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스파이들의 활약도 한몫을 했다.


베트남 패망 직전 미군이 제공한 F-5 전투기를 몰고 베트남 대통령 궁을 폭격한 남베트남의 조종사 응우옌 탄 트룽은 1969년 비밀리에 베트남 공산당에 가입한 군부 내 간첩이었다. 심지어 그는 1970년 미군의 지원 속에 미국으로 건너가 파일럿 훈련을 받고 남베트남 정예 파일럿으로 활동했다.


남베트남 야당 지도자들, 지방의 도지사들도 간첩이었다. 그들은 오랜 전쟁으로 지친 국민들에게 배후에서 평화를 강조하며 대립보다는 화해의 중재자를 자처했다. 그들 덕분에 남베트남에서 안보는 뒷전이 되고, 자유를 지키기 위해 애썼던 애국자들은 '전쟁광', '수구', '반동', '정신병자'라며 조롱을 당했다.


2022년. 놀랍게도 내 조국 대한민국에서도 이들과 유사한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진정한 가치를 수호하려는 애국자들을 '보수'니 '극우'니 하며 언론들이 대중들로부터 고립시킨다. 보수를 표방하는 국민의힘 국회의원 태영*, 하태* 등은 '북미수교'를 외치며 평화의 중재자를 자처하고 있다.


그 유명한 <대부>에서 돈 콜리오네가 아들 마이클에게 한 말은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명언이다. "화해와 협상을 하자고 나서는 놈이 배신자다."  전쟁의 위협을 가하는 김정은, 그리고 그와 평화 협상을 하자고 외치는 자들, 어찌 보면 그들이 가장 위험한 자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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