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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Jan 20. 2024

4.3에서 6.25까지

영화 '건국전쟁' 개봉 다이어리 10편

글. 김덕영(영화감독, 작가)


부산에서 있었던 영화 '건국전쟁'의 시사회를 마치고 다음날 곧바로 제주로 이동했다. 바닷바람이 심하게 불어서인지 비행기는 계속 연착됐다. 기다리는 사이 계속해서 전화벨이 울렸다. 어제 시사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교육자로 살아온 30년 인생을 반성한다는 한 여교사의 솔직한 고백이 유튜브로 방송된 이후 격려와 문의를 하는 전화들이었다. 사실 나 역시 영화를 보고 나서 그녀가 그런 말을 할 거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제가 30년 교직 생활하면서 오늘처럼 이렇게 후회되고 반성이 되는 날은 없었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이렇게 외면하고 있었다니... 진정 아이들에게 바른 지도자 이승만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데 대해서 너무너무 반성하고 후회하면서 이 영화를 내내 봤습니다."


어쩌면 그녀의 고백 속에는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영화 '건국전쟁'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386세대로서 철저한 성찰과 반성에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건 역사에 대한 무지였고, 이승만 시대에 대한 잔인한 폭력이었다.


장내에서 스피커를 타고 제주행 비행기 탑승이 시작됐다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시민들이 탑승게이트를 향하고 있었다. 최근 몇 년 사이 나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수준이 상당히 업그레이드 됐다는 느낌이 든다. 누구 하나 떠드는 사람도 별로 없다. 말 그대로 유럽의 도시를 여행할 때 느끼는 안락함, 세련됨, 그런 느낌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느낀다. 뭔가 또 하나 역사의 거대한 페이지가 한 장 넘겨지는 기분이라고 할까. 은근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 같은 게 느껴진다.


부산에서 제주까지는 45분. 짓궂은 날씨 때문인지 제주 공항에 다가갈수록 비행기는 심하게 흔들렸다. 창밖으로 구름에 둘러싸인 푸른 제주가 보이기 시작했다. 요즘 세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늘 제주에 도착할 때면 뭔가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 켠이 답답하다. 물론 4.3사태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1988년 민중가수 안치환은 노동자노래단의 '총파업가' 앨범에 <잠들지 않는 남도>라는 제목으로 4.3사건을 소재로 한 노래를 만들었다. 이 노래는 당시 노동자노래단의 앨범 '총파업가'에 처음 수록되어 대중에서 알려졌고, 안치환이 유명세를 타면서 더욱 많은 곳에서 불려졌다.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녁의 땅, 어둠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리. 아~ 아~ 아! 반역의 세열이여. 아! 통곡의 세월이여. 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이여.'


멜로디를 빼고 가사만 놓고 보면, 이 노래는 굉장히 살벌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첫 부분에 등장하는 낯선 단어 '이녁'은 제주도 방언으로 2인칭 대명사로 '그대'나 '당신'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제주에서 일어난 비극이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당신의 일이라는 일종의 '가르침' 같은 뉘앙스를 띄고 있다. 우리에게 신혼여행지를 광고하는 팸플릿에 늘 등장하곤 했던 아름답고 예쁜 노란 유채꽃이 피에 젖어 있다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리'에서도 붉은 피를 연상시키는 단어들 일색이다. 그중에서 '살 흐르는 세월'이란 표현은 뭔가 우리의 일상 언어 화법 속에선 잘 쓰지 않는 표현이다. 4.3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검붉은 피가 저녁 햇살에 저물듯이 세월은 흘렀지만, 그 피해자들의 원한은 시간과 무관하게 계속 기억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참고로 '살'이라는 단어는 백과사전적 용어로 '사람을 해치는 모질고 독한 귀신의 기운'을 뜻한다. 설마 하는 생각도 들지만,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생각 역시 지울 수 없다.


잘 생긴(?) 미남 운동권, 안치환은 대학 때부터 소위 날렸다. 정치적 이념이나 대의 따위엔 관심 없는 사람들조차도 안치환의 낮게 깔리는 목소리와 생긴 얼굴 때문에 운동권이 된 사람도 많았다. 안치환이 대학 총학생회 선거를 할 때, 상대편 후보는 그가 노래를 한 번 부를 때마다 수백, 수천 표가 날아간다고 한탄을 했다고 하니 그의 위세가 어느 정도였는지 실감이 갈 것이다.


'잠들지 않는 남도'는 국가기념일에 공식적으로 부르는 추모의 노래로 지정되려고 여러 번 시도가 이뤄졌다. 하지만 저렇게 살벌한 노래를 온 국민이 불러야 할까? 논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2018년 친북 좌파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거의 4.3 사건 희생자 추념식에 반드시 불러야 하는 노래로 지정이 된 듯하다.


'4.3부터 6.25까지, 누가 먼저 총을 쐈는가'


1980년대 미국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는 1950년 6.25한국전쟁을 가리켜 '내전'이라 정의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수많은 교전이 38도선 부근에서 있었기 때문에 누가 먼저 총을 쐈는가, 하는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다. 서울대 교수 박태균 역시 이런 '수정주의'에 입각해서 6.25한국전쟁을 본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대중강연과 TV방송을 통해서 '한국전쟁 최대의 피해자는 민중이고, 최대의 수혜자는 두 사람, 바로 김일성과 이승만이었다'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이런 자가 서울대 교수를 하고, 대중강연과 TV방송에서 단골, 인기 강사로 초청을 받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런 사고의 연장선에서 한국전쟁을 보면, 한반도에서 일어난 대립과 갈등은 그저 우연히 일어난 해프닝에 불과하다. 300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민족 최대의 비극도 김일성과 이승만 때문에 일어난 사건으로 희화화한다. 과연 사실이 그랬을까? 답은 당연히 아니오다.


1991년 소련이 무너지기 전까지만 해도 커밍스나 박태균의 말은 진실처럼 보였다. 하지만 소련 붕괴 이후 미국으로 공개된 수많은 비밀문서들 속에는 한국전쟁이 명백한 스탈린과 김일성의 침략전쟁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자료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스탈린은 김일성에서 남한을 침략할 목적으로 탱크, 장갑차, 대전차포 등 남한을 압도할 무기들을 제공하고 군대를 훈련시켰다. 명백한 침략 작전이었다. 그런 침략자를 두둔하는 박태균 같은 역사 수정주의자들이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자체가 모순이다. 그것이 친북 좌파 주사파 정권이었던 문재인 정권이 아니었으면 그런 자가 국민을 상대로 대중 강연을 하는 게 가능하기나 했을까.


참고로 한 마디만 더 하자면, 박태균 교수는 이승만 정권에 대한 모욕과 비난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서울대 교수란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너무 공부를 안 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한 TV방송에 나와서 '이승만은 언제나 선거에 기호 1번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사람들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기호 1번, 이승만을 찍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과연 그랬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승만은 선거에 나가 단 한 번도 '기호 1번'을 배정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승만이 등장하는 선거 포스터 어디에도 서울대 교수 작태균이  주장하는 '기호 1번'을 배정 받은 적이 없다


박태균 교수는 왜 이런 거짓말을 했을까? 둘 중 하나가 아닐까? 그냥 역사에 대해서 공부를 안 하고 무지하던가, 아니면 악의적인 중상모략이다. 이승만의 제왕적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은밀한 술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답은 전자에 있다.


'북한에서 보는 4.3사건'


북에서는 4.3사건을 김일성과 북로당, 그리고 남로당 빨치산 세력의 합작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래서 국회의원 태영호는 '4.3은 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의 선거를 무조건 파탄시키라'는 김일성의 지시를 받은 남로당 박헌영이 제주도당 김달삼을 통해 일으킨 반란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엔이 인정한 합법적 선거를 폭력과 무장 투쟁으로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일어난 것이 바로 4.3사건이라는 점이다.


영화 '건국전쟁'을 취재하면서 당시 제주도에 뿌려졌던 삐라를 조사한 결과, 당시 제주도 곳곳에 뿌려진 폭동을 선동하는 남로당 계열의 삐라들은 북한의 주장과 놀랍도록 흡사했다. 게다가 북한 강동이란 곳에서는 남로당의 폭력 무장 투쟁을 지원하는 일종의 군사학교가 세워져 활동을 하고 있었다. '강동정치학원'이라 불린 당시 군사 학교의 목적은 오직 하나, 남쪽 출신들을 북으로 불러와서 군사 교육을 시켜 다시 남한으로 내려 보내는 것이었다.


4.3사건이 무장 투쟁으로 순식간에 번진 것에는 북로당과의 대결에서 뭔가 한 건 크게 터뜨려서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고자 했던 남로당 박헌영의 욕망도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남로당 무장 투쟁을 지휘했던 김달삼은 350여 명의 무장 병력을 이끌고 제주도 내 12개 지서를 급습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곧이어 경찰과 우익 단체, 인사들에 대한 테러가 자행되었다.


4.3사건으로 공식적으로 제주도민 14,00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 선거함을 지키던 공무원과 경찰 등 1,200여 명의 말 그대로 멀쩡한 대한민국 국민이 사망한 것 또한 잊히면 안 될 것이다. 이렇게 무고한 희생자 수만 강조하다 보니, 4.3사건이 대한민국의 선거를 방해하기 위한 무장 투쟁이었다는 진실은 어둠 속에 묻혀지고 있다. 그런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아~ 아~ 아! 반역의 세열이여. 아! 통곡의 세월이여. 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이여', 안치환은 '반역의 세월'이라 노래하면서 4.3사건이 무장 투쟁 세력들의 봉기였다는 것도 인정한다. 이제 차분하게 그 시대를 관통했던 '반란'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 성찰해 봐야 하는 순간이다. 왜 수많은 제주도민들이 통곡했어야 했는지, 누가 그 반역과 비극의 사건을 시작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때가 됐다.


6.25한국전쟁이나 제주 4.3사건이나, 둘은 다르면서도 비슷한다.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하고, 자유 민주주의로 번영하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부정한 사건이라는 점에서는 다름이 없다. 이제 통곡의 제주도는 고요의 땅으로 평안한 잠이 들 때다. 부디 이 땅에서 숨져간 수많은 영혼에 하느님의 평안과 축복이 함께 하길 기원한다.


2024년 1월 20일, 제주시 한복판 CGV제주 극장에서 영화 '건국전쟁'이 최초로 상영됩니다. 작지만 매우 의미 있는 변화의 발걸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후원: 국민은행 878301-01-253931 김덕영(다큐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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