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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Oct 15. 2016

유럽의 한 오래된 성당 서점 이야기

김PD의 인문학 여행 (24)

‘유럽의 한 오래된 성당 서점 이야기'


김PD의 인문학 여행 (24)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은 아마 알 것이다. 첫 손님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하루 종일 손님들의 유형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그날도 그랬다. 소위 ‘개시’라고 하는 첫 손님으로 외국인이 들어왔다. 그러더니 몇 시간의 차이를 두고 계속해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들어왔다.


이상하리 만큼 우리 가게는 유러피언들이 좋아한다. 그들은 늘 가게 안에 들어올 때면 약간은 상기된 표정을 짓는다. 한 번은 ‘와! 여긴 우리집에 온 것 같은데!’라고 외치면서 가게 안에 들어온 프랑스 남자도 있었다. 아무튼, 그날은 외국인 손님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계속해서 몰려들었다. 그들 중에 내가 오늘 말하려고 하는 네덜란드에서 왔다는 한 쌍의 남녀가 포함된다.


무더위도 지났고 어느덧 서늘한 기운도 감도는 저녁나절이었지만, 두 사람의 몸에서 땀냄새가 났다. 아마도 서촌 일대를 하루 종일 걸어 다닌 모양이다. 주문한 맥주와 자스민 차를 서빙하고 나서  돌아서려는데, 남자가 말을 건다.


“여기 분위기 참 좋네요. 특히 여기 이 마당에서 밤하늘을 볼 수 있어서 더 좋네요.”


“감사합니다. 사실 나도 그 자리에 앉는 걸 좋아해요.”


농담 한마디 던졌을 뿐인데, 재밌는지 깔깔거리며 웃는다. 아마 주인인지 손님인지 구분이 잘 안 되는 내 행동 탓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형식적인 걸 따지는 걸 별로라고 생각하다 보니, 늘 손님으로 온 사람들과 그냥 뭐든 한 두 마디라도 떠드는 걸 좋아한다. 그날도 그렇게 그들과의 대화가 시작됐다. 그리고 그들 덕분에 난 2009년 ‘글쓰는 작가가 한 번 되어볼까’, 하는 마음을 품고 떠났던 유럽의 한 낡고 오래된 성당으로 잠깐 동안이지만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내가 이제까지 본 적 없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의미 있는 성당 서점으로 말이다.


2008년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살고 있을 때였다.  아주 우연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는 기사를 봤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라는 곳에 있는 성당 하나를 개조해서 만든 서점이었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서점들을 찾아 발굴했다는 기획 자체가 신선했다. 아름다운 까페나 음식점, 관광지를 소개하는 기사는 많이 봤어도, 아름다운 서점을 소개한다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책과 서점, 누구는 사양 산업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사회가 발전하고 성숙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책과 그 책을 읽는 문화라고 믿는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 기사를 읽고는 즉석에서 ‘저곳에 꼭 가리라’, 고 속으로 다짐을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꼭 1년이 지난 2009년 나는 여행 가방을 싼다. 목적지는 마스트리히트에 있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바로 그 서점을 향해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유럽의 고풍스러운 도시 마스트리히트. 저녁이 다 되어서야 그곳에 도착했다. 유럽의 어느 도시나 그렇지만 저녁이 되면 왠지 모르게 쓸쓸하고 집에 빨리 들어가고 싶어 진다. 마스트리히트의 첫인상도 그랬다. 들어가 편히 쉴 집은 없지만, 왠지 어디라도 들어가서 따듯한 차 한 잔을 마시면서 푹신한 소파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솓았다.


사실 1999년 이 도시에서 유럽 연합의 모태가 되었던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체결되었을 만큼 하나의 유럽을 만들고자 노력했

유러피언들에게는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었다.


성당 서점을 찾기란 어렵지 않았다. 여느 유럽의 도시처럼 도시 한가운데 시장과 광장이 있고, 그곳에서 어떤 방향으로 눈을 돌려도 찾을 수 있는 것이 성당 첨답 위에 매달려 있는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을 지배했던 기독교가 급속히 몰락하고 있는 것 또한 오늘날 유럽의 현실이다. 교회를 가지 않는 사람들보다도 아예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비율이 급속히 늘고 있다.


사람들은 서점의 이름을 성당의 이름 따서 ‘도미니카넨 북스토어’로 정했다. 성당을 개조해서 서점으로 리모델링을 하는데 3년이 걸렸다. 성당에서 서점으로 모습이 바뀌는데 걸린 시간 치고는 꽤 긴 시간이 걸린 셈이다. 우리 같았으면 3개월이면 끝났을 일을 왜 저들은 3년씩이나 걸려가면서 했을까? 그것이 성당 앞에서 내 머릿속에 떠오른 첫 번째 궁금증이었다.


사실 이 성당의 운명은 좀 비참했다. 사람들이 교회를 찾지 않기 시작하자 성당이 종교적 성소로서의 기능을 상실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언제부터 성당이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는 종교적 기능을 잃어버렸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이가 없었다. 언제부턴가 성당은 마을의 창고가 되었다. 축제가 끝난 뒤 무대 장식물을 보관하는 곳이 되기도 했고, 마구간에서부터 자전거 보관소, 심지어 권투경기가 열리는 링이 만들어지도 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도대체 이 성담 서점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서점으로 리모델링 되기 전 성당의 모습. 모터쇼 전시장, 권투경기장, 창고 등으로 성당은 활용되고 있었다.


'낡고 오래된 것, 그 안에는 뭔가가 있다.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에는 고유한 이야기가 있다.'


옛 성당의 나무로 만든 육중한 현관문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곳을 지나자 순간 어두컴컴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머리 위로는 수십 미터 높이의 천장이 사람을 압도한다. 그 웅장한 성당 안에 가지런히 진열된 책들이 조명빛 아래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그 성당 서점을 본 첫 느낌이었다.


노랗게 색이 바랜 우윳빛 대리석 벽면,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천장의 프레스코 그림, 햇빛을 받아 형형색색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 비록 십자가는 사라졌지만 성당의 내부 그대로다. 무려 800년 전의 모습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었다.


이곳을 성당에서 서점으로 리모델링하는데 공사비만 600만 유로가 들었다. 환율로 계산하면 74억 원 정도의 막대한 금액이다. 원래는 이렇게 많은 공사비가 들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공사 기간이 3년이나 걸린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성당 공사가 시작되고 토질 기반 작업을 위해 지하실 바닥을 파던 인부가 갑자기 소리를 쳤다. "여기 사람의 유골이 있다!"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성당 지하실 바닥에 사람의 유골이 발견되다니! 비슷한 시각, 천장 벽면 공사를 맡고 있던 작업자가 작업 중지를 요청한다. 이유는 오랜 세월 방치된 벽면의 떼를 제거하는 순간, 벽에서 프레스코 그림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서점 측은 즉시 문화재 관리국의 전문가들에게 조사를 요청한다. 그리고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발견된다.


벽면에 그려진 프레스코화가 유럽에서도 몇 안 되는 중세 철학의 아버지, 토마스 아퀴나스의 일대기를 형상화한 그림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무려 1337년 경에 그려진 그림이었다. 성당 지하실에서 발견된 유골과 함께 이 두 가지 사실로 인해서 서점 측은 성당 공사의 전면 중지를 결정한다. 버려지고 쓸모없을 거라 여겨졌던 곳에서 뜻밖의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서점도 분명 영리를 추구하는 곳이다. 그래야 영업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애초에 성당 서점의 설계도는 최대한 책을 많이 쌓을 수 있도록 설계가 되었을 것이란 사실을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놀랍게도 서점 측은 기존의 설계도를 전면 폐기하고 새로운 설계도를 그리기 시작한다. 전문가의 자문을 통해서 최대한 성당의 모습을 훼손하지 않는 방향으로 리모델링이 변경된다.


신과 인간, 성경과 믿음이라는 주제를 놓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식을 탐구했던 수도사들, 그들이 간절히 기도했던 평화와 안식의 터전. 책을 팔아 사람들에게 교양과 지식을 제공하겠다는 서점이 지성의 상징이기도 했던 중세의 성당을 훼손할 수 없다는 것이 공사 변경의 이유였다.


* 변경 전 1차 설계도(왼쪽)와 공사 중단 이후 새롭게 그려진 2차 설계도(오른쪽)

최대한 성당의 벽면을 훼손하기 않기 위한 노력의 흔적들이 돋보이고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로 인해서 서점 안에 책을 진열할 수 있는 공간은 축소되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기업은 또 무엇을 위해 돈을 버는가? 나에게 그 오래되고 낡은 성당 서점은 내가 살아왔던 그동안의 삶의 행적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아등바등 뭔가를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 했던 이기적인 욕망들, 내 안의 자유를 구속해야만 남을 이길 수 있었던 자기 파괴적인 경쟁심, 이런 것들보다 내 심장이 쿵쿵 뛰는 곳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어쩌면 그 성당 서점에서 내 인생의 한 페이지가 넘겨졌던 것은 아닐까. 새로운 페이지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뒤로부터 그렇게 그곳은 나에게도 마음의 고향이 되었다. 시간은 흘러 내가 성당 서점을 여행한 지도 어언 8년이 되어간다. 늘 내 마음속에는 아름답게 남아 있는 곳. 겉이 아름다워서가 아니었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었기에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곳이었다. 난 그런 게 좋았다.


이제 다시 가게에 들어와 맥주와 자스민 차를 마시는 네덜란드 두 남녀에게도 돌아와 보자. 간혹 우리 까페 안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그건 우연이라고 할 수도 있고, 운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일들이다. 하필 그날 그들은 똑같은 걸 두 번 주문했다. 한 병의 맥주, 한 잔의 자스민 티를. 그걸 한 번 주문하지 않았으면 더 이상 대화도 길게 나누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자스민 티에는 따듯한 물만 부으면 되는 것인데, 그걸 또 한 번 더 주문한다는 건 아무래도 흔한 일은 아니었다.


"나 여기 너무 좋다." 자스민 티를 마시던 여자가 말을 했다.


"사실 하루 종일 걸어 다녔는데, 여기 너무 편해요." 그녀의 말에 나도 뭔가 한 마디 대답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여행이 원래 그렇잖아요. 많이 걸어 다녀야 하고..."


"당신도 여행 좋아하나요?"


"그럼요. 가게 하기 전엔 얼마나 싸돌아다녔는데..."


"제일 좋아하는 곳은 어디였어요?"라고 여자가 물었다.


"하나 있죠. 내 마음속의 고향 같은 곳..."


"어딘데요?", 다시 여자가 물었다.


"네덜란드의 작은 도시, 거길 가고 싶어서 일부러 일거리도 만들고 별짓 다했죠."


"어! 우리 네덜란드에서 왔는데..."


"그래요? 그럼 마스트리히트 알아요?"


두 사람이 서로 눈을 번갈아 바라본다. 그러더니 여자가 대답을 한다.


"나 거기서 왔어요! 거기서 나고 자랐어요. 성당 서점에서 맨날 커피도 마시고 그러는 걸..."


.......


때로는 말이 필요 없을 때가 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나누고 싶은지 알 수 있을 때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서점은 그렇게 다시 내 마음속에 작지만 소중한 인연을 하나 선물했다. 아마도 난 그 성당 서점을 다시 가지는 않을 것 같다. 이유는? 그냥 지금 이대로가 너무 좋다. 사람은 때론 추억만으로도 남은 인생을 뚜벅뚜벅 행진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 성당 서점이 나에겐 그렇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히에서 온 카트리나 씨와 발음이 무척이나 어려웠던 브루희 씨 커플. 내가 쓴 <유레일 루트 디자인>이라는 책에 실린 성당 서점의 사진들을 보여주자 가방에서 스마튼폰을 꺼내 스마튼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성당 서점이 원래 마구간과 권투경기장이었다는 건 자기들도 몰랐다면서...



글: 김덕영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하루키에겐 피터캣, 나에겐 통의동 스토리가 있다> 저자 / 다큐멘터리 PD




김덕영 작가 신간, 서촌 골목길 까페 3년의 기록. 그는 인적도 드문 그 골목길에서 도대체 무엇을 찾으려 했는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늦은 나이에 두 번째 인생에 도전해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중년의 사랑을 그린  장편 소설, <내가 그리로 갈게>, 김덕영 지음
현재 작가는 서촌 통의동에 있는 작업실 겸 까페에서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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