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슬 메모리(muscle memory)에 관하여
김PD의 인문학 여행 (25)
요즘 나는 직관에 관해서 관심이 많다. 어쩌면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2탄은 직관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로 구성될지 모르겠다. 그렇게 직관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몸'에 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직관이란 논리나 분석 달리 경험이 쌓여야 가능한 것이고, 경험이 쌓인다는 것은 일종의 오랜 시간 몸에 축적된 데이터의 활용을 말한다. 결국 거창하게 직관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건 결국 몸에 밴 정보들이 한순간에 폭발적으로 화학작용을 일으키면서 판단에 이르는 과정을 말한다.
직관을 때로는 쉽게 '감(感)'이라 말하기도 한다. 무엇이 됐든 정확도를 높이는 건 필수적이다. 맞지도 않는 '감(感)'이나 '직관'만 믿고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판단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좀 더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 더 오랜 시간 세상을 살아볼 필요도 있다. 나이 든 사람들이 직관에 의지해서 지혜롭게 세상사 어려움을 헤쳐나간다는 건 결국엔 자신이 살아왔던 경험들 속에서 삶의 갈피를 잡아간다는 뜻이다. 물론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들을 거쳤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시행착오의 경험들이 많을수록 정확도는 높아진다.
특히 직관이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이 있다. 순간적이고 위급한 상황이 바로 직관의 가치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생각하고, 고민하고, 논리의 근거들을 탐색해서 어떤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은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수백 명의 승객을 태운 비행기가 추락을 하고 있는데, 깊은 생각에 빠져 원인과 결과를 분석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건 나중 일이다. 일단은 신속하게 대처방법을 찾고, 안전하게 비행기를 착륙시키는 일이 급선무다. 그런 순간에 결정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이 오랜 경험에 축적되어 있는 직관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평범한 일상의 삶에서도 직관이 발휘될 때가 있다. 특히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이 그렇다. 사랑을 논리나 데이터 분석처럼 할 수는 없다. 사랑이란 말 그대로 느낌을 따르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는 직관이 필요하다. 연애를 잘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바로 순간순간 그런 직관적인 판단력이 빠른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무엇보다 그 감정에 대한 믿음의 수치가 높다. 한 마디로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직관력이 있는 것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많다. 마음에 드는 상대방이 눈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사랑이 떠나가는 일이 어디 한두 번인가.
그렇다면 이 직관력이라는 것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발달되는 것일까? 오늘 나의 관심사는 바로 그것이다.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직관은 단지 머리가 아니라 몸에 축적된 경험으로부터 상당 부분이 나온다. 직관력이 높은 사람들이란 결국 몸에 쌓인 경험의 데이터들이 많은 사람들을 뜻한다.
과학기술 문명이 발달하면서 오늘날 우리는 예측가능성이 폭발적으로 증가된 시대에 살고 있다. 미리 진단하고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 조금은 뻔한 세상, 재미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경험의 데이터들이 무한대로 쌓여 있고, 그 데이터를 꺼내 쓰는 일도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그 정보의 풀장 속에서 마음껏 헤엄칠 수 있다. 눈으로 보고 머리로 판단할 수 있는 지식들이 넘쳐 난다. 반면에 몸으로 직접 부딪칠 수 있는 것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단지 사고력에 의지해 이해한 지식과 몸으로 치고받고 하면서 경험한 축적된 삶의 지혜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농사 같은 것을 봐도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예전 같으면 농사를 짓기 위해서 마을 촌로에게 모든 것을 의존해야 했다면, 지금은 수 조원 대의 슈퍼컴퓨터가 작동되는 기상청의 일기예보를 의존하면 된다. 언제 어떻게 모내기를 해서, 파종을 하고, 가물거나 홍수가 났을 때 어떻게 신속하게 대처를 해서 농사를 망치지 않을 수 있을지, 그런 문제들은 모두 오랜 경험을 지닌 촌로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사회가 촌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예측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나이 든 사람들의 역할, 즉 몸에 밴 오랜 경험과 지혜에 의존할 필요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뜻도 된다. 그것이 지금 고령화 시대를 맞아 젊은 층과 노년층 사이에 깊고 넓은 갭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농사를 지어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지만, 벼농사 같은 걸 단지 인터넷에 있는 정보와 지식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가변적인 상황과 어려움들을 극복해야 하고 그건 직접 벼농사를 지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귀농을 하고 농사를 처음 지어 본 사람들이 마을 촌로들의 경험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다시 몸과 사랑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몇 년 전 나는 유럽의 여러 도시들을 동시에 취재한 적이 있다. 특정한 주제나 목적을 정해서 떠난 취재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유럽의 고유한 정서와 라이프 스타일을 몸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방랑자처럼 이 도시 저 도시를 여행했던 것이다. 그때 '자전거의 천국'이라 불리는 네덜란드의 암스텔담을 취재할 때 얘기다. 인구보다 자전거가 더 많은 나라 네덜란드, 그중에서 암스텔담은 다른 어떤 교통수단보다 자전거 활용에 적극적이다. 그러다 보니 자전거를 타고 데이트를 하는 연인들을 길거리에서 만나는 일도 흔히 있다. 한 손에 아이스크림 콘을 들고 같이 나란히 달리는 자전거를 탄 연인들, 비슷한 옷을 맞춰 입고 달리는 연인들도 있다. 그중에서도 내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은 나란히 손을 잡고 자전거를 타는 연인들이었다.
암스텔담에 도착하고 나서 난 수없이 몰려드는 자전거들의 행렬에 적지 않게 놀랐다. 하지만 저 한 장의 사진에 담겨 있는 연인들을 우연히 길거리에 만난 것보다 더 강렬한 것은 없었다. 일단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같이 손을 잡거나 어깨동무를 하고 데이트를 하는 연인들은 흔히 봤지만, 저렇게 서로 손을 잡고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일단 저렇게 자전거를 타기 위해서는 두 사람의 자전거 타기 실력이 비슷해야 한다. 자전거라는 게 조금만 균형이 무너져도 금방 쓰러지기 마련이다. 두 사람이 상대방의 균형과 보조를 맞춰가면서 같은 방향, 같은 거리를 유지하면서 달려가야 한다. 한쪽이 너무 느려서도 안된다. 또 너무 빨라서도 안된다. 말 그대로 서로를 배려하면서 사랑하는 마음이 균형을 맞춰 달려가야 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자전거 문화에 익숙한 암스텔담 시민들이기에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도 자전거를 타면서 사랑을 나누는 것이리라.
그들의 사진은 그렇게 훈훈한 느낌과 함께 내 마음속 한 구석을 차지했다. 귀국을 한 후, 늘 그렇듯이 바쁜 일상이 시작되면서 나는 사진 속 연인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러다 우연히 연인들이 서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하나 찍을 일이 있었다. 뮤직비디오처럼 조금은 상황과 분위기를 연출해야 하는 촬영이었다. 그때 머릿속에서 암스텔담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연인들이 떠올랐다. 독특하면서도 사랑에 대한 젊은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휴대폰으로 몇몇 사람들을 불러냈다. 물론 자전거도 함께. 그렇게 섭외한 남녀 한 쌍에게 암스텔담에서 봤던 손을 잡고 달려가던 데이트족 이야기를 들려줬다. 뭐 별로 어려운 주문도 아니었다. 그냥 자전거를 탄 채로 서로 손을 잡고 달려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날 촬영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진 속 남녀처럼 두 사람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달려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자전거 타기의 실력이 서로 비슷하지 않으면 저런 분위기가 나올 수 없다. 자전거 타기라는 게 어느 한쪽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다른 쪽이 보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한 손으로 자전거 핸들을 잡고, 다른 한 손을 상대방에게 뻗어서 서로 손을 잡는다는 것은 자칫 자신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로맨틱하고 독특한 감성을 표현할 것 같았던 자전거 타면서 서로 손을 맞잡는 장면을 촬영하는 일은 어쩔 수 없이 다른 날로 연기가 됐다.
나는 그날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사랑의 감정이란 것은 어디에 축적되는 것일까? 생리학적으로 봐서 감정이란 것도 결국엔 두뇌 속 어느 한 부분의 기록된 신경세포 간의 회로 속에 기록된 것이겠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에는 '균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느 한쪽만의 일방통행식 질주만으로는 완주가 불가능한 1인 3각의 경기다. 그래서 사랑에는 서로의 몸에 함께 기록될 수 있는 경험들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서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점점 희박해져 가는 오늘날에는 사랑이 몸이 아니라 머리로 축적된다. 그렇게 기록된 것은 아무리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려고 해도 사랑의 균형을 맞추기 어렵다.
암스텔담에서 내가 만났던 두 손을 잡은 채 자전거를 타고 나란히 달려가던 한 쌍의 남녀처럼 사랑도 몸에 기록된 균형 감각이다. 그런 균형 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는 건 이성적으로 가능하겠지만, 그게 직접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것을 보장하진 않는다.
결국 자전거를 같이 손잡고 타고 갈 수 있는 힘은 논리가 아니다. 부단한 노력과 연습이다. 같이 할 수 있는 경험들, 그것이 자전거 함께 타기의 비결이다. 그리고 한 번 그렇게 몸에 기록된 사랑의 회로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몸에 기록된 정보를 활용하는 것이 훨씬 단순하고 정확도를 높이고 있다는 연구 결과 하나를 소개하면서 오늘 글을 마치겠다. 2007년 프로 골프 선수들과 초보자들이 각각 공을 치는 순간 뇌의 반응을 살펴본 연구가 있었다. 겉으로 봐서는 다를 것 없는 행위인 골프의 티샷에서도 프로와 아마추어의 뇌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되고 있었다. 아마추어 골퍼들이 프로 골퍼들에 비해서 스윙을 할 때 훨씬 많은 뇌의 부위를 사용하고 있었다. 한 마디도 생각이 많은 것이다. 연습장에서 코치한테 배웠던 것을 머릿속에서 그대로 다시 복기하는 것과 같은 현상일 것이다.
'몸에 힘을 빼고, 하체에 힘을 주고, 두 손을 가지런히 잡고, 어깨에 힘을 빼고 어깨 회전을 충분히 하면서 마치 골프채를 멀리 날려버리듯이 스윙을 해야...'
반면에 프로 골퍼들의 경우에는 뇌가 훨씬 적게 작동한다. 머릿속을 비우고 무념무상,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가볍게 스윙을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프로 골퍼들처럼 스윙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동작들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몸의 동작 하나하나를 지배하는 두뇌의 신경망들이 적절하게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면서 작동해야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두뇌의 신경망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노력이 있었을 것이란 점이다. 우리가 보는 그들의 스윙 한 번은 우리가 볼 수 없었던 부단한 반복과 연습의 결과란 점이다. 그리고 그렇게 조화롭게 기록된 몸의 기억들을 통해서 승리의 영광이 뒤따른다.
사랑의 이야기나 자전거 타기나, 그리고 골프 스윙이나 모두 어찌 보면 다른 것 같지만 결국엔 하나의 공통점을 지닌다. 끊임없는 반복과 체험, 실천과 행동을 통해서 최고의 순간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위해 당신의 몸을 준비할 때이다. 사랑에도 자전거 타기, 골프처럼 '사랑의 근육'이 필요한 것 같다.
글: 김덕영 (작가 / 다큐멘터리 PD)
왼쪽부터 신간 <하루키에겐 피터캣, 나에겐 통의동 스토리가 있다>, 중년들의 사랑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내가 그리로 갈게>, 그리고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 이 모든 책들은 작가가 직접 원고는 물론이고 본문과 표지 디자인까지 해서 완성시켜낸 조금은 수공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책들이다. 1인출판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기 위한 실험들이었다.
현재 작가는 서촌 통의동에 있는 작업실 겸 까페에서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하면서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