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에겐 피터캣, 나에겐 통의동 스토리가 있다'
* 이 글은 제가 이번에 발표한 신간 <하루키에겐 피터캣, 나에겐 통의동 스토리가 있다>에 들어있는 프롤로그와 어제 만났던 한 사람과의 인연을 정리한 글입니다.
작년 봄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한 장의 일러스트를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게 현관을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사진이 지니지 못하는 감성, 오래되고 낡은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작가의 마음이 담긴 그림이었습니다. 1년 넘게 묵히고 있다가, 이번에 신간을 내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그림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려주신 분의 마음이 따듯하게 느껴져서 그걸 책에 그대로 옮기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서 이번 책에 그분이 그렸던 일러스트가 한 페이지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삭막하고 거칠어져 가는 소셜 네트워킹 담론의 세계 속에서 이런 만남은 사람을 참 기분 좋게 해주네요. 어느 이름 모르는 한 분의 댓글처럼 말이죠.
‘이런 인연 참 좋다.’
'나의 통의동 다이어리'
서촌, 통의동에서 글쓰는 PD가 된 지 벌써 3년이 되어가고 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처럼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지 못하는 것을 빼면, 나머지는 즐겁고 만족스러운 생활들이다. 무엇보다 글을 쓰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다. 가끔은 손님인지 친구인지 경계가 불분명해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까페라는 공간은 가끔씩 그런 모호하면서도 인간적인 관계를 허용하는 맛이 있다. 그게 내가 까페를 만든 이유이기도 했다.
사르트르는 ‘까페는 자유를 향한 길’이라 표현했다. 아마도 책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쓰기에 안성맞춤인 까페의 특성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 아닐까 싶다. 그건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새로운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기록에 남기기로 했다. ‘나의 통의동 다이어리’라는 제목의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낮에는 커피를 내리고 밤에는 와인을 서빙하면서 틈틈이 글을 썼다. 그러다가 우연히 장편소설 한 권을 쓸 때의 얘기다.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글쓰기도 일종의 리듬이라서 뭔가 가슴에 차오르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를 잘 골라서 리듬을 타야 글도 잘 써지고 효율성도 높다. 그런데 어김없이 그런 순간이면 손님이들어온다. 주문도 넘친다. 그때는 어쩔 수 없이 글쓰기를 멈추고 까페 사장으로 돌아와야 한다. 문제는 그다음에 다시 까페 사장에서 글쓰는 작가로 돌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 번 집중력과 리듬감을 잃어버리면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한 법. 글발이 올라 한창 글쓰기에 속도가 붙었을 땐 야속한 느낌도 든다.
그래서 고민고민하다 미친 척하고 테이블 위에 표지판 하나를 세웠다. “Sorry, I'm writing. becoming Haruki!”(‘미안합니다. 글쓰는 중입니다. 하루키가 되자!’)라고 큼지막하게 글씨도 적었다. 재즈바를 운영하던 시절의 하루키 사진도 그 안에 붙였다. 남들 눈에는 이상하게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진짜 절박한 상황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덕분에 나는 첫 장편소설 <내가 그리로 갈게>를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사실 하루키도 전업작가로 등단하기 전까지 무려 7년 동안이나 도쿄에서 재즈바를 운영했다. 그 재즈바 이름이 바로 '피터캣'이었다. 애초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하다 보니까 하루키와 비슷한 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단 그의 책 읽기를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건 그의 리듬감이다. 아마도 그 리듬감은 도쿄에서 재즈바를 운영하면서 몸으로 체득한 것들일것이다. 나의 경우엔 하루 종일 까페에 앉아 재즈 뮤직을 듣고 있다. 벌써 3년째이지만, 다행히 아직까지 지겹진 않다.
요즘처럼 책 쓰는 일이 돈 안 되고 미래가 캄캄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난 글쓰기가 즐겁고 재밌다. 사건의 인과관계를 사실로 추적해야만 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롭다. 하루키에게‘피터캣’이 있었다면, 지금 나에게는 ‘통의동 스토리’가 있다. 그처럼 까페를 운영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사람들을 통해 세상을 배우는 재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하루키는 나의 롤모델이다. 전업작가 '하루키'를 꿈꾸며 하루하루 일기 형식으로 쓴 글들이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이 책을 쓴 이유 하나 더...'
이 책을 쓰게 된 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불황의 깊은 터널을 지나 면서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자영업자들이 가게 문을 닫고 영업을 포기한다. 작가를 꿈꾸며 글을 쓴다는 것 역시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두려운 일이다. 난 어쩌면 남들이 안 된다고 하는 이 두 가지 일들을 모두 선택했다. 그것도 인적이 드문 서촌, 통의동의 오래되고 낡은 골목길에서 말이다. 가치로운 것들을 좀 명예롭게 지켜낼 수는 없는 것일까? 결국 그것이 세상에 대한 나의 질문이었다.
유동인구도 별로 없는 골목길에서 이렇게 3년 동안이나 우리 가게가 살아남았다면, 거기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추억을 소중히 나누려 했던 마음, 그걸 위해서 남들은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던 다양한 실험들을 나는 이 공간 안에서 진행했다. 그 도전적인 실험과 시도들이 바로 이 책의 내용이다. 나는 이 한 권의 책이 우리처럼 조금은 비상식적이고 도전적인 방식으로 자신만의 개성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의 근거가 되었으면 좋겠다.
'모든 책에는 고유한 운명이 있다.' 그 말처럼 사람이 살고 생활하는 모든 공간도 저마다의 가치와 운명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서촌의 작은 골목길에 자리 잡은 우리 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책에 기록된 일상의 소소한 기억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실하게 기록하려고 애썼다. 그것이 이 공간을 통해서 만나고 헤어졌던 사람들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이 책의 기둥이 되었다. 다시 한 번 이자리를 빌려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만약 지금 이 한 권의 책을 읽으며 골목길 안쪽에서 벌어지는 속닥거리는 이야깃 소리가 들려온다면, 그건 당신도 서촌의 골목길 속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글: 김덕영 (작가 / 다큐멘터리 PD)
왼쪽부터 신간 <하루키에겐 피터캣, 나에겐 통의동 스토리가 있다>, 중년들의 사랑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내가 그리로 갈게>, 그리고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 이 모든 책들은 작가가 직접 원고는 물론이고 본문과 표지 디자인까지 해서 완성시켜낸 조금은 수공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책들이다. 1인출판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기 위한 실험들이었다.
현재 작가는 서촌 통의동에 있는 작업실 겸 까페에서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하면서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중정 마당은 하늘을 볼 수 있다. 구름과 바람을 맞이할 수 있고, 밤하늘에 뜬 달과 별을 보며 와인 한 잔 기울이는 맛도 있다. 그래서 요즘 꽂혀 있는 타임랩스 촬영에 도전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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