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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Nov 09. 2016

최고는 기다리는 법을 안다

'김PD의 인문학 여행' (28)

'김PD의 인문학 여행' (28)


조금은 단정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난 그 나라 사람들의 특정한 기질이 DNA를 타고 유전되고 있다고 믿는 편이다. 보통은 그런 우수한 유전적 형질들이 강물이 흘러가듯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면서 그 나라만의 고유한 사회문화적 정체성이 생긴다. 우리가 보통 '잘 산다'고 하는 나라 사람들, '잘 나간다'라 부러워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고유한 특성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잘 나가는 사람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기다리는 법'에 정통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프랑스 엄마들이 우월한 이유, 그들은 아이들이 혼자서 설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법을 알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남자들이 연애 박사가 된 이유, 그것은 여자들이 언제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에게 다가오는지, 기다리는 법을 알기 때문이다.'

'일본 과학의 힘, 그 바탕에는 기다리는 법에 있다.'

'미국 스포츠 교육의 파워, 그것은 선수가 최고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힘이다.'

'영국의 디자인 파워는 뭘까? 그들은 세계를 기다린다.'


이 5가지 명제에 대해서 나는 나름의 논리가 있다. 물론 주관적인 견해라서 그걸 남들에게 설득시키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일종의 나 자신을 위한 삶의 지침서 같은 것들이다. 그걸 보면서 기다리고 참는 것, 인내하는 것의 소중함을 마음속으로 되새긴다. 적어도 다큐멘터리 피디로 오랜 생활을 하면서 취재와 여행으로 얻은 생활 속의 발견 같은 것이다.  


솔직히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난 관심거리가 '집단'에서 '개인'으로 이동했다. 몰려다니는 것은 무조건 질색이다. 획일화된 것보다는 왠지 이것저것 알록달록 섞여 있는 것을 볼 때 마음도 편하다. 물론 이런 변화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은 아니다. 나름의 근거도 있다. 


서촌 통의동의 작은 까페에서 하루하루 낯선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 세상에 대한 또 다른 재미를 줬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렇게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에 물들어가면서 내 관심사가 거대한 담론들에서 작은 이야기들로 이동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원래부터 변화에 목말라하던 나 자신이 서촌 통의동의 작은 골목길 속으로 나를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뭐든 살면서 접하는 모든 것들은 버릴 게 별로 없다. 가능하다면 그런 변화의 경계선에서 잠시 나를 돌아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어쨌거나 서촌 통의동의 골목길, 인적도 드문 이 작은 까페에서 매일매일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서는 오늘 하려는 이야기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문제는 내가 기다리는 걸 잘 못한다는 데 있다. 솔직히 내가 살면서 가장 못하는 것, 하기 싫은 것은 '기다리는 것'이다. 난 기다리는 법을 잘 모른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기다리는 법'을 아는 사람이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역설적이겠지만 그래서 기다리는 것에 관심이 생겼는지 모른다. 그러다 5가지의 결론을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기다리는 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2012년 월스트리트 저널에는 '프랑스 엄마들이 우월한 이유' (원제: Why French Parents Are Superior)라는 조금은 시선을 자극하는 기사가 하나 실렸다. 기사를 쓴 사람은 프랑스에 거주하는 미국 여성으로 세 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었다. 그녀는 프랑스에서 자식을 키우면서 자신의 미국 아이들과 프랑스 아이들과 어딘지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음식점에서 뛰어놀거나 자기 마음대로 물건을 흐트러놓는 보통의 미국 아이들과 달리 프랑스 애들은 음식점에서 조용히 식사를 했다. 공공장소에서 떼를 쓰거나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걔들은 뭐가 달랐던 것일까?' 


그 미국 엄마의 궁금증은 나의 궁금증이기도 했다. 결론부터 미리 말한다면, 차이점은 무엇이든 자식과 부모의 관계에서 고유한 영역을 규정하고 선을 넘지 않는 것에 있었다. 기사에서 인용된 한 프랑스 엄마의 인터뷰를 잠시 인용해 보자. 보다 확실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좋은 부모란 늘 아이들을 위해 배려하는 것은 아니며 (그걸 못했다고) 이에 대해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파리지엔 엄마가 말했다. '나에게 있어, 저녁은 부모를 위한 시간이다'라고. 그녀는 또 말했다. '딸이 원한다면 우리와 함께 있을 수 있지만, 이는 성인들의 시간이다." 


너무 냉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엔 전제가 따른다. 자식을 위해서 충분한 육아를 한 뒤의 이야기란 점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무엇이 충분한 것인가'라는 궁금증이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적어도 한국 엄마나 미국 엄마나 프랑스 엄마에 비해서는 조금은 자식 교육에 과포화된 상태에 도달해 있다. 경쟁이 사회를 그렇게 만들고 있다고 합리화시키기에는 좀 지나친 부분이 많다. 문제는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선 이미 '성공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시대에서나 바라던 성공한 인재상이 지식정보사회에서 요구하는 유능한 인재의 기준과 같을 수는 없다. 게다가 자식 교육에 올인하면서 가장 중요한 자신의 시간이 사라진다. 프랑스 엄마들이 약은 것은 그들이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으로 육아와 자신만의 시공간을 분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에게도 프랑스에서 잠시 거주했던 경험이 있다. 세상에 대한 공부를 좀 더 해보기 위해서 무리를 해서라도 떠나야 했던 시절이었다. 내가 거주했던 곳은 샹베리라는 작은 도시였다. 그 유명한 알프스까지는 1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산골 마을 같은 도시였다. 그 당시 샹베리에는 파리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크고 멋진 도서관이 하나 있었다. 나는 그곳에 살면서 틈만 나면 '메디아테끄'라 불리는 그 도서관을 방문했다. 특히 비싼 사진집이나 화보집, 오래된 흑백 영화를 볼 수 있는 미디어룸의 시설은 최고였다. 


그곳에서는 자연히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프랑스 엄마들을 만날 기회도 많았다. 기사를 쓴 미국 엄마의 말처럼 프랑스 아이들은 대여섯 살밖에 안 돼 보여도 어느 아이 하나 도서관에서 떠들거나 나가자고 투정을 부리는 일이 없었다. 마치 어른들을 일부러 따라 하는 것처럼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난 이것이 가능한 이유가 바로 프랑스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기다리는 법'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건 '단호함'에서 출발한다. 무엇이든 아이들의 뒤를 쫓아다니며 시중들기에 바쁜 한국 엄마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적어도 프랑스 엄마들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No'라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 여성들로 보였다. 


단호하게 아이들에게 '안돼!'라고 말할 수 있는 부모는 결국 아이들에게 두 가지 교육적인 효과를 준다. 자신의 영역과 부모의 영역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게 된다는 점이 하나고, 또 한 가지는 '개인'에 대한 생각, '개인주의'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시켜 준다는 점이다. 저급한 이기심이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데 반해서, 개인주의는 자신을 위해 타인을 존중할 줄 하는 정신이다. 내가 중요한 만큼 타인도 중요하다는 걸 인정하는 가운데 '톨레랑스'도 나왔다. 이런 개인주의에 대한 가치관이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그대로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개인주의를 어릴 적부터 교육받은 아이들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려는 강한 의지를 지닌 사람으로 성장한다. 오늘처럼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시대에서는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1970년 스탠퍼드 대학의 월터 미셀 박사와 연구진은 아이들의 기다림을 소재로 한 실험을 하나 진행했다. 이름하여 '마쉬멜로우 테스트'라고 이름 붙여진 그 실험은 4,5세의 아이들에게 마쉬멜로우가 있는 테이블이 있는 방에서 시작된다. 그곳에서 실험자는 아이들에게 '만약 마쉬멜로우를 내가 돌아올 때까지 먹지 않고 기다린다면, 돌아와서 2개의 마쉬멜로우를 준다'는 제안을 하고 방을 나간다. 참고 기다리면 보상이 따른다는 것이었다. 


실험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30초 정도 지난 다음 참지 못하고 마쉬멜로우를 먹었다. 3명 중 1명 정도가 15분을 온전히 참아냈다. 1980년대 중반 실험을 창안해낸 미셀 박사는 다시 실험에 참가했던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했는가를 관찰했다. '15분을 온전히 참아냈던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났을까?' 미셀 박사는 그게 궁금했다. 놀랍게도 실험에서 참을 서 있게 2개의 마쉬멜로우를 받았던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더 높은 수입과 건강한 신체, 그리고 낮은 이혼율을 보이고 있는 나타났다. 자기 통제력이 있는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도 훨씬 더 긍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는 의미다. 


도쿄의 어느 곳을 가도 줄을 길게 늘어선 일본인을 보게 된다. 겨우 빵 하나 사기 위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길게 줄 서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은 위기의 순간에서도 남을 밀치고 앞으로 나가 먼저 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럴 때는 배가 기울고 전체가 위기에 빠진다. 당장 베스트로 뛸 선수를 찾기에 분주한 것이 아니라, 베스트가 될 수 있도록 기다리는 법을 아는 스포츠의 세계에서 아이들은 진짜 베스트로 자라난다. 그곳에도 기다림의 미학이 있다. 여자의 마음을 사는 법을 아는 남자가 잘 하는 것도 바로 기다림이다. 그들은 결코 여자를 꼬시기 위해서 서두르지 않는다. 마음은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것이고 하물며 사랑은 그보다 더 하다. 런던에서 내가 만난 디자이너들은 조급하게 세계의 문을 두드릴 생각이 없다. 자기가 충분이 기량을 닦은 뒤라면 언제든지 자신의 제품을 사러 올 사람이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다. 세계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기다림은 그렇게 최고를 만들고 있다. 


글: 김덕영 (작가 / 다큐멘터리 PD)




2016년 신작. 서촌 골목길 까페 3년의 기록. '뭣 때문에 피터지는 레드오션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 하는가?' 인적도 드문 서촌 골목길에서 3년을 살아남은 까페 이야기. 
발간된 지 4년 된 베스트셀러. 나이 들었다고 인생을 포기할 순 없다. 오히려 그때부터 재밌는 인생이 시작된다. 그렇게 멋진 인생을 살다간 35명의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중년들의 사랑이야기에는 다른 게 뭐가 있을까? 부제: 뒤늦게 발동걸린 사랑이야기.

현재 작가는 서촌 통의동에 있는 작업실 겸 까페에서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하면서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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