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통하는 영화 <알로하>'
찌푸린 날씨처럼 우중충하고 답답한 날들 속에서 영화 한 편을 우연히 보았다. 생각보다 참 괜찮은 영화였다. 아니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 한 번 보세요’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여러 가지 의미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였다. 어떤 점에서는 삭막한 세상 속에서 마음속으로 부르는 사랑의 노래, 사랑의 몸짓이란 느낌도 든다. 아마도 그건 자연의 언어이자 말없이도 사랑의 세레나데를 바칠 수 있는 하와이안 훌라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역설적이지만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별로 좋지 않은 평을 받은 이유도 어쩌면 거기서 출발하는 것 같다. 바로 '훌라'라는...
2015년 개봉한 이 영화에 대해서 해외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별로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는 입장은 없다. '심심한 갈등', '로맨스인가? 교훈인가?', '하와이를 배경으로 했음에도 밋밋하다'. 이들 비판의 공통된 점은 영화가 특별히 긴장이나 감동이 없이 지루한 이야기로 짜여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 영화 평론 사이트 '로튼토마토' 역시 신선도 14%라는 지극히 낮은 평점을 매기고 있다.
그러면 도대체 나는 왜 이 영화 한 편을 보고 잔잔한 감동을 얻었던 것일까? 조금은 미스터리다. 나의 경우 이 영화를 통해서 다시 한번 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건 화려한 말의 성찬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런 작은 깨달음 하나가 모여서, 마치 물방울이 모이듯 내 마음의 유리창에 스며든 '신념'이 된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보는 것이며, 그래서 자기가 간절히 찾고자 하는 그 무언가를 위해 책을 읽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난다. 그것이 인생을 사는 재미일 수도 있다. 도대체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코끝이 찡한 감동을 주었을까? 오늘 이야기는 바로 그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말없이 통하는 그 어떤 것들에 대한 이야기.
사실 난 영화 평론가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실제로 케이블TV 방송국에서 내 이름을 달고 영화평을 진행하기도 했었다. 물론 직업적인 건 아니었다. 영화 한 편을 보고 그 영화에 대한 구조 분석이나 정치, 사회적인 배경에 집중하기보다는 내 삶을 되돌아보는 나만의 틀을 표현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아마추어였지만 꽤나 진지하고 열심히 했던 내 인생에서 매우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조금은 유치하지만 그래도 나름 분명 세상을 보는 시선을 갖고 있었다. 나의 경우엔 가슴을 뛰게 만드는 영화가 좋다. 사람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세상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들이 좋다. 그건 내 천성이 그런 것 같다. 나쁜 것보다는 좋은 걸 더 많이 보려고 하는. 물론 그래서 상처도 쉽게 받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이 영화 참 좋았다. 다른 사람들은 별로라는데 나에겐 좋게 느껴졌던 이유는 뭘까? 도대체 어디서 감상의 포인트가 달라졌던 것일까? 로맨스, 메시지, 글쎄... 내가 보기엔 '훌라(hula)'에 대한 감상이다. 훌라에 대한 이해가 영화에 대한 이해를 갈랐다. 자연의 언어를 담고 있는 '하와이안 훌라'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영화에 대한 느낌은 상당히 달라진다.
'훌라'는 춤을 추다는 뜻이다. 폴리네시안 원주민들이 하늘을 향해서 신성한 예배를 드리거나 감사의 마음을 담은 제식에서 추던 성스러운 제스처였다. 그래서 족장이나 제사장 등 주로 남성들이 담당했던 행위다. 옛날 하와이는 문자가 없어서 훌라라는 형식을 빌려 자신들의 행복과 건강 등을 기원했다고 한다. 문자가 없다 보니 몸이 그 역할을 대신했고, 자연히 훌라에는 어떤 신성함이 담겨 있다. 훌라 춤의 동작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이런 분위기를 잘 읽을 수 있다.
비, 바다, 떠오르는 태양, 흔들리는 야자수, 소용돌이치는 파도, 그리고 무지개까지 훌라의 기본 동작은 자연에서 출발한다. 손과 몸을 이용해서 자연의 이야기를 표현해낸다. 자연을 통해 인간의 감정에 도달한다. 사랑이나 연민, 시기와 질투, 우정과 배신 같은 인간사의 모든 이야기가 담긴다. 마치 손을 통해 시 한 편을 전달받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예를 들어서 이렇다. 머리 위에서 손가락이 떨리며 바닥으로 흘러내리는 모습은 비가 내린다는 의미다. 그 손가락이 눈가로 이어지면서 눈물이 흐르는다는 걸 표현한다. 그리고 가슴 한가운데로 양 손이 포개지는 순간 사랑이 완성된다. 만약 누군가 당신 앞에서 훌라 춤을 추면서 이런 몸짓을 표현했다면 그건 아마 이런 의미일 것이다.
'비가 내리고 있어요. 그 비를 맞으며 걷고 있어요. 그래서 조금은 마음이 슬퍼요. 비를 맞으며 함께 걷던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이 모든 과정이 단 한 마디의 말도 없이 이뤄진다. 훌라에는 말이 필요 없는 교감이 있다. 만약 사람과 사람이 서로 진실하게 믿을 수 있다면, 어쩌면 말없이도 마음이 전달될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훌라의 믿음이라고 난 생각한다.
영화 <알로하>는 그런 훌라의 마음이 담겨 있다. 영화 배경음악에선 천부적인 능력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캐머론 크로우 감독의 작품이다. 할리우드에서도 음악에 대한 일가견이 있기로 정평이 난 감독답게 이번에도 감미로운 훌라 음악이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미 오래전, 그는 자신의 유년 시절에 관한 자전적 영화 <올모스트 페이모스(Almost Famous)>를 통해서 예견됐던 일이다.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이전 그는 음악 평론가로 활동했다. 그것도 13살이란 어린 나이에 음악 전문잡지 '롤링스톤즈'에 기고를 할 정도로 탁월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음악 평론에 탁월하다는 말을 하기에 좀 그렇다. 사실 평론가는 천재성보다는 부지런함에서 다른 일반인들과 다른 점이 있다. 이미 10대의 어린 나이에 롤링스톤즈에 기고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고 학비를 충당했다고 한다. 그가 밝힌 원고료 액수가 1980년대 기준으로 4만 달러를 훌쩍 넘기고 있다. 오늘날의 가치로 환산하면 족히 1억 원이 넘는 액수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열심히 인생을 산 사람이 분명해 보인다.
2015년 개봉 당시 <매드 맥스>, <어벤저스:에이지 오브 울트론> 등과 겨루면서 어느 정도는 흥행 참패가 예상됐지만 이렇게 무참히 깨질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것이 영화 <알로하>에 대한 조금은 치기 어린 나의 변론이다. '참 예쁘고 가슴이 따듯해지는 영화인데...'
영화에서 감독이 말없이 보여주려고 했던 '훌라'에 초점을 맞춰보자. 영화에 대한 느낌은 180도 달라진다. 나의 경우에도 그랬다. 물론 운이 좋아서 서촌의 골목길 까페에서 몇 달에 한 번 꼴로 훌라를 감상하는 기회를 얻고 있다. 그 점이 훌라에 대한 조금은 남다른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뭐 그리 대단한 건 아니다. 누구나 조금만 정성을 들이면 유튜브에서 훌라 명곡 정도는 충분히 찾아서 감상할 수 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주인공이나 스토리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사실 이 영화를 보고 뭔가 부족함을 느낀 사람들은 대부분 바로 영화의 구조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영화를 만든 사람이 애초에 갖고 있던 마음, 그걸 표현하고 있는 무언의 대화들에 주목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거 다 빼고 글을 썼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사랑의 대결을 벌이는 두 남자가 말없이 눈빛만으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무척이나 코믹하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요소들을 통해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자연과 사랑의 언어가 연출하는 무언의 교감을 당신도 느껴보길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길을 가다 보면 영화 마지막 울컥하는 순간이 나온다. 나의 경우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가슴 찡한 순간이었다.
영화 한 편 보고, ‘그래! 역시 세상은 살 만한 곳이야!’라고 말한다면 좀 지나친 과장이 아닌가,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삭막한 세상 속에서 말로 표현하지 않는 사랑의 노래, 사랑의 몸짓을 느끼는 순간, 난 분명 느꼈다. ‘그래. 사랑이 있는 세상은 참 아름다운 곳이야…’.
글: 김덕영
현재 작가는 서촌 통의동에 있는 작업실 겸 까페에서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하면서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김PD의 통의동 스토리'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뭔가 특별한 인생, 재밌는 일상을 같이 공유하길 원하는 분은 언제든 서촌의 골목길로 발걸음을 한 번 옮겨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