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중국 문화혁명과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

소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를 읽고

by 김덕영

'김PD의 인문학 여행' (34)


어느 사회나 광기에 사로잡힌 시대가 있다. 1950년대 초반 '매카시즘'의 선풍에 휩싸였던 미국이 그랬고, 1930년대부터 2차 대전까지의 독일, 그리고 1960-70년대 중국을 지배했던 '문화혁명'이 그랬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도대체 그땐 왜 그랬지?'하고 생각을 하게 되지만, 당시엔 누구도 그 흐름을 거부하거나 저항할 수 없는 그런 시대적 분위기. 어쩌면 그것이 이데올로기의 가공할 위력이고 언제든지 쉽게 조작될 수 있는 여론의 한계가 아닐까 싶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는 중국인 스스로 광기의 시대라 칭하는 문화혁명을 몸으로 체험한 다이 시지에의 자전적 소설이다. 원래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다이 시지에는 2000년 자신의 기억 속에 가장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문화 혁명을 소재로 한 소설을 발표한다. 작가는 이 글을 통해서 부르주아 지식인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지방의 어느 외진 시골 마을로 내려가 강제적인 노력 봉사 활동에 전념해야 했던 1970년대의 자신의 경험과 마주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첫사랑처럼 다가왔던 순박한 또래의 중국 소녀와의 만남을 교차시킨다. 바로 '바느질하는 중국소녀'가 그녀이다.


중국 문화혁명이 일어난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지만, 모택동의 실권과 그것을 만회하기 위한 정적 제거의 수단이 되었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1949년 중국에서는 모택동의 대약진운동의 실패와 오래된 기근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감 등을 극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모택동은 이를 위해 정신의 힘으로 위기를 타개하자는 대안을 내놓는다. 의식의 개혁, 문화 개조를 통해서 고난을 극복하고 중국의 미래를 건설하자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이런 모택동의 계획은 뜻하지 않은 난관에 봉착한다. 바로 팽덕회, 등소평 등을 중심으로 한 반대 세력의 부상이었다. 그들은 의식의 개혁을 위해서는 개개인의 문화적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이론을 통해서 모택동과 정면에 맞섰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주장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모택동을 중심으로 한 집권 세력에게는 정적을 제거할 수 있는 좋은 구실이 되었다. 자발적인 군중 조직 '홍위병'이 등장한 시점도 바로 이 시기다.



소설은 이미 문화혁명이 중국 전역으로 불어닥치고 주요 정적들이 제거된 이후인 1974년 경 중국 용징이라는 어느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의사 아버지를 두었다는 이유 하나로 가족과 생이별하고 평생 해보지도 않았던 밭일이며 똥지게를 지는 것 같은 고된 노동을 해야만 했던 20대 두 젊은이가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들 사이를 이어주는 또래의 소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가 있다.


바이올린이 무엇인지도 모를 정도로 문명과 동떨어져 생활해야 했던 가난하고 궁핍한 시골 마을 사람들, 그들과의 동거는 두 젊은이들에게 어색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희망조차 사라져 버린 시대를 한탄하던 그들에게 아주 우연한 기회에 프랑스 소설이 가득 담긴 가방 하나가 손에 들어온다. 그 가방 속에는 발자크의 소설을 비롯해서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와 같은 자유주의 소설들이 가득 차 있었다.


"아직 청춘의 혼돈상태에 빠져 있는 열아홉의 숫총각이 애국주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정치운동에 관한 혁명적 장광설밖에 모른다고 생각해보라. 그런데 갑자기 그 작은 책은 침입자처럼 나에게 욕망과 열정과 충동과 사랑에 눈을 뜨라고 말하면서, 그때까지 고지식한 벙어리에 지나지 않던 내게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 중에서.


삶이 그렇듯이 우연은 계속 이어진다. '바느질하는 소녀'에게 발자크의 소설을 이야기로 들려주게 된 일이 그렇다. 광폭한 억압의 시대, 어느 누구도 모택동의 어록을 제외한 어떤 책도 읽을 수 없는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그들은 숨죽여서 낭만과 자유의 노래가 담긴 책들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서서히 변화가 시작된다. 바로 그들의 마음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가 가장 강조하고 있는 부분도 바로 이 점이었다. 어떤 억압과 광기가 지배해도 인간의 순수한 사랑과 이성은 그 빛을 발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어느 누구도 감히 '아니오'라고 말할 수 없는 그런 시대적 분위기가 존재하는 시기가 있다. 남의 눈치를 봐야 하고 잘못하다간 목숨을 제대로 부지할 수 없을 정도로 살벌한 시기가 존재한다. 문제는 그런 시대를 돌파하는 문학의 힘이다. 그래서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다분히 서구적인 관점에서 중국의 근대성을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안에 담긴 정서는 보편타당하고 정의롭다. 인간은 누구나 권위에 굴복당하지 않는다. 인간의 자유란 제압당하지 않는다. 그건 작가가 선택한 제목을 봐도 알 수 있다. 발자크의 소설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건 집단주의에 맞서 개인의 개성과 자유를 강조한 발자크의 사상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발자크의 책을 읽고 그들 사이에 오고 간 대화를 보면 이런 감정이 잘 살아난다.


"기쁨의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아니. 난 중오심만 나는 걸."

"나도 그래. 이런 책들을 읽지 못하게 금지한 자들이 모두 가증스러워"

-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얼핏 보면 무거운 소설처럼 보일 수도 있는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소설 곳곳에 익살스러운 풍자와 유머가 숨겨져 있어 가볍게 읽어갈 수 있는 소설이다. 어찌 보면 장중한 심포니라기보다는 실내악 현악 4중주의 경쾌함에 가깝다고나 할까. 그러면서도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과 자유라는 삶의 조건에 대한 성찰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난 그 부분이 제일 좋았다. 작고 소소한 삶의 흔적들을 통해서 거대한 바람과 맞서려는 작가의 영혼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도둑질까지 해가면서 힘겹게 얻은 소설책들, 오직 마음에 둔 여인의 사랑 하나를 얻기 위해서 밤이건 낮이건 어떤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았던 청년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발자크 책 읽기는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반전을 이룬다. 어쩌면 그런 게 인생이겠지만...


“발자크 때문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는 거야.

여자의 아름다움은 비할 데 없을 만큼 값진 보물이라는 걸.”


발자크를 통해서 시골 마을 바느질하던 소녀가 더 나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도시로 떠나는 장면은 압권이다. 그것도 돈을 벌기 위함이나 안락함을 위함이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렇게 시대를 뛰어넘어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가 하나로 이어지고 있다. 문화혁명의 광기와 19세기 낭만파 발자크가 뒤섞이는 순간이기도 하다. 여기선 무엇이 옳은가는 그리 중요해보이지 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의 문제다. 그런 다양성의 힘이 문화를 만들고 사회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어찌 보면 개인의 자각을 통해서만이 공동체의 번영이 유지될 수 있다는 한 편의 자유주의 소설이 집단적 광기를 극복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골 마을을 떠난 '바느질하는 중국소녀'는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혹시 '재봉틀 앞의 중국소녀'가 되지는 않았을까?


한편 중국은 '문화 혁명'의 여파로 경제 발전이 10년 이상 뒤쳐지게 되었다. 하지만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중국인들의 심리에 미친 영향이다. 남의 일에 무관심하고 개입하지 않으려는 오늘날 중국인들의 심리는 '문화 혁명' 기간 동안 남의 일에 함부로 나섰다가 괜히 피해를 입었던 트라우마가 아직도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 길거리에서 아이가 유괴되도, 소매치기나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도 남의 일처럼 구경만 할 뿐 개입하지 않고 방관자로만 남으려는 그들의 모습엔 아물지 않은 '문화 혁명', 그 상처의 흔적이 남아 있다.


글: 김덕영





자신의 스토리와 콘텐츠로 단골을 만들어라! '왜 우리는 레드오션, 치열한 경쟁의 세계에서만 살아남으려 하는가?' 인적도 드문 서촌 골목길에서 3년을 살아남은 한 까페 이야기.



나이 들었다고 인생을 포기할 순 없다. 오히려 그때부터 재밌는 인생이 시작된다. 그렇게 멋진 인생을 살다간 30명의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부제: 뒤늦게 발동걸린 사랑이야기. 가슴 절절한 중년들의 사랑이야기. '당신은 지금 진정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현재 작가는 서촌 통의동에 있는 작업실 겸 까페에서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하면서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김PD의 통의동 스토리'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뭔가 특별한 인생, 재밌는 일상을 같이 공유하길 원하는 분은 언제든 서촌의 골목길로 발걸음을 한 번 옮겨보시기 바랍니다.






keyword